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료원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 [고려대의료원]
메디사이언스파크는 고려대의료원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역량을 갖춘 초일류 의료기관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바이오벤처 기업이 여럿 입주해 신약 개발 및 의료기기 연구도 한다. 감염병을 조기에 극복하기 위한 백신혁신센터도 있다.
남과 다른 길을 개척하며 K-메디컬을 선도해 온 고려대의료원이 또 한 번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하는 ESG 경영 혁신을 통해서다.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ESG 경영에 관심과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져왔지만, 여전히 구색 갖추기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고려대의료원은 ESG 실천을 위해 진심을 다해 기관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혁신 의료가 구현돼야 진정으로 인류 건강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고려대의료원의 DNA는 의료원 모태가 되는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설립 정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고려대의료원은 1928년 로제타 홀 여사가 설립한 한국 최초 여의사 양성기관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선교사이자 교육자였던 홀 여사는 평생을 소외된 이와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를 국내에서 처음 개발한 이도 홀 여사다.
고려대의료원은 지금도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만들기를 목표로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위원장으로 한 ‘ESG 및 다양성 위원회’를 정식 발족시켜 사회 공헌 활동과 국제보건, 재난위기 대응 등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으로 실천되도록 독려하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주요 보직자가 모두 참여하고 있는 만큼 고려대의료원의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ESG 경영 행보는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차별화된 발걸음으로 의료계 ESG 경영 패러다임 제시
ESG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고려대의료원은 2023년 2월,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ESG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적극 소통으로 의료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고려대의료원의 다양한 활동과 성과가 담겼다. 국제적 지속 가능 보고 기준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Standards와 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를 적용해 발간한 것이 특징이다. 해당 보고서는 고대의료원은 물론 의과대학과 안암·구로·안산병원 등 산하기관의 지속가능경영 활동과 온실가스 배출량, 그리고 에너지 소비 등의 환경 지표는 물론 노동·인권·환자 권리 등을 담은 사회적 지표를 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윤리경영과 재무정보, 이해관계자 중대성 평가 등 다양한 전문 영역을 상세히 담고 있다. 특히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ow Jones Sustainability Indices), K-ESG 등 국내외 기존 ESG 지표에 대한 고찰을 통해 자체 개발한 ‘고려대학교의료원 ESG 관리 지표’도 발표하고 있다. 이 지표는 재생에너지 사용, 인권 관리체계 수립 등 국제 필수 지표와 환자 친화 경영, 지역사회 공헌 등 의료기관 실정에 맞는 영역에 가중치를 부여해 ESG 실천에 대한 국내 의료기관들의 가이드라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2023년에 이어 2년 연속 발간된 2024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국내 의료기관이 펴낸 ESG 보고서 최초로 웹에 공시돼 있다. 그 덕에 관심 있는 기관이나 개인 누구나 고려대의료원의 ESG 지표를 언제 어디서든 살펴볼 수 있다.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고려대의료원장은 ESG 경영에 정성을 쏟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은 일반 기업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 고려대의료원은 이미 수년 전부터 사회 공헌에 있어 다른 의료기관과 차별화된 활동을 많이 펼쳐왔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다른 병원이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은 ESG 경영도 먼저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수년 전 산하에 사회공헌사업본부를 공식 조직으로 설치해 범기관 차원에서 (ESG 경영을) 추진하게 됐고, 최근에는 고려대의료원의 성공적인 ESG 추진 사례가 다른 병원에도 많이 알려져 많은 병원이 동참하게 돼 더 큰 사명감을 갖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사회공헌사업본부가 위치한 청담 고영캠퍼스 전경. 고려대의료원은 ESG 본격 실천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본부를 서울 강남 한복판에 배치시켰다. [고려대의료원]
현재 범기관 차원의 탄소중립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고대의료원은 산하 캠퍼스 및 병원의 에너지 사용 및 탄소 배출, 의료폐기물 관리 현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저감하고 신재생 에너지(태양광·지열) 비율을 높이는 ‘탄소배출감축시나리오’도 가동하고 있다.
