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한국노총 조합원 87만 명이 한국노총 지도부의 결정에 따를지는 미지수다. 상당수 한국노총 관계자는 한국노총의 민주통합당 합세가 노조원 개개인의 정치적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란 전망을 내놓았다. 이들은 녹색사민당이 17대 총선에서 정당 지지 0.5%를 받은 것을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한 한국노총 전 지도부 인사는 “우리나라 선거에는 조직 정서보다 지역 정서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노조, 개인별로 후보를 검증해 자신의 노조나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적합한 인물을 판단해 뽑을 것이다. 그 후보가 늘 민주통합당 후보는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원동원력에 대해서는 한국노총도 걱정하는 부분이다. 한국노총은 4월까지 진성당원 2만 명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한국노총 안에서도 “이번 총선은 판세가 혼란하니 개인에게 맡기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한편 한국노총의 민주통합당 참여 찬반 여부가 한국노총 내 ‘친 한나라당’ 대 ‘반 한나라당’, 나아가 지역 싸움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노총 게시판에는 “민주통합당 참여를 거부하는 노조원들은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공공연히 게재돼 있다. 최 항운노련 위원장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을 두고도 ‘한나라당과 합세하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라고 보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현재의 상황을 두고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조직 붕괴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개정된 노동조합법이 시행되면서 현장의 불만은 날로 커지고 있고, 지도부와 현장의 온도차도 상당하다는 것.
당장은 이익이지만 장기적 공존은 무리?
한편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역시 오랜 정치 파트너인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휩싸였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선거 때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와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끄는 정당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비정규직법,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추진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해 당시 민주노총의 ‘적’이었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이상무 위원장 등 일부 산별연맹과 지역본부 전·현직 간부들은 1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참여당과 통합한 통합진보당은 진정한 진보정당이 아닌 만큼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비정규직법이 개악되고 한미 FTA가 체결돼 노동자 민중이 고통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전 금속노조 집행부 관계자는 “소위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을 철저히 배제한 가운데 상층 단위의 주도로 만들어진 정당이고, 선거를 위한 정파연합정당에 불과하다”며 “민주노동당이 없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타적 지지 방침도 소멸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1월 31일 대의원회의를 열고 올해 총선과 대선에 대한 정치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다.
양대 노총이 정치 세력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노총이 민주통합당에 들어가 비정규직,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 론스타 국정감사 등 당장 현안에 대해서는 이익을 얻을 수 있으나 민주통합당과 기본적인 목표의식을 공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함께 선거에 임하면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과 맺었던 ‘선거 연대’ ‘정치 연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국가적인 노동정책 결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한국노총 내부에서부터 큰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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