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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귀농시대, 다시 쓰는 귀거래사

‘묻지마 귀농’ 줄고, 정부 교육·정착금 지원 챙기는 ‘똑똑한 귀촌’ 급증

신(新)귀농시대, 다시 쓰는 귀거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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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경제위기 한파가 몰아치면서 삶의 터전을 도시에서 농촌으로 바꾸는 ‘귀농’ ‘귀촌’을 생각하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퉈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내놓으면서 젊은이와 엘리트 출신 은퇴자들을 유혹한다. 1차 귀농 열기가 불었던 외환위기 때와는 확실히 달라진 요즘의 귀농·귀촌 양상을 알아봤다.
신(新)귀농시대, 다시 쓰는 귀거래사

강원도 화천군 폐교를 리모델링한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보금자리(오른쪽)와 60년 된 농가주택을 새롭게 꾸민 ‘뛰다’ 기획자 백정집씨 자택.

지난해 5월, 서울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강원도 화천군 신읍리 폐교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아 귀촌했다. 신읍1리 김종상 이장은 이들과의 첫 대면에서 “뛰다니, 뛰긴 뭘 뛰어?”하고 되물었다. 10개월 가까이 흐른 지난 2월 말, 이장 댁 마당 툇마루에 김 이장과 ‘뛰다’의 김덕희(37) 기획팀장, 배요섭(41) 연출가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곧 있을 마을축제에 ‘뛰다’가 공연 하나 해야지. 뭘로 할 거야?”

“이장님, 폐교 앞이 밤만 되면 깜깜합니다. 가로등을 설치해야 해요. 배수 시설 없는 운동장도 질척거려서 공사가 필요한데 군 지원 좀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새 마을 행사 계획이며 애로사항에 대해 스스럼없이 터놓고 상의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뛰다’는 화천군과 양해각서를 체결해 폐교를 10년 무상으로 임대받으며 이곳에 내려왔다. 빨간 벽돌의 단층 교사(校舍)를 여러 달 동안 단원들이 직접 리모델링 해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는 예쁜 문패를 달았다. 연습장과 사무실, 공연 무대로 사용 중인 폐교는 올해부터 창작활동 및 지역 문화예술 활동의 본거지로 거듭난다. 황혜란(39) ‘뛰다’ 대표는 “앞으로 마을 지도 만들기, 사진전, 창작워크숍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예술인 입주 프로그램, 마을축제, 국제교류 등을 통해 3개국 70여 명의 예술가가 이곳에서 창작 활동을 할 계획도 잡혀 있다”고 했다.



극단이 터전을 옮겨오면서 화천군이 얻은 이익은 또 있다. 정단원 16명이 귀촌한 덕에 노인만 가득하던 마을에 30~40대 젊은이가 북적이게 된 것. 김 이장은 “신읍 1리 부락 4개 중 여기가 4반인데, 변변한 병원이나 학교, 문화 시설이 없고,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런데 예술 하는 젊은 친구들이 이곳에 둥지 틀고 열심히 일하니 얼마나 좋으냐”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2004년 기점으로 귀농 가구 급증

신(新)귀농시대, 다시 쓰는 귀거래사

백정집씨네 주방의 연탄난로는 앞집 이웃이 “겨울에 춥다”며 선물한 것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일기 시작한 귀농 열기가 최근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귀농 가구 수는 외환위기 직후 2년간 급증한 뒤 2003년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2004년부터 다시 가파르게 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1998년 6409가구, 1999년 4118가구였던 귀농 가구는 2000년 1154가구로 크게 줄었다. 이후 매년 수백 가구 수준을 유지하다 2004년 1302가구로 다시 1000가구를 넘어섰고, 2007년 2384가구, 2008년 2218가구를 거쳐 2009년 4080가구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생업을 농업으로 바꾼 귀농가구가 아니라 주거 공간만 농촌으로 옮긴 귀촌 가구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20대 젊은층의 경우 IT 지식으로 무장하고 농산물의 가공·판매·유통 등 2·3차 산업에 뛰어들거나, 농촌에 뿌리를 둔 상태에서 문화·예술·교육 방면의 특기를 살려 활동하는 이가 적지 않다. 공동체 마을을 형성해 집단적으로 이주하는 귀농·귀촌자가 증가한 점도 최근의 변화된 흐름이다.

5월 입주가 예정된 충북 괴산군의 귀농·귀촌타운 ‘미루마을’은 인하대 동문들이 주축이 돼 태양열 등 자연 에너지를 활용한 저탄소 농촌전원마을로 꾸며지고 있다. 초대 촌장은 원영무 전 인하대 총장이 맡았다. 괴산군청은 미루마을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상하수도 시설 등 기반공사비를 무상 지원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숲속 작은도서관’ 관장을 역임하며 도서관을 중심으로 도시문화공동체운동을 펼쳐온 백창화(46)씨는 신문에서 우연히 미루마을 얘기를 접하고 현장을 방문했다가 이곳에 입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더라. 그곳에 도서관을 열고 싶다고 했더니 촌장님이 마을 주민으로 합류하라고 적극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인하대 동문을 포함해 57가구가 입주할 미루마을은 교육문화마을을 표방하고 있는데, 마을 커뮤니티센터에 백씨가 운영하는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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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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