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십년간 변함 없이 지켜온 ‘1번’을 한나라당은 내주게 됐다. 정치권에서 완전한 의미의 ‘주류 교체’가 이뤄진 셈이다. 대통령 직무 정지상태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획득한 것이어서 정치권은 더욱 극적 전환을 맞게 됐다. 과반 여당의 탄생에 야당은 긴장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전경(위).<br>아래 왼쪽부터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천막당사 마당.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예상하는 TV 출구조사 결과가 막 나오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유승민 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에게 “소감이 어때요?”라고 물었다. 유 전 소장은 “얼떨떨하네요. 소수야당은 처음 경험이라서…”라고 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 “한나라당 의원들은 ‘투쟁’ 같은 거 잘 못하잖아요. 유시민 의원 같은 ‘선수’도 없고. 앞으로 국회에서 소수야당 생활을 어떻게 할지….”
한나라당의 1차적 반응은 개헌저지선 확보에 따른 ‘안도감’이었지만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원내 1당의 힘’을 상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의원 수는 16명 감소했다. 국고보조금도 줄고, 당 몫으로 배정된 국회 전문위원들도 보따리를 싸야 하고, 사무처는 ‘다운사이징’이 될 판이다. “소수파로의 전락은 한나라당엔 일종의 충격!” 전여옥 대변인이 솔직히 털어놓는 말이다. 4월15일 밤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에서 만난 전 대변인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투표 후 몇몇 의원들이 내게 전화를 해왔어요. 비주류가 된다는 사실에 쇼크를 받은 듯했습니다. 최근에 입당해서 늘 1등만 해온 한나라당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그들의 감정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만난 윤여준 선대위 부본부장은 출구조사에서 100석 안팎의 결과가 나오자 “그 정도면 잘 한 거지”라면서도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실망감에서 만족감으로
그러나 다음날 오전 최종 집계에서 한나라당은 출구조사와 비교했을 때 10~20석의 의석을 더 얻어 121석을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지지율에선 열린우리당과 2%포인트대의 접전을 벌인 것으로 나왔다. 썩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지만 한나라당 천막당사는 고무되는 분위기였다. 17대 국회를 최소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엇비슷한 양강 구도로 만드는 데는 성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현 국회법대로라면 원내총무회담에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만 참여하게 되어 양당이 실질적으로 입법부를 주도하게 된다.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얻었지만 선거를 지휘한 정동영 의장은 마음이 무겁다. ‘노인 폄훼발언’은 그에게 아물기 힘든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총선을 통해 가장 급부상한 정치인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꼽는다. 한나라당 여성 당직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박 대표의 별명은 ‘소녀가장’이다. “당선된 국회의원 전원이 박 대표에게 신세를 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전 대변인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박 대표에 대해 “모두가 두려워 할 때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을 주었다”면서 “감동적 인간”이라고 극찬했다.
윤여준 선대위 부본부장 역시 한나라당 121석 획득의 숨은 공로자로 통한다. “이런 선거는 처음이에요. 오직 박근혜라는 단일상품, 박근혜라는 단일 메시지, 박근혜라는 단일 전략으로 선거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50석으로 예상되던 의석이 수 주일만에 두 배 이상 불어났으니 대성공이었습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의 가스가 ‘차떼기’로 압력을 받았고, ‘탄핵가결’로 불이 당겨져 폭발했는데 박 대표가 잿더미에서 이만큼 일궈낸 것이죠. 국민들은 박근혜 대표니까 ‘참회한다’ ‘앞으로 잘 하겠다’는 말을 믿어준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더 지켜보겠다’는 뜻에서 원내1당은 안 만들어준 것이겠죠.”(윤여준)
박 대표와 윤 부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 선거전략은 적중한 부분이 많았다. 참회의 108배는 유권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국회의원의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개혁 공약, 경제성장과 교육 경쟁력 강화로 특화시킨 비전 제시, 부재자투표 직전의 ‘사병 월급 20만원 인상’ 신문광고, 시베리아철도연결-자유시 건설 등 대북 자세 전환, 강원도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 등은 총선에서 유효타를 날렸다는 자체 분석이다.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들은 박 대표의 지원유세에 동참하면서 박풍의 위력을 실감한 장본인들이다. 일부 당직자들은 “당 지지율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은 대표를 갖게 된 것이 얼마만이냐”고 말한다. 2002년 대선 당시의 이회창 후보나 최병렬 전 대표는 개인 지지율이 한나라당 지지율보다 낮았다.
현재로선 박 대표가 2006년 6월까지 2년 임기의 당 대표가 되는 것에 의문을 품는 한나라당 인사는 거의 없다. 박 대표라는 확고한 구심점이 생김으로써 한나라당은 의석 수는 줄었지만 결속력은 훨씬 더 커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열린우리당으로서도 과반 의석을 확보한 마당에 굳이 의원영입 등으로 한나라당을 자극할 이유는 별로 없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동에 따른 소규모 정계개편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게 됐다.
