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봤다!”
만고의 영약이라는 산삼을 캔 심마니들이 소리쳐 ‘심봤다’를 외치는 까닭을 그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도 역시 산삼을, 아니 과학적으로는 산삼보다 더 약효가 뛰어난 ‘선삼(仙蔘)’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암 예방·치료 기대
박교수는 선삼의 물질 및 제법 특허를 국내외에 출원하는 한편 상품화를 위해 서울대 약대 안에 ‘진생사이언스’(www.ginsengscience.com)라는 벤처기업을 만들었고, 지난해 9월부터 ‘선삼정’이라는 캡슐과 과립을 시판했다.
미국과학진흥위원회는 선삼 연구를 ‘의미 있는 연구’로 선정, 학술지에 연구결과를 소개했으며, 영국의 ‘가디언’지도 선삼 관련 기사를 실었다. 국내 언론들도 선삼 개발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다.
진생사이언스의 주장에 따르면 선삼정은 인삼보다 그 약효가 수백배, 산삼보다도 수십배 뛰어나다고 한다. 인삼의 학명은 ‘파낙스 진셍(Panax ginseng)’이다. ‘파낙스’는 ‘cure all’, 즉 모든 병을 치료한다는 뜻으로 만병에 특효가 있다는 뜻. 인삼이 이런 효과를 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성분 중의 하나인 사포닌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포닌은 포말성과 어독성, 용혈성 등을 갖고 있어 독이 있고 적혈구를 터지게 하는데, 인삼이 함유한 사포닌은 끓이면 거품이 이는 포말성만 있을 뿐 어독성과 용혈성이 없다고 한다. 바로 이 사포닌 때문에 항산화, 항암, 면역증강, 콜레스테롤 감소, 환경호르몬 차단, 기억력 강화 등 여러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약효가 강력하지 못하다는 게 결정적인 단점이다.
박정일 교수는 산삼도 과학적으로 성분을 분석해보면 인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차이가 있다고 해도 미미한 정도인데, 그것 때문에 몇백만원, 몇천만원씩 주고 사 먹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선삼은 그런 인삼의 약효를 크게 강화시킨 것이라고 한다.
“항산화작용, 즉 질병의 원인이 되는 과산화물의 생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뛰어납니다. 쉽게 말해 피로회복과 자양강장, 노화방지에 탁월하다는 것이죠. 항암효과도 큽니다.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해 암을 억제하고 암의 촉진단계를 차단해 암 발생을 예방합니다. 이밖에 혈관확장, 신장보호, 성기능강화, 기억력증진, 치매방지에도 특효가 있습니다.”
박교수는 “이런 약효는 모두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하며, ‘Anticancer Research’ ‘Cancer Letters’ 등 세계 유수 학술지에 그 결과를 게재해 검증을 받았다”며 자료를 펼쳐보였다.
예를 들어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발암물질만 투여한 동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암에 걸리지만, 발암물질과 선삼을 함께 투여한 동물은 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됐다. 또한 혈관 작용 실험에서 선삼은 원료삼보다 훨씬 낮은 농도에서 혈관을 확장시킨다는 분석도 나왔다.
항암치료제로 잘 알려진 시스플라틴은 독성이 심해 신장이 망가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선삼을 보조제로 투여하면 신장을 보호해줘 항암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다는 데이터도 있다. 그는 선삼정을 시판하기 전에 이미 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성공하면서 약효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저희 약대의 선배 교수가 직장암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경과가 좋지 않아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어요. 당시는 선삼 개발을 완료한 단계였지만 제품화하기 이전이라 바로 권하기가 뭣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선삼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제 얘기에 상당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서 선삼을 드셨어요. 그분도 과학자답게 암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해왔거든요.”
그후 그 교수는 완치되어 지금 약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선삼을 먹고 나았는지 여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긴 힘들지만, 본인과 박정일 교수는 선삼 덕분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선삼정은 아직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제품은 아니다. 의약품으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끝나지 않아 현재는 ‘건강보조식품’으로 등록한 상태. 하지만 선삼정을 복용한 사람 중 암을 치료했거나 병세가 호전된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전북 전주시 S보육원의 P원장(72)은 신장암 말기로 폐에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였다. 신장절제수술을 받았지만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돼 3∼6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선삼을 복용한 지 4개월 후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한 결과 몸 전체에서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근무하는 P실장(51)은 상부위암으로 암이 폐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유수의 대형병원에서 위를 완전히 절제하고 다섯 차례에 걸쳐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는데, 선삼을 복용하고 6개월 만에 암이 소멸했다는 판정을 얻어냈다.
