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으로 되살아난 나에게 소쇄원의 주인은 안내자를 보낸다. 그것이 주인공을 주인공으로 대접하는 방식이다. 나를 맞이하는 안내자, 바로 담장이다. 담장이란 들어오지 말라고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소쇄원의 담장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를 안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리로 들어오라고 담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소쇄원 담은 유달리 정겹다. 담에 애양단(愛陽檀)이란 글자가 보인다. ‘햇빛을 사랑하는 단’이란 뜻이다. 예전에 애양단이 있었던 자리일 것이다. 애양단 앞에 서니 마음과 몸이 따뜻해진다. 애양단이 속삭인다.
“험한 세상 사시느라 고생이 많았죠? 내가 차가운 바람을 다 막아줄 테니, 이제는 내 품에서 따뜻하게 쉬세요.”
애양단을 지나자 오곡문(五曲門)이 나온다. 예전에는 담장 밖으로 오가는 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숫자는 1~9까지뿐이다. 모든 수는 1에서 9까지의 수로만 구성된다. 이 아홉 가지 숫자 중에서 5가 중간이다. 1~4는 이쪽이고, 6~9는 저쪽이다. 1~4는 차안(此岸)이고, 6~9는 피안(彼岸)이다. 유명한 산수화는 대부분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차안을 표시하는 이쪽의 산수가 있고, 피안을 의미하는 저쪽의 산수가 있다. 그 가운데는 구름 골짜기가 가로질러 있다. 차안이 사바세계라면, 피안은 극락이다. 차안이 꿈같은 허망한 세상이라면, 피안은 영원히 존재하는 참된 세상이다. 참된 세상으로 가려면 구름 골짜기를 건너야 한다. 구름 골짜기는 피안으로 가는 건널목이다. 여기 쓰여 있는 5라는 숫자가 바로 그 건널목이다.
차안과 피안의 건널목 오곡문
오곡문 아래로 개울물이 흐른다. 이 개울물은 그냥 흐르는 개울물이 아니다. 천국으로 건너는 건널목이다. 개울물을 건너가야 완전한 천국에 이른다. 이 개울물을 건너면 나는 천국에 도달한다. 천국은 하늘 위에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땅은 원래부터 천국이었다. 하느님이 점지해 당신의 아들을 내려보낸 그런 땅이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가 천국이고, 자연 그 자체가 천국이다. 그런 천국을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 훼손했다. 훼손만 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천국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만 하면 그대로 천국이다. 소쇄원이 바로 그런 곳이다. 어떤 땅 하나도 손댄 것이 없다. 언덕을 깎은 곳도 없다. 태고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 언덕이 있고 물이 흐른다.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소리 들린다. 비 갠 하늘에 밝은 달이 떠오른다. 제월당(霽月堂)이다. 비 갤 제(霽), 달 월(月), 집 당(堂). 비 갠 하늘에 떠오르는 달 같은 집이다. 그 달을 바라보는 집이기도 하다. 사람이 지었어도 사람이 지은 집 같지가 않다. 집을 짓느라 땅을 훼손하지도 않았다. 집이 있어도 주변의 자연과 어긋나지 않는다. 자연 위에 얹혀 있는 자연의 연장이다. 제월당은 주인이 머물고 있는 집이다. 제월당에 이르러 비로소 천국의 주인을 만난다. 비 갠 뒤의 밝은 달을 본 적이 있다. 한 점의 티끌도 없이 투명하다. 제월당에 앉아 있는 주인의 마음 또한 그렇다. 천국의 주인은 나를 개울가에 있는 광풍각(光風閣)으로 안내했다. 빛 광(光), 바람 풍(風), 집 각(閣). 맑은 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집이고, 그런 바람을 맞이하는 집이기도 하다.
광풍제월(光風霽月). 맑은 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고, 비 갠 뒤에 떠오르는 밝은 달이다. 북송시대 시인이자 서예가인 황정견(黃庭堅)은 주돈이(周敦·#54730;)의 인품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의 인품은 너무나 고상했다. 마음결이 시원하고 깨끗해 마치 맑은 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고, 비 갠 뒤에 떠오르는 밝은 달 같다.”

정암 조광조.
황정견은 광풍제월이라 했지, 제월광풍이라 하지 않았다. 제월(霽月)보다 광풍(光風)을 우선한 것이다. 소쇄원의 천사는 손님이 머무는 곳을 광풍각이라 하고, 자신이 머무는 곳을 제월당이라 했다. 손님을 우대하는 마음이 읽힌다.
제월당에서 보면 광풍각이 눈에 들어온다. 제월당과 광풍각은 통해 있다. 주인과 손님이 통해 있고, 나와 네가 통해 있다. 모두가 하나로 통해 있는 것, 그것은 천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제월당과 광풍각 사이는 서로 통해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는 나머지를 담으로 막아놓았다. 담은 보이지 않도록 가리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통해 있어도 가리고 싶은 부분이 있다. 때로는 윗옷을 벗어던진 채 바람을 쐬고 싶기도 하고, 벌러덩 드러누운 채 잠을 청해보고도 싶다. 제월당의 주인은 그런 손님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주인은 담을 쳤다. 담을 쳐도 높이 치지는 않는다. 담을 높이 치는 것은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다. 그러니 담은 낮을 수밖에 없다. 담이 낮으니 담 옆을 지나는 사람이 엿볼 수도 있다. 그러면 손님들은 또 불편해진다. 마음을 푹 놓고 쉴 수 있어야 천국이다. 조금이라도 긴장이 남아 있으면 천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