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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층 사무실의 느린 사색 인간 대신 욕망하는 인공지능

미래학자가 예측한 ‘2045년, 4가지 미래’

700층 사무실의 느린 사색 인간 대신 욕망하는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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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를 인정하는 사회

다문화 그룹의 약진도 눈에 띈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유입된 외국인의 2, 3세들이 국내 경제계와 정치계까지 활발하게 진출해 한국을 발전시킨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은 생존력이 더해져 무엇이든 사업화하고 이를 추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의 활약은 한국인 토종그룹과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외국인 범죄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다문화 2, 3세들을 부정적으로 인식시키는 요인이다. 반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소외계층과 약자층을 형성하는 외국인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거나 인권이 유린되는 것은 극복해야 할 문제다.

2045년 한국과 2015년 한국을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꼽자면 ‘격차’라는 단어에 대한 달라진 해석이다. 사회적, 경제적 격차는 2015년 당시 매우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됐다. 경제성장의 결과가 소득의 양극화, 기회의 양극화, 교육의 양극화로 나타나자 시민들은 경제성장의 효과(예컨대 낙수효과)를 부정하게 됐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양극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런 격차가 눈에 띄게 클수록 사회 구성원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며 이는 결국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 국가 간 경쟁체제에서 승리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1위면 세계 1위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격차가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은 격차가 벌어지는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해져서다. 경쟁에서 진 사람은 실력으로 졌다고 깨끗하게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정책가들의 목표는 이런 공정한 격차 시스템에서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는 비율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도 부(富)의 세습엔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쏠린다.



◇ 두 번째 미래

2045년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키워드는 느림, 여유자본, 제로성장, 놀이, 지역자치 등이다. 이런 키워드가 한국을 대표하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경쟁지상주의, 과도한 결과주의, 무분별한 소비, 환경오염, 삶의 질 저하, 소외계층의 확산, 공동체의 붕괴 등 21세기 초반 한국 사회에 닥쳐온 문제는 심각했다. 날로 치열해지는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체제에서 시민들은 생존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바쁜데 무엇을 위해 바쁜지 알 수 없었다. 행복하지도 않았고, 시도 때도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였다.

2045년 한국은 서울만 놓고 보자면 과거와 별다를 게 없다. 서울을 빠져나가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이 증가해 서울 인구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경쟁지상주의와 소비를 통한 경제성장, 화려한 이력과 학벌, 그리고 집안 배경 등을 고루 갖춘 엘리트들이 사회를 유지하고 이끌어간다. 그러나 서울을 벗어나면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게 과연 2045년의 한국 사회일까 싶을 만큼 외형적으로는 낙후돼 있다. 그러나 새로운, 낯선 실험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전남 신안군에서 시작된 경쟁금지특별구역에선 모든 경쟁이 금지된다. 학교에선 학생들의 성적별 순위를 매기지 않으며 기업에선 인사고과가 사라졌다. 학생이나 직장인 스스로 공동체의 목적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평가한다. 주기적으로 모여 자신의 성과에 대해 자랑하고, 그 성과에 대해 서로를 칭찬하거나 격려한다. 이런 성과가 전체 조직이나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적에 얼마나 기여하고 얼마나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공개되지만, 이를 토대로 개인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스스로 보람을 느낄 뿐이다.

사색하는 인간의 시대

경남 하동군은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된 이후 오랫동안 ‘느림의 마을’이라는 비전을 발전시켰다. 느림의 철학을 공유하고 교육용 정원과 채소밭을 마련했다. 청소년, 장애인, 노인을 위한 안전한 이동 및 통행을 위한 계획이 수립됐다. 학교와 공기업을 연결하는 자전거 도로망도 완비했다. 8차선 도로에서 양쪽 끝의 한 도로만 자동차가 달릴 수 있다. 나머지 도로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특정 지역에 국한해 자동차의 유효 속도를 법적으로 6㎞/h로 정한 곳도 있다. 이 속도라면 보행자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다. 주민들의 건강은 어느 시대와 비교해도 좋아졌다.

대전의 직장인들은 근무시간 50% 단축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근무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더욱 많이 창출하고, 이를 통해 각자는 느림의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색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한 사람들은 조직이나 지역의 리더로 추앙된다. 지역의 소규모 상점이나 영세 상인을 보호하는 협약과 정책을 시행하며, 재택근무는 일반화해 있다.

중앙정부는 외교와 국방을 책임질 뿐 나머지는 지방정부가 알아서 한다. 지역 공동체가 발달하면서 시민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정치에 참여하고, 정책 결정도 스스로 한다. 의료, 복지, 치안 등 일상과 관련된 분야의 정책들은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된다. 지역 대표들은 이슈가 생길 때마다 적절하게 해결하도록 토론회를 열고 의사결정의 전 과정을 조직하는 데 관여한다. 지역 대표는 지역 주민들이 해마다 돌아가면서 맡는다. 지역 대표를 맡았다고 돈이 생기지는 않지만 명예로운 일로 여기고 기꺼이 그 책임을 진다.

◇ 세 번째 미래

2045년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키워드는 보존, 쇄신, 생존 에너지, 자연과 균형, 정부 통제, 안전사회 등이다. 21세기 초반 세계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하락하자 한국 산업계는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석유자원이 정점(peak)을 넘어섰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대체 에너지 개발이 부진하자 값싼 에너지로 유지되던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됐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후변화로 예측할 수 없는 홍수와 가뭄이 지구촌 곳곳에서 삶의 터전을 망가뜨렸다.

세계 각국은 새로운 규약을 만들어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 위협에 대비하기로 뜻을 모았다. 끝없는 소비를 통한 경제성장에 제동을 걸기 위해 국가 간 상품의 이동이나 돈의 이동을 규제하기로 했다. 모든 물품에 높은 환경세를 도입해 물건을 생산한 만큼 환경을 오염시킨 대가를 치르게 했다. 국가 간 사용할 수 있는 석유자원의 한도도 정해 그 이상은 소비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개인이나 조직은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정해놓고, 그 에너지를 사용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했다. 예컨대 개인이 1kW의 전기를 쓰려면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의 전기 생산 도로를 일정 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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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부연구위원 spark@ste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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