- 문화·관광·산업 어우러진 쾌속 성장
- “4대강 사업? 우린 MB한테 고맙다 칸다”
- 경제창출 규모, 대구 전체의 70%
- ‘변방’ 꼬리표 떼고 대구의 새 중심으로
달성군은 1914년 3월 1일 경상북도 대구부(府) 외곽지와 현풍군을 통합해 16개 면을 관할하는 ‘경북 달성군’으로 출범했다. 지금의 중구를 제외한 대구 전 지역에 해당하는 드넓은 면적을 관할케 된 것. 현재도 달성군 면적(9개 읍·면 관할)은 426.6㎢로 대구 전체의 절반인 49%를 차지한다. 1995년엔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구시에 편입됐다. 그런 달성군이 지난 3월 군(郡) 개청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기념식을 열고 감회와 희망을 아로새겼다.
달성군 수장(首長) 김문오(65) 군수의 이력 또한 독특하다. 2010년 6·2지방선거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적 고향’인 이곳에서 무소속 출마해 한껏 바람몰이에 나선 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후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의 유일한 무소속 기초자치단체장이었다가 2012년 11월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이번 6·4지방선거에선 경쟁 상대가 없어 무투표 당선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김 군수는 대구MBC ‘뉴스데스크’ 앵커와 보도국장을 지낸 기자 출신. 그런데도 ‘촌사람’ 같다. 어쩌면 서울내기들이 곧잘 ‘시골’이라 일컫는 고향 달성군이 그에겐 예나 지금이나 입에 쩍쩍 달라붙는 구수한 담북장과도 같을 터. 사실 우린 누구나 한두 대(代) 거슬러 오르면 죄다 촌사람 아니던가.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4일 그를 찾았다. 촌인(村人)끼리의 만남. 대구가 고향인 기자로선 귀성(歸省) 인터뷰인 셈이랄까.
자긍심 높이려 군 백서 발간
▼ ‘개청 100주년’ 경사를 맞은 소회는.
“100년 전은 일제강점기다. 기초자치단체로서 100년을 이어온 곳은 매우 드물다. 나도 군수 되기 전엔 100년이나 되는지 몰랐다. 2010년 군수 당선 후 군 위상과 군민 자긍심을 높이려 군 역사 재조명과 뿌리 찾기를 하려는데, 마침 올해가 100주년이더라. 타이밍이 좋았다. 집안이든, 기관·단체든, 나라든 역사 정립부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관련자료를 찾느라 애먹었다.
올해 가장 중요한 사업이 군 백서 발간이다. 군 역사와 발전상을 집대성해 지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한 거다. 다른 지역엔 그런 게 거의 없다. 우린 과감히 한다. 100년치 만들어놓으면 향후 50년, 또 다음 100년, 계속 보완될 거다. 한 세기에 대한 종합 정리는 곧 새로운 세기를 위한 디딤돌이다.”
당초 3월 1일 100주년에 딱 맞춰 백서를 내려고 했단다. 하지만 규모가 방대하고, 새로운 자료가 계속 발굴되다보니 10월 9일 ‘달성군민의 날’에 맞춰 백서 헌정식을 열게 됐다. 발간 소문이 나서 문중, 유림, 학교 등 달라는 곳이 많다. 1000질을 예정했지만, 1200질로 인쇄량을 늘려 잡았다.
▼ 100주년 기념사업으론 어떤 게 있나.
“2012년 3월 ‘100년 달성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꾸려 13개 사업을 확정하고 모두 순조롭게 추진했다. 향토문화유산 기록화, 달성 꿈 프로젝트, 100대 경관 명소 사진 발굴, 100년 달성 장승 설치, 역사인물 동상 조성, 100년 기념숲 조성, 100년 다큐멘터리 제작, 100년 달성 학술대회, 100년 상징 조형물 조성 등을 완료했다. 백서 발간을 비롯해 주요 유적 발굴조사 성과 정리 및 대표유물 소개 책자 발간도 차질 없이 마무리 중이다. 또한 대견사(大見寺) 중창·복원 사업에도 성공해 3월 1일 개산대제(開山大祭·절의 창건일을 기념해 여는 큰 법회)를 열었다. 그러곤 3월 3일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함으로써 기념사업의 대미를 장식했다.”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된 천년 고찰. 고려 고승 일연선사가 초임 주지로 부임해 22년간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구상하고 집필한 곳이다. 하지만 1917년 일제가 대마도 기(氣)를 누른다는 명목으로 강제 폐사한 후 방치되다 이번에 역사 고증을 거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 문화유적지라 복원이 쉽지 않았을 텐데.
