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가 던진 이 한마디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 위력의 파장은 미국보다도 한국에서 더 강력하고 실감나게 퍼져가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인문학이 기업 위기의 돌파구라는 연구보고를 내놓았다. 그리고 학계에서도 인문학을 첨단 과학기술에 융합하겠다는 말이 갑자기 많이 들린다.
그전에 한국에서 융합이라고 하면 인지과학 혹은 IT 쪽에서 주로 과학자들끼리 하던 말로 여겼는데 잡스의 발언 이후 인문학이 갑자기 융합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인문학 교수도 거의 없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이하 융대원)에 가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찾겠다고 발표했다. 미국발(發) 잡스의 한마디에 모두들 갈팡질팡하며 서두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편 인문학 쪽에서 보면 인문학자가 모여서 사회를 향해 인문학의 위기를 호소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런 천덕꾸러기 인문학이 갑자기 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처럼 부각되고 인문학 전공자는 경영문제의 해결사처럼 되었다. 인문학에 몸담은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변화가 나쁠 것은 없지만 마치 유명 부흥사가 “이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라고 한마디 한 걸 가지고 금방 복이 떨어질 것처럼 흥분하는 대중을 보는 것처럼 좀 안쓰럽고 불안하기도 하다.
어떤 변화이든지 그 변화를 주도하는 자는 좋은 변화가 되도록 만들 책임이 있다. 기업이든 학교든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서 허둥거리지 말고 작금의 변화가 좋은 변화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인문학의 본질과 용도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해보고 합리적으로 적절하게 대처하자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취지다.
인문학 인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삼성그룹이 갑자기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채용키로 한 데는 최근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이후 그동안 다소 관심이 적었던 소프트웨어에도 경쟁력을 갖추어야 되겠다는 경영적 판단을 내린 것이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와 함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전문가를 찾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스티브 잡스의 최근 발언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잡스의 발언은 첨단 과학기술업에 인문학을 도입하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릴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삼성에서도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찾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CEO 중에서 97.8%가 인문학적 소양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으며, 82.7%는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채용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경영인들도 인문학 강좌에 많이 참석하고 있고 인문학 독서량도 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문학에 대한 기업인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CEO는 인문학을 경영에 접목하는 데 소극적이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5.7%의 CEO가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해 부서에 골고루 배치하고 1.2%는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해 별동대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으며, 9.6%는 외부 인문학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인문학적 소양이 기업경영에 중요하다는 공감대는 확산되고 있으나 정작 인문학 소양을 갖춘 인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은 오리무중이다.
삼성전자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300명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대 융대원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생 및 재학생을 상대로 취업설명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융대원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을 찾는 것은 이 두 곳이 첨단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한 교육을 실시하는 대표적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은 2005년에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융합기술전문대학원이며 서울대 융대원은 카이스트의 뒤를 이어 2009년에 개원해 2011년에 안철수 교수를 원장으로 영입해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면 삼성전자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려고 찾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과 서울대 융대원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은 다수의 인문학자를 교수요원으로 채용해서 교과과정을 통해 인문학이 융합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으므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서울대 융대원은 좀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