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베치는 터키 서민들이 여름에 주로 먹는 요리다. 재료를 구하기가 쉽고 빨리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터키에서는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점심식사때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한국 남성들도 30분 정도만 시간을 내면 가족과 손님들에게 생색내기 안성맞춤인 요리가 구베치다.
“터키 학생들은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많이 갔습니다. 그래서 서방 전문가는 많지만 아시아 전문가는 별로 없습니다. 또 터키에는 한국 전문가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월드컵을 계기로 부각되었지만 터키는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1만5000명이나되는 우리 할아버지들이 한국에 와서 피를 흘렸고, 전사자만도 1000명이 넘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온 그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5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웠고, 전공인 기계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대 기계공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2년 동안 다녔다. 터키말과 한국어는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형제어다. 어순이 똑같고 비슷한 단어도 많아 배우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매력을 발견했고, 한국이 좋은 나라라는 사실을 고국 후배들에게 열심히 홍보하고 다녔다. 그 덕에 그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2명이던 터키유학생이 지금은 25명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한국사람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터키 음식은 중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대 음식으로 불린다. 터키요리는 그 종류가 무수히 많고 맛이 독특하며 음식 디자인이 다양하다. 터키에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한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여러 민족과 어울려 살아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터키사람들은 2000년 전, 동아시아에서 살다가 1000년 동안 차츰차츰 유럽쪽으로 옮겨가며 현재 위치에 정착했다. 특히 터키는 전성기였던 오스만투르크제국 시절 영토였던 유럽과 아시아, 북부 아프리카 등 여러 대륙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소박한 요리에서 중동지방 요리, 그리스에서 들어온 지중해식 유럽요리까지 망라하고 있다.
일본은 날로 먹고, 중국은 튀기며, 한국은 주로 끓여 먹는다. 터키는 육류, 채소, 생선류를 막론하고 불에 구워먹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오랜 유목생활 덕택에 육류는 풍부하지만 물은 귀해서 생긴 조리습관이다. 이슬람권이기 때문에 양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터키인들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가족이 집 앞마당에 모여서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고 저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문화가 있다. 또 터키인들은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대접하는 것을 좋아한다. 터키 속담에 “손님을 초대하지 않고는 식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에르한 아타이 원장도 종종 이스탄불 문화원에 손님을 초대해 손수 터키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 그가 이번에 만든 요리는 터키 서민들이 여름에 주로 먹는 구베치(Guvec). 서민요리지만 워낙 맛이 좋아서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반드시 이 메뉴를 취급한다고.
재료는 양고기, 애호박, 가지, 풋고추, 토마토, 양송이, 다진 마늘, 고춧가루, 후추, 소금 등이다. 양고기를 빼고는 모든 재료가 구하기 쉽다. 양고기는 대형 백화점에서 구입할 수 있지만, 서울 이태원의 이슬람사원 근처 정육점에 가면, 피를 뺀 제대로 된 것을 살 수 있다. 참고로 이슬람교도들은 피를 빼지 않은 고기는 먹지 않는다.
조리법은 모든 야채를 큰 깍두기 크기로 썬다. 다음 양고기를 가로 세로 1.5cm 크기로 자른다. 냄비를 가열한 뒤, 버터를 조금 두르고 볶는데 붉은색이 없어질 때까지 완전히 익힌다. 고기를 볶은 다음, 따로 꺼내놓고, 그 냄비에 호박과 가지를 넣고 약한 불에 볶는다. 이때 호박과 가지에서 물이 나오기 때문에 물은 따로 넣지 않아도 좋다. 기호에 따라서 전골식으로 하고 싶으면 물을 조금 붓는다. 호박과 가지가 익으면, 버섯과 풋고추를 넣어 푹 끓인다. 끓으면 다진 마늘을 듬뿍 넣고 후춧가루와 소금으로 간을 한다. 이후 토마토를 넣어 익히다가 토마토를 으깬다. 여기에 양고기를 넣어 섞어서 마무리하면 된다. 이 모든 과정에 드는 시간은 빨리 하면 15분 정도 밖에 안 된다.
문화원에 온 손님들이 식사를 모두 마쳤다. 그는 그 많은 설거지를 아무 말 없이 다 해냈다. 애써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인품과 살아가는 방식이 한눈에 드러났다. 똑같은 이슬람이지만 터키의 이슬람은 남자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아랍의 이슬람과는 다르다고 한다. 터키에서는 어릴 때부터 남자들이 청소와 설거지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에르한 아타이 원장은 지난해부터 격주에 한 번 정도 한국의 초등학교를 돌며 터키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초등학교 순회 강연은 문화원 사업과 연결된 일이지만, 그는 한국의 어린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무엇보다 즐겁다고 한다.
“문화원 일이 원래 터키를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초등학교를 돌며 터키의 역사와 자연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지요.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어울리며 단순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할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