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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정치, 희망은 국민이다

절망의 정치, 희망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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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는 12월에 실시되는 대선의 역사적 의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3김 시대 이후의 한국정치가 새롭게 선보인다는 점이다.
  •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선 정국에서 한국정치의 희망을 발견하기는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정당보다는 인물, 정책보다는 도덕성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어 있는 데다 포지티브가 아닌 네거티브 캠페인, 그리고 적극적이 아닌 반사적 이익이 효과적인 선거전략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절망의 정치, 희망은 국민이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유권자들

16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목전으로 다가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일종의 국민적 축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 원칙이 실질적이기보다는 선언적이고 능동적이기보다는 피동적인 것이지만, 최소한 선거일 하루 정도는 국민이 주권자라는 사실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날만큼은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는 정치인들도 주권자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진다. 비록 다음 날이면 주권자 위치에서 사실상의 실권자(失權者) 신세로 되돌아가는 것이 국민들이지만, 그래도 자유로운 선거가 주기적으로 존재하기에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역사상 최상급의 정치체제로 평가받는 것이리라.

오는 12월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는 전혀 축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 정치 자체에 대한 국민적 허무주의가 대선을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오랜 군사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민들은 오매불망 민주주의를 원했고 대통령 직선제를 바랐다. 그것은 당시 독재체제에 대한 불만과 체육관 간선제에 대한 염증이 초래한 국민적 정서였다.

하지만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았다는 민주화의 감격은 지금 정치권에 대한 극단적 냉소와 혐오로 변질되고 있다. 민주화를 통해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으면 비록 만사가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여러 측면에서 조금은 나아지리라고 기대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난 10년 동안 ‘문민정부’ 및 ‘국민의 정부’의 잇따른 국정 실패를 겪으면서 대선에 대한 국민적 열정이 차갑게 식어버린 것이다.

‘당한 만큼 갚겠다 VS 놓치면 죽는다’

이와 함께 대선이 국가적 불안이나 혼란을 야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대선 열기를 냉각시키고 있다. 불행하게도 최근 두 차례의 대통령 직선이 국민통합과 국민화합에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권 모두 지역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바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다는 ‘국민의 정부’는 집권 5년 동안 지역적 숙원(宿怨)과 이념적 원망(願望)을 발휘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야당 역시 최초의 야당 경험을 제대로 진지하게 수용한 적이 거의 없다. 그 결과, 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갈등은 가일층 증폭되었고 정권 말기가 가까워질수록 정치보복 문제는 점점 더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이 ‘(우리가) 당한 만큼 갚겠다’고 생각하고 여당이 ‘(권력을) 놓치면 죽는다’고 느끼는 한, 이번 선거는 정권이 아니라 사활을 건 일전(一戰)이 될 공산이 매우 높다. 결국, 국민은 대선 정국에서 모종의 살기(殺氣)를 느끼는 것이다.



국민이 보기에 다가오는 대선이 별로 신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예상 후보자가 막판까지 너무나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선거를 불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까지도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겨루는 현재의 3파전이 끝까지 지속될지, 혹은 신당 출현을 통해 양자 구도로 압축될지,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쟁구도가 나타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두고 선거의 즐거움 또는 관전 포인트로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쯤은 출마가 확정된 인물들을 냉정하게 비교 검토한 다음 누구를 찍을 것인가를 차분히 결정할 시점인데도 아직까지 출마자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은 사실상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유권자에게 판단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 것을 일종의 선거전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국민적 기만행위로 단죄받아 마땅하다. 현재처럼 대선 구도가 계속 가변적인 상황은 선거를 국민적 축제가 아니라 ‘그들만의 잔치’로 만드는 데 기여할 뿐이다.

정책 대결 사라진 ‘이상한 선거’

설혹 대선 구도가 일찌감치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선택지(選擇枝)는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 사안(事案)의 좀더 깊은 심각성이 존재한다. 누가 출마하든지 국민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유권자인 국민을 가장 맥빠지게 하는 대목이다. 원론적으로 말해 각 대선 후보자들의 정강 및 정책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그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 이는 국가발전의 방향에 관련하여 사회적 합의가 비교적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사정은 이와 크게 다르다. 미완 혹은 불발의 개혁 숙제가 산적해 있는 데다가 세계사적 대변혁기를 맞이하여 새롭게 헤쳐가야 할 국가적 과제가 연일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각 대선 후보 사이에 의미 있고 현실성이 충분히 고려된 정책상의 차이점이 뚜렷이 부각되지 않는 현실은, 국가발전 목표에 대한 정치권 전반의 폭넓은 공감대를 의미하기보다 국민에 대한 총체적인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대선 구도에서 정책 대결이 실종된 책임을 현재 출마 예정자들에게만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국 현대정치사의 고된 역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선거에서 정책 대립은 항상 뒷전이었다. 우선 한국전쟁의 와중에 도입된 대통령 직선제부터가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국민적 신임투표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소위 ‘부산정치파동’ ‘발췌개헌’ 등의 소동을 겪으며 도입된 대통령 직선제 방식 자체가 - 명분이야 어찌되었든지 간에 - 당시 현직 대통령의 재집권을 위한 정략적 발상일 따름이었다. 그 이후 4·19학생봉기에 이르기까지 제1공화국 치하에서 실시된 두 차례의 대선은 모두 이승만의 정권 연장 기도를 둘러싼 여야간의 한판 승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제3공화국 시절의 대선 역시 선거를 통해 독재를 정당화하려는 집권세력과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반대집단간의 일전이었다. 특히 이 기간에는 민주 대 반(反)민주라는 대립구도 이외에 지역감정이나 사상논쟁 등이 주요 쟁점으로 동원되기 시작하면서 정책에 의한 후보자간 경쟁원칙은 더욱 더 소멸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역감정이나 사상논쟁 모두 시민사회나 유권자에 의해 ‘밑으로부터’ 이슈화된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 혹은 후보자 그룹에 의해 ‘위로부터’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선거라는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적 메커니즘이 실제 국민적 관심이나 이익과 괴리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한국정치의 사상논쟁은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둘러싼 건전한 대립이 아니라 상대방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에 불과했으며, 대선 후보자의 최대 볼모가 된 전근대적 지역주의 역시 이념이나 정책의 차이를 차별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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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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