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의 원내 과반의석 확보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야당과 벌인 ‘게임의 승리’나 다름없다. 이제 새롭게 출발선상에 서기 위해서는 탄핵소추라는 덫에서 빠져나오는 일만 남았다.
- 2006년 6월 지방선거까지 2년여 남짓한 기간이 노 대통령에게 주어진 ‘평온한 시간’. 절치부심 속에 노 대통령이 그리고 있는 ‘국가운영의 밑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3월12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9일 만에 공개된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생활 모습.
당장은 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정지당했고 권좌에서 밀려 떨어질 수도 있는 벼랑 끝 상황을 맞았지만, 결국은 4·15 총선에서 안정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복권(復權)과 함께 집권 2기를 자신감 있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탄핵이라는 최대의 위기사태가 기사회생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이 같은 예측은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한 1당을 차지하면서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이미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2003년 1월23일 민주당 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 이른바 ‘반(半)통령’ 발언을 통해 이번 총선의 정치적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부여한 적이 있다.
“요즘 생각하면 내가 대통령 당선자인지, 반(半)통령 당선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다음 총선에서 못 이기면 나는 반통령이고,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반권(半權)을 잡은 것이다.”
지금은 세인의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발언이지만, 여기에는 임기 1년 만에 맞게 되는 국회의원선거 결과에 따라 남은 임기 4년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절박한 인식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57만여표(2.32%포인트) 차로 어렵게 대권을 쟁취했지만, 거대야당이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는 ‘이중권력’ 상태를 해소하지 않고는 노무현식 개혁의 추진과 완성이 어렵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임기 첫 해를 거대야당과의 쟁투로 지새워야 했고, 급기야 탄핵소추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다. 물론 노 대통령으로서는 얼마든지 야권과 타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16대 국회를 구시대 정치세력의 집합체로 규정하고 있었던 노 대통령은 타협의 미소를 보내기보다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사사건건 국회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반(反)의회주의자’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야권과 진검승부에 나섰던 것은 어찌 보면 집권 1년 만에 맞게 될 총선을 계기로 정치판 전체를 뒤엎는 것이야말로 노무현 개혁을 임기 내에 완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완전한 대통령 권력의 확보냐’ 아니면 ‘반통령으로 머물 것이냐’라는 의미를 부여했던 4·15 총선 결과는 반통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박정희 시대를 마감한 이후 한국의 민주화 흐름이 본격화된 시기인 1981년 3월 11대 총선 이후 6차례의 총선에서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구 여권의 보수 우파 정당은 단 한 차례도 놓치지 않고 1당을 차지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권력교체가 이뤄졌던 1997년 대선 이후 치러진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1당을 차지했던 것에 비춰볼 때, 이번 17대 총선 결과는 입법부에서도 20여년 만에 첫 ‘세력교체’가 이뤄졌다는 역사적 함의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노 대통령에게 있어 자신이 추구해온 사회 전반의 개혁 구상을 가속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총론적·대세적 관측이 구체적 현실로 나타나기까지는 여전히 험로가 남아있다.
당장 노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소추라는 ‘덫’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탄핵소추를 강행한 야권을 역(逆)탄핵함으로써 헌재로서는 ‘조속한 탄핵 기각’ 결정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총선 결과가 반드시 헌재의 판단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民心)을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과반선 확보로 인해 2003년 10월 노 대통령이 측근비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제안했던 ‘재신임’ 약속은 자연스럽게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돌발적인 탄핵사태 때문에 구체적인 재신임의 기준선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노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재신임과 연계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열린우리당의 과반선 확보로 재신임 문제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할 만하다.
정치적 기반이 안정화되면서 지난 1년간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국회와의 관계도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다.
