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횡령한 자금으로 서울 서대문구, 강남 일대의 부동산을 사들였으며 십수억 원의 자금을 환치기 수법으로 중국으로 빼돌려 부동산을 구입했다. 김 이사장은 또 지난해 8월에는 EBS 방송센터가 입주해 있는 한국교육개발원 소유의 부동산을 개인 자격으로 낙찰받았다. 낙찰 금액은 732억여 원이었다. 김 이사장이 현재 보유한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인데, 장부상 가치로만 230여억 원, 실거래가 기준으로는 4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12월 15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가 한예진을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검사 3명을 투입하는 총력전이 전개돼 검찰 주변에선 대형사건의 시작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검찰이 수사 착수 단계에서부터 김 이사장의 개인비리 수사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지만, 이미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수사의 종착점이 김 이사장이 지난 수년간 벌인 각종 정·관계 로비 의혹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제기돼왔다. 김 이사장이 2009년 EBS 이사에 선임되는 과정과 2008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과 현 정부 실세 정치인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1월 3일 한국일보가 김 이사장을 잘 안다는 한 인사의 입을 빌려 “김 씨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도움으로 2009년 EBS 이사로 선임됐으며 그 과정에서 최 위원장 측근인 정모 씨에게 수억 원을 건넸다”고 보도하면서 이러한 의혹들이 한꺼번에 수면으로 떠올랐다. 당시 기사에서 언급된 ‘정모 씨’가 최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48) 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보좌관임이 알려지면서 사건은 더욱 커졌다. 최 위원장의 보좌관 출신인 정 씨는 지난해 10월 방통위에 사표를 낸 뒤 동남아로 출국했고 현재 태국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초 국세청이 정밀 내사
느닷없이 시작된 수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김 이사장을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은 2010년 초부터 정치권과 사정기관 주변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신동아’는 2010년 7~8월경 국세청에서 만들어진 김 이사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관련 문건을 입수해 이런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당시 ‘신동아’가 입수했던 국세청 문건의 제목은 ‘김학인 EBS 이사 선임 관련 정치권에 비자금 제공 의혹’인데, 2010년 3월경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건은 사정기관이 김 이사장에 대해 정밀 내사를 진행해 작성한 최초의 문건으로 판단된다. 당시만 해도 김 이사장은 사정기관 주변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국세청 문건에는 김 이사장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17대 총선에 출마하는 등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인물로 유력 정치인(J 의원, 한나라당)과 친분이 있으며, 2009년 9월 EBS 이사로 선임되었음. 한국방송예술진흥원에 자신의 내연녀를 경리이사로 두고 장부 조작을 통하여 교비를 횡령하는 등 비자금을 조성하였으며, EBS 이사로 선임될 당시 유력 정치인(한나라당 J 의원)을 통하여 방송통신이사회 등에 금품 로비한 혐의.”
우선 이 문건은 김 이사장이 EBS 이사 선임과정에서 최근 의혹이 제기된 정용욱 전 보좌관이 아닌, 한나라당 J 의원을 로비 창구로 활용했다고 적고 있음이 눈에 띈다. 문건에는 김 이사장을 협박해 돈을 뜯어낸 최 씨를 포함한 김 이사장의 주변 여성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혀 있다. 김 이사장이 최 씨로 하여금 장부를 조작해 진흥원의 교비를 횡령했고, 또 다른 여성 Y(여의사) 씨로 하여금 비자금을 세탁하게 하는 등 변칙적인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유력 정치인 등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것 등이다. 문건에 등장하는 여의사 Y 씨는 김 이사장이 정 전 보좌관 등 방통위 최고위 인사에게 로비를 하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한 여성으로 언론에 의해 알려진 인물. 현재 검찰도 이 여의사와 관련된 수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여의사에 대해서는 최근 이런 보도도 나온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