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탈북자 수용소와 베이징올림픽 바터하라

  • 글: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 hoon@donga.com

    입력2004-09-01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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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GO가 주도한 탈북자 기획망명은 북한 인권 상황을 알리는 큰 이벤트였다. 차제에 NGO는 탈북자 난민수용소 건설을 추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탈북자 인권이 거론될수록 중국은 탈북자를 색출해 북한에 보내고 탈북자에 대한 난민 판정에도 부정적이다. 탈북자의 인권도 지키고 중국도 설득하는 윈·윈 전략은 없는가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탈북자들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3월14일 25명의 탈북자가 중국 주재 스페인대사관으로 진입한 것을 시작으로 6월말까지 69명의 탈북자가 베이징(北京)에 있는 독일·미국·캐나다·일본·한국대사관(영사부 포함) 등으로 뛰어들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탈북자의 대사관 돌진 뒤에는 한국의 NGO가 있었다. 탈북자와 NGO는 중국을 무대로 ‘기획망명’이라는 이벤트를 창출한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한국을 찾은 외국 기자들은 화염병을 들고 정부기관을 향해 돌진하는 시위대를 찍는 데 바빴다. 그러나 지금은 베이징을 무대로 중국 주재 외국기관으로 뛰어드는 탈북자의 사진이 한반도 상황을 웅변하고 있다. NGO와 탈북자, 그들은 왜 기획망명을 시도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으로 하여금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케 하는 국제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현재로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로 보인다.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NGO와 탈북자들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끈질김으로 중국을 압박한다는 투지를 보이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어리석음이냐 ‘산을 옮긴 우공’의 끈질김이냐, 두 세력의 싸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NGO가 탈북자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북한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해방’은 공산주의자들이 자주 쓰는 단어인데, 거꾸로 북한을 해방시키겠다고 한다. 한 NGO 관계자의 말이다.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고 중국 내에 탈북 난민수용소를 짓는 데 동의했다고 가정해보자. 난민수용소는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잘 곳을 해결해준다. 중국 공안에 쫓겨다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탈북자 수용소가 건립됐다는 소문이 퍼지면 북한에서는 수용소로 오기 위해 대규모 탈출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탈북자들이 모이면 자연 김정일(金正日) 정권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인권 탄압자로 몰린 김정일 정권은 더욱 고립되면서 정권 붕괴가 가속화 된다. 북한 주민은 압제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탈북자 홍순경씨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 태국의 난민수용소에서 1년 8개월을 보낸 경험이 있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태국 정부로서는 난민수용소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난민수용소를 운영하는 주체는 유엔의 난민구제고등판무관실(UNHCR)이다. 유엔은 태국에 수용소를 건설하는 조건으로 수용소 부지 임차비를 지불한다. 난민에게 제공하는 옷가지와 먹을 것은 전부 유엔 예산으로 태국에서 구입한다.

    수용소를 관리하는 인원은 태국인 중에서 고용한다. 난민들은 수용소 안에서 일을 해 돈을 버는데, 그 돈으로 태국에서 생산된 물풀을 구입한다. 유엔은 유엔 회원국이 지급한 분담금으로 이러한 난민구제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홍씨는 “수용소를 유치함으로써 태국은 인도주의 국가라는 명성을 얻고, 고용 확대 같은 경제적 이익도 누리고 있었다. 수용소 유치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난민은 난민을 받아준 접수국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다. 난민 판정을 받아 수용소에 들어간 사람이 A나라에 가고 싶다고 밝히면, 수용소를 관리하는 유엔난민구제고등판무관실은 A국에 대해 “이 사람을 받아들 수 있느냐”고 문의한다. A국에서 OK 사인을 보내오면, 이 사람은 A국에 건너가 A국의 국적을 얻어 생활한다. 그러나 당장 난민을 받아들이겠다는 나라가 없거나 난민이 가고 싶은 나라가 수용을 거부하면, 난민은 계속해서 수용소에 머문다.

