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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기피증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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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변변한 기자회견 한 번도 없어
  • ● 개별 인터뷰·개별 취재도 봉쇄
  • ● CEO 시절 부하에 군림하던 습관 그대로
  • ● 언론자유·민주주의 후퇴 우려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2010년 11월12일 이명박 대통령이 G20정상회의 성과를 설명하는 목적의 기자회견 도중 기침을 하고 있다.

질문: “대통령은 왜 (질의응답을 하는) 기자회견을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많다.”

대답: “설날이 지나고 국회도 열리고 하면 기자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도 생각하고 있다.”

지난 2월1일 이명박 대통령의 방송좌담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정관용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기피증’을 은근히 찔렀다. 이 대통령은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기회를 만들어보겠다”고 넘어갔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그 기회가 이번에는 실현될 것으로 믿었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시점은 2월25일 이명박 정부 출범 3주년쯤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취임 1, 2주년 때와 마찬가지로 3주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대신 2월20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출입기자들과 함께 오른 뒤 오찬 간담회를 하는 것으로 대체해버렸다. 그것이 이 대통령이 생각한 ‘기자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인 셈이었다.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간담회

이 대통령이 질문 받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이라는 점은 이 간담회에서도 드러난다. 청와대 부속건물인 충정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집권 3년의 소회 등을 간략하게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거나 원론적인 언급만 했다.

동남권 신공항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같은 각 지역이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안에 대해 “법적절차를 밟아 진행을 해서 상반기 중에는 정리가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자신의 대선 공약사업이기도 한 이 두 가지 현안이 극심하게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음에도 책임 있는 설명은 없었다.

당시 정치 이슈로 떠오른 개헌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이 자리에서 할 얘기가 아닌 것 같다. 등산 갔다 와서 그런 딱딱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분위기에 안 맞다”고 피해갔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럴 줄 알았으면 기자회견을 한 번 할 걸 그랬다”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이후에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는 사전에 질문을 5개로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4개의 질문만 받고 간담회는 끝났다. 답변을 하던 이 대통령이 직접 “이상으로 기자간담회를 모두 끝내도록 하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정리해버렸다. 구제역, 물가급등, 전세대란 등 서민생활과 직결된 현안이 적지 않지만 대통령의 입을 통해선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은 산행 도중 쉬는 시간에도 기자들과 건강 문제 등에 관한 가벼운 담소만 나눴다고 한다.

출입기자단 산행의 원조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국회의 탄핵을 받아 직무정지 상태이던 2004년 3월12일 첫 산행을 한 데 이어 매년 봄이면 출입기자들과 북악산을 올랐다. 그때마다 깊은 대화가 오갔다. 중간 중간 쉼터와 산 정상에서 ‘간이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산을 내려와서는 식당(주로 효자동 삼계탕집인 ‘토속촌’)에서의 오찬간담회로 이어졌다.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이명박 대통령이 2월20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북악산 산행 중 휴식을 취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민감한 사안들을 피해가지는 않았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파장이 예상되는 발언에 대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청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산중 발언 가운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대통령의 말을 기사로 다 쓰지 못했다고 불만을 갖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대통령으로부터 상세하게 배경 설명을 듣게 된 데 대해 만족했다.

청와대 뒷산은 경호 문제로 일반의 출입이 통제돼 사실상 대통령의 전용 등산로다. 이 대통령은 테니스를 즐기고 등산은 잘 하지 않는 탓에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노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해 처음으로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했다. 그러나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이 대통령의 언론 기피증을 재확인하는 결과만 낳은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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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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