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호

“분권형 대통령제라야 정치개혁 이룬다”

중도개혁포럼 회장 정균환 원내총무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08-31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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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도개혁포럼은 민주당의 핵심
    • 차별화는 위험, DJ 치적 계승해야
    • 시간은 충분… 노풍은 살아난다
    • 정계개편은 개헌의 부산물, 정계개편 노린 개헌에는 반대
    정균환 원내총무는 직함이 많은 정치인이다. 국회에서는 여당 원내총무인 까닭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당 원내총무는 당연직 최고위원이다. 따라서 정총무는 최고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하지만 국회와 정당의 요직보다 ‘정치인’ 정균환을 돋보이게 하는 직함이 중도개혁포럼(중개포) 회장이다. 지난해 9월 60여 명의 현역 의원과 비슷한 수의 원외 지구당위원장이 회원으로 가입한 중개포는 한때 민주당내 최대조직으로 관심을 모았다.

    정총무가 최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도 중개포와 관련해서인데, 지난 6월27일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이제 분열에서 화합으로 이끄는 정치지형이 필요하다”며 “각당은 대선공약으로 내놓고 협상의 시기를 정해야 한다”며 개헌론의 불길을 댕겼다. 아울러 정총무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권력구조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했다.

    중개포라는 정치세력의 대표자로서 던진 한마디이기에 정치권은 그의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과연 정총무의속내는 무엇일까. 개헌론을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노무현과 이인제 두 사람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정총무가 이끄는 민주당 중도개혁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중개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7월15일 오후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정총무와 마주앉았다.

    -중도개혁포럼은 어떤 모임인가요.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왔습니까.



    “중도개혁포럼은 출범하면서 당력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하자는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결집된 당력을 모아 그 힘으로 국정개혁을 뒷받침하고 당이 흔들리지 않고 차질없이 정책집행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자는 뜻에서 출발했습니다. 112명의 민주당 원내외위원장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대통령이 총재직을 그만둘 때 당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전국의 당원 전부가 정신력 공황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경선후보들을 중심으로 당이 사분오열될 가능성도 있었어요. 그때 중도개혁포럼은 정권재창출에 역점을 두고 흔들리지 말자고 제안했습니다. 정권재창출 뒤에 민주당의 정통성을 계승·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자, 그런 목표를 내세웠지요. 그것을 실천했던 겁니다. 중도개혁포럼이 중심을 잡았기에 당의 혼란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정최고위원은 내친 김에 지난 연말 진공상태인 민주당에 활력을 불어넣은 중개포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특대위도 중도개혁포럼의 작품입니다.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한 그 무렵, 어느 날 오후 5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시내 호텔에서 전체회의를 했습니다. 장장 7시간 가까이 토론을 거친 끝에 특대위를 구성해 여기에서 당의 개혁안을 만들어 운영하자는 제안을 끌어냈고, 이를 당에 건의해서 특대위가 구성됐던 것입니다.”

    -특대위는 중도개혁포럼에서 제안해 채택된 아이디어였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국민참여경선제와 상향식 공천제, 당정분리 원칙 등을 만들었습니다. 특대위가 만든 안을 당무회의에서 통과시키는 데도 중도개혁포럼이 중심이 돼 뜻을 같이하는 우리 당 의원들과 함께 혁명적인 개혁안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지난해 민주당 쇄신파들의 쇄신파동에 대한 반발로서 침묵하는 다수의 뜻을 모아보자는 뜻에서 중도개혁포럼을 결성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중도개혁포럼 하면 아직까지 쇄신파라 불리는 젊은 의원들과 대립관계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립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쇄신파에 속하는 의원들도 중도개혁포럼에 들어와 있습니다. 당의 발전이나 정권재창출을 위해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어요. 사안에 따라 처리하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는 거예요. 연구모임 간에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의원 개개인도 생각이 다를 수 있어요. 따라서 중도개혁포럼과 쇄신파는 절대 대립관계가 아닙니다.”

    -회원들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텐데 어떻게 내부의 이견을 통합합니까.