“사업 허가 등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민족정기 회복과 문화유산 재현이란 큰 틀에서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천연기념물 제435호인 암괴류와 비슬산 해발 1000m 고지의 수려한 자연경관, 자연휴양림, 둘레길, 참꽃축제 등과 어우러진 대견사는 앞으로 군 관광의 선도 구실을 하며 전국적 명소로 거듭날 것이다. 10월부터는 이곳을 오가는 친환경 전기 셔틀버스도 운행해 교통 약자의 접근 편의성을 높인다. 지금도 휴일이면 많은 사람이 찾는데, 향후 팔공산 갓바위를 능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대견사에선 내가 부처님의 가피(加被·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주는 것)를 받아 무투표 당선됐다고 광고한다.”
대견사 중창과 4王의 氣
김 군수가 말을 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더니 집무실 TV를 켠다. 이내 비슬산 정상 천왕봉에 설치된 산불감시용 CCTV 화면이 뜨더니 대견사가 실시간으로 내려다보인다.
“대견사 뒤 바위가 암괴류다. 그 위론 비슬산 1000m 고지, 100만㎡에 달하는 참꽃 군락지다. 비슬산엔 4왕(王)의 기(氣)를 받아 4명의 왕이 난다는 설이 있다. 혹자는 그 기운으로 박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이제 3개 남았다고도 한다. 그걸 벤치마킹해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이 ‘4왕의 기를 받아 DGIST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자’고 했는데, 내가 3개 다 가져가진 말고 하나는 남겨두라고 했다.(웃음)”
문화해설사 못잖은 설명. 신이 난 듯하다. 대견사로선 되레 김 군수가 대견할 것 같다.
▼ 불교 신자인가.
“그렇긴 한데… 1년에 두 번만 절에 간다.(웃음)”
▼ 이런 사업들에 대한 군민 반응은.
“4년 전부터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니 행여 소비성 행사를 하는가 싶어 뜨악하게 여겼으나 지금은 매우 좋아한다. 처음에 ‘100년 달성 꽃피다’란 군정 슬로건을 내거니 ‘무슨 꽃이 핀단 말이고? 김문오 꽃?’ 하는 식으로 시큰둥해했다. 근데 이젠 ‘꽃피다’가 친숙하고 미래지향적이라고들 한다. 100주년인 만큼 올해는 ‘대구의 뿌리 달성 꽃피다’로 슬로건을 바꿨다.”
▼ 지난 4년간의 민선 5기 군정에선 유독 문화·관광의 접목이 돋보인다. 그에 천착한 이유라도 있나.
“대구엔 관광이란 화두가 없다.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가 미흡하다. 그래서 그 화두를 달성군에서 꽃피워보려 했다. 왜? 우린 여건이 되니까. 명산 비슬산엔 대견사, 용연사 등 불교문화가 풍부하다. 도동서원 등 유교문화도 뿌리 깊다. 거기에다 낙동강도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해 대구테크노폴리스, 대구국가산업단지 등 대구의 미래 먹을거리가 될 달성군의 하드웨어(산업)와 조화를 이룰 소프트웨어를 갖추고자 했다. 그게 바로 문화·관광 인프라 및 콘텐츠 구축이다. 새로운 전략사업인 셈이다.”
▼ 현 정부 4대 국정기조 중 하나인 ‘문화융성’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우리가 먼저 시행했다.(웃음) 물론 박 대통령 의중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군민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이 지역 국회의원으로 있다 대통령이 된 분이 ‘문화융성’이라고 하니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군민들도 점차 이해 폭을 넓힌 것 같다.”
“문화융성? 우리가 먼저 했다”
▼ 화원읍 성산리 화원동산 소재 옛 사문진 나루터에서 여는 ‘100대 피아노 콘서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사문진 나루터는 18세기 근대음악 시기에 탄생한 획기적 건반 악기인 피아노가 국내 최초로 들어온 관문이다. 즉 우리나라 신(新)문화의 원류 구실을 한 달성군의 위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다. 달성문화재단이 관련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한국음악문헌학회 손태룡 대표가, 1900년 3월 26일 미국 선교사 사이드 보텀(한국명 사보담)이 사문진 나루터로 피아노를 들여온 과정을 논문으로 입증했음을 알게 됐다. 논문은, 미국에서 가져온 피아노를 사문진 선착장에 내린 후 사흘 동안 대구 종로의 집까지 옮기는 과정을 소상히 밝혔다.
