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호

이제 더 이상 전쟁은 없다

부활하는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

  • 여행작가 김선겸

    입력2004-08-31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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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더 이상 전쟁은 없다

    베이루트 인근 비블로스 해변. 황량한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주변의 다른 중동국가와는 달리 지중해를 끼고 있는 레바논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천혜의 항만이라는 축복은, 예로부터 도시를 둘러싸고 여러 세력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비극도 몰고 왔다. 로마, 십자군, 오스만 제국 등 많은 정복자들이 도시를 할퀴고 지나갔다. 근대에 이르러 프랑스의 지배를 거쳐 독립을 이뤘지만 1975년 벌어진 내전으로 중동의 파리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던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내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롭게 변신하는 베이루트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곳곳에 남아있는 총탄 자국과 폭격의 잔해는 베이루트의 한 단면일 뿐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람들

    새롭게 들어선 현대적이고 세련된 건축물들은 유럽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활기차고 친절하다. 또한 베이루트 사람들은 아랍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개방적이고 자유롭다.

    시내 중심지인 함라(Hamra)에 위치한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에서 만난 학생들은 월드컵이 열리는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필자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월드컵 기간 중에 이곳에 왜 왔느냐, 레바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유창한 영어로 물어보며서 대학 내 건물들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그들의 모습에서 내전과 이스라엘의 침략으로 오랫동안 고통 받았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에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지중해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는 이곳은 복잡한 시내에 비해 한결 여유로워서 베이루트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장소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 방파제를 쌓아서 만든 천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바다낚시를 즐기는 청년들, 방파제에 누워 물담배를 피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카페, 요트 정박장, 고급클럽 등이 몰려 있는 해안의 풍광은 중동이 아니라 서유럽 어느 나라의 휴양도시를 연상케 한다.





    이제 더 이상 전쟁은 없다

    사진촬영을 거부하며 손으로 막고 있는 군인. 내전은 끝났지만 거리에서는 여전히 무장한 군인들을 볼 수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걸어가면 기암절벽의 멋진 풍경이 나타난다. 베이루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보니 바다로 뛰어들며 해수욕을 즐기는 소년들과 일광욕을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 중 무리를 지어 일광욕을 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기겁을 하며 막아섰다. 알고보니 이들은 헤즈볼라 대원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얼굴이 공개되면 이스라엘의 표적이 된다며 사진 찍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얼굴에서 과격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얘기만 나오면 극도의 분노를 나타냈다.

    뜻밖에도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서는 ‘CIA의 앞잡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반면에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조직답게 이란과 북한, 쿠바에 대해서는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베이루트는 레바논이 내전에 휩싸이기 전까지만 해도 서아시아 금융 상업 관광의 중심지였다. 또한 서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이 활발했고 문화적으로도 번영하여 중동의 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융성했던 예전의 기억은 내전을 거치면서 과거사가 되었지만, 도시는 서서히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지금 베이루트는 다시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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