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터키 파묵칼레

수억 년 퇴적과 침식이 빚어낸 신비한 석회석 기둥

  • 입력2004-05-03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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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파묵칼레

    파묵칼레의 석회석 기둥지역에는 물이 차있다. 일몰직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터키의 심장 이스탄불에서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국도를 달리다 보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무대 트로이를 만나게 된다. 거대한 목마와 눈인사를 마치고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섯 시간 남짓 더 달리면 파묵칼레(Pamukkale)에 이른다. 파묵칼레란 ‘목화성(城)’이라는 뜻. 성곽을 연상케 할 만큼 거대한 석회석 유적과 환상적인 온천으로 이름 높은 이곳은 지구촌을 통틀어 20여 곳밖에 없는 인류복합유산지역 가운데 하나다.

    현실인가 환상인가

    10여 곳이 넘는 명소와 이색적인 볼거리가 흩어져 있지만,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하얀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자연유산지역이다. 거대한 석회석 기둥과 솟아오르는 온천수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수십~수백 미터의 둘레와 10여 미터가 넘는 높이를 자랑하는 수많은 석회석 기둥이 흡사 목화솜처럼 보인다고 해서 ‘목화성’ 파묵칼레란 지명이 붙었다.

    계단식 경작지처럼 보이기도 하는 석회석 기둥들이 빚어내는 분위기는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대낮에는 하얀 석회석과 에메랄드 물빛이 어우러져 눈이 아릴 정도로 빛나지만, 이른 새벽과 저녁에 바라보면 ‘혹시 환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비감이 감돈다.

    이 지역의 석회석 기둥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먼저 신발을 벗어야 한다. 맨발이라야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촉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석회석층으로 이루어진 정상 부근은 그냥 걷기도 어렵지만 중간 부분은 흐르는 온천수가 석회석을 매끄럽게 매만져 발 마사지를 해도 좋을 정도다. 아래쪽에는 도자기를 만드는 점토와 비슷한 부드러운 석횟가루가 깔려 있어 마치 솜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터키 파묵칼레

    ◁ 동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파묵칼레 지역의 무덤유적.<br>▷ 파묵칼레 유적지 들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거대한 조각물.



    터키 파묵칼레

    현존하는 로마극장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는 파묵칼레의 원형극장 유적지.

    파묵칼레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온천. 예로부터 중동과 유럽을 통틀어 대표적인 온천으로 손꼽혀온 이 지역 온천수는 심장병과 신장병 및 순환기 질환에 탁월한 효험이 있어 그리스와 로마의 황제와 귀족들이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페르가몬 왕국과 그리스·로마시대의 유물에 둘러싸여 즐기는 온천욕은 파묵칼레만이 선사할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점령하기 전까지 파묵칼레는 페르가몬 왕국을 건립한 텔레포스 왕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따서 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렸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답게 넓은 지역 곳곳에 유적지가 흩어져 있었지만, 여러 차례의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아폴론신전의 일부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개선문 등 성벽 유적지, 남북을 연결하는 대로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곳은 한국식 무덤과 흡사하게 생긴 묘지와 훌륭하게 보존된 원형극장이다.

    유럽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의 파묵칼레 무덤은 원래 1만5000기가 넘었으나, 지진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1200기 정도만이 남아 있다. 로마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초대형 무덤이 있는가 하면 동양식 봉분의 무덤도 발견할 수 있다. 최고권력자와 부호들의 안식처인 이 봉분형 무덤은 경주에 있는 김유신 장군 묘와도 매우 비슷하다. 학계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분묘 양식이 한곳에 모여 있어 양쪽의 장례문화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며 이 무덤유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무덤 유적지 건너편에는 히에라폴리스가 가장 번영을 누리던 시기에 건설된 원형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도시 전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건설된 이 극장은 1만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 로마제국의 황제와 귀족들이 온천지역에서 장기간 휴식을 취하며 연극 등을 관람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남아 있는 로마극장 유적지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뛰어나다는 파묵칼레 원형극장의 중앙에는 황제를 위한 귀빈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터키 파묵칼레

    현란한 조각으로 장식된 파묵칼레 원형극장 유적지의 무대 기둥. 높이가 7∼8m에 이르고 둘레도 1m가 넘는다.

    터키 파묵칼레

    자연유산지역 관리직원이 파묵칼레의 훼손된 석회석 기둥을 손질하고 있다.

    극장 건축물과 무덤 유적지 사이에 있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개선문은 크기와 모양이 같은 세 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로마의 개선문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형태다. 개선문을 지나면 아폴론신전 터를 비롯해 건물의 일부만 남은 휴양시설 님파이온, 비잔틴의 대표적인 교회유적지 빌립보 교회 등이 흩어져 있다.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축적되어온 문화유산의 향기와 기묘한 자연경관이 빛나는 파묵칼레에서, 관광객은 고대로마의 귀족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온천욕을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퇴적과 침식을 억만 년 반복해온 자연의 신비함, 수천 년 동안 서구 정신세계의 근간을 이뤄온 로마제국 건축예술의 힘, 동서양 문화가 충돌하며 빚어낸 독특한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파묵칼레는 관광객에게 쉽게 잊을 수 없는 경험 하나를 더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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