원래 대한민국 최초 피아노로 알려진 건 1901년 들어온 것으로 현재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에 전시돼 있다. 그런데 그보다 1년 앞서니 이건 엄청난 스토리 아닌가. 그래서 스토리텔링을 거쳐 피아노를 테마로 콘서트를 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런데 알아보니 100대론 화음을 제대로 맞추기 어려워 힘들다더라. 그러다 임동창 씨를 만났다. 그가 그랬다. ‘굿 아이디어!’ 그 양반이 클래식과 국악에 두루 정통한 풍류 피아니스트 아닌가. 그 후 2012년 1회 콘서트를 열었는데, 반향이 컸다. 10월엔 3회 행사를 연다. 보러 오라. 장관이다.”(상자기사 참조)
▼ 관객 반응은 어땠나.
“1회 땐 평면 무대에서 하니 입체감이 덜했다. 그래서 2회 땐 계단식으로 꾸몄는데 그래도 집음(集音)에 문제가 있었다. 올해는 아예 행사장 바닥에 통로를 만들어 피아노를 청중 곁에 쫙 깐다. 청중과의 일체감을 위해서다. 2회 때부터 크게 알려지니 서울, 부산, 경주, 울산,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관객이 찾아온다. 음악애호가, 임동창 씨 팬…. 피아노 100대라니 누군들 호기심을 갖지 않겠나. 연주자 선발에 대한 청탁까지 들어온다. 올해는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이 이틀 여는 공연 첫날 음악 전공 고등학생들을 무대에 세워달라더라.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그러라 했다.”
3월 1일 열린 대견사 중창 기념 개산대제.
“화원동산에 피아노박물관을 건립해 ‘피아노 메카’로 키울까 한다. 국내에 안목 높은 피아노 수집가가 있다. 1700년대 유명 작곡가가 사용한 소형 피아노를 비롯해 해외 경매시장에서 수집한 피아노를 많이 소장했는데, 그도 피아노 박물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접촉했지만 그가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제안엔 역사성과 장소 면에서 ‘OK’라고 해서 함께 추진키로 했다.”
▼ 사문진 나루터엔 주막촌도 있지 않나.
“주막촌이 들어선 곳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사실주의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감독 이규환, 주연 나운규)의 촬영 장소다. 4월 1일 정식 개촌(開村)했다. 주말이면 3000~4000명이 몰려 인산인해다. 관광객 증가는 곧 군 세수 증대와 주민 소득 향상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11월 개촌 준비 때부터 손님을 받았는데, 결산해보니 월평균 매출이 7200만 원이었다. 원래 연매출 3억 원을 예상했는데, 8월 한 달 매출만 1억 원이 넘더라. 국수 3500원, 국밥 5000원, 막걸리 5000원, 전부침 4000원. 다른 관광지보다 훨씬 싸다.
그런데도 지역 어르신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했는지 모른다. 70세 할머니들이 식당에서 일한다. 할아버지들은 야간 경비를 서고 쓰레기도 치워준다. 주막촌이 굉장한 효자인 셈이다. 곧 주막촌과 연계한 나룻배도 띄운다. 영남 일대 보부상이 들어오던 옛 영남 물류의 중심지가 여기다. 서문시장과 약전골목 약재들도 모두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런 옛 정취를 복원하자는 차원에서다.”
낙동강은 달성군민의 원형질
▼ 낙동강을 근간으로 한 문화·관광 사업 추진이 돋보인다. 달성군에 낙동강은 무엇인가.
“단순한 하천이 아니다. 나뿐 아니라 19만 군민 모두의 핏속에 흐르는 원형질이다. 어릴 적 가족, 친구와 늘 함께했던 고향 그 자체다. 대구 출신이라면 그 옛날 모래찜질을 하던 화원유원지 백사장이 머릿속에 아련히 떠오르지 않을까. 강은 놀이터였다. 학생에겐 소풍 장소, 어르신에겐 청춘의 추억이 서린 곳. 더불어 달성군 최고의 자연자원이다.”
▼ 4대강 사업 여파로 지자체마다 난리다. 강정보와 달성보는 문제없나.
“일부 언론과 환경단체들이 뭐라고들 하는데, 달성군은 사실 4대강 사업 최대 수혜지다. 낙동강과 연접한 지자체 중 달성군 구간(하빈면 하산리~구지면 대암리)이 중심인 데다, 58㎞(강 전체는 506㎞)로 가장 길다. 게다가 2개 보 모두 4대강 16개 보 중에서도 명품 보다. 그 덕에 유원지도 복원하고, 주변에 체육시설도 만들었다. 달성군엔 가뭄과 수해가 없다. 하상(河床)이 평균 3m 낮아져서다. 전엔 ‘메기 하품 하면 물난리 난다’고 했다. 그런데 이젠 물 한 번 안 넘친다. 군민들이 그칸다(그렇다고 한다). 우야든동(어떻게 하든지) 4대강 카면(그러면) MB(이명박 전 대통령)한테 고맙다고.”
