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국내 첫 환경영화제 여는 환경운동가 최열

“盧정부 환경점수는 ‘양’ 경제 살린다고 환경 외면해서야”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10-27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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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환경운동의 대부’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가 최근 영화사업에 뛰어들었다. 환경 문제를 문화적으로 더 가깝게 알리겠다는 취지에서다. 당연히 상업적 목적은 없다.
    • ‘투사’에서 문화사업 지원자로 변신한 그에게 환경은 여전히 삶의 이유고 목표다.
    국내 첫 환경영화제 여는 환경운동가 최열

    최열 이사는 “환경과 문화가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고 기대한다.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에 맞춰 최열(55) 환경재단 상임이사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순전히 이슈를 만들어내는 그의 저력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환경 담론은 경제논리에 부딪혀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환경위기 시계는 더욱 빨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먹고 사는 문제가 주된 관심사였던 1980년대 초 한국에 ‘환경운동’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1985년 온산 공해병의 위험을 폭로하고 1990년대 새만금 간척지에서 갯벌 살리기 단식을 벌이는 등 온몸을 던진 투쟁으로 환경문제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제 그는 대중과 함께 하는 긍정적 방식의 색다른 환경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선구자다운 행보다.

    최 이사가 집행위원장을 맡은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가 10월22일부터 5일간 열린다. 환경을 테마로 기획된 영화제로는 국내 최초다. 환경을 주제로 한 수십 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젊은 세 감독이 의기투합해 만든 환경 옴니버스 영화도 발표된다. 환경영화 제작을 위해 모금을 벌인 것도, 영화제 구상 아이디어를 낸 것도 그다.

    최 이사는 10월7일 오후 약속시간보다 20분 정도 늦게 서울 신문로 환경재단 사무실에 나타났다. 매일 여러 개의 스케줄이 잡혀 좀처럼 시간 내기 힘든 그이건만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다. “서울 정부중앙청사 건물 앞에서 핵폐기장 반대 시위를 벌이던 부안 주민들을 만나고 오느라 늦었다”며 미안해한 그는 환경영화제 이야기를 꺼내자 금세 환한 표정이 됐다.

    -환경영화제 준비로 바쁘시죠? 영화제 준비는 어떠신지.



    “나보다 현장 실무진이 더 바빠요. 10월22일 이화여대 강당에서 3000명이 모인 가운데 개막식을 갖습니다. 국회, 환경부, 산업자원부, 여성부 그리고 이번 영화제에 도움을 준 기업에서 영화 ‘1.3.6’의 시사회를 가질 거고요.

    기존 영화제가 영화와 배우 감독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면 환경영화제는 환경단체와 운동가, 일반시민이 중심이 되는 행사가 될 거예요. 숙명여대 학생들이 자연 화장품을 만들어 배포하고, 올해의 주제인 ‘나무’를 소재로 한 퍼포먼스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환경운동 방식 중에서 왜 하필 영화를 택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요즘 젊은이들 영화 보는 것을 밥 먹듯 여기지 않습니까. 그렇게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환경문제를 알리려고 한 거죠. 현재 한국에서 영화가 갖는 영향력은 엄청나지요. 21세기는 환경과 문화, 여성의 시대입니다. 환경과 문화의 성공적인 결합은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봅니다.”

    최 이사가 환경영화제를 개최하기로 결심한 건 2년 전이다. 그는 2002년 6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열린 ‘지구의 벗’ 세계 총회에서 “환경을 자신의 문제로 느끼고 반성하며 문제 해결방안을 함께 고민해볼 국제 환경영화제를 한국에서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공언은 전세계 참가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고, 2년이 지나 마침내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이제는 이 영화제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남아있는 숙제다.

    환경영화제에 맞춰 개봉될 옴니버스 영화 ‘1.3.6’은 특히 젊은 세 감독의 의기투합으로 화제가 됐다. ‘내 마음의 풍금’의 이영재 감독, ‘꽃섬’ ‘거미숲’의 송일곤 감독, ‘간철 리철진’과 ‘킬러들의 수다’의 장진 감독. 감각적 영상과 독특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세 감독이 각각 30분씩 연출, 1시간30분 분량의 영화를 선보인다.