박 대표는 보수파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이미지 정치’에 정성을 쏟는다. 경제우선의 민생정치, 비전, 싸움 않는 정치, 흑색선전 않는 정치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으려 한다. 이 점은 향후 대여 관계에서도 변화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계파 등 당내 인맥이 아닌 ‘대중적 인기’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박 대표 본인은 자신의 상품성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여권과의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은 민생, 안보 등의 분야에서 사안별로 열린우리당과 적극 공조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5월까진 장외 氣싸움
실제로 총선 기간 박 대표는 ‘스위스 비밀계좌’ 의혹을 제기한 열린우리당 허인회 후보에 대해선 법적 대응 의사를 밝히며 정면으로 맞섰지만 그 이외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한 상대 정치인에 대해선 맞대응을 하지 않았다. “요즘 욕을 너무 많이 얻어먹고 있다”는 발언 정도였다. 한나라당이 편파적이라고 공세를 펴온 방송 등 일부 언론에 대해서도 박 대표 본인은 함구로 일관했다.
16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5월29일까지 국회가 다시 소집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기간 동안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장외 ‘기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일단 양당간의 샅바싸움은 ‘탄핵철회’에서 시작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 획득의 기세를 몰아 총선 직후의 이슈를 선점한 모양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4월16일 박근혜 대표에게 “16대 국회 임기 중 탄핵철회를 논의하기 위해 만나자”고 제의했다. 10석을 확보해 원내 3당이 된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도 “탄핵철회를 위한 3당 대표 회담을 하자”고 제의했다. 총선 하루만에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이 ‘정책공조’를 벌인 셈이다.
한나라당 박 대표는 “사법부에서 진행중인 일에 국회가 간섭해선 안 된다”며 탄핵문제로 만날 일이 없다고 일축했다. 총선 때의 탄핵철회 공방의 연장선이다.
열린우리당의 ‘탄핵철회 압박 수위’가 어느 정도에서 결정될지가 관심거리다. 일단 탄핵철회 공방의 불씨를 17대 개원 때까지 살려두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6월1일 17대 국회가 개원하면 열린우리당은 민노당과 함께 국회 차원에서 본격적인 탄핵철회 공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이 경우에도 ‘무대응’으로 비껴간다는 전략을 세워둔 듯하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이 어떤 방식으로 탄핵철회 모양새를 갖추려하는지 모르겠다. 16대 국회가 가결한 탄핵안을 17대 국회가 철회하는 것도 이상하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 가결된 안은 같은 비율의 국회의원이 찬성해야 철회되는 것 아니냐”고 난감해했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대해 탄핵철회 압박을 가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우회적 압박의 효과와 함께 한나라당 소속 소추위원의 법적 공세를 무디게 하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일부에선 여권의 과반 의석 확보로 국민심판이 내려진 만큼 소추위원도 스스로 힘이 빠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한’ 맺힌 문광위원장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만에 하나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할 경우 정국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으로선 이런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입장.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 뒤 비로소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개혁 작업을 본격 추진할 수 있다. 헌번재판소가 탄핵심리를 벌이고 있는 한 권력의 뒷문을 열어 둔 모양이 되므로 열린우리당은 이런 불편한 상황을 빨리 해소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노 대통령 탄핵심판 소추위원 대리인인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은 “총선결과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했지만 이는 헌재 심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소추위원은 끝까지 성실히 탄핵심판에 응할 것이다. 박근혜 대표와는 만나지 못했지만 한나라당 지도부에 이런 입장을 전달했고 그들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는 별도로 노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 재신임 발언은 정치적 해결이 안된 사안이다. 한나라당이 이들 문제를 이슈화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으나 박 대표가 국정발목잡기를 하지 않겠다며 상생정치를 선언한 마당이어서 한나라당도 과거의 일에 무작정 공세의 초점을 맞추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여준 부 본부장은 “박 대표에겐 외길밖에 없다. 총선 때 내놓은 공약들을 실천하며 개혁과 민생행보를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 민주당 조순형 전 대표,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왼쪽부터)은 낙선해 정치생명의 위기를 맞았다.
한나라당 고홍길 의원 측은 “대선 당시 방송의 김대업 보도는 이회창 후보에게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문광위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지만 의사진행권이 있는 위원장이 회의개최를 하지 않음으로써 문광위를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KBS 시청료 분리징수도 이 같은 이유로 무산됐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방송에 대한 견제권을 갖기 위해선 반드시 문광위원장직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순순히 양보할 가능성은 적다. 상임위 배분에서 양당의 지도부는 정치력을 시험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가 보수파 정치인으로선 드물게 이미지 정치에는 능할지 모르지만 ‘원내 운영능력’과 100석 이상 거대 정당을 이끌어 나갈 ‘리더십’을 한번도 검증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불안요인이다. 카리스마를 가진 4선의 최병렬 전 대표가 잇따른 원내 대응 미숙으로 도중하차한 일을 한나라당은 지켜본 바 있다.
민노당의 개원일 세레모니
국회에서 ‘일당백’의 역할을 하겠다는 민노당의 10석은 총선 후 무시 못할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민노당은 민주당을 제치고 원내 3당이 됐다. 민노당은 사안별로 분명한 노선을 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파병 등 예민한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선 ‘스파크’를 일으킬 계획이다. 민노당이 선도하면 이와 비슷한 입장인 열린우리당 내 개혁그룹이 동조하는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다음은 노회찬 민노당 선대본부장(비례대표 당선)과의 일문일답이다.