    홍씨는 “탈북자가 나오는 것은 김정일의 독재 때문이다. 김정일 체제에서 먹을 것이 부족해 중국으로 나오는 것이므로, 이 수용소는 김정일이 제거될 때까지 임시로 탈북자를 수용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수용소와 달리 제3국으로 가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다. 사실 나를 비롯해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은 북한이 민주화되고 안전만 보장된다면 고향에 가서 살고 싶어한다. 아무리 풍족한 곳이라고 해도 나고 자란 고향만 못하기 때문이다. 탈북자가 자신을 받아준 나라에 정착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홍씨는 이러한 증거로 1990년대 코소보에서 발생한 난민을 예로 들었다. 코소보 난민은 유고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정권과 인종주의자들이 그들과는 인종이 다른 코소보 자치주 주민을 학대함으로써 발생했다. 밀로셰비치 정권의 학정이 계속되자 1999년 미국을 비롯한 NATO 연합군 참여국과 프랑스 등이 연합군을 형성해 공동으로 유고를 공격했다(코소보전쟁).

    이로써 인종 청소가 중지되고 밀로셰비치는 연합군에 붙잡혀 국제형사재판소(네덜란드 소재)에 기소되었다. 탄압 요소가 제거되자 알바니아를 비롯한 인근 국가에 설치된 난민촌에 있던 코소보인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종족 분쟁이나 가뭄 등으로 난민이 발생하는 아프리카에서도 종족 분쟁이나 가뭄이 끝나면 난민을 대부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난민은 여권과 비자 없이 국경을 넘어왔으므로 법적으로는 불법체류자다. 따라서 이들을 난민으로 보느냐 불법체류자로 보느냐가 중요해진다. 불법체류자로 판정한다면 이들은 국경 밖으로 쫓겨난다. 고국에서는 밀출국해 이미 범죄자가 되었으므로 이들은 갈 데가 없다. 세상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떠돌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난민 판정을 받으면 제3국에 정착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

    따라서 난민이냐 불법체류자(불법입국자)냐를 가리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판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어떤 이유로 이들이 고국을 떠났느냐는 점이다. 난민문제를 다루는 유엔난민구제고등판무관실은 1951년 7월 26개국에 의해 체결된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난민지위협약)’에 근거해 활동한다. 그외 1954년 체결된 ‘무국적자 축소에 관한 협약’과 1957년 체결된 ‘표류 난민에 관한 협정’, 1967년의 ‘난민 지위에 관한 의정서’ 등의 국제 조약과 선언도 이 기구의 활동 근거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난민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난민지위협약’이다. 이 협약은 제1장 A의 (2)에서 난민을 ‘인종·종교·국적·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이란 문제 또는 정치적 의견을 달리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어 국적국을 벗어났는데, 국적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거나 돌아갈 의사가 없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인터넷 http://migrant.peacenet.or. kr/library/refugee/refugee2-4.htm에는 난민지위협약을 비롯해 난민 문제에 관련한 국제조약 번역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 협약은 ‘1951년 이전에 인정된 난민만 난민으로 인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1967년 1월31일 ‘난민 지위에 관한 의정서(이하 난민지위의정서)’가 체결되었다. 이 의정서는 ‘1951년의 난민지위 협약에서 정의한 난민의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은 시한에 관계없이 전부 난민으로 인정한다’고 밝힘으로써, 난민지위협약이 안고 있는 한시성(限時性)을 극복했다.