당뇨수치가 높았던 A씨(66)는 선삼정을 15일 동안 먹고 당뇨수치가 176에서 130으로 떨어졌을 뿐 아니라 피로감이 줄고 성기능도 좋아졌다. 두 달째 복용하자 당뇨수치가 정상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넉 달째에는 만성피로가 없어지고 혈액순환이 잘되어 아침에 기분좋게 일어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효능이 있다면 폐암으로 고생하고 있는 코미디언 이주일씨 같은 분한테 한번 먹여보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박교수는 “이주일씨도 먹고 있는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타까운 마음에 이주일씨에게 선삼정을 권해보려고 알아봤는데, 이미 다른 사람을 통해서 구입해 복용하고 있더군요.”
선삼정이 어떤 까닭으로 인삼이나 산삼보다 효능이 월등히 좋을 수 있을까. 항암작용이나 항산화작용 같은 약효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선삼정도 원료는 어차피 원형삼(인삼)인데, 똑같은 재료를 어떤 방법으로 가공했기에 인삼에 없는 약효가 생겨난 것일까.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인삼이나 산삼은 생으로 먹는 것보다 오랫동안 달여서 먹는 것이 훨씬 효험이 큽니다. 오래 달이면 원형삼에 있는 성분이 변해 새로운 성분이 생기거나 원형삼에는 아주 작았던 성분이 커집니다. 바로 그 원리를 이용한 거지요.”
박교수는 백삼과 홍삼을 예로 들었다. 밭에서 캐낸 생인삼을 수삼이라 하며, 수삼을 건조시킨 인삼을 백삼, 수삼을 증기로 찐 다음 건조시킨 인삼을 홍삼이라 한다. 똑같은 인삼이지만 수삼과 백삼, 홍삼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수삼보다는 백삼이, 백삼보다는 홍삼의 약효가 훨씬 좋다. 홍삼은 수삼이나 백삼에는 없는 특이성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성분이 홍삼의 효능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박교수는 홍삼의 특이성분에 유의했다. 백삼에 없는 이 특이성분이 무엇인지 알아낸다면 홍삼의 약효가 강한 이유를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이성분의 정체를 밝힌다면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홍삼도 어차피 백삼을 가공한 것이니 백삼을 가공하되 홍삼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홍삼에 들어있는 특이성분을 더 많이 함유하게 만든다면 홍삼보다 훨씬 약효가 좋은 ‘그 무엇’을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선삼은 ‘콜럼버스의 계란’
박교수가 고온·고압의 특수기술을 이용해 인삼을 가공하자 홍삼에는 극히 미량만 들어있는 성분인 진세노사이드의 함량이 크게 늘어났다. Rg3 Rg5 Rk1 등의 항암성분이 주요 물질로 들어차게 된 것. 이중 Rg3는 중국에서 이미 항암제로 개발됐으며, 혈관내피세포에서 산화질소가 나오도록 유도, 혈관을 확장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진세노사이드-Rk2 Rk3 Rs3 Rs4 Rs5 Rs6 Rs7 등의 신물질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이는 인삼에 들어있는 진세노사이드-Rb1 Rb2 Rc Rb 등을 고온·고압으로 가공하자 변환된 것. 이들 신물질이 약효를 크게 증가시켰는데, 박교수는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인삼을 ‘신선들이 먹는 인삼’이란 뜻에서 선삼이라 이름지었다.
박교수는 “선삼 개발의 원동력은 콜럼버스의 계란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라고 말한다. 그때까지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인삼연구가 이뤄져 왔지만, 대부분 홍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홍삼의 효능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지, 새로운 가공법을 만드는 데까지 생각을 넓히지는 못했던 것이다.
인삼에 관한 기록은 BC 33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AD 483년에는 중국의 학자 도홍경이 ‘신농본초경’이라는 저서에 인삼을 ‘상약’으로 분류하고 그 약효를 기술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인삼 중에서도 백제에서 난 것을 중하게 쳤다. 고려의 인삼은 크기는 커도 약효가 연해 백제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돼 있는데, 이때 백제 인삼이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인삼(지금의 고려인삼)을 뜻하며, 고려 인삼은 고구려, 즉 한반도 이북에서 생산된 인삼을 가리킨다.
신라 문무왕은 당의 지원군을 얻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면서 인삼 200근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만큼 당시 인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품으로 은 대신 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사용될 만큼 귀했다. 그후 1080년 고려 문종 때 자연생 인삼을 가공, 홍삼을 제조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1392년 고려 공양왕 말년에는 인삼의 인공재배가 성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인공적으로 재배한 인삼과 구분하기 위해 산에서 나는 자연생 인삼을 ‘산삼’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1907년 전매법이 발효되면서 인삼은 이 법이 폐지된 1996년까지 사실상 정부의 독점사업이었습니다. 한국담배인삼공사는 주로 홍삼을 팔아왔는데, 이 때문에 관련 연구도 거의 홍삼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머물렀지요.”
