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우리는 3등시민?”
탈북자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탈북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한 번은 사기를 당하는 게 교과서”라고 말했다. 필자의 경험이나 주변 탈북자를 봤을 때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사기당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적응한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후 내가 갖게 된 얼마 안 되는 정착금을 사기 친 사람은 한국인이고, 생계비이던 기초생활수급비를 가로채간 사람은 같은 탈북자다.
북한에서 굶어본 적 없던 나는 정작 한국에 와서 굶는 고통을 경험했고, 살아남고자 조선족 동포보다 더 어수룩하다는 말을 들어가며 식당에 어렵게 취직했다. 일식집에서 온갖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8시간 일할 때 12시간 일했다. 월급은 그들보다 50만 원 적었다. 나는 그때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 현재 탈북자가 2만8000명을 넘어섰다. 내가 탈북한 10년 전에 비해 사정이 나아졌을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탈북자 조사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의 범죄 피해율은 24.3%로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의 범죄 피해율 4.3%의 5배가 넘고 사기 피해율도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43배에 달해 탈북자 5명 중 1명꼴로 사기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는 “탈북자들이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에 비해 더 많은데도 월 평균소득은 76만 원 정도 더 적다”고 밝힌다. 탈북자 실업률이 전체 국민 실업률보다 4배 넘게 높고 자살률도 3배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탈북자 5명 중 1명은 한국에 와서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업은 빈곤과 배고픔을 의미하고 자살은 삶과의 단절을 뜻한다. 상황이 더 악화한 것이다.
나는 국회와 여러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학부 졸업장을 들고 기업에 취직하려 할 때 번번이 좌절했다.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으로 하향해 지원했건만 서류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자기소개서 등에서 탈북자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지원했더니 그제야 줄줄이 합격통지가 날아왔다.
민주주의의 성취를 자랑하고 통일의 주체가 되겠다고 나선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는 아직까지도 주홍글씨와 같은 꼬리표를 달고 산다. 조선족 동포를 흔히 ‘이등시민’으로 취급한다. 그들에 대한 차별과 냉랭한 시선이 존재하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탈북자는 어떤가. 일부 탈북자가 조선족 동포로 행세하는 것을 종종 봐왔다. 조선족 동포면 취업이 되지만 탈북자라고 신분을 밝히면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다. 주민등록증을 받았지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향유하지 못하면서 ‘삼등시민’으로 살아가는 셈이다. 탈북자는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일부 탈북자는 조국이 자신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여긴다고 수군댄다.
넷 정치적 귀순 → 목적형 탈북
탈냉전 이후 본격화한 탈북 주민의 한국 입국은 성격과 유형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이어진다. 체제 경쟁 시기에는 ‘정치적 귀순’이 많았다. 휴전선을 통해 군인이 넘어오거나 해외 북한공관의 주재원이 탈북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북한의 경제난은 ‘생존형 탈북’을 낳았고 이는 먼저 입국한 탈북자가 가족, 친지, 친구를 데려오는 ‘연계형 탈북’으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엘리트와 비교적 젊은 세대 중심의 ‘목적형 탈북’으로 확대됐다.
남과 북이 체제 경쟁을 하던 시기의 귀순자는 북한 체제와 비교해 한국 체제의 우월성을 확인해주는 존재로서 정치적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탈북자가 타자화와 무가치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적 이용 가치는 고위층 출신이거나 기득권 탈북자에게만 한정된다.
탈북자 대부분은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발을 디디는 순간 ‘호구지책’과 ‘개인의 책임’ ‘무한경쟁’이라는 사선에 선다. 이질적 제도에서 살아온 탈북자에게 생소한 자본주의에 적응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고, 사회는 더 많은 도전과 노력을 요구한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탈북자도 있지만 전체에 비하면 소수다. 열패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다섯 과녁을 못 맞히는 궁수
탈북자를 통일의 마중물, 통일의 시금석, 통일의 가교, 통일의 디딤돌, 통일한국의 리트머스 시험지, 통일인재, 통일자산, 통일미래, 통일주역, 통일일꾼이라고 명명하는 일부의 호들갑을 보면 한국 사회가 탈북자의 중요성은 분명히 인지하는 듯하다. 하지만 과녁을 못 맞히는 궁수처럼 딱 거기까지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의 본모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낙인 효과, 삼등국민, 아웃사이더, 차별, 배제, 부적응, 갈등의 씨앗, 주변인, 소수자, 거류민, 비국민, 탈남입북과 같은 용어에 내부적 타자들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이러한 표현은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과 태도의 현주소이면서 반영이다.
여섯 ‘탈북민’으로 칭하라!
인식의 이중성과 태도의 다중성만큼이나 탈북자를 가리키는 명칭도 다양하다. 귀순자, 귀순용사로 불린 시기가 있는가 하면, 귀순동포를 거쳐 최근에는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새터민으로 호칭된다. 사회에서는 망명자, 탈북난민, 탈북동포, 이주민, 정착민, 북향민 등 수십 가지의 호칭이 난무하는데, 상황에 따라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지금껏 제대로 정립된 용어조차 마련되지 못한 것은 정책의 비효율성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명명한 것은 정작 탈북자 본인들이 터부시한다. 1997년부터 법률적 용어로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했고 2005년부터는 새터민으로 부르기로 했지만 탈북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넘어 냉담하기까지 했다. 이물감을 느낀 21개 탈북자 단체가 모여 ‘새터민 명칭 사용 거부’를 결의한 후 주무 부처인 통일부에 항의했다. 다른 NGO도 가세해 정부를 압박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탈북자들이 스스로 ‘탈북민’이란 용어를 정립해 탈북자 사회에서 환기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 일부에서도 탈북민이라는 용어를 엉거주춤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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