    -영화 타이틀 ‘1.3.6’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던데요.

    “환경문제를 알리는 영화인 만큼 낭비를 최소화하고 비용도 절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필름을 버리지 않는 6㎜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요. 여러 사람이 만드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에 세 감독을 참여시켰어요. ‘1.3.6’은 하나의 작품에 세 감독의 시각을 6㎜ 카메라로 담았다는 의미가 되죠.

    또 하나. 2002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한국은 환경지속성지수에서 142개국 중 136위를 기록한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어요. 한국 환경의 심각한 상태를 고발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환경 영화는 좀 지루할 것 같아요. 너무 계몽적인 이미지가 아닐까요.

    “내가 세 감독에게 당부한 건 그저 재밌게만 만들어달라는 거예요.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어요. 서울에서 촬영한 이영재 감독 작품엔 오세훈 변호사, 강지원 변호사, 박원순 변호사가 카메오로 출연하죠. 나도 며칠 후 카메오로 출연할 건데… 허허.”

    세 감독의 영화는 12월 극장에서도 개봉된다. 영화 개봉으로 얻는 수익금은 환경운동 기금으로 쓰이고, DVD로 제작돼 아시아 지역의 환경단체에 무상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환경문제를 문화상품으로 적극 알리고, 수익은 공익을 위해 사용하는 일석이조의 사업인 셈이다.

    역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최 이사의 달라진 행보다. 온산으로, 동강으로, 새만금으로, 핵발전소로. 과거 현장을 누비며 환경오염을 고발하던 그는 이제 한발 물러서 환경운동가들을 위한 지원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이사장직도 여전히 겸하고 있지만, 현장 활동은 후배들에게 거의 물려주었다. 투사와 후원자 사이의 삶엔 어떤 간극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현장에서 뛸 때와 환경재단 상임이사로서의 활동이 어떻게 다른가요.

    “먼저 환경재단을 만든 이유부터 설명해야겠구만. 2000년 3월 미국 버클리대에서 열린 ‘골드만환경상’ 수상자 워크숍에 참가했다가 재미난 이야길 들었죠. 미국엔 환경 관련 재단만 700개가 넘는다는 거예요. 미국처럼 넓고 국토 보존이 잘 된 나라에도 환경재단이 700개나 있는데, 정작 환경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엔 재단 하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만든 게 환경재단이에요.”

    -환경재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한데요.

    “속설에 현장 운동 3년 하면 머리가 비고, 5년 하면 파김치가 되고, 7년 하면 가슴이 뚫린다고 하데요. 자기를 던져 나라를 위해 뛴 사람들이 용도 폐기돼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이 맘껏 공부하고 건강 진단도 받고 잘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환경재단의 주된 일이에요. 환경문제를 알리는 여러 문화사업에 지원도 하고….”

    21세기형 환경운동

    2002년 11월 창립된 환경재단은 여러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기금을 마련해 환경사업들을 지원해왔다. 최근 환경재단 주최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사진전 ‘80일간의 세계일주 그리고 서울의 기억’은 270만명이 관람할 만큼 성황을 이뤘다. 세계의 비경을 담은 고혹적인 사진들이 행인의 눈길을 끌었다.

    -최 이사께서 걸어온 길이 우리나라의 달라진 환경운동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21세기 환경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거듭나야 할까요.

    “운동방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죠. 당연히 달라져야 하고요. 환경 논의가 척박하던 시절에는 폭로와 고발이 주를 이뤘죠. 다음에 온 것이 바로 일회용품 안 쓰기, 종량제 실시, 폐식용유로 비누 만들기 같은 실천운동입니다. 21세기형 환경운동은 문화와 환경의 성공적 결합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앞으로 환경운동은 더 다양해져야 해요. 백화점식 환경단체는 물론, ‘반딧불이를 지키는 모임’ ‘샛강을 지키는 모임’ ‘길을 아름답게 하는 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여전히 환경은 경제에 비해 홀대받고 있습니다. 최근 환경 현안을 보면 답답하지 않으신가요.

    “(그의 목소리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환경과 문화가 그대로 있다간, 세계가 정치 경제 중심으로 흘러갈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는데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니….

