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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전쟁 뜨겁다

컨텐츠 전쟁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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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부터는 집이나 직장에서 인터넷을 통해 대학강의를 수강하고 학위까지 받을 수 있는 사이버대학 시대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난 3월 교육부가 사이버대학(교육부 명칭은 ‘원격대학’)의 학위 부여를 가능케 한 평생교육법을 제정, 공포한 것. 평생교육법은 지방자치단체나 학교법인, 재단법인, 비영리법인 등이 200평 규모의 교사(校舍)와 네트워크 등 원격교육 시설을 갖추면 사이버대학을 설립해 학사 및 전문학사 학위를 줄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16개 사이버대학들이 내년 3월 개교하기 위해 교육부에 승인을 요청했다. 8월 말 서류심사를 마친 교육부는 신청대학 대부분에게 조건부 가승인을 통보했으며, 향후 서면 및 현지 실사를 통해 대학운영능력을 정밀하게 평가한 후 11월 최종 설치인가를 내줄 방침이다.

사이버대학은 강의실과 도서관, 시청각교육실 등 대학교육이 이뤄지는 모든 공간을 인터넷망으로 옮겨놓은 온라인 캠퍼스다. 오프라인 대학에서 피교육자는 교육공급자 중심으로 마련된 제한된 분야의 교육서비스를 받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특정 대학으로 직접 이동해야 했다. 이에 비해 사이버대학의 패러다임은 철저하게 수요자 중심이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여러 대학이 제공하는 다양한 분야의 교육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선택해 공부할 수 있기 때문.

특히 우리 나라는 전통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산업사회로 급속하게 전환하고 있는데다 대학 문턱이 높아 재교육과 평생교육에 대한 사회의 수요가 넘쳐나므로 사이버대학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교육불균형 해소 기대



사이버대학에 등록한 학생들은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학교측이 개설한 커리큘럼과 담당교수가 홈페이지에 띄워놓은 강의계획서를 보고 인터넷으로 수강신청을 한다. 교수의 강의는 과목이나 교육내용에 따라 중계방송처럼 영상과 음성으로 실시간 진행되기도 하고(Real time 방식), 미리 만들어놓은 강의 컨텐츠를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에 다운로드받아 수업하는 형태로 이뤄질 수도 있다(On-demand 방식).

강의 도중에는 수업내용과 관련된 그래픽과 영상, 녹음자료가 그때그때 모니터에 띄워진다. 교수의 강의록이 미리 저장돼 있으므로 노트 필기에 신경쓸 필요도 없다.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강의 컨텐츠에 링크돼 있는 전자사전이나 디지털 라이브러리로 들어가 자료를 찾아볼 수 있으며, 교수에게 전자메일로 질문을 보낼 수도 있다. 필요할 경우 실시간 채팅을 통해 교수나 다른 학생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과제물을 주고받거나 시험을 치르는 일도 모두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진다.

이런 형태의 강의는 교육효과를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수업자료가 제공되고 쌍방향 인터랙션이 활발하게 이뤄질 뿐 아니라 피교육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해수준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칠판도 잘 보이지 않는 넓은 강의실에 수백 명의 학생들을 앉혀놓고 질문도 토론도 없이 일방향으로 무미건조하게 진행되는 강의와는 효율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디지털대학 신준용 사무국장(고려대 사회교육원장)은 “기존의 대학강의는 폐쇄된 공간에서 일회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다른 강의와 질을 비교하기 어렵지만, 사이버대학 강의는 강의내용이 온라인에서 항상 공개돼 있으므로 강의수준이 낮거나 교육자료가 부실하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며 사이버대학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또한 자신에게 필요한 대학강의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교육서비스의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이버대학의 수업을 따라갈 능력만 갖췄다면 대학생이든 일반인이든 명문대학과 비명문대학, 수도권대학과 지방대학, 4년제 대학과 2년제 대학의 장벽을 뛰어넘어 지식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국내 사이버대학은 여러 대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로 출범한다. 이런 사이버대학은 각 참여대학들의 교수와 강의안을 공유하기 때문에 대학운영이 본 궤도에 오르면 대학간의 경계는 사실상 무의미해진다는 것.

이미 수년 전에 “대학캠퍼스는 30년 안에 사막으로 변한다. 교육의 미래는 전통적인 대학캠퍼스 밖에, 전통적인 강의실 밖에 있다”며 원격교육시대의 도래를 예언한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선견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내년 3월 개교 예정으로 교육부의 설치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버대학 컨소시엄으로는 고려대 숭실대 등 7개 대학 연합체인 한국디지털대학(KDU), 성균관대 성신여대 등 14개 대학이 참여하는 열린사이버대학(OCU), 연세대 한양대 등 36개 대학이 제휴한 한국사이버대학(KCU), 동아대 창원대 등 11개 대학이 연합한 서울디지털대학(SDU) 등이 있다. 이 밖에 서울대, 서강대, 숙명여대 등은 각자 솔루션 업체들과 손잡고 단독 사이버대학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KDU OCU KCU 등 개교 예정

11월에 최종 인가가 나면 이들은 불과 4개월 안에 신입생을 모집하고 강의를 시작해야 하므로 준비기간이 결코 넉넉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이버대학 관계자들은 “98년부터 시범운영 기간을 가져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충분한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말한다.