의료폐기물 업사이클링 ‘PET 화학재생’ 사업 주목
고려대의료원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바이바이 플라스틱 챌린지’에 동참했다. 챌린지 행사에 참여한 윤을식 의무부총장(왼쪽 세 번째)과 김학준 의학연구처장(왼쪽 네 번째) 등 고려대의료원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위). 고려대학교의료원이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발간한 ESG 보고서 표지. [고려대의료원]
의료원은 안암·구로·안산병원 등 산하 모든 병원에서 폴리에스테르가 함유된 업무복을 수거해 협력기관인 코오롱으로 보내 화학재생 공정을 거치도록 했다. 코오롱은 폴리에스테르가 주성분인 의류를 테레프탈산(TPA)과 에틸렌글리콜(EG)로 분해하는 ‘PET 화학재생’ 기술을 적용, ‘친환경 미래병원 유니폼’으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이 사업이 특별한 것은 기존 의류 재활용과 달리 수거한 옷을 순수 원료상태로 화학적으로 분해한 뒤 실을 뽑아내 직물로 만든 뒤 가공하고 봉제하는 재생의 전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즉 쓰다 버린 의류를 단순 재활용하는 게 아니라 의류 원료를 분해해 전혀 새로운 병원 근무복으로 재탄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만큼 석유 원료 사용을 줄일 수 있다. 더욱이 폐의류를 소각하거나 매립하지 않기에 그만큼 온실가스 저감 효과도 있다.
고려대의료원은 ‘폐유니폼 화학재생’뿐 아니라 원내에서 발생하는 일반폐기물과 의료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도 발 벗고 나섰다. 감염관리를 위해 한번 사용한 제품은 모두 폐기 처분하는 의료기관 특성상 각 병원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폐기물이 쏟아져 나온다. 고려대의료원 산하 안암·구로·안산병원에서 배출되는 의료폐기물은 톤 단위라고 한다. 막대한 폐기물을 소각하고 매립하게 되면 적지 않은 탄소가 배출돼 온실효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고려대의료원은 감염된 의료폐기물을 제외하고 의료기기를 포장하기 위한 플라스틱 등 재활용 소재를 따로 모아 분리배출토록 함으로써 폐기물 양을 크게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고려대의료원은 다양한 연구개발을 통해 폐기물에 대한 획기적인 친환경 업사이클링 사례를 창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친환경 신소재 개발 기업 루츠랩과 협력해 병원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감축하기 위한 노력도 그 일환이다.
사각지대 밝히는 참의술로 진정한 인류애 실현
희귀암인 거대신경섬유종으로 외출조차 할수 없었던 마다가스카르의 30세 여성(가운데)은 고려대의료원 초청으로 방한해 의료진 손에 의해 새 삶을 얻었다. [고려대의료원]
2024년 고려대의료원은 해외 저개발국가 의료진과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구상을 공개했다.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의료서비스 접근 제약으로 난치성 질병에 시달리는 세계 곳곳의 환자들을 고려대병원으로 초청해 새 생명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심각한 화상과 흉터로 야기된 척추측만증으로 고통받아 온 10세 여아와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희귀암인 거대신경섬유종으로 외출조차 할 수 없었던 30세 여성, 타지키스탄의 3세 뇌수종 남자아이 등 고려대의료원이 초청한 환자들은 현지 의료 수준으로는 적절한 치료가 어려운 중증·희귀질환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10명이 훌쩍 넘는 환자가 고대병원 의료진 손에 의해 새 삶을 얻었다.
또한 고려대의료원은 저개발국가 의료진의 역량 강화를 위한 ‘호의 펠로우십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 첫 연수생으로 마다가스카르 의사, 간호사 등 3명이 초청돼 외과 복강경 술기 및 수술실 간호 업무 등의 교육을 받았다. 현재도 캄보디아와 몽골 의료진 4명이 안암병원과 안산병원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고려대의료원은 과거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미국의 선진 의학을 배우고 국내로 돌아와 세계 최초로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백신을 개발했던 고려대 의대 미생물학 교실 이호왕 교수처럼 고려대의료원에서 교육받은 의료진이 모국으로 돌아가 현지의 아픈 이들에게 넓고 깊은 의술을 설파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의료원은 설립 100주년이 되는 2028년까지 해외 환자 100명 치료와 의료진 100명 연수를 목표로 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선진 의료기관’ 역할과 책임 다하기 위해 의료혁신 지속”
고려대의료원은 수어통역 서비스를 정식 도입했다. 사진은 수어 키오스크와 수어통역사. [고려대의료원]
환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건강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고려대의료원을 이끌고 있는 이가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다. 윤 원장은 ‘ESG 및 다양성위원회’를 정식 발족시켜 사회 공헌 활동 및 국제보건, 재난위기 대응 등에 대한 중장기 계획 수립과 실행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주요 보직자가 모두 참여하는 항구적 조직이 출범한 만큼 고려대의료원의 ESG 실천,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행보는 앞으로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우리는 100년 전 당시 가장 소외되었던 여성, 장애인을 위해 일생을 바친 고려대의료원 설립자 로제타 홀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인류의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선진 의료기관’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의료혁신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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