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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첫발 내딛는 자치경찰제

단체장 리더십, 주민 참여가 ‘태생적 한계’ 극복 요건

힘겨운 첫발 내딛는 자치경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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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에 도입될 자치경찰제 시행안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자치경찰 단위가 지나치게 왜소하고, 수사업무와 같은 핵심적 경찰권은 전혀 부여받지 못하기 때문. 힘겹게 첫발을 내딛는 한국형 자치경찰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
힘겨운 첫발 내딛는 자치경찰제
2006년 자치경찰제가 전면 도입된다. 자치경찰제 도입 논의는 1948년 정부수립 당시부터 이어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패전국 독일과 일본을 무장해제한 후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이 경찰의 지방분권화였다. 일제 치하 36년 동안 우리 민족이 가장 고통받았던 것도 중앙집권적인 군국주의 식민 경찰과 헌병의 횡포 때문이다.

하지만 광복 이후 한국은 분단으로 인한 좌우 이념 대결과 전쟁,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경찰을 권력이 아닌 국민에게 돌려주는 자치경찰제 도입을 감행할 여유가 없었다. 자치경찰제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내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치경찰제 도입과 경찰 수사권 독립을 추진하다가 검찰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논의 자체를 중단한 예가 있다.

역사에서 보듯 자치경찰제 도입이 상징하는 것은 권력의 분권화와 민주화다. 압제와 탄압의 무기가 될 수도, 국민을 위한 봉사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경찰 통제권’을 중앙권력자가 틀어쥐느냐, 지역으로 나눠주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경찰학계에서도 1990년대 말까지는 ‘아이에게 칼자루를 쥐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시기상조론이 득세했다. 이러한 주장 뒤에는 늘 분단된 조국 현실과 좁은 국토가 추가적 이유로 등장했다. 2명의 대통령이 연이어 자치경찰제 도입을 주장하자 자치경찰제 도입 반대론자의 목소리는 차츰 들리지 않게 되었고, 논의는 오직 ‘자치경찰제 도입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도입단위를 광역시도로 할 것이냐 기초자치단체로 할 것이냐, 별도의 경찰관리위원회를 둘 것이냐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경찰권을 귀속시킬 것이냐, 경찰의 모든 기능을 지방에 이양할 것이냐 행정기능만을 제한적으로 부여할 것이냐 등이 자치경찰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이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자치경찰제 도입안은 이러한 논란과 사회 일각에 잔존하는 지방정치에 대한 불신까지 염두에 둔 절충안으로 판단된다. 건국 이후 최초로 도입될 자치경찰제가 “제도 변화의 완성이 아닌 출발”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에서 이러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지방경찰 감시하는 영국 경찰위원회

사실 경찰학에선 ‘자치경찰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자치경찰제 실시국가라고 부르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탈중앙집권적(Decen tralized)’ 혹은 ‘지방분권적(Localized)’ 경찰제도라 칭한다. 자치경찰제도라는 용어는 행정학에서 경찰행정을 지방정부 소관으로 귀속시키는 형태를 일컫는다. 이렇게 보면 사실 분권적·민주적 경찰제도의 대명사인 영국의 제도는 자치경찰제가 아니다.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경찰위원회를 관리기관으로 둔 영국 경찰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서 독립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의 지방경찰청장은 인사 및 작전권, 법집행과 경찰활동과 관련한 의사결정에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 법과 전문가의 양심이 결정 근거가 될 따름이다. 다만 중앙정부 내무장관이 각 지방경찰 예산의 50%를 보조하는 대신 그 절차와 성과에 대한 감사권을 갖고 있다. 지방경찰청장과 차장의 임명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권한과 각 지방경찰위원회 위원 17명 중 5명을 임명할 권한을 갖는 것.

9명의 지방의회의원, 3명의 치안판사와 내무장관이 임명한 5명의 지방 명망가 등 총 17명으로 구성된 지방경찰위원회는 지방경찰의 재정을 담당하고, 내무장관의 승인을 받아 지방청장과 차장을 임면한다. 지방경찰청장과 협의하여 연간 경찰활동계획을 작성하고, 상임위원 중 1명이 지방의회에 출석하여 경찰관련 질의에 응답한다.

지자체에 귀속된 미국의 지방경찰

중앙정부, 지방정부, 경찰전문경영인이 권한과 책임을 적절히 분배해야 민주주의 핵심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정교하게 이뤄진다. 아무도 경찰을 마음대로 장악할 수 없어 경찰학자들은 영국의 경찰제가 ‘정치로부터 차단(insulation from politics)됐다’고 평한다. 하지만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듯, 영국처럼 민주주의 전통과 관행이 정착되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복잡한 경찰통제장치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에서 지역경찰은 시장이나 군수의 직속기관으로 지방정치에 완전히 귀속돼 있다. 경찰력을 제대로 운용하면 다음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어 재선에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낙선의 고배를 마시며 정치적 책임을 진다. 시민이 범죄 때문에 불안해하고 경찰의 횡포에 진력이 나면 시장 군수가 그 책임을 지니 경찰의 수준과 자질관리 그리고 범죄예방 등 치안이 지방행정의 주요 정책 과제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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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표창원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cwp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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