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싹쓸이 채취에 씨 마르는 바닷모래

바다는 어업대란, 육지는 건설대란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04-27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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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여년간 서해에서 퍼올린 바닷모래는 63빌딩 700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어민들의 반발에 건설업계와 중앙정부는 “골재대란은 경제대란”이라는 논리로 맞받아친다. 수산업의 ‘쌀’을 보호할 것인가, 건설업의 ‘쌀’을 마르지 않게 할 것인가.
    싹쓸이 채취에 씨 마르는 바닷모래
    “투다다다…”3월31일 오전 11시경 충남 태안군청 소속 행정선 충남202호는 안흥항을 출발한 지 30여분 만에 육지에서 11km 떨어진 모래 채취 지역에 다다랐다. 23개 업체에 허가가 난 광구(鑛區)에선 바지선 한 척이 새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모래를 한창 퍼올리고 있었다.

    옹진군이 올해부터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하면서 이 지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닷모래 채취가 이뤄져온 곳이다. 그러나 이날로서 ‘합법 채취’도 막을 내리게 됐다. 태안군도 앞으로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하고, 3월 말까지 지난해 허가한 양만큼의 모래 채취를 끝마치도록 못박았기 때문이다.

    성난 민심을 의식한 듯 태안해경 경비정이 자못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조업중인 바지선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통해 바지선이 허가구역 경계선 바로 위에 서 있음이 확인됐다. 경비정의 조성일 선장(태안군청 해양수산과)은 “허가구역에 모래가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바지선들이 허가구역을 이탈하는 일이 잦다. 경계선을 넘어가는 순간 해경이 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선장은 뱃머리를 북쪽의 장안사퇴 쪽으로 돌렸다. 거대한 모래 퇴적지역인 장안사퇴는 썰물 때면 해수면 위로 떠오르는 바다의 숨은 섬이다. 꽃게, 넙치 등 해양생물의 서식지이자 산란지이기 때문에 어민들에게는 삶의 터전과도 같은 곳. 조 선장은 “모래가 풍부하고 수심이 낮은 장안사퇴 주변이 불법 채취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동승한 태안군청 건설과 허구복씨는 “군청은 어민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육지에서 40∼50km 떨어진 먼바다에서 골재용으로 적합한 모래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모래 채취로 벌어들이는 100억원 정도의 세수(稅收)는 빠듯한 군 재정에서 무시 못할 존재”라고 귀띔했다.



    12년간 63빌딩 710개 분량 퍼내

    바닷모래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옹진군과 태안군 등 바닷모래 채취 허가권을 쥔 지방자치단체들이 올해부터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건설업계에 ‘모래 비상’이 걸린 것. 모래는 레미콘 재료의 60%를 차지하기 때문에 모래 없이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옹진군에서 채취되는 바닷모래는 수도권 골재용 모래 수요의 7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바다에서 모래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1992년 이후 퍼올린 모래만 해도 총 2억8000만 루베(㎥). 이는 63빌딩 710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다. 강모래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바닷모래가 전체 모래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1992년 15%에 머물던 바닷모래의 비중은 2003년 33%로 크게 늘었다.

    옹진군은 해안선 유실, 해양생태계 파괴, 어획량 급감 등을 이유로 모래 채취를 중단시켰다. 지난 20여년 동안 옹진군 일대에서 퍼올린 모래만 해도 무려 2억3000만루베에 달한다. 이 같은 사정은 옹진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심이 얕고 모래 퇴적층이 발달한 서해에서 주로 모래 채취가 이뤄져왔기에 서해안을 끼고 있는 지자체들은 모래 채취로 인한 해양환경 파괴를 겪어왔다. 특히 최근까지 활발하게 모래 채취가 이뤄져온 충남 태안군과 전남 신안군, 진도군이 그 대표적인 지역이다.

    “겨울철 북서풍에 실려온 모래가 도로에 넘칠 정도로 쌓여서 차가 지나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지금은 모래가 없다시피 하잖아요. 2∼3년 전부터 이런 식으로 모래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4월1일 오전,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에서 만난 소원면 주민 권호선씨는 해변에서 20m 떨어진 해변도로를 가리켰다. 이맘때쯤이면 도로에 넘칠 정도로 쌓여있어야 할 모래는 없고 대신 여름 피서철을 대비해 사왔다는 ‘외부 모래’가 해변가 한쪽에 쌓여있다. 권씨는 만리포해수욕장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권씨와 함께 파도리, 의항리, 구름포 해수욕장 등을 돌았다. 이들 해수욕장은 바다 쪽으로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어 모래 유실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특히 파도리 해수욕장에는 해변 전체에 깔려있던 옥돌이 거의 다 쓸려 내려갔고, 구름포 해수욕장에는 2m 정도의 모래 절벽이 형성되어 있었다.