교육부는 97년 사이버대학 시범기관을 선정, 98년 1학기부터 2년간 시범운영 경험을 쌓게 한 뒤 당초 올해 3월부터 개교하게 할 방침이었으나, 준비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1년을 늦췄다. 따라서 사실상 3년의 시범운영 기간을 갖게 된 셈이라 내년에 학교 문을 여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열린사이버대학 조규섭 기획운영위원장(성균관대 정보통신처장)은 “열린사이버대의 경우 98년 2학기부터 2000년 1학기까지 연인원 5만8365명을 대상으로 사이버강좌를 열었다. 비록 시범운영이긴 하지만 이처럼 수만 명이 참여하는 사이버강좌를 운영해본 대학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시범대학 중에도 운영능력을 제대로 갖춘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있겠지만, 서류심사를 마친 교육부가 운영플랫폼과 강의컨텐츠, 학사관리 방안 등에 대한 실사에 들어가면 ‘준비된 대학’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리라는 것.

한국사이버대학 홍종수 기획팀장은 “시범운영 초기에는 참가대학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각 대학들이 ‘원격대학은 피할 수 없는 대세’임을 자각하고 대단한 의욕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시범기관들이 운영해온 사이버대학의 형태는 ‘재교육과 평생교육의 장(場)’이라는 사이버대학 본래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많은 이들의 지적이다. 대부분의 사이버대학들이 참가대학 재학생을 중심으로 강의를 운영, 대학의 외연을 확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열린사이버대학의 경우 시범 사이버강좌를 수강한 5만8365명 중 99.7%인 5만8178명이 재학생이었다. 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약료전문가과정’, ‘음악치료교육과정’, ‘아동교육전문가과정’ 등을 개설한 숙명여대 가상교육센터 전문교육과정에 800여 명의 수강생이 등록한 것이 예외적인 경우였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허운나 의원(민주당)은 “국내 사이버대학은 몇 개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기들끼리 학점을 교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고등교육의 대안, 혹은 지속교육 담당기관으로서의 경험을 쌓았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학에 못 들어갔거나 직접 대학까지 가서 강의를 들을 여건이 못 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좀더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사이버대학은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업현장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언제 어디서나 필요에 따라 활용 가능한 ‘지식은행’이라야 한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식기반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국민이 적어도 2년 이상의 대학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공언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범운영의 한계

가령 은행이 앞으로 증권과 보험업무까지 맡게 될 경우 은행원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증권과 보험 실무지식을 배워 복합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전업(轉業)하거나 직장을 옮길 경우에도 짧은 기간 안에 혼자 힘으로 실무를 익혀 새 직장에 적응해야 한다.

그렇다고 직장인이 대학을 새로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학도 산업사회의 신속한 변화세를 따라잡으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실무 중심의 커리큘럼을 그때그때 순발력있게 만들어 제공하기 어렵다.

사이버대학에 기대되는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처음 강의 컨텐츠를 만드는 게 어렵지, 일단 제대로 된 컨텐츠를 띄워놓은 뒤에는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강의내용과 정보를 업데이트하며 수요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허운나 의원은 “사이버대학의 원조격인 미국 피닉스대학은 25세 이상의 직장인을 주대상으로 하고, 강의도 대학교수와 해당과목 관련분야 실무자들이 팀을 이뤄 맡고 있다”며 “사이버대학은 강의의 뼈대가 ‘티칭’이 아니라 ‘러닝’에 있으므로 교수도 코스 기획과 매니지먼트, 토론 유도, 현장사례 수집 및 분석 등 코디네이터 역할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 사이버대학들은 2년여의 시범운영기간 동안 재학생을 중심으로 강의를 실시했기 때문에 하드웨어 측면이나 기술적으로는 다소 노하우를 쌓았을지 몰라도 일반인 중심의 실무형 커리큘럼과 컨텐츠를 만드는 일은 이제 시작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는 강의 컨텐츠를 만드는 일도 교수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일임, 가외업무를 맡게 된 교수가 단순히 기존 강의를 온라인화하는 데 그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더욱이 일부 대학은 사이버대학을 강의실 부족문제를 해결할 방편쯤으로 인식한 나머지 온라인화할 필요가 없는 과목까지 무리하게 사이버강의로 편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열린사이버대학 조규섭 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정식 대학법인이 아니라 14개 대학의 협의기구에 불과했기 때문에 재학생을 대상으로 시범강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년에 대학이 설립되면 그 주요 대상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놓친 사람이나 직업인들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과정도 초기에는 기존 강의를 중심으로 편성하겠지만, 점차 비학위과정을 중심으로 실용적인 요소를 많이 반영하겠다는 것.

조위원장은 “최근 참여대학 관계자 회의에서 ‘당초 고려했던 커리큘럼 편성안으로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리고 백지상태에서 다시 안을 마련하기로 했다”며 “6000명에 이르는 참여대학 교수 중 새 커리큘럼을 맡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교수들을 뽑아 별도의 전담교수진을 갖출 것이며, 그래도 만족스럽지 못하면 참여대학 밖에서도 교수를 초빙해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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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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