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1일,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 삼성컨벤션센터. 영국의 사회적 기업 전문가인 클리포드 사우스컴(Clifford Southcombe)이 ‘우리는 왜 사회적 기업을 원하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자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회적 기업가들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손놀림은 점점 바빠졌다. 200여 명의 청강 열기는 금세 에어컨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 열풍을 체감한 연사도 한껏 고무돼 있었다.
사우스컴은 영국의 사회적 기업 확산 운동을 주도해온 인물. 유럽과 동남아 지역의 사회적 기업 돕기에 앞장서온 소셜엔터프라이즈 유럽(www.socialenterpriseeurope.co.uk)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스페인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를 한국의 사회적 기업가들이 주목할 만한 성공모델로 꼽았다. FC 바르셀로나는 15만명의 지역민이 공동 소유한 구단으로, 공동 분배 방식으로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고 있다.
“FC 바르셀로나는 수익금을 시민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하죠. 선수 유니폼에 대기업 광고를 유치해 엄청난 부가수익을 올리는 여느 구단과 달리 비정부기구인 유니세프를 후원하는 환상적인 기업이에요. 바르셀로나 회원들이 경기 때마다 외치는 ‘우리는 클럽 이상의 클럽이다’라는 구호에는 그런 자부심이 담겨 있죠.”
그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놓쳐선 안 될 키워드로 평등과 공정성, 공유, 연대의식을 강조하며 “영국의 사회적 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동체 문화”라고 밝혔다. 런던에 있는 사회적 기업 ‘코인스트리트 빌더스’가 좋은 예다. 코인스트리트 빌더스는 마을 주민이 함께 만들었다. 건물 임대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을 유치원 놀이터 공원 등을 짓는 데 쓰고, 남은 돈은 주민에게 공동 분배하는 지역 기반 사회적 기업이다. 이밖에도 노숙자가 파는 잡지 ‘빅 이슈’, 불우 청소년을 요리사로 육성하는 ‘피프틴’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다. 영국을 사회적 기업의 메카라 일컫는 이유다.
세계 유일의 사회적 기업 인증제

교보생명이 만든 사회적 기업 숲자라미.
이 같은 성과를 견인한 한 축은 영국 정부다.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으로도 이상적인 복지국가를 완성하지 못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했는데도 오히려 빈곤층이 늘고, 지역경제가 쇠퇴하고 고용여건은 악화됐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회적 기업 육성을 위한 ‘공동체이익기업(Community Interest Company·CIC)’을 2004년에 창설했다. 시민사회가 사회적 기업을 통해 힘을 모아 빈곤과 실업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CIC는 사회 공익적 활동에 신용을 담보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기업을 간접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해 사회적 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2007월 7월부터 시행됐다. 사회적 기업 육성법은 정부가 직접 역량을 갖춘 사회적 기업을 발굴해 인건비 등을 지원하도록 보장한 제도다. 정부의 검증 절차를 통과한 기업만이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된다.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기관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인증제’를 통해 정부가 직접 사회적 기업을 선발하는 유일한 나라다. 사회적 기업 확산을 주도하는 주체도 정부다. 영국 등 유럽에서는 시민사회가 사회적 기업 열풍을 이끌고 있으며, 정부는 제도적 지원을 하는 조연으로 물러나 있다. 미국 정부는 사회적 기업에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혁신적인 비즈니스로 이해하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