    태안군은 옹진군 다음으로 모래가 채취량이 많다. 1990년대 초반 연간 200만루베 정도이던 채취량은 2∼3년 전부터 급증해 지난해에는 1400만루베(옹진군은 1900만루베)가 건설현장으로 팔려나갔다.

    태안군 이원면의 학암포는 휑뎅그렁하다. 이 곳은 장안사퇴와 마주보고 있는 어촌마을이라 꽃게, 우럭, 까나리, 광어 등 어종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20여곳의 낚시가게와 횟집 등은 대부분 문이 굳게 잠겨 있고, 항구에는 40여척의 고깃배가 하릴없이 정박해 있다. 주민 박귀화씨는 “2∼3년 전부터 고기가 잡히지 않아 어부들도, 낚시꾼들도 찾아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지선이 장안사퇴 모래를 퍼담으면서 꽃게들이 산란할 데를 잃었어요. 모래를 퍼담으면서 수심을 흐려놓으니까 통발로도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요. 바닷속 돌멩이마다 온통 쇠녹물을 묻혀놔 플랑크톤이 살 수 없는데 물고기라고 살 방도가 있겠습니까. 작년에는 꽃게가 예년에 비해 10%밖에 안 잡혔다구요. 하루 두 번씩 출항하던 배가 이젠 다들 놀고 있습니다. 레미콘 때문에 어민은 굶어죽으라는 겁니까.”

    다음날 찾아간 전남 신안군 임자도 또한 사정이 비슷했다. 바닷모래 채취가 전면 금지된 지 2년이 지났지만, 한번 제 모습을 잃은 해수욕장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변가를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해송(海松)들은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어획량이 급감하자 어민들이 섬을 떠났고, 임자도에 있던 신안수협 북부출장소도 육지로 옮겨갔다. 전장포에서 만난 어민 김형신씨는 “젓새우의 씨가 말라 분통 터진다”고 했다.

    “임자도에서 6월에 잡은 젓새우로 담근 육젓이 전국 육젓 생산량의 70%를 차지했어요. 하루에 드럼통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잡아 올렸으니까. 하지만 3년 전부터 씨가 말랐어요. 섬과 가까운 바다에서 죄다 모래를 퍼나가서 요즘엔 5∼6시간씩 먼바다로 나가야 합니다. 군청에서 모래 채취를 금지하면 뭐합니까. 여전히 밤마다 몰래 와서 퍼가는데….”

    2001년 신안군이 해안 유실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해안선(1270km)의 17%에 달하는 75.7km(임자도는 14.5km)가 유실되거나 침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안군은 대규모 간척사업과 무분별한 모래채취 등으로 주변환경과 해류 흐름이 바뀌면서 해마다 평균 120cm씩 쌓이던 모래 흐름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이를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은 530억원으로 계산됐다. 모래 채취 허가를 내주고 올린 160억원 세수의 3배가 넘는 비용이다.

    어획량 85% 급감

    모래 채취가 이뤄지고 있는 바다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어획량 급감을 하소연한다. 어민들이 하소연하는 대표적 어종은 상업적 가치가 큰 꽃게. 꽃게는 모래에서 서식·산란하기 때문에 모래 채취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피해규모를 파악하긴 힘들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꽃게 어획량은 2002년에 비해 50% 감소했는데(1만8659t→9478t), 태안군의 꽃게 어획량은 72%나 감소해(1701t→484t) 바닷모래 채취가 꽃게잡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옹진군의 경우 모래 채취에 의한 어획량 피해가 구체적 연구를 통해 보고되고 있다. 옹진군에서 바닷모래 채취는 주로 덕적도 북서부 해역과 대이작도, 승봉도의 남서부 해역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한국골재협회에 따르면 1993~2001년 이 일대에서 채취된 모래량은 총 1억3500만루베. 인하대 한경남 교수(해양과학)가 이 일대 어획량 통계를 분석한 결과 바닷모래 채취 이후 어획량이 덕적도는 74%, 자월도는 85%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옹진군 전체 어획량이 38% 감소한 것에 비해 큰 폭이다.

