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여야가 목숨 걸고 ‌‘방송전쟁’ 벌이는 까닭

[Special Report | 尹-巨野 ‘방송전쟁’ 시작됐다] 방송전쟁은 ‘이념담론전쟁’... 여야, ‘승자 따라 진보·보수층 비중 달라진다’ 믿어

  •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언론학 episteme@gwnu.ac.kr

    입력2024-08-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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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정권마다 방송 관련 정치적 대립 심화

    • 이명박 정부 시절 ‘종편’ 놓고 여야 맹렬 대립

    • 집권과 동시에 보수 성향 경영진 물갈이한 문재인

    • 사회적 쟁점이 된 ‘MBC 편향성’ 문제

    • 진보 정권-방송 경영진-진보성향 노조 ‘협업’

    • 답은 민영화? MBC 민영화 임기 내 어려워

    8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6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의사일정 변경동의의 건(방송통신위원회 이진숙 탄핵소추안 추가 상정)이 재적 300인 중 재석 188인, 찬성 188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시스]

    8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6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의사일정 변경동의의 건(방송통신위원회 이진숙 탄핵소추안 추가 상정)이 재적 300인 중 재석 188인, 찬성 188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시스]

    MBC 등 공영방송을 둘러싼 여야 충돌이 격렬하게 이어지고 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야가 맞붙은 큰 사건만 추려도 10건이 넘는다.

    · 윤 대통령의 김의철 KBS 사장 해임과 박민 사장 임명
    · KBS 수신료 분리 징수
    · MBC의 윤 대통령 ‘바이든 날리면’ 발언 보도 파문
    · 방송통신위원회 기형적 2인 체제 운영
    · ‘김어준 뉴스공장’ 편향 논란 및 TBS 폐국 가능성
    · YTN 민영화
    · 야당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추진과 사퇴
    · 야당의 김홍일 방통위원장 탄핵 추진과 사퇴
    · 야당의 이상인 방통위원장 대행 탄핵 추진과 사퇴
    · 야당의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 청문회 3일간 개최
    · 야당의 이 위원장 탄핵
    · 야당의 방송4법 처리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 정부의 MBC(방송문화진흥회)·KBS 이사 교체

    여야는 왜 이렇게 사활적으로 다툴까. 공영방송을 둘러싼 충돌이 우리 사회의 ‘이념담론전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여야는 모두 ‘이 싸움의 승자가 누구냐에 따라 진보·보수층의 비중도 달라진다’라고 보는 것이다.

    종편에서 공영방송으로

    안형준 MBC 사장이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목동 한국방송협회에서 ‘뉴스타파 김만배 녹취’를 인용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와 ‘PD수첩’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과징금 금액 결정을 앞두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안형준 MBC 사장이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목동 한국방송협회에서 ‘뉴스타파 김만배 녹취’를 인용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와 ‘PD수첩’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과징금 금액 결정을 앞두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역사적으로 정권마다 방송과 관련된 정치적 대립이 심했다. 보수성향 이명박 정부 시절 최대 쟁점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인가(미디어법 개정) 문제였다. 진보성향 야당과 공영방송 노조가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2011년 12월 4개 종편과 1개 보도전문채널이 개국했다.

    몇몇 논문에 따르면, 진보 진영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보수성향 대형 신문의 영향력을 제한하려고 시도하는 등 민간 신문에 비상식적 규제를 가했다. 진보 정치세력이 이렇게 언론에 가해자로 행세해 왔기에 이들의 종편 반대 논리는 정당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을 감독하는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만들어졌다. 종편 출범의 파장이 커서인지 이 시기 방송 관련 쟁점 중 하나는 종편의 편향성 문제였다. 당시 야당은 “종편이 야당 대표를 인신공격하는 불공정한 방송을 내보내고 방통위와 방통심의위가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비판을 자주 했다. 방송의 보수 편향 논란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계속됐다. 2008년부터 9년간의 보수 정부 시기 정연주 KBS 사장 해임, KBS·MBC 언론노조 파업 등 공영방송 문제로도 여야 충돌이 잦았다.

    진보성향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뀐 이후로 편파 방송 문제는 종편에서 공영방송으로 확연히 이동한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 정권의 초기인 2017년 11월과 2018년 1월 보수성향 김장겸 MBC 사장과 고대영 KBS 사장은 각각 해임됐다. 당시 보수성향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들에 대해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와 진보 진영은 사퇴를 압박했다.

