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관광천국’으로 거듭나는 아리랑의 본고장

  • 양영훈 < 여행작가 > travelmaker@hanmir.com

    입력2004-09-01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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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큰 산업기반인 탄광업이 퇴락하면서 정선군의 1·2차산업 기반은 극히 취약해졌다. 하지만 때묻지 않은 태곳적 자연을 ‘보존형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 위락시설을 유치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질아질 성마령아 야속하다 관음베루지옥 같은 정선읍내 십년 간들 어이 가리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지옥 같은 이 정선에 누굴 따라 여기 왔나

    ‘정선아리랑’의 하나인 이 노래는 조선 중엽 정선군수였던 오홍묵의 부인이 지어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님으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생전 처음 정선 땅을 밟게 됐는데, 지나는 길마다 어찌나 높고 험한지 한탄과 자조(自嘲) 섞인 이 노래가 절로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정선 가는 길은 그 옛날처럼 아찔하거나 지루하지도 않거니와 ‘지옥 같은’ 길은 더더욱 아니다. 얼마나 높던지, 그 마루턱에 올라 손을 뻗으면 별이 잡혔다던 성마령(星摩嶺·지금의 평창군 미탄면과 정선읍의 경계를 이루는 비행기재)에는 터널이 뚫렸고, 가도가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던 ‘꽃베루(정선군 북면 여량리 부근의 조양강변에 우뚝한 벼랑)’ 길은 이제 왕복 2차선의 아스팔트 도로로 탈바꿈했다. 적어도 길 사정만 따지자면 정선군은 더 이상 오지(奧地)가 아닌 셈이다.

    그래도 태곳적부터의 첩첩산중이 하루아침에 들녘으로 바뀔 수는 없는지라, 여전히 정선지방은 온 나라에서 가장 깊은 두메산골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백두대간의 허리를 이루는 태산준령들, 첩첩한 고봉들 사이로 빠끔히 열린 하늘, 구절양장의 고갯길, 태극형상을 이루며 굽이치는 강물…. 이렇듯 바라보기는 좋아도 사람 살기는 버거웠을 풍경이 정선 땅 어딜 가나 시야에 들어온다.

    서울에서 정선읍내를 찾아가려면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59번 국도를 타고 가는 게 가장 빠르다. 59번 국도는 평창군 하진부와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 사이의 구간에서 오대천 물길과 나란히 달리는데, 약 80리에 이르는 이 구간에서도 정선군의 전형적인 산수(山水)를 확연히 엿볼 수 있다.



    오대산 우통수에서 발원한 오대천의 물길은 진부에 이르면서 제법 큰 내를 이뤄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해발 1000m 이상의 고봉들 사이로 물길을 내느라 긴 협곡을 이룬다. 고려 때의 문장가인 곽충룡은 정선 땅을 두고 “냇물은 백 번이나 굽이쳐 흐르고 천층(千層) 절벽은 하늘을 가로질렀다”고 했는데, 그 수사(修辭)가 한치도 틀리지 않다.

    오대천 길에서는 줄곧 거대한 산자락을 헤집고 달리기 때문에 여느 강변 길에서처럼 장쾌한 기분을 맛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암괴석과 반석(盤石)이 어우러져 곳곳마다 비경을 이루고, 짙푸른 솔밭과 오롱조롱한 외딴집들이 점점이 이어지는 차창 밖 풍경은 향토적 서정과 산촌의 한가로운 정취를 짙게 풍긴다. 이처럼 때묻지 않은 산수와 향토색 짙은 풍정(風情)이야말로 오늘날 정선군의 가장 큰 매력이자 관광자원이다.

    정선군은 전체 면적이 서울시(605㎢)의 곱절이 넘는 1220㎢다. 그러나 경지면적은 전체의 9%에 지나지 않고 약 86%가 임야다. 그나마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얼마 안되고, 가파른 산비탈을 일궈 만든 밭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농업인구의 비율에 비해 농업기반은 약한 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정선군의 경지면적 중 약 66%는 해발 400m 이상의 고지대여서 배추와 무 등의 고랭지 채소, 황기와 당귀 같은 약초 생산지로서는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췄다고 한다.

