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은 선거의 해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이어 12월 대통령선거가 있다. 12월 대선이 먼저 있고 4월 총선이 있었던 2007~2008년과는 순서가 반대다. 다시 말해 12월 대선의 향배가 4월 총선 결과에 영향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총선 결과가 곧 대선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총선은 총선이고, 대선은 대선이다.
총선이 대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총선 결과 만들어질 새로운 정치 질서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그 새로운 정치 질서가 차기 정부와 국회 간의 권력구도를 미리 확정짓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차기 정권을 여대야소(與大野小)로 할지 여소야대(與小野大)로 할지를 생각하면서 대선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4월 총선에 승부를 걸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4월 총선은 두 가지 이유에서 현역의원 교체율이 높은 선거가 될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정초선거(Foundation Election)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전의 정치구도와 이후의 정치구도가 구조적으로 달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정초선거는 정치구도의 변화와 동시에 정치세력의 교체, 인물의 교체를 수반한다. 당연히 현역교체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새 인물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수도권 승부가 예측불허이고 여야 모두 공천 물갈이를 승부수로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수도권 물갈이만으로는 유권자에게 충격과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각기 자신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에서 먼저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는 ‘자기희생’을 보여주지 않으면 물갈이의 진정성을 인정받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모든 호언장담과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현역의원이 대폭 교체되고 새 인물이 대거 등장하지 않으면 개혁과 쇄신을 국민으로부터 인정받기는 어렵다. 국민은 조직 개편이나 정책 전환보다는 인물의 교체에 더 민감하고 열광한다. 조직개편도 정책전환도 인물교체로 표현돼야만 의미 있게 체감되는 것이다.
추종자와 팬의 힘도 작용
‘신동아’-‘리서치앤리서치’의 기획특집 조사 결과는 새로운 인물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보여준다. 상위에 거명된 인사들의 정치인과 비(非)정치인 비중에선 비정치인이 약간 많다. 특히 문재인, 안철수, 손석희, 김제동, 박경철, 김여진 등 비정치인 6명의 인지도는 어떤 정치인보다 높다. 문재인을 뺀 이들은 기업, 언론, 연예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치와 거리를 두어왔다. 1위를 기록한 문재인 역시 지금까지는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비정치적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들은 때로 정치적 발언도 과감하게 하고 개입도 하지만 기존 정치판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정치적으로 신선한 이미지를 유지해온 것이다. 이들이 기성의 질서와 권위에 도전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온 것도 국민의 눈에 나쁘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이들의 도전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는 거부감을 갖는 안티를 일부 만들었을지 모르나 더 많은 열혈 지지층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들이 상위에 랭크된 데에는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추종자, 팬들의 힘이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좌우 이념프레임을 떠나 이들은 하나 같이 우리 사회에서 쓴 소리, 곧은 소리를 해왔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고건, 이건희, 정운찬, 조갑제, 서정갑 등이 비교적 상위에 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인지도는 대개 언론 노출도와 비례하므로 언론인이나 언론에 노출빈도가 높은 저명인사가 상위에 오른 것은 불가피하나 그런 중에도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사람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10위권 밖이긴 하지만 조국, 김동길, 이외수, 박원순, 김장훈, 김홍신, 문성근, 김미화, 박세일, 진중권, 강금실, 이문열, 김주하, 김진숙 등도 취향이 분명한 것이다.
같은 인물에 대해 동시에 영입작업을 벌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이유는 정치권이 찾는 새 인물의 요소를 제대로 갖춘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갈이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과연 어떻게 정치적으로 구현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