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최성규 미스터리’ 베일 벗을 수 있나

‘도피배후’ 수사, 미국측 협조에 달렸다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4-04-27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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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규선 게이트’의 핵심인물 최성규 전 총경에 대한 검찰수사가 지지부진하다. 뇌물수수, 청부수사 등 그의 개인비리는 밝혀졌다. 그러나 그가 신출귀몰할 정도로 희대의 해외도피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경위와 도피배후를 둘러싼 의혹, 최규선씨에 대한 밀항권유설의 실체 등은 여전히 ‘안갯속’을 헤맨다. ‘최성규 미스터리’는 제대로 밝혀질 것인가.
    ‘최성규 미스터리’ 베일 벗을 수 있나

    최규선씨에게 청와대의 밀항권유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최성규 전 총경(왼쪽).

    ‘돌아온 도망자’ 최성규(崔成奎·54) 전 총경(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이 4월7일 마침내 구속기소됐다. 최규선씨의 부탁으로 각종 청부수사를 하고 이권에 개입해 도움을 준 대가로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다.

    3월18일 국내로 강제송환된 직후부터 최 전 총경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채동욱 부장검사)에 따르면 그의 공소사실 요지는 ▲2001년 1월 최규선씨로부터 한국타이거풀스가 체육복표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주관기관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을 내사하는 것처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부하직원들을 공단에 보내 수사할 듯 위세를 가하고 ▲같은달 최씨가 지목한 C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한 뒤 최씨의 지인인 S건설 손모 사장과의 합의를 종용한 것이다.

    또한 ▲2001년 2월 최씨에게서 당시 특수수사과가 수사중이던 서울 강남 C병원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과 관련해 이 병원 의사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받고 불구속 방침을 알려주는 등의 대가로 2001년 3~4월 최씨로부터 2회에 걸쳐 현금 1억원과 C병원 벤처기업 주식 4만주(2000만원 상당)를 받은 혐의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기소 범죄사실 외에도 최 전 총경의 또 다른 범죄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그것 역시 개인비리에 해당할 뿐이다. 기소 범죄사실만으로도 최 전 총경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중한 법정형을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최 전 총경 개인비리 추가확인



    주지하듯, ‘최규선 게이트’는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 송재빈 전 한국타이거풀스 대표 등이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각종 이권에 개입해 뇌물을 주고받은 권력형 비리사건이다. 그러나 DJ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이 사건의 핵심 의혹은 어디까지나 최규선씨에 대한 청와대 밀항권유설의 실체, 최 전 총경의 해외도피 배후 여부다. 따라서 검찰수사의 본령은 정작 이제부터인 셈이다.

    2002년 4월19일 서울지법의 영장실질심사 당시 최규선씨는 자신이 구속되기 전 청와대측이 자신에게 밀항을 권유했다는 ‘폭탄 진술’을 했다. 최씨가 청와대의 ‘밀명’을 전한 ‘메신저’로 지목한 사람이 바로 최 전 총경. 그러나 최 전 총경은 ‘최규선 게이트’가 파문을 일으킨 직후인 2002년 4월14일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을 경유해 4월19일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10개월 만인 2003년 2월24일 LA 현지에서 검거됐다.

    그는 앞서 언급한 의혹들의 실체를 속속들이 아는 유일한 증인으로 세간의 관심대상으로 떠올랐지만, 도피로 인해 모든 의혹은 지난 2년 동안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밀항권유설과 관련한 최규선씨 진술의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란 점에서 허위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밀항권유설’ 실체, 정황증거 부족

    검찰은 4월7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밀항권유설 및 최 전 총경의 해외도피 배후 의혹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방침임을 밝혔다. 하지만 그간 검찰의 더딘 행보를 보면 과연 ‘최성규 미스터리’를 철저히 밝혀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전혀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선 검찰이 최 전 총경 강제송환 이후 밀항권유설과 관련해 소환한 참고인들의 입에서 새로운 정황증거가 될 만한 진술이 나오지 않은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 전 총경은 도피하기 이틀 전인 2002년 4월12일 최규선씨, 최씨의 이종사촌형 이모씨,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송재빈 전 한국타이거풀스 대표 등과 함께 서울 강남의 O호텔에서 검찰 소환에 대비한 대책회의를 가진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 3월20일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4월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규선씨와는 예전부터 가깝게 지냈지만, 최 전 총경의 도피과정이나 그후 행적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4월12일의 만남 때도 나는 먼저 자리를 떠서 ‘밀항’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그 뒤 그 자리에서 밀항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도 역시 모른다. 다만 나는 그날의 만남 이후 최규선씨의 전언으로만 ‘밀항’을 권유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머리 좀 식히려 외국에 나갔다 총선 이후에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규선 게이트’ 당시 최 전 총경에게 최규선씨의 밀항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이만영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역시 “최 전 총경은 2002년 4월11일 당시 사정비서관이던 N씨에게 보고를 하러 왔다 그가 자리에 없어 내 방에 들러 3분 정도 있었는데 N비서관이 옆방에 있다고 해서 즉시 보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직 검찰의 소환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는 2002년 4월 당시 최규선씨가 밀항권유설의 진원지로 자신을 지목하자 검찰에서 관련사실을 완강히 부인한 바 있다.