    이후 공영방송 경영진은 주로 언론노조 출신과 진보성향 인사들로 채워졌다. 문 정권 내내 보수 야당은 ‘진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을 줄기차게 쟁점화했고, 당사자인 진보 정권과 공영방송은 별로 대응하지 않았다. 언론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공영방송 언론인 상당수는 한직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방송의 편향성과 방송의 공정성은 서로 대척 관계에 있다. 한 논문에 따르면, 유한하고 파급력이 센 전파를 할당받은 방송사업자에게 부과된 공적 의무의 구체적 명령이 공정성이다. 특히 공공의 자산인 공영방송은 민간 상업방송인 종편보다 방송의 공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더 철저하게 구현해야 한다.
    ‘공정한 방송은 어떠한 방송인가’하는 문제는 심오하다. 몇몇 학자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적 태도로 이해당사자들의 주장을 중립적으로 전하는 것’을 공정한 방송의 한 측면으로 설명한다. ‘공정’을 ‘불편부당’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런데 어떤 방송사가 사회적 쟁점을 다룰 때 이해당사자의 주장을 5대5로 똑같이 실어주는 패턴을 반복하면 이 방송물들은 이내 에지(경쟁력)를 잃을 것이다. 시청자는 이런 영상에 싫증을 낸다. 기계적 중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공정성은 프로그램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공정성은 방송의 자율성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고심 끝에 만든 정책이 ‘적절한 공정성(due impartiality)’이다. 예를 들어, 방송사가 정부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을 정부의 변명보다 더 가치 있는 정보로 판단할 때, 자율성을 발휘해 전체 방송 분량의 70%를 고발 내용에, 30%를 변명에 할애할 수 있다. 기계적 중립은 깨진다. 대신 방송사는 정부의 해명을 이겨낼 사실적 증거들을 제시해야 한다. 또, 정부가 알리려는 내용과 정부에 유리한 정보도 충분히 반영해 줘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적절한 공정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관한 방송의 경우, 유력 후보들에게 방송 노출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선거방송은 평소의 방송보다 기계적 균형을 좀 더 엄격하게 지켜줄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법원 판례로도 확립돼 있다.

    “MBC는 친민주당 방송”

    진보적 거버넌스의 공영방송은 ‘기계적 중립도 안 지키고 적절한 공정성도 너무 자의적으로 적용한다’는 의심을 자주 받았다. 진보성향 안형준 현 MBC 사장은 2023년 2월 18일 MBC 사장 후보 정책발표회를 거쳐 사장이 됐다.

    이 발표회에서 안 사장 후보는 “국민의 절반은 MBC를 신뢰하지만 다른 절반은 비판한다”라고 했다. “어떤 조사는 신뢰도 1위지만 다른 조사는 불신이 3위” “스케이트장 등으로 유배하는 일이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라고도 했다.

    진보성향 허태정 사장 후보도 이 자리에서 “지금 MBC가 친민주당 방송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 이어 허 후보는 “그(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박성재 전 MBC 사장)가 지향한다는 공영방송은 특정 진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반대 진영을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발언은 MBC의 불공정 방송에 대한 자기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다.

    근래에 ‘종편 편향성’ 문제는 더욱 미미해졌고 ‘MBC 편향성’ 문제는 자주 사회적 쟁점이 됐다. <그림1>은 54개 주요 언론사 뉴스 흐름을 분석한 빅카인즈(한국언론진흥재단)의 ‘키워드 트렌드’ 결과를 보여준다. 2023년 1월 1일부터 2024년 7월 31일까지 ‘MBC 편향성’에 대한 월간 보도량이 ‘종편 편향성’에 대한 월간 보도량보다 일관되게 훨씬 많다는 점이 나타난다.

    체감적으로도, 최근 종편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평론가들의 여야 성향을 엇비슷하게 맞춰온 편이다. 종편의 저녁 뉴스 프로그램들은 여야 어느 한쪽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한 보도를 별로 하지 않았다.

    반면 MBC의 ‘바이든 날리면’ 보도는 정부·여당으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외교통상부는 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는 정정 보도를 선고했다. MBC는 윤 대통령이 미국에서 “바이든”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으로 방송 자막을 내보냈지만, 재판부는 “이런 발언을 했는지가 기술적 분석으로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 다만 사람의 귀로 식별하기 어려운 대통령 발언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MBC는 대선 투표일 직전인 2022년 3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불리한 김만배 씨 인터뷰 건을 ‘뉴스데스크’에서 네 개의 관련 기사로 보도했다. 국민의힘 미디어국은 MBC가 검증 없이 허위 인터뷰를 그대로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MBC는 이 보도에 대해 2023년 9월 7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시청자 여러분께 혼선을 드렸다”라고 물러섰다. 인터넷 매체가 김만배 씨의 발언을 일부 생략하고 편집한 상태로 보도했고, MBC가 이튿날 그 매체의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는 게 MBC의 설명이었다.

