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이 왜 그거부터 나오지?”
다소 못마땅해 하는 말투였지만, 표정까지 그런 건 아니었다. 8월 10일 오후, 국가의전서열 ‘넘버2’의 집무실은 분주했다. 보좌진도 많고 대기하는 사람도 많다. 한 무리의 방문객이 쏟아져 나온 후 약속시간보다 10분쯤 늦게 만났다.
사진이 취미인 정의화(67) 국회의장은 요즘 기분이 들떠 있다. 8월 7일부터 고향인 부산 해운아트갤러리에서 ‘정의화의 시선’이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대학(부산대 의과대) 졸업반 시절인 1972년에 이어 생애 두 번째 사진전이다. 9월 초엔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도 전시한다.
인터뷰에서 정 의장은 대통령 출마설에 대해 “유구무언”이라면서도 “천심이 민심”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세월호특별법 정부 시행령을 둘러싼 국회법 개정안 파동과 관련해선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여당의 ‘굴복’에 유감을 나타냈다. 아울러 “대통령의 집권당 원내대표 찍어내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유승민은 자기정치를 한 게 아니다”라며 유승민 전 대표를 감쌌다. 정 의장이 이 사건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비판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또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주문하자 굳이 피하지 않았다(그의 보좌진은 사전에 기자에게 “대통령 관련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진정한 소통은 남의 얘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인데 이 점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이었다. 아울러 ‘통일 대박’이 대변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내년 총선 때 호남에서 출마하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19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도 그런 얘기가 나왔다. 떨어지더라도 이름값을 올려 대통령에 출마하라는 조언이었다. 하나의 전략이라고 할까. 그런데 난 그런 정치적 전략이나 술수를 모르는 사람이다. 최근 부산 노컷뉴스가 또 그런 내용을 보도했다. 팩트가 아닌 걸 상상해 쓰는 건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난 전혀 그런 생각을 한 적 없다.”
“호남 출마? 생각한 적도 없다”
▼ 누군가 정 의장을 견제하려 만든 얘기일까.
“나를 지역구(부산 중·동)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본 게 아니니 예단할 순 없고….”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금배지를 단 그는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5선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 평소 지역화합을 강조해온 데다, 여수와 광주 명예시민증도 갖고 있지 않나.
“전북 명예도민증, 세종시 명예시민증도 받았다.”
▼ 경상도 출신 정치인으로 흔치 않은 일이다.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뭐, 그런 점도 작용했겠지. 하지만 국회의원은 지역 대표성이 중요하다. 명예시민증 갖고 출마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역구를 떠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 의장 물러난 뒤에도 지역구에서 출마하겠다는 얘긴가.
“그건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출마한다면 지역구에서 나올 거라는 뜻이다.”
▼ 정치적 무게로 보면 대통령 출마도 생각할 만하지 않나.
“유구무언. 내 처지에서 그런 얘길 한다는 게 맞지 않다. 지금으로선 의장 일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다. 대권 유혹에 빠지면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다음으로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사실 정치인의 마지막 꿈은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처음 국회의원 할 때 그랬으니까. 하지만 대통령은 내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대의민주주의국가에서 국회의장은 대통령 못지않게 중요한 자리다. 그 이상 욕심을 내는 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대통령 출마설에 명확히 선을 긋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이어진 얘기는, 의례적인 표현일지 몰라도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천심이 민심이다. 하늘의 뜻이라면 출마할 수도 있겠지. 다만 내가 의도적으로 나서지는 않겠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