    이들의 이 같은 답변은 최 전 총경이 도피했을 당시 검찰수사와 관련해서 했던 진술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밀항권유설의 실체를 밝히는 데 있어 검찰의 가장 큰 딜레마는 이처럼 관련자들의 진술이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모두 엇갈리며 각기 따로 노는 데 있다. 특히 무엇보다도 최 전 총경이 밀항권유설의 실체를 완강히 부인해 수사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는 당초 “밀항권유는 없었다”에서 “밀항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최규선씨가 먼저 해외로 도피하겠다고 해서 나는 ‘당신은 출국금지돼 있어 못 나간다. 나가려면 밀항밖에 없다’고 말했을 뿐 청와대의 지시를 받거나 밀항을 권유한 적은 없다”로 진술이 바뀌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LA 음악학원 인수자금 출처는?

    밀항권유설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최 전 총경 본인의 해외도피 배후 의혹과 관련해서도 아직 뚜렷한 단서 하나 없다. 그는 2002년 4월20일 미국 뉴욕 JFK공항에 대기중이던 한국영사관 직원과 취재진 등을 감쪽같이 따돌리고 일반 통로가 아닌 별도 통로로 공항을 빠져나가 도피배후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왔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는 누군가의 조력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최 전 총경은 이번 검찰수사에서 “미국 당국이 별도 통로로 나가라고 해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식으로 도피배후의 존재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만일 그런 ‘샛길 통과’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면 그는 왜 하필이면 현지 경찰주재관 등에 의해 체포될 위험부담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큰 미국을 택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최 전 총경의 도피 정황을 비교적 잘 알 만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당시 그의 직속상관이던 이모 전 경찰청 수사국장이다. 그는 4월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규선 게이트’ 당시 경찰이 최 전 총경의 도피를 방조하고 비호한다는 의혹을 무척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때 해외에서 그를 체포하지 못한 것은 체포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탓도 크다”며 “이번에 드러난 최 전 총경의 개인비리도 내가 수사국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저지른 일이어서 나와는 무관하다. 경찰조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최 전 총경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이번 검찰수사에서 낱낱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4월8일 현재까지 이 전 국장에 대한 검찰의 참고인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 전 총경의 도피 의혹과 관련, 검찰이 그의 부인 정모(52)씨를 특히 주목해야 할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최 전 총경이 미국으로 도피한 이후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남편의 도피행각을 도운 정씨는 2003년 5월경부터 미국 LA 한인타운 인근에 대리인을 내세워 음악학원을 운영해왔다. 당초 한국교포가 운영했던 이 학원의 명칭은 ‘헬렌 김 음악학원’이었지만 정씨가 인수한 뒤 ‘소리나 뮤직아카데미’로 바뀌었다. 정씨가 한인타운 인근 고급 주택가에 주택을 구입했었다는 소문도 있다.

    정씨가 학원을 운영하게 된 경위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무렵부터 최 전 총경의 강제송환을 피하기 위한 정치망명신청 이후의 ‘장기전’에 대비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변호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방문비자(B-2)만으로 미국에 입국했더라도 10만~20만달러를 투자해 현지에 사업체를 창업 또는 매입하면 해당사업을 하는 동안 장기체류가 가능한 소액투자비자(E-2)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최 전 총경의 송환이 이미 이뤄졌고 그가 구속기소된 지금까지도 정씨가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의문이다. 정씨는 남편의 도피의혹과 관련해 가장 많은 비밀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정씨는 최 전 총경의 송환이 결정된 지난 2월 이후 학원을 매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 귀국하지 않았다.

    권리금만 70만달러에 이른다는 음악학원의 인수자금 출처 또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LA 현지에서 선임한 미국변호사에 대한 수임료와 도피 당시의 생활비 등도 마찬가지다. 현재 소유권이 부인 정씨의 명의로 돼 있는 최 전 총경의 집 2채(서울 동작구 상도3동 건평 200평짜리 다세대주택,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H아파트 70평형)는 물론 그의 딸(30)이 사는 집(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J아파트) 역시 등기부등본상 처분한 흔적은 없다.