    이렇게 공영방송은 민간 상업방송보다 더 공정해야 함에도 자신이 자초해 불공정 시비에 더 자주 휘말리곤 했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퇴행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진보·보수 정권 모두 후견인 노릇”

    역대 진보·보수 정권 시기 공영방송의 행태에서 학자들은 ‘후견주의’라는 일관된 패턴을 발견했다. 공영방송의 후견주의는 ‘후견인인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의 요직을 피후견인에게 제공하고 이 피후견인이 자신의 방송 업무를 후견인의 이익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후견인-피후견인 간 거래를 통해 희생되는 것은 시민의 이익이고 방송의 공정성이다.

    이러한 후견주의는 대통령과 방통위, 여당이 공영방송 경영진을 구성할 수 있게 한 방송 관련 법에 따라 제도적으로 뒷받침된다. 이에 진보 정권은 진보성향 공영방송 경영진을 구성해 공영방송을 진보 편향으로 만들고, 보수 야당은 “방송 장악”이라 비판한다. 정권이 교체되면, 보수 정권은 보수성향 공영방송 경영진을 구성해 공영방송을 보수 편향으로 만들고 진보 야당은 마찬가지로 “방송 장악” 공격을 편다. 이러한 공수 전환은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된다는 것이다. 몇몇 학자는 “진보·보수 정권 모두 후견인 노릇을 해왔다”라고 말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방송4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처리된 법의 핵심은 공영방송 이사 숫자를 늘리고 이사 추천권을 언론·방송학회와 관련 직능단체에 주는 점이다.

    이러한 안은 일부 진보성향 언론학자들이 후견주의를 막을 해법으로 제시해 온 내용이다. 여권은 이 안에 반대해 왔다. ‘진보성향이 대부분인 학자·기자·PD 단체에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주면 진보 정치세력이 공영방송을 영구히 갖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방송4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은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제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안임에도 여야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정략적으로 처리됐다”라는 점을 지적했다.

    국내 언론·방송학자의 과반이 진보성향임을 입증하는 통계는 없지만 반증하는 통계도 없다. 언론노조 등의 단체행동을 지지한 학자의 수를 보고 짐작하는 것일 수 있다. 공영방송 기자·PD는 언론노조 가입자가 확실히 더 많다. 헌법적 가치로 보면, 공영방송은 희귀하고 중요한 공공재이므로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가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세우는 현 시스템은 일견 정당하다.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도 비슷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학회와 직능단체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성격이 미약하다.

    공영방송의 후견주의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과 남아메리카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전 세계를 놓고 보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정치권력으로의 종속’ 중 후자가 공영방송의 ‘노멀’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공영방송의 후견주의를 끊을 기회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특별다수제를 방송법에 넣으려 했다. 7대 4(KBS), 6대 3(MBC)으로 돼 있는 여야 추천 공영방송 이사의 비율을 7대 6으로 바꾼 뒤 재적 이사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었다. 야당이 반대하는 사람은 제도적으로 공영방송 사장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당시 보수 야당도 찬성했으므로 이 법은 거의 통과될 뻔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며 반대해 무산됐다. 자기 쪽 사람을 KBS·MBC 사장으로 세우는 프리미엄을 결국 포기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만배’ ‘바이든’ ‘이종섭’ 보도

    여야가 공영방송 쟁탈에 열중하는 건 ‘공영방송이 여론 형성에 영향을 주고 길게는 진보·보수 성향 국민의 증가나 감소에도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국내에서 보편적 미디어로 자리 잡으면서 공영방송은 시청률·광고 감소를 겪어왔다. ‘KBS 뉴스9’과 ‘MBC 뉴스데스크’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주사를 놓듯, 공영방송이 수백만~수천만 시청자에게 특정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주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여전히 국내 미디어 생태계의 상위에 있다. ‘미디어 간 의제 설정’ 이론에 따르면, 공영방송이 설정한 의제는 다른 미디어의 동조 의제화를 쉽게 이끌어 결국 간접적으로 많은 국민에게 도달한다.

