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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점프’→‘지속 쇠퇴’ 낭만세대→난망(難望)세대

한국 등지려는 젊은이들

‘퀀텀 점프’→‘지속 쇠퇴’ 낭만세대→난망(難望)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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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적 근대화

어려울 난(難) 선진국은 경제성장 속도가 정체되게 마련이다. 대학만 졸업하면 골라서 기업에 들어가던 ‘급성장 시기’는 아련한 과거다. 압축성장이 남긴 부작용의 그늘은 짙다.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은 ‘도착적(倒錯的) 근대화’가 전개되면서 악성 변종의 국가공동화가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동양의 혈연연대와 서양의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만나 ‘자유로운 개인의 가족 같은 연대로 이뤄진 합리적·다원적 사회공동체’가 구축된 게 아니라 혈연왕국, 재벌왕조, 이념왕국으로 도착돼 변질했다. 지연·학연·부와 권력의 혼맥으로 이뤄진 ‘한국 새 귀족’의 군자(君子)다움 결여가 갈등을 증폭한다. 지식인, 언론인, 문화예술인이 재벌-권력을 잇는 금권정치 주변을 배회한다. 인간, 사회공동체, 국가가 한갓 혈족의 이기적 목적을 위한 이용·활용·착취·탈취의 대상이 됐다. 한강의 기적에만 매몰된 경제 제일주의, 운동권적 시각으로만 사안을 들여다보는 민주화 제일주의, 재벌중심주의, 혈족이기주의가 계속되면 자율적·합리적 사회공동체는커녕 법과 국가도 존재할 여지가 없다.”

근대화로 겉은 번지르르해졌으나 악성의 도착이 일어나 속은 곪을 대로 곪았다는 것이다. 김영환 씨의 견해도 비슷하다.

“정신문명이 다른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했는지 의문이다. 한국 사회는 국민의식, 정신문명 측면에서 업그레이드가 절실하다.”



2030세대는 ‘국익 확대’ ‘수출 증대’ ‘국력 총화’ ‘애국’ 등의 낱말이 ‘나의 행복’과는 무관하다고 여긴다. 국가 경제의 총량 확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나운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는 게 시급하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선진국에 진입해야 한다”는 수사(修辭)나 ‘선진화=GDP 상승’으로 여기는 산업화 시대의 마인드가 먹히지 않는다. GDP 높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원한다.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운” ‘계나’가 눈치 없이 따지는 것은 이런 거다.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살아남기 급급한 2030세대에게 자아실현은 사치다.

‘애국’에 대한 감정 표출은 다중적이다. ‘선진국 진입’ ‘국격 상승’ 같은 것을 강조하면 ‘미친’ ‘국뽕 맞았냐’는 답을 듣기도 한다. 국뽕은 국가+히로뽕의 합성어. 국가에 자긍심을 가졌거나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젊은 메이저리그 팬들은 추신수, 강정호가 뛰는 텍사스 레인저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팀세탁(응원팀을 바꾸는 것)’한 이들을 “국뽕 맞은 놈들”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반면 애국주의와 배타주의 차별주의 배외주의가 결합돼 파시즘으로 흐른 ‘일베 현상’도 있다. ‘전두환=전땅크’로 찬양하는 악성 변종의 애국주의 혹은 국가주의도 나타난 것이다.

사자 앞 톰슨가젤

희망할 망(望)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는 대한민국 정치에 매우 부정적(43.3%)이거나 부정적(43.2%)이었다. ‘긍정적(1.7%)’ ‘매우 긍정적(0.3)’이라는 응답은 극소수다. 정치가 개과천선할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정치를 통한 점진적 변화가 난망한 상황에서 사회구조를 바꾸는 방법으로 혁명과 전쟁을 꼽을 수 있다. 호전광(好戰狂)이 아니라면 북한과 통일전쟁을 치러 활로를 뚫자는 식의 인식을 가진 이는 없을 것이다. 혁명이 필요하다거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혁명에 대한 ‘계나’의 생각은 이렇다.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혁명을 꿈꾸어야 할 이유’)에 이렇게 썼다.

“여의도 정가의 부질없는 싸움,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나. 이제 역모가 될까 두려워 못 나서는 세상도 아니다. 시민의 세력화, 이를 통한 거버넌스 구조의 개혁, 그리고 그에 따르는 정책의제의 변화, 이런 혁명을 꿈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보통신 기술이 낳은 네트워크를 이용해 시민이 거버넌스 구조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은 혁명에 비견되는 일대 사건이다. 2030세대가 ‘절망의 구조’라고 여기는 현실을 타파할 기회다. 이태호 삼일회계법인 전무는 “한강의 기적에 대동강의 기적을 이어 붙여 우리의 역량을 만방에 알리자. 도로 항만 공항 등 인프라, 공단 건설, 광물자원 개발 등 개성에서 나진, 선봉까지 젊은이들이 할 일이 널려 있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골드만삭스 예측의 전제가 한반도 통일이다. 투자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통일이 되면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골드만삭스의 예측은 ‘장밋빛 전망’일 뿐이라 하더라도 “광복 100년, 통일된 동아시아의 번영한 평화 지향 국가이면서 통상 물류의 중심국”(윤영관 서울대 교수)이 되는 것은 난망한 일이 아니다.

‘퀀텀 점프’의 성장통

어려울 난(難) 진영갈등, 지역갈등에 덧붙여 세대갈등도 나타났다. SNS에서 ‘9·22 대란’으로 일컬어진 한 언론사 논설위원의 칼럼(‘늙는 게 罰(벌)은 아니다’)이 격한 논란을 일으켰다.

“실력이 있으면 사법시험도 붙고 은행도 들어갔지만 그게 안 되면 벽돌도 나르고 리어카도 끌었다. 분수에 맞게 벌고 살림을 차려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 드려야 되는 줄 알았다. 너희는 포기가 무슨 선택쯤 되는 줄 알더라만 나는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 징징대지 마라. 죽을 만큼 아프다면서 밥만 잘 먹더라. 나는 지금도 너희 세대보다 무거운 것을 들고 너희보다 오래 뛸 수 있다. 밤샘 일도 너희보다 자신 있다.”

이 칼럼은 SNS에서 빛의 속도로 퍼졌다. 2030세대는 ‘극혐’ ‘꼰대’ ‘극악’ 등의 꼬리말을 붙이면서 퍼 날랐다. 다음과 같은 패러디도 쏟아졌다.

“님은 없어도 열심히 일해서 살림도 차리고 손주도 안겨드릴 수 있는 세상에 살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님은 열심히 살면 뭔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이라도 갖고 살았지만 우리 앞에는 절망뿐입니다. 님은 ‘포기’가 무슨 선택쯤 되는 줄 아는데, 연애·결혼·출산을 그냥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우리는 포기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말장난하지 마세요. 그러고 보면 님 같은 사람에게 배우는 건 말장난뿐입니다.”(미디어스, ‘님처럼 늙는 것은 죄입니다’ 제하 칼럼)

‘늙는 게 罰은 아니다’ 칼럼에 대한 중장년층의 인식은 대체로 ‘공감한다’ ‘내 생각이 이와 같다’였다. 2030세대와 5060세대는 이렇듯 ‘다른 세상’을 산다.

희망할 망(望) 한국 사회의 갈등은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이뤄낸 데서 기인한 성장통일지도 모른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바라는 미래가, 올 것 같은 미래로 믿어지는 경우”(박성원 박사)다. 2030세대가 꿈꾸는 미래상은 무엇일까. 그들은 같은 꿈을 꾸고 있을까.

신동아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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