    추가기소 동의요청, 한국 최초 사례

    검찰은 4월7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최 전 총경의 미국 체류 당시,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25만달러가 송금됐고 그중 9만달러가 정씨의 음악학원 인수에 들어갔으며, 그 출처는 주유소 지분, 전답, 주택 등을 처분해 한국에 있는 최 전 총경의 딸이 여러 차례로 나눠 보낸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는 ‘70만달러+α(음악학원 권리금+변호사 비용과 생활비 등)’라는 거액엔 훨씬 못미치는 액수다. 따라서 한국 또는 LA 현지에서 범죄인 신분인 최 전 총경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제3의 조력자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검찰은 현재 최 전 총경의 부인 정씨의 귀국시 입국통보조치가 되도록 조치해둔 상태이긴 하지만, 좀더 적극적인 입국 종용이 아쉽다.

    검찰이 추가로 밝혀낸 최 전 총경의 범죄사실을 추가기소하기 위한 미국측의 동의가 이뤄질지도 관심거리다. 한·미범죄인인도조약상 ‘특정성의 원칙’에 의거, 인도사유가 된 범죄(1억2000만원 뇌물수수) 이외의 범죄사실에 대해 기소하려면 최 전 총경을 인도해준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이 외국에 동의를 요청하는 최초의 사례가 된다. 검찰에 따르면 2003년 7월 한국이 일본에 사체유기죄로 인도해준 이모씨에 대해 살인·절도 등 추가범죄가 발견돼 기소에 동의해준 예는 있다.

    검찰은 ‘추가혐의’에 대해 최 전 총경이 기소 범죄사실과는 별건으로 여러 명의 인사로부터 수억원대의 현금과 주식 등 청탁성 금품을 수수한 혐의라고 시사했을 뿐 아직 그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최 전 총경의 추가 범죄사실과 관련해 미국측 동의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정성의 원칙’은 인도청구국(한국)이 인도된 범죄인의 인권을 침해할 정도의 형벌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의 조항일 뿐이어서 피청구국(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명분은 별달리 없기 때문이다.

    도피배후 수사, 미궁에 빠질 수도

    이와 달리, 검찰이 최 전 총경의 도피 당시 미국 특별입국 경위와 관련해 미 이민귀화국(INS) 등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키로 한 부분은 현재로선 그 결과를 점치기 어렵다.

    법무부 검찰4과 신경식 과장은 4월10일 “(형사사법공조 요청을 위해 미국측에 보낼 수사자료와 관련해) 아직 검찰 쪽에서 연락이 오진 않았다”며 “미국과의 형사사법공조는 사실상 범죄수사를 위한 것이지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것은 아니다. 시일도 많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우리 쪽에서 요청자료의 구성을 얼마나 적합하고 설득력 있게 하느냐, 그리고 미국측이 자국의 기준에 비춰볼 때 도움을 줘도 될 것인가 하는 판단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검찰과 법무부가 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특별입국 경위는 매우 민감한 사안인 만큼 경우에 따라선 미국측이 ‘기밀’로 분류돼 있다며 협조해주지 않을 가능성 또한 전혀 없지는 않다. 만에 하나 미국측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도피경위 및 배후 수사는 최 전 총경의 ‘입’에 상당부분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최 전 총경이 강제송환되기 전부터 국내의 변호인인 임모 변호사를 통해 자신에게 뇌물을 공여한 최규선씨를 수차례 접견케 한 뒤 그로부터 뇌물공여 사실을 번복하는 취지의 진술서를 받아내고 이를 미국 재판부에 제출해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등 검찰수사에 대비해 치밀한 준비를 해온 전력으로 보아 그의 입이 쉽사리 열릴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밀항권유설과 관련, 최규선씨가 실제로 해외로 도피하지는 않은 까닭에 최 전 총경은 법리적으로 미수범에 그친다. 따라서 그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실익’이 없는 데도 굳이 검찰이 ‘국민적 의혹’ 해소 차원에서 장시간을 할애해가며 진실을 철저히 밝혀낼지도 의문이다.

    결국 크게 보면 ‘최성규 미스터리’의 진실규명은 미국측의 협조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자칫 도피배후 의혹 수사가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월20일로 최 전 총경이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유유히 사라진지 만 2년이 됐다. 예전의 검찰과 상당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받는 ‘송광수 검찰’이 얼마나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펼쳐보일지 그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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