    서울보다 두 배나 넓은 정선군이지만 인구는 4만9000여 명(지난 1월1일 현재)으로 서울의 관악구 신림본동과 신림1동을 합친 정도에 불과하다. 가장 인구가 많았던 1978년의 13만9000여 명에 비해 무려 65%나 줄어든 셈이다. 그런데 지금도 정선군에는 네 개의 읍과 다섯 개의 면, 그리고 출장소가 하나 있다. 하나의 군에 읍이 네 개나 있다면 군세(郡勢)가 대단할 터.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정선읍을 제외한 사북읍, 고한읍, 신동읍은 모두 탄광촌을 끼고 있다. 한때 44개에 달하던 광업소 가운데 지금까지 채탄작업을 계속하는 곳은 사북읍의 동원탄좌 한 곳뿐이다. 1988년 1만5000여 명에 이르렀던 광산노동자는 현재 877명으로, 한 해 651만t이던 석탄 생산량은 78만t으로 급감했다. 정선군의 가장 큰 산업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이처럼 1·2차산업의 기반이 매우 취약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선군의 미래는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인위적인 산업시설보다 더 큰 잠재가치를 지닌 천혜의 관광자원이 매우 풍부한 고장이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도 하나같이 “정선군이 살 길은 관광산업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정선군에서도 물 맑고 공기 깨끗한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관광자원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선 땅 곳곳을 유심히 들여다볼 적마다 갖게 되는 생각 중의 하나는 “세월이 흘러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정선 땅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정선군의 관광개발사업도 산을 깎고 물길을 막는 환경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기존의 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는 범위 안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추진되고 있는 듯하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군에는 해발 1000m 이상인 산이 22개나 솟아 있다. 그 산과 산 사이로는 정선아리랑의 구성진 가락만큼이나 유장한 남한강 물길이 쉼 없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높은 산자락과 긴 강줄기가 만나고 풀어지고 부딪치는 곳곳에는 어김없이 절경이 형성돼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북면 여량리의 아우라지다.

    아우라지는 ‘여러 갈래의 물길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지명이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정선 아우라지다. 북쪽의 구절리에서 흘러온 송천과 동쪽의 임계에서 흘러온 골지천이 이곳에서 만나 조양강(정선군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한강 본류)을 이룬다.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아우라지는 남한강 물길을 타고 서울까지 흘러가는 뗏목의 출발지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뗏목도 떼꾼도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쇠줄에 의지해 오락가락하는 나룻배와 강물 따라 흐르는 사연들뿐이다. 아우라지 나룻배는 요즘도 이쪽저쪽 강변을 오가며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여량리 주민들이 강 건너 유천리로 마실갈 때나 유천리 사람들이 기차 타러 아우라지역에 갈 때도 이 배를 타지만, 이곳 나루터의 예스런 정취와 아름다운 사연을 찾아나선 외지 손님들이 더 많다.

    아우라지를 찾는 관광객의 수가 크게 늘어난 뒤로는 정선아리랑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는 정선아리랑의 노랫말 중 하나가 아우라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덕택이기도 하다.

    70여 년 전, 서로 연모하는 사이였던 여량리의 한 처녀와 유천리의 총각이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싸리골에 동백(이른봄 몽실몽실한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의 열매)을 따러 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나루터에 와보니 간밤에 물이 불어 나룻배가 떠내려가고 없었다. 두 사람은 강 양편에 서서 안타까이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딱한 처지를 지켜보던 지유성(池有成·일명 지장구 아저씨)이라는 뱃사공이 그들의 애달픈 심정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서 노래불렀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사시사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오늘날 아우라지 나루의 야트막한 솔밭에는 이런 노랫말을 새긴 아우라지비가 있고, 그 앞쪽에는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댕기머리 처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정선아리랑 노랫말 속의 ‘올동백’을 따러 가기로 했던 바로 그 아우라지 처녀의 동상이다.

    정선아리랑은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의 하나로 꼽힌다. 수많은 아리랑 중에서도 가장 충실한 민요적 음악언어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데, 조선 개국 초에 고려 왕조의 충신들이 정선 땅에 은거했을 적에 불렀다는 ‘도원가곡(桃源歌曲)’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민요는 원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노랫말과 가락이 조금씩이라도 다르다. 정선아리랑 또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노랫말이 1000여 가지나 되고, 그 내용도 노랫말의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노랫말마다 적절한 비유와 대조로 세상사의 희로애락을 절묘하게 함축하고 있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정선군에서는 정선아리랑을 가장 중요한 문화관광상품의 하나로 육성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정선 5일장에 맞춰 정선아리랑 창극을 공연하는가 하면, 북면 여량리에 정선아리랑 전수관을 개관했다. 또한 정선읍내의 외곽도로변에는 61억원을 투자하여 정선아리랑 테마공원을 조성중이며, 60여 품목, 150종의 정선아리랑 캐릭터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정선아리랑연구소(소장·진용선)가 폐광지역인 신동읍 방제리의 옛 매화분교에 문을 연 아리랑학교는 해마다 2000∼3000명의 외국인들이 한국의 소리를 배우기 위해 찾는 명소가 됐다. 한국관광공사는 1998년부터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이 학교를 ‘우리문화 체험지’로 선정했다. 1999년에는 유네스코 한국본부에 의해 외국인을 위한 ‘한국방문 청년캠프 체험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끝수가 2·7인 날마다 들어서는 정선 5일장도 정선아리랑과 함께 정선군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이 장터에는 전국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황기와 각종 산나물, 콩, 메밀, 옥수수, 과일 등의 농산물을 들고 나온 촌로들이 많아서 옛 시골장터의 풍경과 인정이 살아 있다. 장터 한 쪽에는 올챙이국수(옥수수국수), 콧등치기국수(메밀국수), 살미적(메밀부침), 강냉이술 등을 파는 노점도 들어서 있어 장 구경하느라 출출해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처럼 ‘촌스런’ 분위기의 정선 5일장터를 기웃거리는 사람들 중에는 토박이보다 ‘정선오일장 관광열차’를 타고 온 외지인이 더 많다. 5일장을 한바퀴 둘러본 외지인들은 정선문화회관으로 발길을 옮겨 정선아리랑 창극공연을 관람하거나 아예 순환관광버스를 타고 화암동굴과 화암약수를 찾기도 한다.