    예를 들어, MBC의 ‘김만배 인터뷰’ ‘바이든 날리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출국 금지’ 보도는 삽시간에 다수 매체의 후속 보도와 폭발적 SNS 반응을 일으켰다. ‘김만배 인터뷰’ 보도로 윤석열 당시 후보는 하마터면 대선에 질 뻔했다. ‘바이든 날리면’ 보도는 윤 대통령의 대중적 이미지를 오염시켰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을 내림세로 돌려세우는 계기가 됐다. ‘이종섭 출국 금지’ 보도는 여당의 4월 총선 참패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공영방송의 시사·연예·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은연중에 스며든 진보적·보수적 가치관과 문화는 젊은 세대의 점진적 진보화·보수화의 토양이 된다. KBS가 운영하는 ‘KBS WORLD TV’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1980만 명을 갖고 있다. 젊은 세대의 의식과 생활을 지배하는 한류 콘텐츠에서 공영방송 유튜브 채널들은 상당히 많은 구독자 수와 조회수를 올린다.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한 보수 정치인들은 현 언론 지형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자주 표현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한 번 기울더니 수평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노무현 정부 말기 “이 모든 게 노무현 탓”이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노무현”을 “윤석열”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은 게 요즘 분위기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만큼 늘었고, 이들 보도의 인용 출처는 주로 야당 측 코멘트였다.



    보수 정권이 진 게임

    이진숙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7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이진숙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7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이러한 언론 환경과 연결돼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진보 정권을 거치면서 ‘진보 40, 보수 40, 중도 20’의 유권자 구도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말도 있다. 여러 여론조사의 세부 명세를 보면, 20·30대 여성은 진보 비중이 훨씬 높아져 있다. 40·50대 주류는 보수에서 진보로 이동하는 것으로 비친다. 지역적으로 경기도 신도시에서 보수 후보가 승리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위기감을 느끼는 여권은 공영방송이 중심을 잡아주는 게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듯하다. 이진숙 위원장은 2022년 11월 26일 유튜브 채널 ‘스픽스’에서 “민노총 강령을 보면 좌파 진영의 정치 이념을 교육한다는 그런 취지의 강령도 들어 있다. 그 교육의 수단으로 쓰이는 게 무엇이겠나. 방송이라든지 문화적 도구 툴이다”라고 했다. 공영방송을 바꿔야 기울어진 언론 지형을 바꿀 수 있고, 보수층 이탈을 줄일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공영방송 우군화를 통한 지지층 유지는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라는 주장도 많다.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중 300만 명이 4월 총선 때 여당에 등을 돌렸다고 한다. 방송이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공감하고 소통하는 태도 같은 소프트웨어가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야당의 ‘이진숙 청문회’와 ‘이진숙 탄핵’은 공영방송을 놓고 벌이는 사활적 여야 대격돌의 일환으로 보인다. 7월 24일부터 사흘간 열린 청문회 당시 민주당은 ‘성심당 포인트’ 공세를 폈다. 대전 MBC 사장 재직 때 대전의 명물인 성심당 제과점에서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해 빵을 구매했고 포인트도 받았다는 의혹 제기였다. 이 공세는 이진숙에 대한 많은 부정적 보도를 생산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헌정사상 최초 3일간의 청문회와 재임 3일 만의 탄핵은 실질적 효과가 애매했다. 이진숙 사퇴 여론을 끌어내진 못했다. ‘빵문회’ ‘습관성 탄핵’으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도덕성 검증’이라는 미명으로 진행된 ‘공영방송 쟁탈 게임 시리즈’로 읽히기도 한다. 황정아 민주당 의원은 이 위원장을 법인카드 유용 의혹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탄핵당한 이 위원장의 진로는 경찰 조사와 헌법재판소 판결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이 MBC와 공영방송을 장악한다”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민주당이 문재인 정권 때 공영방송을 더 확실히 장악했고 MBC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라는 논리도 성립되는지 모른다. 전략적 차원으로 보면, 이번 방송 전쟁은 보수 정권이 이미 진 게임이라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6개월-8개월 만에 보수성향 KBS·MBC 사장을 내보냈다. 이렇게 집권 초반부터 시작해 정권 상실 후 2년 3개월이 지나기까지 공영방송의 진보 편향 프리미엄을 최대로 누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현 여권은 정권 출범 1년 4개월이 지나 KBS 사장만 내보냈을 뿐이다. 집권 2년 3개월 동안 결정적 순간마다 MBC로부터 얻어맞을 매를 다 맞은 셈이다. 앞으로 MBC 사장을 바꾸는 것도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유의선 전 이화여대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진보 정권이 후견할 때 공영방송에선 진보성향 경영진과 진보성향 주류 노조 간 협업이 이뤄진다. 사내 반발이 소수에 그쳐 방송의 적극적 진보 편향이 가능하다. 진보 정권으로선 자신의 정책 테두리 안에 공영방송을 계속 두면서 방송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보수 정권이 후견하는 공영방송에선 보수성향 경영진과 진보성향 주류 노조 간 대립이 발생한다. 파업 등 사내 반발이 커져 방송이 보수적 목소리를 강하게 내기 어렵다. 그래서 여권에서도 ‘공영방송의 중립화’로 목표가 낮춰진다. YTN 출신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8월 7일 KBS ‘사사건건’에서 “YTN이 민영화된 다음에 편파 방송하고 있나? 그냥 중립적으로 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공영방송이 공영과 공정을 잃는 비정상적 상황 속에서 진보·보수 정권이 공영방송 후견을 통해 얻는 실질적 편익은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다.