    세계 대다수 나라는 헌법 등에 국제법(조약)이 국내법과 동등하거나 우선한다는 것을 명시하거나 관례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헌법 6조 ①에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며 국제법 준수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렇게 각 나라가 국제법 준수를 밝히는 것은, 국제법(조약)을 지키지 않으면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인 국제체제는 더욱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난민지위협약과 난민지위의정서에 모두 가입한 상태다(한국도 가입했다). 따라서 중국 정부에 대해서는 “왜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느냐”며 다퉈볼 여지가 있다. 중국은 탈북자를 ‘조선인(朝鮮人)’으로 부른다. 주한 중국대사관의 이서봉(李瑞峰·28) 공보관은 중국이 조선인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난민은 국제법이 정한 바대로 인종 차별이나 신념의 차이 등으로 박해를 받아 국경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조선인은 박해를 받아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힘들어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번도 중국 정부에게 난민 판정을 해달라고 신청한 적이 없다. 난민인지 아닌지 판단해본 사례도 없는데 어떻게 그들을 난민으로 본다는 말인가. 54년 역사의 대한민국에서도 난민 판정을 내린 사례는 단 한 건뿐이다. 한국도 난민 판정에 그렇게 인색한데, 왜 중국 정부에 대해서는 난민 자격도 갖추지 못한 조선인을 난민으로 판정하라고 요구하는가.”

    최근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경제난으로 자기나라를 떠나 떠도는 사람들도 난민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난민지위협약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발생한 난민은 난민으로 인정한다는 구절이 없다. 이공보관은 이를 적시하며 탈북자는 경제적인 원인으로 발생했으니 난민이 아니고 불법체류자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 3월 주중 스페인대사관으로 탈북자 기획망명을 주도한 피랍·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의 도희윤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의 독재를 고려한다면 탈북자들은 충분히 난민으로 판정될 사유가 있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 추방된 탈북자는, 북한의 인민보안성(경찰청에 해당)이나 국가안전보위부(국정원과 유사)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고 심하면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다시 탈북하게 된다. 이렇게 박해를 받고 탈북한 사람이 난민이 아니면 누가 난민이란 말인가.”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판정하지 않으려는 사유는 쉽게 추리된다. 중국 문제를 다뤄온 외교통상부의 고위 관리는 중국의 속내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면 북한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빠져나와 중-조(中-朝) 국경 지역이 시끄러워지고 중국 내의 치안이 불안해진다. 둘째, 인종과 종교가 다른 티베트나 신장 지구에서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한족(漢族)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이 탈북자 난민 인정에 자극받아 소요를 일으키면 다른 소수민족들도 연쇄적으로 독립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통일한국에 대한 거부감과 친미 국가인 한국에 대한 거북함이다.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면 북한에서 대량 탈출자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북한 정권이 전복돼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수도 있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급속하게 투입돼 북한 지역이 급속히 근대화된다.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는 14개국인데 이 중에서 중국보다 잘사는 나라가 없다(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권 나라는 중국보다 나은 게 없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이 한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구심력은 소수민족 우대 정책과 주변국가보다 잘사는 현실에 있다. 한족보다 우대받고 주변 국가보다 잘살 수 있다면 독립해야 할 필요가 적어진다. 그런데 통일한국이 등장해 중국보다 월등히 번영한다면 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해 동북 3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또 통일한국이 등장하면 중국은 완충국 없이 바로 미국과 마주한다는 부담도 있다. 엉터리 국가이긴 하지만 북한은 중국이 미국과 바로 상대하는 부담을 줄여주는 ‘완충국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라도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막으려 할 것이다. 김정일 정권을 곤란하게 하고 북한의 붕괴를 초래할 탈북자 난민 인정 같은 정책을 취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넷째, 중국 내의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은 아직 개발 도상에 있기 때문에 서구식 개념인 인권을 토대로 한 민주화·자유화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와 같은 민주화 운동을 막기 위해 언론과 집회·결사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인권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한다면 다당제를 채택하고 중국인의 인권을 개선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탈북자 홍순경씨나 시민연대의 도희윤씨는 이러한 추론이 옳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은 개혁과 개방에 나선 중국이 인권 문제를 끝까지 도외시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2001년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세계경제에 편입됨으로써 경제적 번영을 누릴 기회를 잡았지만, 인권 존중 같은 서구식 철학과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게 됐다. 또 2008년으로 예정된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으로선 국가 위상을 높이는 기회지만 한편으로 서구식 자유주의를 확장해야 하는 시험대일 수도 있다. 홍씨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느냐의 문제는 국제사회가 얼마나 압력을 넣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가장 좋은 기회는 중국이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뛰어다닐 때였다. 이때 한국이 미국 등의 협조를 얻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해야 중국은 올림픽을 유치할 자격이 있다며 외교 공세를 폈다면 지금쯤 좋은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올림픽 개최국가답게 인권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면 머지않아 중국은 달라질 것이다.”