    특히 덕적도 주변 바다는 1993~94년 옹진군 전체 갑각류 어획량의 80% 이상을 차지했는데, 1994년 모래를 채취하면서부터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 현재는 거의 잡히지 않고 있다. 자월도의 경우 1993년까지만 해도 김, 파래,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연간 8000t 수확했으나 지금은 생산량이 없다시피 하다. 한경남 교수는 “지구 온난화에 의한 수온 변화 때문이라면 기형생물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다. 또한 남획에 따른 것이라면 어획량이 갑자기 큰 폭으로 뚝 떨어져야 하는데 완만한 감소세를 보인다. 때문에 모래 채취가 어획량 급감의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닷모래 채취는 바다의 지형까지 왜곡시키고 있다. 지난해 여름 목포MBC는 신안군과 진도군 사이에 놓인 시아바다에 길이 80km에 달하는 깊은 웅덩이가 패어 있다는 사실을 보도해 이 일대 주민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태안에서는 1990년대 중반 모래 채취로 인해 생겨난 바닷속 웅덩이에 피서객이 빠져죽는 사건도 있었다.

    4월8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한경남 교수가 제시한 두 장의 사진은 왜곡된 바다지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덕적도 남서부 쪽 하벌천퇴 지역의 1987년 사진과 2001년 사진을 비교해보면 두꺼운 모래층이 홀쭉해진 것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모래가 빠져나간 지역에는 수심이 10~15m에 이르는 큰 웅덩이가 생겼다. 한 교수는 “깊은 웅덩이에는 물 흐름이 생기지 않아 물이 썩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싹쓸이 채취에 씨 마르는 바닷모래

    전북 신안군 임자도의 해변가에는 소나무들이 모래 유실로 뿌리를 드러낸 채 위태롭게 서 있다.

    갖은 수법을 다 동원한 불법 채취 또한 어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옹진과 태안에 앞서 전남 신안군과 진도군은 2003년부터 모래 채취 허가를 일절 내주지 않고 있지만, 모래 채취는 근절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이른 새벽 출항하거나 늦은 밤 회항할 때 한창 모래를 퍼올리고 있는 선박을 자주 발견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불법 채취업체 검거 실적은 태안해경이 80건, 목포해경이 50건에 이른다. 모래 채취 문제가 전국적 이슈로 떠올라 단속이 더욱 강화된 올해 들어서도 태안해경이 20건, 목포해경이 7건을 검거했다. 한편 지난 3월에는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모래 채취업자에게서 현금을 받아챙긴 혐의로 전남 진도군 소속 공무원 2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불법 채취는 주로 무허가 채취, 허가구역 이탈, 초과량 적재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벌어진다. 태안해경에 따르면 전남에서 채취허가를 내주지 않은 2003년 태안 앞바다까지 올라와 모래를 퍼가는 무허가 선박이 크게 늘었다. 또 보통 허가구역에는 퍼올릴 수 있는 모래가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단속이 뜸한 한밤중을 틈타 허가구역을 이탈하는 경우가 잦다.

    태안해경 유영식 경위는 “모래가 많은 장안사퇴 인근 바다에서는 1000t짜리 배 한 척을 가득 채우는 데 1∼2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불법 채취가 상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폭풍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악천후로 해경 경비정이 출항하지 않을 때는 불법 채취가 더욱 기승을 부려 종종 인명사고까지 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에는 신안군 신의면 하태도 앞바다에서 불법 채취하던 선박에 구멍이 나 뒤집히면서 9명의 선원이 해경에 구조된 일도 있었다.

    불법 모래 채취에 대한 처벌은 그야말로 ‘솜방망이’ 수준이다. 골재채취법은 위법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는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구속까지 하게 된 것도 최근 단속이 강화되면서부터다. 신안군의 경우 건당 평균 34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때문에 업자로서는 벌금을 감수하고서라도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는 모래 채취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유영식 경위는 “3번 적발되면 허가가 취소되지만, 업자들은 적발된 선박·선장과는 다시 계약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허가가 취소된 업체는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허가 단계에서부터 사후관리까지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행 제도로는 불가능한 형편이다. 먼저 바닷모래 채취가 20여년에 걸쳐 이뤄졌지만 그동안 환경영향평가는 단 한번도 실시된 적이 없다. 한국법제연구원 전재경 박사는 “현행 환경영향평가는 실효성이 없다”고 잘라말한다.

    단위구역당 채취면적이 25만㎡ 이상이거나 채취량이 50만루베 이상인 경우에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되어 있는데, ‘토막치기’, 즉 구역을 잘게 쪼개 허가를 받거나 채취량을 조금씩 나눠 허가받으면 환경영향평가 의무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토막치기는 업자들이 오래전부터 써온 방법이다.