    ‘공영방송 정치 게임’의 틀

    MBC 민영화는 ‘공영방송 정치 게임’에서 ‘진보·보수 간 우열’의 틀을 깨뜨릴 사안이다. 이진숙 위원장은 2022년 11월 ‘스픽스’에서 “MBC 민영화와 관련해서 YTN 민영화 작업이 시작된 걸로 알고 있다”라며 “MBC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좌파 정권이 들어오든 우파 정권이 들어오든 굉장히 사회에 말 그대로 해가 되는 그런 집단밖에 안 된다”라고 했다. MBC 민영화에 대한 의지와 열의가 넉넉히 전해진다. 그러나 방통위원장에 지명된 후엔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매각한다고 하더라도 민영화를 당장 할 수 없다. 대주주의 승인이 있어야 하고 내부 논의 절차가 필요하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 위원장은 만약 방통위원장에 복귀한다면 MBC 경영진 교체에 그치지 않고 민영화까지 내달릴까, 아니면 민영화를 접을까. 유진그룹으로 편입된 YTN 민영화는 2024년 2월 방통위에서 승인됐다.

    MBC는 대주주인 방문진이 지분 70%를, 정수장학회가 30%를 갖고 있다. 관례상 방문진 이사 6명은 여당이 추천하고 3명은 야당이 추천해 방통위가 임명한다. 의사결정권은 향후 여권이 갖게 될 수 있다. 방송법 등에 따르면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대기업은 지상파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수 없다. 일부 진보 매체는 MBC의 현 자산가치를 대략 2조5000억 원으로 추산한다. 결국 MBC 매각이 성사되려면 ‘대기업이 아니고 수천억~조 원 단위 자금 동원력을 갖고 있으며 지상파 인수에 매력을 느끼는 국내 기업’이 존재해야 한다. 거기에다 여권은 친민주당 성향 기업에는 MBC 지분을 팔지 않을 수 있다.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인수의향자는 아마 매우 적을 것이다. 아예 없지는 않을 수도 있다.

    몇몇 매체는 방송문화진흥회법을 개정해야 MBC 매각이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맞는다면, 국회 다수당인 야당은 MBC 민영화를 반대하므로 법 개정에 응할 리 없다. MBC 민영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MBC 민영화 불가능?

    방문진법은 “이 법은 방송문화진흥회를 설립하여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의 공적 책임을 실현하고…건전한 방송 문화의 진흥과 공공복지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1조)라고 돼 있다. 방문진의 업무에선 “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의 경영에 대한 관리 및 감독”(5조) 규정도 뒀다. 또 이사회의 기능에선 “기본재산의 취득 및 처분” 규정도 뒀다.

    “MBC 민영화를 위해선 방문진법을 개정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조항들이 MBC 민영화를 막는 법적 장치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현행법 조항들이 MBC 민영화의 결정적 걸림돌인지에 대해 다른 해석도 나올 수 있다. 이호찬 언론노조 MBC 지부장은 7월 8일 ‘오마이뉴스’에서 ‘MBC 민영화는 국회 통과해야 않나?’라는 질문에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결정하면 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고”라고 답했다.

    공영방송의 민영화를 지지하는 연구들은 △국내 공영방송이 정치권력에 종속돼 있고 방송의 공정성 의무를 다하지 않는 점, △공영방송을 두는 다수 선진국이 ‘1국가 1공영’ 체제인 것과 달리 국내엔 공영방송(KBS1, KBS2, MBC, 연합뉴스TV, EBS, KTV 등)이 많은 점, △공영방송의 상업화가 방송산업 발전과 세계화에 유리한 점을 이유로 든다.

    윤석열 정부는 KBS 수신료 분리 징수를 단행했고 YTN을 민영화했다. “윤석열 정부, MBC를 사적 자본에 팔 결심”이라는 진보성향 매체의 기사 제목에는 ‘MBC 민영화도 밀어붙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배어 있다. 야당이 방송4법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행동을 보였듯, 여권도 행동에 나설지 모른다.

    그러나 MBC 민영화는 크고 복잡하고 민감한 일이어서 2026년 6월 지방선거 전이나 2027년 3월 대선 전에 끝내기엔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MBC 민영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견해가 현재로선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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