    정선군 동면 화암리에 있는 화암동굴은 1934년 금광의 갱도를 굴착하던 중에 발견된 석회동굴로서 동양 최대의 종유벽과 종유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정선군에 의해 ‘금과 대자연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개발된, 국내 유일의 테마동굴로도 유명하다. 약 1.8km의 관람로를 따라가면 ‘역사의 장’ ‘금맥따라 365’ ‘동화의 나라’ ‘금의 세계’ ‘대자연의 신비’ 등 각기 다른 테마로 색다르게 연출된 공간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정선군은 46억원을 들여 화암동굴 주변에 4100여 평 규모의 체험형 금광촌을 조성할 계획이다. 연간 3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화암동굴과 연계해 추가로 조성될 금광촌에는 인부들의 초가와 돌집, 합숙소, 잡화점, 선술집, 대장간 등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한 ‘생활의 장’뿐만 아니라 사금채취, 금 원석을 부수는 수채, 화약고, 발파 체험장 등 금 캐는 과정의 일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는 동굴 내부만 한 바퀴 둘러본 뒤 타지역으로 떠나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좀더 오래 붙잡아둠으로써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사실 화암동굴이 위치한 정선군 동면에는 이렇다 할 역사유적지가 없다. 그러나 자연풍광만큼은 산천경개 좋은 정선 땅에서도 가장 수려한 곳 중 하나다. 정선아리랑 중에도 ‘정선의 구명(舊名)은 무릉도원이 아니냐/무릉도원은 어데 가고 산만 충충하네/일강릉 이춘천 삼원주라 하여도/놀기 좋고 살기 좋은 곳은 동면 화암이로다’라는 노랫말이 있을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특히 화암리 일대는 화암약수, 화표주, 거북바위, 몰운대, 광대곡 등의 명소와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 그리고 맑디맑은 물길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흔히 ‘정선소금강’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화암팔경의 수려한 풍광과 체험형 금광촌이 결합되면 적잖은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선군은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상품을 갖고 있지만, 사실 미래의 명암은 사북 폐광지역에 내년 3월 경 개장할 메인 카지노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10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로 영업을 시작한 고한읍의 스몰 카지노도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카지노가 도박중독자와 개인파산자들의 증가 등 적잖은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는 현실도 간과할 수는 없다.

    카지노 운영주체인 강원랜드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고한읍에 자리한 스몰 카지노가 개장한 뒤 주변 숙박업소와 주유소 매출은 50%, 음식점 손님은 20∼30%, 은행 수신고는 30%나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정선군에 납부한 지방세만도 2000년에는 48억8000만원, 2001년에는 상반기에만 71억4000만원에 달했다.

    그밖에도 강원도에 납부한 폐광지역개발기금은 2000년 58억원, 2001년 상반기에는 162억원에 이르고, 담배소비세와 슬롯머신 당첨금에 대한 주민세(2%) 등으로 지방세 수입은 훨씬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3월 대형 카지노와 테마파크, 호텔 등을 갖춘 메인 카지노가 준공되고, 이후 순차적으로 골프장, 스키장 등이 모두 개장하면 세수증대와 고용증가 등의 효과로 인해 지역경제 또한 훨씬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고한·사북 일대의 폐광지역이 명실상부한 가족종합휴양지로 거듭나면 카지노만 먼저 개장함으로써 발생한 여러 문제들도 자연스레 감소하리라는 전망이다.

    그래도 정선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우려 또한 적지 않은 듯하다. 세상 모든 곳에는 양지만큼의 음지가 있게 마련이지만, 정선군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넉넉한 인정만큼은 영원토록 변함없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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