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농지’ 먼저 산 죄?
운정3지구가 택지예정지구로 지정되자 주민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운정1, 2지구 개발사업이 일사천리로 추진되는 것을 지켜본 주민들은 담담히 이주 대책을 서둘렀다. ‘수용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대체농지와 공장부지를 마련하는 등 저마다 살 궁리를 했다.
“정부가 하는 공익사업인데, 내가 반대한다고 철회되겠나. ‘어차피 쫓겨날 텐데 다른 곳에 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대토(대체토지)를 산 죄밖에 없어.”
교하읍 동패리 김모(50)씨는 처음에는 차분하게 설명하다 갑자기 울화통이 치미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억울해 죽겠어. 정부 말 믿은 죄밖에 없는데…. 기자한테 하소연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채소 값 올라서 난리인데, 차라리 밭에 가서 채소라도 하나 더 기르는 게 낫지. 아무튼 정부 말 믿었다가 병신 된 거야. 내 땅 수용된다고 하길래 ‘싼 땅 사두자’고 먼저 움직인 죄밖에 없어. 그것도 죄라면 복창 터져 못 살지. (잠시 숨을 고른 뒤) 누구 탓하고 싶지는 않은데, 택지개발지구로 지정해달라고 한 적 없고, 농사 짓고 살다가 땅 빼앗아간다길래 다른 데서 농사지으려고 논 샀다가 병신 된 거야. 나이 50에 정부한테 공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원 참.”
김씨는 운정3지구에 자신과 부친 명의로 절대 농지 2500평과 근린생활시설과 공장이 들어선 2500평을 보유하고 있다. 운정3지구가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자 36억원을 대출받아 파주시 적성면에 농지와 임야를 매입했고, 연천군에 있는 한 영농조합법인을 인수했다. 지구 지정 이후 1년 정도면 보상이 이뤄질 줄 알고 ‘대체농지’를 매입했지만, 보상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공장을 세놓았지만 세입자도 보증금을 이미 다 까먹고 2년치 임대료가 밀려 있는 상태다.
“월세를 2년째 못 받았는데, 그냥 나가라고 했어. 강제로 내보내려면 소송해야하는데, 이자도 못 갚는 판에 소송할 돈이 어디 있어.”
2006년 처음 토지수용계획이 발표되고 2007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확정된 뒤 원주민 대부분은 김씨처럼 대출받아 대체토지를 구입했다. 짧으면 몇 개월, 길어도 1년 정도 지나면 토지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상이 한없이 늦춰지면서 막대한 이자 부담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자에) 시달린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돼요. 죽지 못해 사는 분이 많아요. 주민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분노는 대출 이자의 몇 백배쯤 될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멀쩡한 자기 땅이 수용된다고 해서 대출받아 대체토지 샀다가 이자만 물고 있는데…. 신용불량자는 기본이에요. 파산하거나, 사채업자 피해 도망 다니는 분도 여럿 돼요.”

파주 운정3지구 보상이 지연되면서 원주민 대부분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이자 부담에 고통 받고 있다. 보상을 마치고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운정 1,2지구(왼쪽)와 바로 인접한 운정 3지구(오른쪽)의 모습이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