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뒤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 모색
- ‘아끼기’만 잘해도 부채 다 갚는다
- 현장을 돌면 답이 나온다
박영일(60) 남해군수는 남해 토박이다. 남해에서 초·중·고교를 나오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중·고교 교사를 하다 수산업에 투신했다. 수산업협동조합 조합장을 지낸 것이 군수가 되는 데 발판이 됐다.
박 군수의 첫인상은 그다지 부드럽지 않았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배구선수 출신답게 키가 헌칠하고 몸에 군살이 없어 보였다. 운동을 한 사람들은 대체로 투박해 보인다. 말이나 행동에 꾸밈이 없다. 박 군수도 그런 편이다.
“제주보다 훨씬 낫다”
▼남해 자랑을 해달라.
“13년간 선생을 했다. 그때만 해도 해안도로가 비포장이었다. 오토바이로 출퇴근했는데, 스물일곱 살 때인가,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해는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관광객들이 ‘제주도보다 훨씬 낫다’고들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고 자동차로 올 수 있다는 점, 아직 굴뚝(산업)이 없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청정지역 이미지가 유지되는 것도 그 덕분이다. 미개발지역도 많다. 그렇다 보니 불편한 점도 많다. 하지만 역으로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할 일이 많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주민도 많이 기대하고, 나도 가슴이 부풀어 있다.”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는.
“관광산업이다. 우리 군 경제의 근간은 농수산업이지만 앞으로는 관광이 중심이 돼야 한다.”
현재 남해군을 찾는 관광객은 연평균 500만 명. 이를 2년 내 100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게 박 군수의 포부다. 그는 “1차산업을 업그레이드해 6차산업(관광)과 연계하겠다”고 했다.
“일조량이 많고 안개가 없고 강수량이 적당해 파프리카나 애플수박, 체리 따위의 특화된 과일이 열린다. 그런데 노령인구가 많다보니 일손이 달려 그간 제대로 개발하지 못했다. 주요 농산물인 시금치, 마늘 농사도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이를 기계화하려 한다. 대체작물도 준비 중이다. 다음으로 수산업 얘기를 하자면, 우리 군민의 반이 수산업에 종사하는데 지금 전 세계적으로 바다가 어렵다. 고기가 안 난다는 얘기다.”
▼원인이 뭔가.
“환경적 요인도 있고 마구잡이로 싹쓸이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10년 후엔 수산업의 상당 부분이 도태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찾아야 한다. 10년 후에도 지속가능한 수산업은 양식이다. 그중에도 해삼, 전복, 가리비 세 종목에 주력하려 한다. 전국에서 자연산 해삼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 남해다. 전복은 전국 생산량의 80%가 완도에서 난다. 똑같이 4면이 바다로 둘러싸였지만, 완도에 비해 환경적 조건이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다시마, 갈조류와 같은 해삼의 먹이가 부족하다. 수온이 따뜻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전복 껍데기에 따개비나 굴, 홍합 따위가 달라붙는 것도 문제다. 이런 현상이 완도보다 훨씬 심하다.”
▼대책은.
“수협장을 할 때부터 계속 지켜봤기에 문제점을 잘 안다. 지난해 봄 중국에서 유행하는 가두리 양식을 도입해 시험 중이다. 먹이 부분도 해결했다. 중국에서 쓰는 평양사료를 들여와 공급하는데, 성장률이 좋다.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자연 사료에 평양사료를 섞어 먹여보니 훨씬 잘 크더라.”
곤포 사일리지 마케팅
둘째는 ‘고품격 관광·휴양 남해’라는 표어가 말해주듯 관광산업 활성화다. 남해문화관광단지 힐링빌리지, 이충무공 순국공원, 노도문학의 섬, 다이어트 보물섬, 남해대교 레인보우 전망대, 농어촌 테마공원, 보물섬 800리길, 관광 실크로드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보물섬은 남해의 별칭이다. 노도는 조선 후기 문장가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셋째는 지속가능한 고부가가치 농어업 육성이다. 먼저 농업을 보면, 지역여건에 적합한 냉이, 미니 단호박, 애플수박 등 비교우위 고소득 특화작물 생산단지를 확충한다. 아울러 기능성 쌀과 마늘, 시금치, 유자 등 지역 특성이 가미된 가공제품을 개발한다. 수산 쪽으로는, 해삼양식 특화단지를 조성하는 한편 노도 해역에서의 전복 가두리 시험 양식을 통해 어업소득을 안정적으로 올린다는 복안이다.