    이에 어민들과 환경단체는 환경영향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골재업자들은 “허가는 1년 단위로 내주면서 1년이 넘게 걸리는 환경영향평가를 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반박한다. 한국골재협회 문정선 과장은 “특히 설명회 및 공청회를 통해 주민의견을 수렴하라는 조항은 모래 채취를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전재경 박사는 “선진국에서도 환경영향평가는 참고사항으로만 활용될 뿐”이라며 “골재채취법에 명시된 바를 적극 실현해 바닷모래 채취를 규제하는 게 더 낫다”고 충고한다. 현행 골재채취법은 ‘자연의 보전, 수질오염 방지, 기타 공익상 필요한 경우에 허가를 해서는 안 된다(제22조)’ ‘골재 채취를 계속할 경우 현저히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에는 채취 중지를 명할 수 있다(제30조)’고 규정하고 있다.

    바닷모래 채취 허가로 거둬들이는 공유수면점사용료의 50%를 종패 살포 및 치어방류 등 수산자원조성사업에 써야 한다는 규정 또한 무시되고 있다. 옹진군은 2000~2003년 모래 채취업자들로부터 382억원을 거둬들였으나 수산자원조성사업 지원금으로는 겨우 7.7%(29억원)만 지출했다. 이런 사정은 다른 지자체들도 마찬가지. 태안군 고경식 건설도시과장은 “공유수면점사용료로 거둬들이는 세수는 일반회계와 구별되어 있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옹진군에서 바닷모래 채취가 전면 중단된 지 한 달이 넘어서면서 레미콘업체들의 모래난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골재 수요량은 건설경기에 따라 증감하는데, 외환위기 당시 감소했다가 1999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02년에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지난해 골재용 모래 수요량은 1억3500만루베에 이른다.

    수도권 지역의 레미콘업체들은 출하량을 축소하고 있다. 레미콘업자들은 “강모래는 구경하기조차 힘들고, 수입모래는 국산보다 2배나 비쌀 뿐더러 그 양도 매우 적다”고 말한다. 이들은 그 동안 싼값에 안정적으로 공급될 뿐 아니라 오랜 세월 풍랑에 의해 단단해진 바닷모래를 선호해왔다.

    바닷모래만으로 레미콘을 생산해온 경기도 수원의 K업체는 현재 지난해보다 출하량을 40∼50% 줄인 상태다. 이 업체는 매일 1500루베의 바닷모래를 들여왔는데, 지난 3월부터는 바닷모래를 한 알갱이도 구하지 못해 부순모래(석산에서 나오는 자갈을 잘게 부수어 만든 모래)를 사오고 있다. 그나마 루베당 가격이 3000∼5000원 올랐다. 이 업체 최모 과장은 “바닷모래 말고는 다른 대책이 없어 정부가 강제로라도 채취허가 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레미콘업체 강모 대표는 “건설시공사와 레미콘값 인상안을 놓고 협상중”이라고 했다.

    순환골재 사용 늘려야

    바닷모래 말고는 대안이 없는 걸까. 모래 수입과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모래 채취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안이다.

    운송비가 가격의 70%를 차지하는 골재시장의 특성 때문에 수입 모래는 국산보다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현재 연간 10만루베 정도의 모래가 중국이나 북한에서 수입되고 있는데, 국산 모래보다 루베당 1만원 정도 비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모래 수입은 불가피하며 가격 차이는 점차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정부로부터 2009년까지 22만여평의 해안에서 바닷모래 채취 허가를 받은 (주)코리아무역은 “국산 모래보다 3000원 정도 비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골재협회 문정선 과장은 “바닷모래 채취 허가량이 줄어들면 국산 모래 가격이 인상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수입 모래도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7월 EEZ에서 골재 채취가 가능하도록 골재채취법을 개정했다. 이에 현재 군산 및 통영 앞 EEZ에서 3개 업체가 바닷모래를 채취하고 있으며, EEZ 허가에 대한 모래 채취업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이 현실적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난제가 놓여있다. 군산 앞 EEZ에서 모래 채취를 하고 있는 D업체 관계자는 “EEZ까지 가려면 목포항에서 15시간이나 걸리는 데다 수심이 깊어 모래를 채취하는 데 연안 앞바다보다 시간이 4배나 더 소요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모래 알갱이가 너무 잘아 건설용 골재로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천연모래에 대한 수요 전체를 대체할 순 없지만 그 사용량을 상당량 줄여줄 수 있는 대안이 바로 순환골재다. 순환골재란 폐(廢)콘크리트나 폐아스팔트 등 건설폐기물에서 모래와 자갈을 분리해 가공한 재활용 골재를 뜻한다.