임기 첫 해에 벌어졌던 극단적인 대결의 쟁점들이 총선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서 상당부분 해소됐고, 따라서 17대 국회와 보다 합리적인 협력관계를 형성하기가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분당(分黨) 배신론’을 펴면서 탄핵소추라는 비수를 꽂았던 민주당 역시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과의 공조가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공조로 인해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퇴출 위기상황을 맞은 민주당으로서는 한나라당과의 공조에 선뜻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17대 국회가 절대적인 의석수에 있어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는 양당제의 모양새를 갖췄지만,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다당제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노 대통령에게는 유리한 변수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중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정책적 연합 또는 합종연횡이 가능한 다당제 구도가 오히려 정국을 리드하기 용이한 구도다. 다소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할 때는 민노당이 보수정파인 한나라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고, 다소 보수적인 정책을 관철시키려 할 때는 한나라당의 협조를 얻어 민노당과 노동계의 반발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변수’가 노 대통령에게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노동계의 제도권 진입으로 인해 극한적인 장외투쟁이나 대립이 완화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으로서는 자칫하면 우파인 한나라당의 공격뿐 아니라, 비록 소수파지만 좌파의 비판도 동시에 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향후의 정치적 지형은 노 대통령이 헌재에서 기각결정을 받아내 복권(復權)된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노 대통령이 17대 국회의 개원 시점과 비슷한 5월 말이나 6월 초쯤 복권된다고 가정할 때 잔여 임기는 3년9개월 정도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신의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2년여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남은 임기는 길어야 2년6개월
이번 총선 이후의 전국 단위 선거로는 2006년 6월 지방선거가 있다. 그리고 지방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은 2007년 12월의 대선을 향해 유력한 대선 예비후보들을 중심으로 각개 약진하는 소용돌이의 시기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 대통령으로서도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후계구도 문제와 자신의 개혁정책이 차기 정권에서도 계승될 수 있도록 하는 마무리작업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제 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힘을 갖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짧게는 지방선거 이전까지 2년, 길어야 2007년 초까지 2년6개월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 기간은 노 대통령의 전체 임기 중 절반 정도가 된다. 특히 선거바람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껏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비교적 평온한’ 의미있는 시기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결국은 이 시기의 성과와 업적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노 대통령으로서는 복권 이후 권한정지로 인해 ‘잃어버린 수개월’의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서라도 빠른 속도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갈 길 바쁜 노 대통령이 곧바로 속도전에 돌입하기에는 모든 조건이 충족됐다고 할 수 없다. 비록 열린우리당이 1당을 차지했으나, 이는 ‘탄핵 후폭풍’의 반사적 이익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의 탄핵소추로 권한정지와 청와대 관저에 사실상 유폐생활을 하는 수모를 겪은 노 대통령이 복권이 되더라도 과연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다.
특히 헌재가 탄핵소추를 기각하면서도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탄핵에 찬성하고 4명이 탄핵에 반대하는 결과가 벌어질 경우에는 상황이 다시 복잡해진다. 비록 탄핵요건(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은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노무현 최적의 파트너 정동영
노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탄탄대로’만은 아닐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원내 1당이 된 열린우리당이 과연 노 대통령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인가의 문제도 변수다. 당장은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와 개혁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주는 전위대 역할을 하겠지만, 당내에서는 차기 대권을 향한 물밑 경쟁이 조금씩 치열해질 것이다.
과거처럼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는 구조도 사라졌기 때문에 차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열린우리당 내에서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한다고 해도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약화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이 탄핵 문제 때문에 입당도 하지 못한 데다 권한정지 기간 중에 치르는 선거여서 총선 승리에 노 대통령의 공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문성근씨의 ‘잡탕’ 발언은 개혁당 출신들이 비례대표 순위에서 많이 밀린 데 대한 감정의 표현으로 안다. 총선 뒤에 당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대통령이 당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총선 뒤에는 정동영 의장이나 김근태 원내대표가 노 대통령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청와대측이 이번 총선 기간 중에 노인폄훼발언으로 당내의 사퇴요구에 직면했던 정동영 의장을 끝까지 지지하면서 ‘정동영 체제’ 유지에 집착한 것도 주요정책에서 제각기 딴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열린우리당과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이 과거처럼 여당 총재로서 당을 장악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결국 당내에 확고한 대리체제가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2002년 대선 때부터 노 대통령에 대한 충실한 지지자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던 정 의장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노 대통령의 가장 적절한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을 통해 노 대통령은 집권 2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았지만,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은 결국 노 대통령의 선택지를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강공 드라이브보다는 전체 정치권과의 협력정치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듯하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에서 노 대통령은 일단 ‘껴안기’를 통해 정국을 이끌어가려 할 것이라는 게 청와대 인사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비록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과거처럼 날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야당의 동의를 얻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확실한 정국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는 야당을 자극하기보다 껴안는 ‘상생(相生)정치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이란 얘기다.
