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반대하며 서울 광화문 앞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 시위 군중.
한국형 ‘무브온’
내꿈나라의 설명도 비슷하다. 내꿈나라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최근 몇 년 사이 시민의 정치적 행동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촛불집회 등을 통해 정치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의 정당 체제는 그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기존의 시민단체 역시 ‘정치적 중립성’에 갇혀 거리에 나온 시민의 정치적인 의견을 담아낼 수 없었다. 이제는 이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 열망을 실현시킬 조직이 필요하지 않을까, 미국의 ‘무브온’처럼 시민이 원하는 후보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조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탄생한 것이 내꿈나라”라고 설명했다.
무브온은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린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라인 시민단체로 단기간에 50만명의 서명을 받으며 ‘탄핵 반대’를 이끌어 화제가 됐다. 2008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지지해 그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고원 교수는 “한국 사회의 무브온은 이미 거리에서 탄생한 상태였다”고 했다. 촛불집회에 대한 설명이다. ‘촛불’이 한국 사회에 메가톤급 영향력을 발휘한 첫해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사고를 당한 미선·효순 양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시초다. 이후 촛불은 2004년 탄핵반대집회와 2008년의 미국쇠고기 수입협정 반대 집회 등에 다시 등장하며 ‘일반 시민의 평화적이고 저항적인 정치 참여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시민운동가들은 촛불의 힘이 사안별로 단절돼 나타나고 현실 정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의 정책 개발과 어젠다 세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행정·입법·사법·언론에 이은 ‘제5의 권력’으로 평가받던 시민단체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급격히 위축된 것도 ‘시민운동의 변화’ 모색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시민운동 진영에 정치조직이 전격적으로 출연한 것은 2010년부터. 배우 문성근씨는 ‘시민의 힘으로 야당을 통합시켜 2012년 대선에서 민주·진보 정부를 세우자’며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같은 해 7월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민단체가 참여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6·2지방선거 이후 시민운동의 진로 모색’이라는 제목의 정책 포럼을 열고 “시민운동의 정치적 역할을 구체적으로 모색해보기로 결의”했다. 이후 같은 주제의 포럼과 세미나가 여러 차례 열렸다. 박원순 캠프 사무처장을 맡았던 오성규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지난 5월 열린 한국NGO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방법은 정치다 … 문제는 시민운동에 덧씌워진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굴레가 워낙 강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조건반사와 같이 시민운동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하지만 시민운동은 이미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고, 뉴라이트 단체들의 정치활동은 거의 경계가 없는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또 “미국의 무브온의 경우를 볼 때 서구사회에서도 시민운동과 정치적 역할에 대해 큰 경계를 긋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시장의 출마와 내꿈나라의 창립은 시민사회 내부의 오랜 논의와 모색을 통해 이뤄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