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전문가들은 학교 폭력 문제의 해법으로 성적 위주, 서열 위주 교육 정책을 바꾸고 인성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든다. 그러나 이런 원칙론으로는 지금 학교 현장의 절박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피해 학생의 학부모들은 가해 학생에게는 자신의 행위가 ‘형법’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는 분명한 범죄행위임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상당수 가해 학생이 재미로, 별다른 죄의식 없이 학교 폭력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강경한 피해 학부모는 필요하다면 형사처벌도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형법 제9조다. 형사미성년자에 대해 규정한 이 조항은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로 돼 있다. 만 14세가 되지 않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경우 어떤 행위를 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는 이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 등의 입장은 조심스럽다. 이사라 교과부 학교폭력근절팀 연구관은 “현장의 요구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인권 등의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실효성 있는 피해 학생 보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는 ‘피해 학생의 보호와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가해 학생을 전학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가해 학생이 학교의 전학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시 말해 학생과 학부모가 전학을 가지 않겠다고 버틸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이에 대해 이사라 연구관은 “보다 강력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의 전학이 학교 폭력을 막는 데 실효성 있는 조치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서울 관악구 E 교사는 “전학을 보내면 일단 학생이 한풀 꺾이기 때문에 소기의 효과는 거둘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 학교 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학교 측이 사건을 은폐하지 않도록 할 대책 마련도 요구된다. 최근 드러나는 사례에서 보듯, 교장이나 교감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고 해당 사건을 교육청에 보고하는 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 학교 폭력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교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가해 학생과 그 부모가 함께 특별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가해 학생과 학부모의 동반 특별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 8항에도 ‘자치위원회는 가해 학생이 특별교육을 이수할 경우 해당 학생의 보호자도 함께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관련해 김붕년 서울대 교수는 “가해 학생과 부모가 함께 교육을 받는 것은 학교 폭력 재발 방지에 매우 효과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1월 초 미국 플로리다 주 칼리어카운티 법원은 왕따 피해자가 가해 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에 대해 정당방위라고 판결했다. 현지 언론은 이날 판결이 플로리다의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라는 법에 따른 것이라며, 이 법은 위협을 느꼈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규정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는 이 판결에 우리나라 많은 학부모의 이목이 집중된 건, 그만큼 우리 학교 현장이 폭력에 물들어 있기 때문 아닐까.
# 취재 후기
필자는 학교 폭력을 취재하기 위해 일선 교사와 학부모를 면담했다. 피해 학생 쪽이든 가해 학생 쪽이든 학부모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나오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을 잊을 수 없다. 현직 교사인 이 학부모의 자녀는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한다. 이후 아이의 표정이 우울하면 가슴이 무너진다는 그는 자다가도 몇 번씩 일어나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숨소리를 확인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집에 있는 긴 끈도 모두 치워버렸다. 그를 통해, 학교 폭력이 궁극적으로는 가정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필자에게 말했다. 아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양보하라고 가르쳤다고. 누가 한 대 때리거든 그냥 맞아주라고 했다고. 참는 게 이기는 거라 했다고.
필자에게는 이번에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이 있다. 그 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가르쳐왔다. 누가 널 한 대 때리거든 두 대를 때리라고. 코피가 나도 상관없다고. 만약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엄마가 책임지겠다고!
피해 학생 학부모의 눈물 앞에서, 부끄럽게도 필자는 안도하는 마음을 가졌다. 적어도 내 아이는 만만해 보인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지는 않겠구나 하고. 그리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왕따의 고통으로 인해 자살까지 시도한 아이의 엄마 앞에서, 내 아이는 왕따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물색없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인 건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본 한강. 차가운 햇빛이 반사된 한강의 여울이 내 가슴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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