    “출발할 때 회원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모임처럼 사전에 모든 것을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회의를 열어서 결론을 내리는 식으로 운영하지 말자, 시간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되도록이면 모든 것을 터놓고 제로베이스에서 토론하자, 그리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내자고요. 100여 명이 넘는 위원장이 참여하다보니 회의 때 나오는 얘기들은 곧 전 국민의 목소리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을 하다보면 합일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중도개혁포럼을 ‘민주당의 중심’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민주당의 이념은 중도개혁주의입니다. 중도개혁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민주당을 만들었습니다. 중도개혁포럼 회원들은 민주당 안에서도 중도개혁주의를 더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분들이니 핵이라고 볼 수 있죠. 민주정통세력의 핵 모임이자 연구모임이다, 나는 그렇게 규정합니다.”

    정총무의 중도개혁포럼에 대한 예찬이 계속 이어졌다.

    “‘중도’자가 들어가니까 중심에만 서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중도개혁’입니다, 개혁. 중도개혁주의를 지향해가는 모임이에요. 우리 당에도 보수성향을 가진 분들이 있고 보수에 대립되는 성향을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중용의 사상을 가지고 중도개혁의 가치를 그분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겁니다. 중도개혁주의는 클린턴이나 블뢰어·슈레더 같은 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지향하고 있는 주의 아닙니까? 전세계적으로 개혁을 주도하는 세력은 중도개혁주의를 지향하는 세력들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민주당이 중도개혁주의를 지향하면서 국정개혁을 주도해나가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힘있게 추진하는 단체가 중도개혁포럼입니다.”

    이쯤에서 시각을 민주당 내부로 돌려보기로 했다. 중개포의 리더로서,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정총무는 민주당의 현상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뜻밖에도 그는 지금의 상태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패배 이후 여러가지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데 당의 혼란, 지방선거 패배 등 일련의 사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 민주당이 혼란스럽고 약체같이 보입니다. 그건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제왕적 총재’제도에서 민주당이 운영됐다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을 겁니다. 그러나 제왕적 총재제도는 시대가 거부했습니다. 민주당은 그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제왕적 총재제도를 폐지하고 완전 집단지도체제를 만든 것입니다. 한나라당과는 대비되지 않습니까. 한나라당도 우리를 따라 집단지도체제를 택했지만 형식만 따라하고 있습니다.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니까 다양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고위원회의 때도 여러가지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충분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정당의 참 모습입니다.”

    -지방선거 패배는 충격인데 패배의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무엇보다 권력형 비리, 이것이 우리를 아주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국민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대통령 후보가 어느 정도 이 상황을 수습할 것으로 기대하고 지방선거 전에 후보를 선출했습니다만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정치력을 발휘해서 대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야당에서 우리를 부패집단이라고 집중적으로 매도할 때 당에서 적절히 대응해 국민들에게 우리의 뜻이 전달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미진했다고 생각합니다.

    참패 원인 중 또 하나는 상향식 공천제의 후유증입니다. 우리 당은 정당사상 처음으로 완전 상향식 공천제를 실시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경선에서 떨어지면 무조건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버립니다.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 후보마저 난립해 표가 분산된 겁니다.”

    -듣고보니 민주당은 오히려 당의 구심이 없어서 이번 선거에 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선거국면에서는 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필요도 있지 않습니까. 중도개혁포럼이 지난 연말 특대위 구성을 제안하면서 여러가지 제도를 도입해 당의 면모를 일신한 결과, 국민참여경선이나 상향식 공천, 당정분리 등의 제도들을 도입했는데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당의 구심력을 약화시켰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일사불란한 총재제도가 없었기에 우리가 패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를 비리집단으로 몰아세운 한나라당에 대해 당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겁니다.”

    -노무현 후보가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도 득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는데 그 역할을 못 했다고 했는데요….

    “대선후보는 수도권 공략에 집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결과론적으로 봐도 그게 옳았습니다. 그런데 후보 주위에서 후보는 영남지방에서 뛰고 수도권은 당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초기의 전략을 짰던 것으로 압니다. 이것이 잘못됐다는 지적입니다. 또 노무현 후보 같은 컬러를 좋아하는 분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데도 실패했지요.”