    홍씨의 이러한 전망은 미국 정계가 중국 정부에 대해 탈북자를 강제소환하지 말라는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큰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몇몇 귀순자와 탈북자 보호 운동을 펼치는 NGO 조직은 미국 의회에서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인권 침해와 북한에서의 인권 침해 문제를 증언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6월11일과 19일 미국 상원과 하원은 각각 중국 정부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에는 중국 정부는 △난민 지위협약에 따라 중국내 탈북자들을 보호하라 △망명을 모색하는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지 말라 △유엔난민구제고등판무관실이 탈북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라 △탈북자를 다른 나라에 정착시키려는 유엔의 노력에 협조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7월2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소위원회도 중국에 탈북자 보호를 촉구하는 난민보호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그러나 미국 상하원의 결의안만으로 중국이 입장을 바꾸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중국의 입장을 바꾸기 위해서는 미국 행정부의 의지가 한다. 5월21일과 27일 아서 듀이 미 국무부 차관보와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주중 미국대사관으로 들어온 탈북자를 미국으로 망명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미국 법률은 신청자가 미국 국경에 도착했을 때만 망명을 신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외에 있는 미국대사관은 미국의 국토가 아니다”며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미국 행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미국의 실력자들이다.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유고를 제재하는 전쟁(코소보전쟁)을 벌이기 전 클린턴 대통령은 전쟁 개시 여부를 놓고 꽤 고민했다. 이러한 클린턴에게 유고를 공격하라고 결정적으로 압력을 넣은 사람은 그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힐러리는 자서전 ‘힐러리의 선택’에서 국제 여성단체로부터 유고가 인종청소를 하기 위해 군인들을 동원해 코소보의 여인들을 강간한다는 것을 전해 듣고 분개해 남편에게 유고를 응징하라고 강력히 주문했다고 밝히고 있다.

    해외공작을 담당해온 한 정보기관 인사는 “미국이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면 중국은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라는 대(對)중국 외교 공작과 별개로 미국 정부를 움직이는 실력자를 상대로 한 집요한 설득공작이 필요하다. 미국의 실력자들은, 탈북자를 난민으로 규정해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중국 정부에 대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라고 강력히 주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탈북자 문제에 관여해온 사람들은 그러나 당분간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다른 대안도 함께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중국이 아닌 제3국 정부를 설득해 탈북자 난민수용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대상 국가로는 몽골과 태국 등이 거론된다. 도희윤씨의 의견이다.

    “상당수의 몽골인이 한국에서 취업하고 있다. 이 중에는 불법입국자나 불법체류자도 있는데, 이들이 몽골로 송금하는 돈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부는 몽골에게 다른 지원을 약속하고 탈북자 난민수용소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해볼 수 있다. 난민수용소가 어렵다면 탈북자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공간만 제공해줘도 좋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으로 몽골을 지원해주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홍순경씨는 몽골보다는 태국이 수용소 설치에 더 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홍씨는 “태국은 난방비가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난민은 반팔 티셔츠로 사계절을 지낼 수 있으니 수용소 운영비가 적게 든다. 태국은 캄보디아 난민수용소 등을 운영해본 경험도 있다”며 태국 정부 설득안을 제시했다.