하지만 1980년대부터 홍삼 연구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전매사업이다 보니 신제품 개발에 쏟는 정성이 소홀했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연구비도 원활하게 지원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자의 사고는 온 사방으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녀야 하는데, 홍삼 캔 속에 갇혀 있으니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었지요. 연구비 나올 데라곤 홍삼밖에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처럼 우물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세계 시장은 인삼 가공제품에 대한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인삼의 종주국 격인 한국은 오늘날 세계 인삼시장 점유율이 1%도 못되는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원형삼에서 탈피한 가공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는 세계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데다, 원형삼 시장에서도 중국과 미국 등의 저가품 공세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
현재 세계 인삼시장은 200억달러 규모. 그러나 한국의 인삼제품 수출액은 1990년 1억6200만달러에서 지난해에는 7400만달러로 줄어들었다. 오히려 수입액이 늘고 있다. 1995년 시작된 인삼제품 수입액이 그해 82만달러에서 2000년에는 324만달러로 4배나 늘었다.
“우리나라는 홍삼이 주요 생산품이지만, 우리나 중국 외에는 약을 달여먹는 문화를 찾아보기 어려워요. 외국인들은 캡슐을 선호하지 원형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계 인삼시장의 선두주자는 스위스의 파마톤사(社). 얼마 전 베링거 인겔하임에 합병된 파마톤사는 백삼에서 추출한 사포닌으로 자양강장 캡슐 ‘진사나’를 만들어 매년 약 30억달러어치를 내다판다. 이 한 제품으로 세계 시장의 15%를 점유하고 있는 것. 중국에서 진세노사이드의 성분 중 Rg3만을 추출해 만든 ‘Rg3’가 항암제로 인기를 모으며 그 뒤를 잇고 있다.
박교수는 “진사나는 백삼을 가공한 것도 아니고 성분만 추출해서 품질을 규격화한 것뿐”이라고 설명한다. Rg3도 인삼의 항암성분 중 한 가지만 추출해낸 것. 그럼에도 이런 제품들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은 그간 우리가 홍삼에만 집착한 결과라고 자성한다.
“진사나도 처음엔 우리나라 고려인삼을 수입해서 추출했어요. 하지만 몇년 전부터는 중국산을 수입합니다. 중국산 인삼의 가격이 우리나라 인삼의 10분의 1에 불과하거든요.”
그는 “항간에는 중국산 인삼이 고려인삼보다 효능이 많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으나 성분을 분석해보면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겉보기에는 조직이 덜 촘촘하고 색깔도 좀 다르지만 약효는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은 엄청나게 많이 재배함으로써 생산비를 낮추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경작지가 점차 고갈되고 있다는 것.
인삼은 한번 재배하면 5년간은 그 자리에서 다시 경작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엄청난 양의 인삼을 재배하다 보니 인삼을 기를 땅이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과거 인삼 명산지로 유명했던 강화도가 이제는 더 이상 인삼을 재배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대만과 홍콩을 비롯해 동남아에서는 ‘화기삼’이라 불리는 미국 인삼이 더 인기가 좋습니다. ‘아메리칸 진셍’이라고도 불리는 화기삼은 사실 인삼의 사촌격으로 인삼과는 종이 달라요. 미국 기업은 ‘고려인삼은 열을 올리는 반면 화기삼은 열을 내린다’는 마케팅 전략으로 성공했지요. 전혀 근거 없는 얘긴데 말입니다.”
이밖에 러시아 등지에서는 인삼의 가격이 비싸 가시오갈피를 ‘시베리아 진생’이라고 이름 붙여 인삼 대용품으로 사용하는 등 원형삼 시장에서도 고려인삼의 입지는 계속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백면서생들, 회사를 차리다
박정일 교수는 “인삼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기존 인삼보다 약효가 강한 신제품을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선삼정이 그 선두주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허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이나 미국에서 똑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인삼 값이 우리나라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중국에서 선삼을 만들면 가격경쟁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박교수가 진생사이언스라는 회사를 만들어 선삼을 제품화하기 전에 먼저 미국과 국내에 물질 및 제법특허 출원절차를 서둘러 마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선삼정이 나오기까지 박교수는 갖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서울대 약대 대학원 시절부터 인삼연구에 흥미를 가진 그는 본격적인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연구비를 지원받기가 쉽지 않아 다른 연구를 하면서 부업처럼 조금씩 인삼연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교수들 사정도 마찬가집니다. 인삼에 대해서는 워낙 연구가 많이 돼 있어 ‘연구해봤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연구비를 대주는 곳이 없어요. 그래도 다들 조금씩은 합니다. ‘우리 것’인 인삼에서 뭔가 더 나올 게 있을 거라고 기대를 걸고 있거든요.”