    -노풍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난 3~4월 경선 때는 가상대결에서 이회창 후보에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길 정도로 지지율이 높더니 지금은 사라져버렸습니다. 노풍의 소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노풍이 불었고 어느 날 사라져 버려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왜 노풍이 불었는가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보기에는 국민들이 기성정치권에 식상했기 때문 아닌가 합니다. 지난 2년 가까이 이회창 후보는 사실상 대통령이었습니다. 이회창 후보와 우리 당의 이인제 후보가 각축을 벌였는데 1등은 늘 이회창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마지못해 이후보를 지지한 겁니다. 다른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죠. 여러가지 단점이 있었음에도 노출되지 않다가 호화빌라 사건이 터졌습니다. 1997년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이회창 후보가 선거운동에 돈을 전부 써버려 전셋집 얻을 돈조차 없다,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분이 호화빌라를 3개층이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민이 기성정치인에 대해 식상하게 됐죠. 아울러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개혁적이고 참신한 노무현 후보에게 국민들의 지지가 폭발적으로 모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총무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이고 투표”라고 말했다.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잠재해 있던 국민들의 지지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노풍이 잠잠해졌지만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노풍 같은 바람이 우리 당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하며, 실질적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은 지난 몇 년 동안을 ‘DJ 대 반DJ’ 구도에서 편안하게 정치를 해왔습니다. 우리 쪽의 실수로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올라간 것이지 본인들이 한 게 없어요. 노풍이 사라진 것도 우리가 코를 빠뜨려서 그런 겁니다. 우리가 실수를 많이 했기 때문에 바람을 잠재워버린 겁니다.”

    지난 2000년 총선때 사실상 민주당의 공천작업을 총지휘하며 김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정총무에게 사람들은 ‘DJ의 복심(腹心)’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지난해 중도개혁포럼을 만들고 회장을 맡을 때도 그 이면에 김대통령과의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무성했다. 중개포가 창립단계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도 이런 소문 때문이다. ‘DJ의 복심’ 정총무는 그러나 인터뷰 내내 김대중 대통령을 거명하지 않았다. 다소 의아했으나 이어지는 그의 얘기에서 그런 의구심은 싹 사라졌다. 그는 마치 자신이 해낸 일처럼 현정부의 치적을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이런 치적들만 제대로 알렸어도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한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IMF외환위기 극복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습니까?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는 IMF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끝내 부도나 버렸습니다. 남북정상회담도 그렇습니다. 분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정상들이 회담을 했습니다. 통일의 기반을 닦은 겁니다. 전쟁의 위협을 감소시켜준 겁니다. 9·11테러사건이 나자 전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가장 안전하다던 미국이 테러를 당했으니까요. 사건 이후 전세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테러가 닥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갖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사건 4일 뒤에 서울에서는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렸습니다. 정상회담이라는 쾌거가 없었더라면 9·11테러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밤잠도 못 잤을 거예요. 햇볕정책은 역사적인 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에 한국 IT산업의 수준이 알려졌습니다만 IT산업은 21세기 우리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겁니다. 전국에 정보고속도로를 깐 나라는 전세계에 우리나라뿐입니다.

    돈 없는 가정에 태어나도 공부만 잘하면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전국에 안전망을 구축해 적어도 4인 가족에 96만원이라는 최저생계비를 지급해 돈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산적 복지정책을 성공적으로 펼쳐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어디 가서 고문받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 없어졌습니다. 또 언론의 자유도 획기적으로 신장돼 미국 프리덤 하우스는 2000, 2001년 연속으로 한국을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 동등한 ‘언론자유국’으로 분류했습니다. 이것을 다 국민의 정부가 한 거예요.”

    -하지만 국민들은 현정권의 안 좋았던 것을 더 분명히 기억합니다.