-이라크 파병에 대한 입장은.
“이라크가 다시 전시상태로 돌아선 지금 상황에서 파병은 안 됩니다. 무기한 연기해야 합니다. 6월1일 국회 개원일에 단순히 세레모니만 해선 안됩니다. ‘이라크 파병철회 동의안’을 올릴 것입니다.
-탄핵반대 촛불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광화문에서 법에 저촉됨이 없이 마음껏 촛불시위를 할 수 있도록 집시법을 개정하겠습니다. 현행 집시법은 사전신고제이지만 규정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집회 금지지역이 많아 사실상의 허가제입니다. 시위불허 규정도 추상적입니다. 집시법 규정을 상당히 완화시킬 방침입니다. 집회를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보호돼야 합니다.”
-민노당의 국회진출에 대해 대기업들은 우려의 시각을 보이는데….
“민노당은 지금까지 정치하던 사람들 보다 훨씬 점잖은 편입니다. ‘맛좀 봐라’는 식으로 의정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그에 걸맞게 국정감사 등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과반 의석의 열린우리당 측이 전략적으로 교섭단체 구성기준을 10석으로 낮춰 민노당이 전격적으로 교섭단체가 되는 시나리오도 제기되지만 실현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민노당과 열린우리당의 개혁세력이 얼마나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지 여부가 진보-개혁성이 크게 강화된 것으로 알려진 17대 국회의 성격을 규정할 핵심 요인이 될 전망이다.
9석을 얻어 원내 4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엔 무거운 정적만 흐르고 있다.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3보1배는 박준영 선대본부장이 비공개 선대위 회의에서 처음 제안한 것이다. 청와대 수석을 역임한 박 본부장이나 김종인 전 수석 등의 가세는 민주당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지만 대세를 되돌리기엔 늦은 감이 있었다. 더구나 조순형 대표의 ‘총선 후 한-민 공조 가능’ 인터뷰가 선거 막판 광주 지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됨으로써 3보1배의 효과를 크게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낙선한 일부 당권파 의원들이 당권은 계속 쥐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럴 경우 총선 참패 이후에도 민주당 내분이 지속될 수 있다. 전당대회 등을 통해 일단 한화갑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추스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총선 이후 검찰은 정치권 수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한 전 대표의 사법처리 문제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민주당이요? 허 참. 우리쪽에서 특별히 할 얘기가 없죠”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과반 의석을 확보한 만큼 굳이 민주당을 흔들 이유는 없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동영 의장과의 관계가 특별히 나쁘지 않은 일부 당선자들이 자발적으로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역구에서 낙선한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개표방송 도중 눈물을 흘렸다. 일부에서 동정론이 나오고 있으나 보궐선거 등을 통한 추 위원장의 정치적 재기를 낙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추 위원장이 선거운동 개시 당시 민주당 중진 공천자들을 일방적으로 낙천시키면서 조순형 대표와 소위 옥새 파동을 겪은 것에 대해 추 위원장과 조 대표의 공동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 내분 과정에서 추 위원장의 정치력이 검증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추 위원장 본인은 선거기간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 살리기 3보1배까지 단행한 추 위원장이 열린우리당에 합류하는 시나리오는 현재로선 상정하기 어렵다.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함으로써 민주당은 원내 활동이 크게 지장을 받게 됐고, 국고보조금도 크게 줄게 됐다. 수 백억원에 이르는 당사 임대료 체납 등 재정적 어려움도 찾아오고 있다. 민주당은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4명의 의원을 낸 자유민주연합은 구심점인 비례대표 1번 김종필 총재가 낙선했다. 김 총재는 사퇴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심점이 빠진 자유민주연합은 의외로 빨리 해체 수순을 밟게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일각에서 나온다. 낙선한 정우택 의원 측근은 “열린우리당의 황색 돌풍에 ‘석(石)’ 대신 ‘옥(玉)’이 날아갔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는 “철새정치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크다. 당선된 이인제 의원이나 김학원 의원이 대표가 되어 충청권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자민련을 유지해 나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인제 의원 역시 검찰 수사가 보류되어 있는 상태다. 자민련 관계자는 “정책적으로는 보수파인 한나라당과 주로 연대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의 ‘부패 심판’과 ‘정치 개혁’ 바람에 힘입어 과반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은 당장 유권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성과물을 내놓아야 할 부담을 안게 됐다. 김근태 원내대표의 말처럼 소수야당에게 책임을 넘길 상황도 아니게 된 것.
이와 관련, 각 당의 총선 공약을 점검해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고계현 실장은 “열린우리당의 경우 총선 후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남도지사 출신의 김혁규 열린우리당 선대위원장은 “열린우리당의 개혁은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당 송영길 의원은 “열린우리당은 개혁세력이 ‘코어그룹’이다. 이라크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은 보수에서 진보에 이르기까지 의원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어 총선 후 통일되고 효율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몸집이 3배로 불어난 열린우리당의 도전은 내부에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