홍삼의 특이성분을 밝혀내면 되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하고 나서 박교수는 혼자만의 힘으로 이 성분을 찾아내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동료교수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때부터 박만기, 김낙두, 이승기 교수 등과 함께 인삼연구팀을 만들어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모두들 과학적인 호기심에서 시작한 것이죠. 연구비도 없는 상태였고, 나중에 제품화할 수 있다는 생각도 못했어요. 더욱이 당시는 전매법도 없어지기 전이었고….”
마침내 선삼을 발견했고, 특허까지 받았지만 제품화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평생 실험실에서만 살아온 학자들이다 보니 비즈니스에는 다들 문외한이었다. 고민 끝에 제일제당에 찾아갔다. 제일제당이 선삼을 제품화해주기 바란다면서 추가실험을 위한 연구비 지원을 부탁했다.
박교수는 제일제당으로부터 받은 연구비가 그가 인삼연구와 관련해서 지원받은 유일한 연구비였다고 씁쓰레했다. 연구비가 생기자 인삼연구팀은 산삼도 세 뿌리나 구했다. 한 뿌리에 3500만원이나 했지만 산삼과 선삼의 효능을 비교·분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실험결과 선삼이 산삼보다 약효가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한 박교수는 제품화를 서둘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기업이다 보니 일이 진행되는 것도 늦고, 인삼제품이라는 특성상 여러 곳과의 역학관계도 있고 해서 차일피일 미뤄졌다.
머리를 싸맨 그는 동료교수들과 상의한 끝에 직접 벤처기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자본금 5000만원짜리 진생사이언스. 2000년 12월의 일이다. 경영이 뭔지도 모르는 박교수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주변에는 우리가 돈을 벌려고 벤처기업을 만든 게 아니냐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벤처기업을 꾸려 돈을 좀 벌면 그 돈을 연구비로 쓸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지요. 그동안 교수들은 연구계획서와 보고서 쓰는 데 너무 시간을 낭비해왔어요. 나중에는 연구계획서를 쓰기 위해 연구를 하는 건지, 연구를 위해 연구계획서를 쓰는 건지 회의가 들 정도였으니까요. 연구비를 얻어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진생사이언스에서 수익이 발생하자 가장 먼저 인삼연구단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교수를 비롯 10여 명의 교수들이 팀을 이룬 연구단은 인삼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뛰고 있다.
서울대 교수직이 공무원 신분이다보니 벤처기업을 만들려면 먼저 벤처기업 인증서를 받아야 했다. 제자 2명을 직원으로 채용했지만 사업계획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도 모르는 ‘왕초보’들이었다. 물어물어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중소기업청에 제출했더니 문의전화가 왔다.
“담당직원이 ‘예상 매출액에서 동그라미 하나가 빠진 것 아닙니까” 하고 묻더군요, 허허. 고지식한 교수들이라 사실 사업계획서에 써낸 매출액도 너무 부풀린 게 아닌가 싶어 찜찜했는데, 그분들은 매출액이 하도 적어서 착오가 있는 줄 알았대요.”
‘1000년 선삼시대’ 확신
요즘 선삼 매출액은 월 4억원 정도. 진생사이언스는 올해 예상 매출액을 60억원 정도로 잡고 있다. 서울대 약대에 본사를 둔 진생사이언스의 직원 수는 12명. 종로 5가에 판매팀이 있는데, 대리점 수가 120여 개로 늘어나면서 박교수의 선배를 공동대표로 영입해 경영과 판매를 맡겼다.
또한 지금까지는 자체 공장이 없어 외주를 줬으나 최근 경기도 포천에 공장을 준공함에 따라 7월부터 자체 생산이 가능해졌다.
선삼정은 180정에 75만원, 360정에 150만원이나 한다. 값이 너무 비싸지 않냐고 묻자 박교수는 “다른 건강보조식품과 비교하면 오히려 싸다”고 했다. 상황버섯 같은 것은 1kg당 1000만원씩이나 하는데, 선삼은 약효를 감안하면 절대 비싸지 않다는 설명이다.
“백삼에서 홍삼이 탄생하는 데 1000년이 걸렸습니다. 홍삼에서 선삼의 시대가 열리는 데는 다시 1000년이 걸렸습니다. 두고보십시오. 선삼의 시대가 앞으로 1000년은 갈 테니….”
박교수는 “공동대표를 맡다보니 본연의 연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회사가 좀 안정되면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선삼정을 의약품으로 허가받기 위한 연구가 필요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천연물 의약품 중에서 시장점유율 1위와 2위를 외국기업 제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1위는 독일에서 만드는 은행잎 제제, 2위는 진사나죠. 하지만 그 둘 다 원조는 한국입니다. 진사나는 요즘 중국산 인삼을 사용하지만 원래 고려인삼으로 시작한 것이며, 은행잎 제제는 지금도 우리나라 은행잎을 원료로 쓰고 있어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버는 격 아닙니까. 우리 제품을 반드시 천연물 의약품 1, 2위 자리에 올려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