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직을 기준으로 하면 2년 반 전 꼽은 파워맨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박근혜 정부 임기 중반의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후보 비서실장, 이하 괄호 안은 당시 대선캠프 직책)가 가장 눈에 띈다. ‘초이노믹스’로 불리는 경기부양책을 내세워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을 이끈다. 연말로 예상되는 개각 때 당으로 복귀해 마땅한 구심점이 없는 친박계의 중심축이 될 전망이다. 대선 때 별다른 직책을 맡지 않은 서청원 최고위원이 현재 친박계의 좌장 격이다.
50인의 달라진 위상
50인 중에는 지난해 6·3지방선거를 통해 자치단체장이 된 인물이 둘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직능총괄본부장)과 서병수 부산시장(당무조정본부장)이다. 두 사람 모두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곤욕을 치렀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공보단장)은 박근혜 정부 전반기에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지냈다. 박 대통령의 돈독한 신임을 밑천으로 ‘예산 폭탄’을 공약하며 지난해 6·3 전남 순천-곡성 재선거에서 당선됐다. 여당의 불모지인 호남에 교두보를 확보하면서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신동철 정무비서관(여론조사단장)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국회법 파동 등 당청관계가 극심한 내홍에 빠진 와중에도 정무비서관 자리를 여전히 지킨다. 반면 조윤선 전 정무수석은 국회법 파동의 서막인 국민연금개혁법 파동 때 유탄을 맞고 사퇴했다.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공동선대위원장),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정책메시지단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외교통일추진단장),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장(공보단 공보위원)도 건재하다.
파워그룹 50인을 꼽을 때 포함된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지금 사실상 청와대를 장악했다.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1998년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보좌관·비서관으로 활동한 정호성 제1부속실 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이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를 표명하면서 선대위 산하에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발족했다. 박 후보 본인이 위원장을 맡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계열인 호남 출신 한광옥 전 의원을 수석부위원장, 김경재 전 의원을 기획담당특보로 위촉했다. 새 정권이 출범하면서 선대위 국민대통합위원회는 같은 명칭의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설치됐고, 한 전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김 전 의원은 현재 청와대 홍보특보로 활동 중이다.
초기 파워그룹 50인 중엔 ‘실각’한 인물도 있다. 대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정몽준 전 의원은 정치권에서 멀어졌다. 지난해 서울시장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패배한 뒤 절치부심하다가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도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이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국무총리로 지명됐으나 고액 수임료 문제가 불거지자 자진사퇴했다.
新보수 3인은 ‘아웃’
박근혜 정부 초기 ‘문고리 권력 3인방’에 버금가는 힘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 젊은 참모가 있었다. 선대위 공보단 공보기획팀장이던 음종환 전 홍보수석실 선임행정관이다. 이정현 최고위원의 보좌관 출신인 그는 ‘정윤회 문건’ 파동 배후를 둘러싼 이른바 ‘KY(김무성·유승민) 메모’ 논란이 일자 스스로 청와대를 떠났다.
정치적으로 실각하지는 않았지만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진 사례도 있다. 유승민 의원(선대위 부위원장), 진영 의원(당 정책위의장), 안형환 전 의원(선대위 대변인)이 대표적이다. 유 의원은 ‘박근혜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를 날리며 ‘신(新)보수’ 깃발을 들었다가 박 대통령의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