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안성에 있는 탈북자 정착교육시설 하나원 내부 풍경.
우연의 일치?
이들의 실직 소식은 탈북자 사회 곳곳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워낙 ‘유명한 존재’이다 보니 상실감도 컸다는 것. 관련부처에는 항의전화가 이어졌고, 단체들을 규합해 서명운동을 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탈북자들을 고용하자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는 정부가 기왕에 일하고 있던 이들조차 내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기업주가 선뜻 동참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일련의 해임에 대한 ‘신동아’ 측의 질의에 하나원 측은 “6~7급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이들의 경우, 해당파트 직원 총 8명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해임하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신규 임용하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탈북자 출신 직원들이 자리를 떠나게 된 것일 뿐 의도적으로 배제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의원면직과 심사과정에서의 탈락, 채용분야 변경 등으로 재계약하지 않은 것일 뿐, 비(非)탈북자 직원들도 계약만료에 따라 함께 해임됐다는 것. 쉽게 말해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사감 등 일용직으로 근무하던 이들의 경우에는 “이들은 공식적으로 하나원 직원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하나원 측은 덧붙였다. 감사원과 행정안전부 감사를 모두 받았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탈북자를 잠재적 간첩으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탈북자 사회의 의구심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뜻밖의 인사발령
최근 탈북 엘리트그룹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사례는 중앙언론사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탈북자 출신 최모 기자가 겪고 있는 일이다. 특히 이 사건은 탈북자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언론자유 문제라는 차원에서도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해당 언론사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상황이 벌어진 배경에 정보당국의 개입이 있었음을 의심케 하는 유력한 정황들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1996년 고위관료였던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한 최 기자는 평양에서 기자로 일했던 경험을 인정받아 탈북 직후부터 서울의 중앙 언론사 북한 관련 부서에서 언론인 생활을 이어왔다.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기사를 쓰는 사실상 최초의 기자였던 그는, 특히 지난해 1월 “김 위원장이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김정운(당시 알려져 있던 김정은의 이름)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하달했다”며 ‘김정은 후계자 결정’을 특종 보도함으로써 이름을 높였다. 이후에도 후계논의는 물론 북한의 화폐개혁과 이후의 후폭풍 등에 관해 다수의 북한발(發) 특종기사를 쓴 최 기자는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국내 유력 언론인 단체들이 선정하는 연례 기자상을 줄줄이 수상하기도 했다. 탈북자 사회의 시각에서 보자면 ‘남한 출신 언론인들과 경쟁해 독보적인 성과를 이뤄온 대표적인 성공사례’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최 기자는 정기인사를 앞두고 있던 5월초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기사를 쓸 수 없는 북한 관련 데이터베이스 담당부서로 발령을 낸다는 소식이었다. 대신 부장으로 승진시켜주겠다는 이야기였지만, 기자가 한 명도 없는 부서라는 점에서 사실상의 좌천이었다. ‘기사를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최 기자는 회사측에 승복할 수 없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의 뜻이 이러함에도 인사방침에 변화가 보이지 않자 이에 반발한 최 기자는 결국 무급휴직 형태로 회사를 떠나 있기로 결심하고 휴직원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