달성군은 2011년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에서 보건복지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2012년 저출산 극복 우수 자치단체로 선정(보건복지부장관상 수상)됐다. 김 군수도 2012년 미래지식경영원이 주관한 제18회 지식경영인 최우수기업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장부문 지식경영인 대상’을 받았다.
▼ 상복이 많다.
“좀 받았다. 비결? 그런 거 없다. 단지 실현가능성 높은 사업을 발굴해 추진할 뿐이다. 700여 군 직원에겐 내가 와서 추진하는 사업 외에도 중앙부처에서 관장하는 주요 정책 추진사업들이 있다. 난 그에 대해 직원들에게 ‘안 되면 우리 돈으로 한다 치고 관련 아이템을 한두 개 만들어 놔라’고 주문한다. 중앙 및 각급 공모 사업이 발표되면 맞춤형으로 그 아이템을 갖다 넣자 이거다. 문화면 문화, 산림이면 산림, 관광이면 관광…. 그게 효과가 있다. 지난해 27개 공모사업에 응모해 87억 원의 국·시비를 유치했다. 2012년엔 60억 원, 2011년엔 30억 원이었다. 공모사업은 군에 예산 절감 효과를 내고, 직원들에겐 ‘노력하면 된다’는 긍정의 힘을 불어넣는다. ‘준비된 공모’는 이렇듯 실적을 낸다.”
‘기억에 남는 군수’
▼ 대구시 8개 구·군 중 달성군의 경제적 위상은? 부채가 제로(0)라던데.
“급속한 광역화로 군민에게 ‘달성군=대구의 변방’이란 피해의식이 좀 있었다. 대구의 ‘큰집’이자 뿌리이며 모태였지만, 대구시에 편입돼 관할지역을 거의 다 떼어준 뒤 ‘막내’가 됐다는 실망감이랄까. 내가 ‘달성 뿌리론’을 편 까닭도 군민 자긍심을 북돋우기 위해서다. 이젠 달성의 미래가 대구의 미래다. 그 중심엔 대구 경제의 핵심 동력이 될 미래형 첨단복합도시인 대구테크노폴리스, 향토기업은 물론 역외 우량기업을 유치할 대구국가산업단지(2018년 사업 완료)가 있다. 광역교통체계 개선을 위한 도시철도 1호선 국가산업단지 연장사업도 예비타당성조사가 실시 중이다. 달성군은 대구 경제의 70%를 책임질 만큼 초고속 성장을 일궈냈다. 앞으론 우리가 대구를 먹여 살린다.”
▼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민선 5기 때 처음 당선됐는데, ‘박통’과는 내가 대선방송 사회 본다고 뵌 정도이고 특별한 인연은 없다. 무소속 출마 때 박통이 열흘을 여기서 머물며 여당 후보를 전폭 지원했다. 솔직히 낭패였다. 그럴 줄 알았다면 출마 안 했을 거다. 2027표차로 이겼는데, 야당 후보가 5000~6000표쯤 까먹었다. 내가 여론조사에선 앞섰는데, 박통이 본인 선거보다 더 열심히 했다. 그래도 한 번도 비난 안 했다.”
▼ 3선(選)하고 싶나.
“한다 그러면 뒷말 나올 거고, 안 한다 그러면 레임덕이 올 거다. 그래서 절대 한다, 안 한다 말하지 않는다. 단, 3선을 염두에 둔 군정은 하지 않는다. 정도(正道)로 간다. 한 번 더 할 걸 의식하면 포퓰리즘, 선심성 행정이 돼버린다. 군수는 정치인이 아니라 최고경영자(CEO)여야 한다. 그저 잘 짜인 행정으로 군민 기억에 오래 남는 군수가 되고 싶다. 내게 달성(達城)군은 곧 무언가를 달성(達成)해야 할 곳에 다름 아니다.”
김 군수 말은 엄청 빠르다. 행동도 쏜살같다. 인터뷰가 끝났는데도 군정에 대해 부연하느라 결국 결재 시각을 넘긴다. 사진기자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에 돌아보니 배석한 군청 직원들 얼굴이 사색이다. 고생깨나 시키겠다 싶다. 하지만 어쩌랴! 군민과 함께한 100년, 군민과 함께할 100년의 접점에 선 의욕 넘치는 군수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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