    “IMF 이후에 얼마나 경제가 어려웠습니까? 전세계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플러스 성장을 했습니다. 세계 신용평가기관들이 우리를 A로 평가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국민들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소수파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잘한 것도 평가를 안 해주는 거예요. 자치단체장들이 국정홍보를 앞장서 해줬어야 하는데 자기들 선거운동만 하느라 지역감정에 몰입, 홍보를 안 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노풍 얘기하다가 현정권의 치적으로 얘기가 확산됐는데 권력형 비리가 노풍을 가라앉히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노풍이 사라진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권력형 비리도 영향을 끼쳤고 신중함이 결여된 노후보의 언행도 영향을 끼친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에서 후보를 뒷받침하고 지원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안 됐다는 안타까움도 갖고 있습니다.”

    -지지율 회복을 위해 노후보는 DJ정부와의 차별화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차별화,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얘기한 5대 치적, 즉 IMF외환위기 극복, 남북관계 개선, 생산적 복지 구현, 민주인권국가로의 변모, IT산업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것, 이런 것들은 분명 계승·발전시켜야 되는 것들입니다. 한 정권에서 단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데 다섯 가지를 해냈어요. 앞선 정부를 무조건 차별화하고 짓밟고 넘어가야 당선된다는 생각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IMF외환위기 때문에 경제 망치고 국민을 어렵게 만든 대통령과 그 당에서 내세운 후보를 차별화해야 당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차별화한다며 사진 가져다 태우고 그랬지만 결국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물며 이렇게 역사적으로 빛나는 업적들을 남긴 정부와 어떻게 차별화 하겠다는 겁니까. 차별화 하는 날, 그 후보는 생명력이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노무현 후보와 차별화 문제로 의견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노후보도 과거의 대통령 후보같이 현직 대통령을 밟고 넘어가지는 않겠다고 얘기했잖습니까. 그래서 내 생각과 배치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순간순간에 얘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저번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차별화 반대’의 소신을 밝히셨지요. 다른 참석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많은 최고위원들이 동감했습니다. 권력형 비리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하지 않겠다는, 그런 차별화는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사건 이후 지금 대통령의 자제들까지 역대 위정자들은 한결같이 권력형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바로 전직대통령의 자제가, 일가친척이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그 다음 대통령의 가족도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친인척관리 비서관이 있어요. 그것만 갖고 안 되더라고요. 해체됐지만 사직동팀도 있었어요. 그것 가지고도 안 됐어요. 결과적으로 제도적으로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제도적 문제해결 방법이란 최근 정총무가 주장하는 권력구조 개편안, 즉 분권형 대통령제를 말하는 것이리라. 먼 길을 돌아왔지만 정총무는 아까부터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새로운 대안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분권형 대통령제 말씀이군요.

    “그렇죠.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1년여 전부터 검토해왔고 내부적으로 토론을 많이 해왔어요.”

    -내부적이라면 어떤 분들을 얘기하는 겁니까.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모델은 유럽식 대통령제였습니다.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대통령제는 미국식 대통령제 아닙니까? 미국식 대통령제의 단점에서부터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식 대통령제를 수입해 쓰는 나라들이 중남미와 동남아인데 거의 실패했어요. 우리는 그중에서도 더 기형적인 미국식 대통령제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1987년도에 민주화세력과 군부세력간 협상의 결과 기형아가 태어난 겁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때 어느 기자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까? ‘다음 대통령은 어떻게 어떤 식으로 선출할 것인가’. 바로 그게 레임덕입니다.

    억울하게 단속당했다며 경찰과 싸울 때면 우리 국민들은 ‘예이 이 ×의 나라, 예이 이 ×의 대통령’ 하고 국가원수를 욕합니다. 그래서야 국가원수로서의 권위를 지켜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대통령은 외정·외치를 맡고 총리에게 막강한 권한을 줘 내치를 하게 하는 겁니다. 비상시국에는 대통령중심제로 운영하고 평상시에는 국무총리가 권한을 갖는, 내각제 형태의 2원적 정치가 권력분산의 효과도 있고 국가원수의 권위도 살릴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인제 의원이 주장하는 이원정부제와는 무엇이 다릅니까.