    몽골이나 태국 등이 난민수용소나 탈북자 수용소 건설에 동의할 경우, 남는 문제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안전하게 이곳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이들은 “정부는 탈북자들이 몽골이나 태국에 건설한 수용소로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중국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의 이서봉 공보관은 중국이 탈북자의 통과 국가가 돼줄 수 있냐는 질문에 “중국 정부는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방안은 중국이나 제3국에 난민수용소를 차리지 않고 탈북자가 중국에 적응해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방안이다. 탈북자를 불법입국·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놓아둔 채 중국인이 하기 싫어하는 3D업종 등에 진출해 먹고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한국 언론이 탈북자의 한국망명 루트를 집요하게 추적하기 전까지 중국은 이런 입장을 취해 탈북자가 중국에서 지내는 것을 묵인해왔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중일전쟁 당시 조선의 독립을 바라는 상당수의 조선인들은 중국 공산당군에 들어가 일본과 싸웠는데 이들은 조선의용군으로 불렸다. 중국은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패주하자 중국의 인민해방군을 참전시킴으로써 신세를 갚았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끈 중국은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 인민의 사상을 개조한다며 혹독한 문화혁명을 추진했다.

    문화혁명의 고통에 견디다 못한 상당수의 중국인이 북한으로 도주했다. 북한은 불법입국자이자 불법체류자인 중국인을 내쫓지 않고 문화혁명이 끝날 때까지 북한에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에 대한 보답이 탈북자의 용인이다.

    중국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한국 언론이 탈북자 문제를 집중 부각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중국은 탈북자를 붙잡아 내쫓지 않았다. 탈북자 문제가 불거져 북한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중국은 탈북자를 불법체류자로 붙잡아 추방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두번째 대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북·중 관계가 이러하므로 다시 중국이 탈북자를 포용할 수 있도록, 기획망명을 주도하거나 탈북자의 인권 등을 거론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대신 조용히 탈북자에 접근해 이들이 한국에 대해 친근함을 갖도록 포용하는 전략을 택하자고 외친다. 386세대로 구성된 한 NGO는 탈북자를 상대로 한 ‘조용한 포용’을 추진한다. 이들의 의견이다.

    “기획망명이나 수용소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북한 주민을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인데, 결과는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한국은 그 많은 탈북자를 다 받아들일 여력도 없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중국에 정착해 잘 살도록 해주는 것이 한국의 부담을 더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탈북자들이 중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김정일 정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이들은 자연 한국에 호감을 갖게 된다.

    북한 해방은 중국으로 피신한 탈북자들 중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 중심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래야 중국도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버릴 수 있다. 북한 해방은 탈북자가 중심이 돼 중국과 한국이 함께 만족하는 윈-윈 게임의 형태로 나가야 한다. 한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부담스러워하는 북한 해방 운동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을 친구로 만들면서 탈북자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탈북자 홍순경씨나 외교부와 국정원의 관계자도 같은 의견이다. 흥미로운 것은 기획망명을 주도한 시민연대의 도희윤씨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는 점이다. 도씨는 “기획망명은 북한과의 관계에만 집중해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김대중 정부에 자극을 주고,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이벤트일 뿐 중국을 적으로 만들겠다는 행동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 조직과 비정부 조직(NGO) 사이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했다. 세계에 김정일 정권의 인권 탄압을 알리고 중국 정부에 대해서는 탈북자를 보호하라고 외치는 운동은 NGO가 담당한다. 반면, 정부 조직은 몽골이나 태국 등 제3국과 탈북자수용소 건립 문제를 상의하고, 중국 정부에 대해서는 탈북자가 조용히 정착하거나 제3국의 수용소로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김정일 정권과의 대화를 추진해온 김대중 정부는 중국내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이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전부 받아들인다고 한 것 외에는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탈북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접근은, 어렵게 대화 무대로 끌어낸 김정일 정권을 돌아서게 하는 조치로 본 것이다. 이러한 김대중 정부의 입장 때문에 NGO는 반작용으로 기획망명을 추진했다. 그로 인해 중국이 불편해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도희윤씨와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똑같이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유치한 것은 우리로서는 큰 기회다. NGO는 밖에서 ‘중국은 올림픽 유치 국가로서 최소한의 탈북자 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정부는 비공식석상에 같은 주제를 거론하는 것이다. 정부가 탈북자 문제에 적극 나선다면 NGO는 기획망명 같은 행사를 포기해야 한다. 탈북자가 중국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면서 포용해나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베이징올림픽은 대북 정책의 방향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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