    현재 순환골재 사용률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매일 12만t의 건설폐기물이 발생하는데, 그 대부분이 매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2002년 83%의 건설폐기물이 재활용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건설업체가 재활용업체에게 폐기물 처리를 위탁한 수치이지 실제로 새 건물을 짓는 데 건설폐기물이 재활용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건설기술원 이세현 박사는 “재활용업체는 60일 이내에 폐기물을 처분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건설현장에 팔리지 않은 폐기물을 매립지로 보내고 있다”며 “그나마 도로공사용 성토재로 쓰일 뿐이며 실제 재활용률은 10~20% 수준”이라고 말했다.

    순환골재가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순환골재로 만든 콘크리트를 이용해 건물을 지었다는 사례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건설사들은 알게 모르게 순환골재를 가져다 써도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쉬쉬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순환골재 활용 확대에 기대를 내비친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주)인선이엔티는 국내에서 순환골재 생산기술이 가장 뛰어난 폐기물 재활용업체다. 인선이엔티는 건설폐기물로부터 이물질과 시멘트 모르타르를 씻어내고 모래와 자갈을 분리해내는 기술로 특허를 따냈고, 폐기물업체로는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됐다. 이 같은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해 환경부로부터 순환골재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 업체가 생산한 순환골재를 활용해 일산 식산동에 지상 3층짜리 연구소 1개동을 짓고 있다. 현재 마무리 공사중인 이 연구소가 완공되면 우리나라에서 순환골재 건축구조물 공식 1호가 되는 셈이다. 이 건물은 벽, 기둥, 계단, 천장 등 모든 부분에 순환골재를 30% 사용했다. 이 회사 오종택 대표는 “각종 연구에서 순환골재가 건물 짓는 데 사용하기에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중국과 싱가포르 등과 기술이전 협약을 했다”고 밝혔다.

    2001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순환골재의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했더니 순환골재를 사용하는 것이 산림이나 강, 바다에서 골재를 캐다 쓰는 것보다 국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용이 4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폐기물 매립비용이 절감될 뿐 아니라 자연훼손 복구·보존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1960∼70년에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어 앞으로 건축폐기물과 골재 수요량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세현 박사는 “2020년까지 건설폐기물의 양이 20%씩 증가할 것이며 이를 모두 재활용한다면 전체 골재 수요량의 10~20%를 대체할 수 있다”며 “현재 250여개 순환골재 생산업체 중 건축구조물에 쓰이기 적합한 순환골재를 생산하는 업체는 10곳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순환골재협회 이풍삼 과장은 “내년부터 모든 공공(公共)공사에 순환골재 사용이 의무화됐다”면서 “정부는 민간 공사에까지 순환골재가 확대되도록 순환골재에 대한 인식 전환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개되는 바닷모래 채취

    ‘모래 채취 전면금지’라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초강력 처방은 곧 효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옹진군은 중앙정부의 압력에 밀려 올해 1600만루베의 바닷모래 채취를 다시 허가하기로 하고 4월8일부터 허가 신청을 접수하고 있다.

    자월도 골재채취반대대책위원회 허선규 사무국장은 “모래 채취 신청을 재개하자마자 군수는 무책임하게 중국으로 출장 가버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모래 채취로 피해를 받고 있는 자월도와 덕적도 주민들은 정부가 5월 종합대책을 발표할 때까지라도 허가를 보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획량이 급감해 주민 대다수가 어업은 거의 포기한 채 관광 서비스업에만 기대어 살고 있는데 연안환경이 무너지면 더 이상 살 길이 없다는 절박함이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허 국장은 “군청에 드러눕든, 청와대에 드러눕든 주민들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진도 주민들은 곧 개시될 항소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진도군이 2002년 모래 채취 허가신청을 접수하고도 허가를 내주지 않자 5개 업체가 진도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 지난 2월 1심에서 재판부는 “모래 채취가 해양생태계 파괴 등에 미친 영향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진도군이 불허가 처분을 내린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진도군이 항소심에서도 패소한다면 모래 채취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바닷모래 채취가 해양생태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가 없다면서 어민들의 채취 반대를 과민반응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서해에서 엄청난 바닷모래가 퍼올려졌고, 인근 연안에서는 모래가 유실되고 어획량이 급감했다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5월 정부가 내놓을 대책안에 서해안 꽃게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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