    “그분의 얘기를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어요. 그냥 (이원정부제를) 주장했다는 얘기를 언론보도로만 접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르고 같은지 모르겠어요. 단 여야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민이 권력을 한군데 몰아주니까 그 속에서 비리만 발생하는구나,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떤 식으로 권력을 분산시킬 것인가, 정부통령제로 할 것인가, 내각책임제로 할 것인가, 분권형 대통령제로 할 것인가, 여러가지 유형이 있을 거예요.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총무는 개헌론이 제대로 활성화되려면 ‘정략적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개헌한다고 해서 관심 있는 사람 끌어모은 다음 개인적인 목적이 달성되면 이제 못 하겠다는 식으로 사라지는 그런 정략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정치개혁이라는 큰 그림까지 그려보자는 게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을 내놓은 이유라는 것이다.

    -단순히 권력구조, 즉 분권형 대통령제 하나만 갖고 아옹다옹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개혁을 하자는 얘기군요.

    “그렇죠. 전반적 정치개혁을 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면 낡은 정치제도는 고쳐야 합니다. 정당개혁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끌어냈어요. 전국민이 사분오열돼 있습니다. 지역분열이 심각합니다. 이념분열도 아주 심각합니다. 남남분열도 심각합니다. 이런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으로 이끄는 정치지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거기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권력형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서 권력이 한군데로 몰리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고려할 때가 오지 않았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기적으로 지금 해야합니다. 지금이 정치개혁을 이루는 데 결정적 시기입니다.”

    -왜 그렇죠.

    “왜냐? 과거 대통령들은 쫓겨나다시피 밀려났잖아요.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 살리고 국정개혁에 전념하기 위해 임기를 많이 남겨놓고 당적을 버리고 총재직을 떠났습니다. 거기에 충격을 받아 우리 당은 국민참여경선제를 비롯해 여러가지 개혁방안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그 기간은 권력자가 기회를 준 겁니다. 후배 정치인들한테.”

    -김대통령과 그 부분에서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그건 아닙니다. 어느 면에선 권력자가 정치개혁을 하라며 자리를 비켜준 거라고 봐야지요. 목표를 제대로 정하고 정열적으로 접근한다면 지금이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개헌론 제기를 정계개편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접근해서 그래요.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전반적 정치개혁을 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같이 가자는 거죠. 힘이 있어야 같이하는 것 아닙니까.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입니다. 그렇게 일하면서 부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일(정계개편)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목표는 외면하고 부수적인 것에만 눈이 어두워 거기에만 달려들면 정치개혁은 못 합니다.”

    마지막으로 8·8재보궐선거 전망을 물어보았다. 민주당은 8·8재보선을 계기로 심각한 내홍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노후보나, 이인제 의원 등 반대파도 재보선 결과에 그들의 이후 정치일정이 크게 영향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8·8재보선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현재분위기로는 민주당의 열세인데 극복할 방법이 있습니까.

    “묘수가 있겠어요.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국민들 앞에 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선거에 패하면서 당내 일각에서는 후보교체론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누구한테서고 후보를 교체하자는 얘기를 들어보지는 못했고요.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노무현 후보가 경선 때부터 지방선거에서 부산·경남에서 당선자를 못 내면 재심판을 받겠다고 했던가, 기억이 안 납니다만 그런 것이 부담이 됐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당무회의, 의원합동회의에서 그런 입장을 밝혔고 재신임도 받겠다고 한 것이 발단이 돼 여러 얘기가 나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똘똘 뭉쳐 8·8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헌론을 제기하고 공감한 분들끼리 다른 쪽에 신당을 만든다던가 하는, 개헌론자를 중심으로 8·8재보궐선거가 끝나면 정계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그렇게까지 보지는 않아요. 노무현 후보도 책임총리제를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권력분산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아요. 권력분산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는 박상천 최고위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당 정치개혁특위에서 준비를 하고 있어요. 거기에 따라서 행동을 같이하면 되는 것이지 딴살림 차려서 개헌작업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난해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돌렸건만 정총무는 의외로 가볍고 경쾌하게 답변했다. “권력분산에 동의하는 이상 당내 기구를 통해 논의하자”는 그의 말에 정치권 누군가는 좌절을 느꼈을 법하다. 그는 민주당 중심의 정계개편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개헌론을 제기한 배경도 민주당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렇지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같이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선선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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