‘한나라당 입당’은 뼈 있는 농담
1차적 조치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결과 나타난 정치권과 재계의 전비(前非)를 대사면하는 화합조치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권력 운용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책임총리제가 가장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완화를 전제로 국회 다수정파에 총리 지명권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정치권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반드시 책임총리제를 실시할 것이다”고 장담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바라는 것은 여야의 의석수 분포를 떠나 ‘합리적인 세력’이 지배하는 국회이며, 그런 조건만 충족된다면 안정적인 개혁정책의 추진을 위해 권력을 나누는 데에 결코 인색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총선에서 영남지역을 석권하면서 2당의 위치를 차지한 한나라당의 경우 공천과정에서 구시대 중진 정치인들이 대부분 퇴출된 만큼 당이 합리적인 신진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상황으로 재편된다면 협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농담이긴 하지만,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노 대통령이 총선 후에 한나라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한 얘기도 그냥 흘려 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늘 의표를 찌르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춰볼 때 2002년 대선 당시 한때 제안했던 것처럼 법무부 장관과 같은 핵심 장관직에 야당 쪽 인사를 기용하는 파격적인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탄핵소추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개헌저지선(100석)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개헌저지선을 확보하지 못하면 집권 2기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따라서 국무총리는 물론 상당수의 장관직을 야권에 넘겨주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권력 운용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 대통령정무수석실이 충남 태안군의 안면도에서 가졌던 1박2일간의 합숙토론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안면도 합숙토론에서는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의 개선문제가 주요 의제였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소선거구제+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1대1 혼합형 ▲도시지역은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하고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적용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 등 다양한 대안이 검토됐고, 각각의 방안에 따른 각 정당의 의석점유비율에 대한 세밀한 시뮬레이션 작업도 이뤄졌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당시 합숙토론에서 ‘DJP 공동정권’의 권력분점 양태에 대한 벤치마킹도 이뤄졌다는 점이다. DJP 공동정권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이 권력 반분 합의에 따라 자민련에 국무총리직을 넘겨줬지만, 실제 내각 구성에서는 18개 부처 가운데 자민련 몫은 3분의 1 정도인 6~7개 정도였던 만큼 총선 이후 국회 다수정파와 공동내각을 구성할 경우 그때의 전례를 따르면 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당시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거나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경우 정당명부 비례대표의 수를 절반으로 늘리는 방안을 야권이 받아들인다면 총선 이후 다수정파에 총리 지명권과 6~7명의 각료를 넘겨줄 수 있다는 구체적인 권력분점안을 구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이 대선 승리 직후 밝힌 “집권 2기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형태로 운영하겠다”는 구상과 맞물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여권이 절대적인 소수파로 궁지에 몰려 있던 지난해 12월 당시의 상황과 안정의석을 확보한 총선 이후의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진 만큼 ‘안면도 구상’은 사실상 폐기됐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2월24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가진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에서 총선 후 다수당의 내각참여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 추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불리한 가정을 갖고 얘기하면 총선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며 확답을 피했다.
그에 앞서 노 대통령은 2003년 8월, 프랑스식 권력분점은 우리 국민이 수용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여야간 등거리’를 유지하는 미국식 대통령제 운영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청와대의 한 고위인사는 개표가 진행중이던 지난 15일 밤 전화통화에서 “총리직은 오히려 철저하게 내각 운영능력을 바탕으로 해 실무형을 기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차기 내각을 구성하는 데 융통성을 발휘할 것이다”라는 의미 있는 얘기를 했다. 야당과 권력을 반분하는 적극적인 형태의 권력분점은 어렵겠지만, 내각에 야당 인사가 일부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의중에 밝은 정부 고위인사도 “노 대통령이 야당 의원과의 개별적인 접촉에도 나설 것이다. 이전까지는 의원 빼가기 같은 오해를 받을까 우려해 개별 접촉은 피했다. 그러나 안정의석을 확보한 만큼 정책적인 협조를 구하기 위한 개별 접촉은 이제 수시로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야당 인사의 입각 가능성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청와대 내에서는 현재의 고건 대통령권한대행 체제가 이후의 권력 운영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권한대행 체제가 대통령의 공백상태에서 중요 국정과제의 지연이나 외교안보 사안의 결정 지연 등의 문제점을 낳고 있지만, 일상적인 국정의 관리자 역할은 모두 총리에게 넘기고 대통령은 국가적 대사의 중요 결정권만 행사하는 운영방식이 상당한 효율성을 갖고 있더라는 문제 제기다.
이와 별개로 노 대통령의 집권 2기 운영에 있어 기본적인 변수가 될 안정적인 대여 및 대야관계 구축 여부는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와 탄핵 철회 문제가 2장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공산이 크다.
6월 이전으로 예정돼 있는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의 경우 한나라당보다는 열린우리당 내의 개혁성향 의원들에 의해 철회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권의 대미관계를 가늠케 할 파병문제가 여당 내에서 제기될 경우 여권의 분열 또는 대미관계의 결정적 손상이라는 선택지를 놓고 노 대통령이 어떻게 이를 뛰어넘을 것인가가 향후 여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동시에 여권이 적극 제기할 탄핵 철회 문제는 향후 대야관계의 전도를 가늠케 해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집권 2기 내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사안은 결국 경제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특히 재계와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 떠도는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민노당’ 연합을 통해 좌파독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는 경제문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진정한 임기의 출발선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4월11일 노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등산을 하면서 “좌우 이념문제는 현실 정치에 있어서는 수렴되고 있다. 좌우 이념대결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지배구조 경쟁의 시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진보적 색채를 전면에 내세운 정책 추진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사회분야에서는 국가보안법 개정 또는 폐지문제, 친일 진상규명문제, 해방 이후 좌우 대립과정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사건 등의 피해보상문제 등 이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청와대측은 “이들 사안이 최우선 과제는 아니다. 정부 정책추진에서 북핵문제의 해결과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 이후로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다”고 설명했다.
아무튼 노 대통령으로서는 스스로 세 차례의 패배를 겪었던 지역구도와의 전쟁에서 결국은 국민통합을 완성해내는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고 반통령의 굴레를 벗은 ‘대통령’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임기를 시작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