넷째는 인간존중 맞춤형 복지행정. 복합 경로문화센터 운영, 다기능 장수지팡이 지원, 과열방지 가스레인지 보급 등이 주요 사업이다.
다섯째는 군민이 감동하는 선진 행정. 예산 절감과 낭비성 행사 줄이기, 보존하기에 적합지 않은 공유재산 매각 등으로 채무 없는 원년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육지 사람들에게 홍보를 잘해야 할 텐데.
“사실 홍보가 쉽지 않다.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 홍보판을 세워놓았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남해에 들어서면 논 주변에 서 있는 곤포 사일리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추수한 후 사료로 쓸 볏짚을 모아놓은 것이다. 곤포 사일리지는 수분량이 많은 목초나 야초, 사료작물 따위를 진공으로 저장·발효한 것을 말한다. 곤포 사일리지에 남해를 홍보하는 문구를 넣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박 군수다. 그는 이를 ‘곤포 사일리지 마케팅’이라 표현했다.
▼복합 경로문화센터는 기존 경로시설과 어떻게 다른가.
“시골 노인들 만나보면 가장 심각한 문제가 외로움이다.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문제다. 여자들은 고스톱도 치면서 잘 논다. 그런데 남자들은 서너 명 우두커니 있거나 신문 보는 정도다. 참 보기 딱하다. 그래서 경로당을 개조해 노인들에게 삼시세끼를 제공하면서 싱크대와 화장실 등을 갖춘 생활 공간을 만들어주려 한다.”
▼거기서 애인 만드는 것 아닌가(웃음).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 절대 못 들어오게 한다(웃음).”
▼채무 없는 원년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예산은 64억 원 증액했다.
“아끼는 것만 잘해도 가능하다. 현장에 나가 보면 눈에 보인다.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였는지. 한번은 어떤 마을에 창고가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직접 가봤다. 농기계 창고를 다른 곳에 임대하고는 새로 창고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더라. 그래서 내가 담당 부서 팀장을 혼냈다. 땅을 매입해 도로를 낼 때는 토지보상을 한다. 그런데 자투리땅이 있으면 누구도 손을 안 대고 그냥 내버려둔다. 그렇게 묵혀둔 땅이 꽤 있다. 이런 땅들을 모아 잘 활용하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부채 50억 원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본다.”
스포츠산업 대상
“현장을 자주 찾는다. 토·일요일에는 개인 차량을 타고 새벽부터 돌아다닌다. 수협장 할 때도 그랬다. 마을 마을을 돌면서 뭐가 필요한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본다. 예컨대 날이 밝았는데도 가로등이 켜진 곳이 군데군데 있다. 이런 걸 확인해서 담당 부서에 알려주고 시정하게 한다. 주민과는 자연스럽게 만나지, 따로 자리를 만들진 않는다.”
▼주로 뭘 해달라는 요구가 많을 텐데.
“관광지다 보니 화장실 청소나 쓰레기 수거가 중요하다. 자체 관리하는 마을도 있고 용역회사에 맡긴 곳도 있다. 워낙 많다 보니 하루만 제대로 치우지 않아도 민원이 제기된다. 하도 돌아다니며 점검해서 그런지 요즘은 많이 깨끗해졌다는 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남해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스포츠산업 대상 지방자치단체 부문 대상을 받았다. 4개 단체가 수상했는데, 프로축구구단 두 군데, 지자체 두 곳이다. 남해시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잔디 덕분. 사계절 잔디, 혹은 롤 잔디로 불리는 남해 잔디는 품질 좋기로 유명해 전국 축구장에 공급된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도 남해 잔디가 깔렸다. 겨울이면 전국 각지 축구팀이 남해에서 전지훈련을 한다. 박 군수는 부임 이후 가장 보람 있던 일을 묻자 스포츠산업 대상 수상이라고 답했다. “전임 군수와 지역 국회의원들이 기반을 다져놓은 덕분”이라면서.
▼의회와는 협조가 잘되나.
“사람 사는 곳에 문제없는 곳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본다.”
박 군수는 존경하는 인물로 남해 출신 정치인 고(故) 최치환을 꼽았다. 국회의원을 다섯 차례 지낸 최치환은 남해대교 건설을 주도하는 등 남해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장인이기도 하다. 박 군수는 “남해는 남해대교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했다.
조성식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mairso2@donga.com
강정훈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