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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작지만 강한 대학, 기업 맞춤형 교육 시대를 열다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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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 중 ‘기업 출신’이 80%, 국내외 430개 기업과 주문식 교육 협약, 국내 30대 기업으로부터 냉정하게 평가받은 교재 개발…. 20년 동안 기업 주문형 교육을 일관되게 추진해온 영진전문대학교의 상황이다. 이 대학은 “인재를 길러내 기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국내 유명 대학조차 ‘가지 않은 길’을 꿋꿋하게 걷고 있는 영진전문대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주문식 교육’을 향한 영진전문대의 뚝심은 교내 표지석에도 새겨져 있다.

‘노랗게 물든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한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적어 누군가 더 걸어야 할 길처럼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깊은 숨을 내쉬며 말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선택하였다고. 그래서 내 삶도 이렇게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대표적인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일부다. 소박한 삶을 주로 노래한 그의 시 세계를 생각하면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개척자 정신보다는 망설이면서도 인생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서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의 의도가 어떻든 이 시는 이미 많은 사람이 걸어간 보편적인 길을 가기보다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헤쳐나가는 프런티어 정신을 찬미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대구에 있는 영진전문대는 이 시를 닮았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열어젖히는 측면에서 그렇다. 기자는 이 대학이 펴낸 ‘아무도 가지 않은 길-맞춤형 주문식 교육의 길을 연 영진 30년 이야기’(335쪽)라는 책을 최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책 제목부터 프로스트의 시를 연상시킨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기는 쉽지 않다. 대체로 내용이 빈약하거나 상투적인 데다 자화자찬식 이야기를 늘어놓아 이른바 ‘스토리’가 잡히지 않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비탈진 황무지를 개간해 씨를 뿌리고 정직하게 수확하는 농심(農心)이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어느새 넓은 들녘으로 바뀐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가지 않은 길을 열다



영진전문대는 요즘 특히 대학 교육과 관련해 널리 쓰이는 ‘기업 주문식 교육’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대학으로 유명하다. 기업과 대학교육의 ‘불일치’ 또는 ‘간격’을 최대한 줄여 기업은 신입직원의 재교육 비용을 낮춰서 좋고, 취업하는 학생은 인생 낭비를 막을 수 있어 좋은, 서로를 살려주는 상생(相生)이 바로 ‘기업 주문형 교육’이다.

영진전문대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세계수준의 전문대학(WCC)’을 비롯해 ‘국가고객만족도(NCSI)’조사 10년 연속 1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문대 등 그동안 쌓은 화려한 좌표와 브랜드는 1990년대 들어 개척한 주문식 교육 덕분이다. 주문식 교육은 이 대학이 의지할 곳 없는 망망대해 풍랑 속에서 방향을 잡게 해준 나침반 같은 ‘북극성’이었다. 또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갈 수밖에 없는 ‘길(道)’이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내내 떠올랐다. 주문식 교육이 얼마나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싹을 틔웠는지, 얼마나 절실하게 추진했는지, 또 그동안의 성과를 오히려 작은 성취로 여기면서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지금의 노력을 한 편의 시를 음미하듯 되새김해보고 싶었다. 교육 경쟁력과 관련해 귀 기울일 만한 정신과 에너지가 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과연 어떤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나’하는 교훈을 찾아보고 싶었다.

항산(恒産)의 철학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든지 창업을 하든지 ‘기업’과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진로는 기업 쪽이다. 일찍이 맹자(孟子)가 적절히 지적했듯 예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이 생계를 위해 일정하게 하는 일이 없으면 올바른 마음가짐도 기대하기 어렵다(無恒産無恒心·무항산 무항심). 그의 유명한 성선설(性善說)을 떠받치는 것도 지금으로 보면 ‘취업’을 통한 안정된 생활이다.

요즘은 어느 대학 할 것 없이 입학 자원 감소 우려에 학생이나 학부모가 해당 대학의 취업경쟁력을 면밀히 따지는 경우가 많아 대학의 분위기도 예전과 사뭇 다르다. 상아탑이 사라진다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고, 우골탑(牛骨塔)이라며 학비 마련에 부모 허리가 휘는 현실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아탑이든 우골탑이든 결국 대학 졸업이 취업(직장)으로 이어지느냐 만큼 절실한 문제는 없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결국 졸업생의 ‘항산(恒産)’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진전문대의 어제와 오늘에는 이 ‘항산’에 대한 강한 신념이 스며 있다.

‘대학교육이 지나치게 공급자(대학)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걱정은 1980년대 후반부터 기업 쪽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 안에서 ‘우리가 과연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를 교육하고 있는가’ 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을 때였다. 당시 정부가 주요 기업 경영자들과 마련한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오랫동안 재교육을 시켜야 해 손해가 너무 많다. 기업과 대학교육이 이렇게 동떨어진 것은 심각한 문제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이 무용지물 같은 졸업생을 배출하는 게 아니냐는 한숨이었다.

영진전문대를 설립한 최달곤(75) 초대 총장은 다음 날 이 내용을 다룬 신문기사를 보고 무릎을 쳤다. 그는 “바로 저것이 내가 그동안 온갖 방법을 통해 추구하려던 교육방식이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실무 능력을 갖추도록 졸업생을 가르치는 교육, 그것이 기업과 대학의 협동이며 바로 저런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회고했다. 주문식 교육을 도입하고 기초를 닦은 그는 2008년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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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효| 동아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철학박사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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