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돌을 떨어뜨리면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듯, 지진이 일어나면 지진파가 사방으로 전달된다. 지구는 탄성체로서 진동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지진이라도 지구는 진동한다. 큰 지진이라면 아주 멀리에서도 감지된다. 지구가 진동한다는 원론적인 의미에서 지축이 흔들렸다고 한다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지진으로 지축의 위치가 변했다는 주장에는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번 수마트라 지진이 일어나면서 발생한 에너지는 약 1.6×1018J(Joule·줄)다. 이는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2만3000개에 해당하는 에너지로 지구에서 1년간 발생하는 총 지진에너지를 초월하는 큰 값이다. 하지만 매우 큰 관성으로 자전하는 지구 회전에너지(3×1029J)에 비하면 2000억분의 1에 불과해 지축의 위치를 일시에 바꾸기에는 아주 적은 양이다.
더욱이 오늘날 큰 지진이 발생하는 곳은 주로 태평양판의 경계부와 인도-호주판의 경계부 그리고 이란-터키-알프스산맥 등지이며, 그 반대쪽인 대서양을 사이에 둔 북아메리카판과 남아메리카판의 동부 그리고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의 서부는 판구조상 안정적이어서 큰 지진이 드문 편이다. 이는 지구의 한쪽 면에서 큰 지진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만일 큰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지축의 위치가 변했다면 지축은 한쪽 방향으로 치우쳤을 것이다.
1900년 이래 지구상에 이번 수마트라 지진과 같거나 더 큰 규모의 지진은 4번 있었다. 만일 빈번한 지진으로 지축이 이동했다면 오랜 지질학적 시간을 통해 지축의 위치가 변해왔는지 검증할 수 있다. 지구과학계에서는 지축의 위치가 변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실제로 있었다. 하지만 호주의 맥켈히니 교수는 지난 5000만년 동안 주요 판들의 이동에 관한 각종 고지자기(古地磁氣) 자료를 연구한 결과, 지축의 위치가 변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위성관측시스템을 이용해 지축의 이동을 직접 측정하는 것도 지각이 비선형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다 단층운동이나 지각변형 등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발생하기도 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지축이 항상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지축은 지구 공전궤도면 수직축에 약 23.5도 기울어진 상태로 자전한다. 지축의 각도는 약 4만년을 주기로 21.5∼24.5도에서 변하고 있다. 1만년 전 지축은 약 24도까지 기울었으나 현재는 23.5도로 세워지는 단계이며, 약 1만년 후에는 약 22.5도까지 세워졌다가 다시 조금씩 기울어질 것이다.
[2] 지축 크기 축소설
지구의 크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학설이 없다. 하지만 지구 자체가 열덩어리이므로 방출하는 열류량의 변화나 지하 2900km 부근에서부터 맨틀을 통해 올라오는 열기둥(hot plume)의 변화, 지각 아래로 들어가는 해양지각의 양에 의해 조금씩 변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지구는 아주 조금씩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다.
이번 지진은 인도-호주판의 해양지각이 유라시아판의 일부인 버마판 아래로 섭입(攝入·판이 서로 충돌하여 한쪽이 다른 쪽 밑으로 들어가는 현상)되면서 일어난 것이므로 언뜻 지구가 축소됐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보상하기 위해 해양판 뒤쪽이 솟아오르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즉 이번 지진으로 인해 정말 지구가 축소됐는지는 좀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그 정도가 평소 지구가 신축하는 범위에 들어가므로 큰 의미는 없다.
[3] 지구 기후 변화설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는 50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돼왔다. ODP는 국제공동연구사업으로 해양과 극지에 엄청난 수의 시추코어를 뚫어 신생대의 지구 기후변동에 대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지질학계와 해양학계가 빙하기와 간빙기의 기후변동에 대해서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태양으로부터 받는 일사량은 기후변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는 약 10만년과 40만년 주기의 지구 공전궤도 이심률 변화, 약 4만1000년 주기의 지축 경사각 변화, 약 1만9000년과 2만3000년 주기의 세차운동(歲差運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대부분 시추코어에서 얻은 결과물로써, 이번 수마트라 지진과 같은 대형지진이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기후변화는 일변화, 계절변화, 수년, 수십∼수백년, 수만∼수십만년 변화 등 다양한 주기를 포함하기 때문에 약 1000년 단위의 기존 연구로는 관측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번 지진이 수년 이상의 긴 기후변동은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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