    지난 6월 ‘세계 환경의 날’ 행사에서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만난 얘기를 하죠. 제가 ‘환경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쾌적한 환경 속에서 강한 경제가 나는 게 아니냐’고 물었어요. 아예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를 ‘환경이 경제다’라고 정하자고 제안했죠. 그랬더니 대뜸 이 부총리가 ‘아니다. 경제가 환경이다’라고 되받아 치더군요.

    생각해봅시다. 환경이 황소라면 경제는 닭장이에요. 환경 안에 경제행위가 있는데 어찌 황소가 닭장에 들어가겠습니까. 환경을 살리는 길이야말로 경제를 살리는 겁니다. 에너지 절전 상품, 하이브리드카, 수소연료 모두 환경 보존 상품으로 경쟁력도 생긴 거 아닙니까.”

    -현 정부의 환경정책과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시죠. 환경 현안에 대한 해법을 듣고 싶습니다. 역시 가장 골칫덩이가 핵폐기장 문제인데….

    “노무현 정부가 가장 골머리를 앓는 게 바로 환경정책입니다. 핵폐기장 건설을 놓고 쉽게 정책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잖아요.

    핵폐기장 문제의 경우, 우리 정부가 핵발전소를 어떻게 운영해갈 것인가를 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핵발전이 공해 없고 경제적이란 근거를 대며 핵폐기장 부지 선정에 협조해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오스트리아는 완공된 핵폐기장을 주민투표로 운영하지 않고 있고, 독일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신규 핵발전소를 안 짓기로 합의했어요.”

    -어쨌든 현재 나오는 핵폐기물을 저장할 폐기장은 필요한 것 아닌가요?

    “지금까지 버려진 핵폐기물을 저장할 장소는 아직 부족하지 않아요. 핵발전소를 더 짓지만 않는다면…. 핵발전소 추가 건립보다 태양, 풍력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죠.”

    -경제 살린다고 골프장 200개도 짓겠다는데.

    “한국처럼 산악지대가 많은 나라에 잔디밭 골프장 만들면, 홍수에 제대로 못 버텨요. 갯벌 골프장은 더욱 어이가 없지요.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작한 게 새만금 간척공사인데, 이제 그 매립지에 세계 최고의 골프장을 만들겠다고요? 그거 갯벌에 같이 빠져죽자는 얘깁니다.”

    정치 입문 제의 9번 거절

    -노무현 정부 환경정책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어요?

    “수우미양가 중 양이에요, 양!”

    환경운동가로 추앙받는 그를 놓고도 몇 가지 비판적 논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의혹의 시선에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도덕적 자신감을 내보였다. 오히려 질문 던진 이가 무색할 만큼. 수십 년간 하나의 이상을 향해 달려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었다.

    -항간에는 최 이사께서 너무 ‘정치적 행보’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2000년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부터 올해 총선물갈이연대 활동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셨는데….

    “한국에서 정치가 정말 중요해요. 지휘관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구성원 모두가 고통을 받잖아요. IMF 환란을 몰고 온 정치인들이 책임은 지지 않고 고급 양주를 마시며 해외 골프여행이나 다니는 걸 보며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준비한 겁니다. 우리 때문에 떨어진 사람을 보면 괴롭지만, 정치인들이 잘못하면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혹시 정치에 뜻 있는 거 아니세요?

    “정치인 되고 싶냐고요? 나 정치적 활동은 해도 정당인은 아닙니다. 20년에 걸쳐 지금까지 아홉 차례나 여야로부터 정치 입문 제의를 받았어요. YS의 적극적 제의가 있었지만 ‘한평생 한 길을 걷고 싶다’며 거절한 기억이 납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최열씨만은 정치 하지 말라고 만류하고요.”

    -대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

    “그동안 삼성SDI와 기아자동차의 사외이사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기아자동차의 사외이사직만 맡고 있구요. 기아자동차의 경우 사외이사를 맡게 된 건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갈 무렵 감시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자동차산업이 친환경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도 있었고. 삼성SDI의 사외이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환경친화적 제품인 2차 전지를 만들도록 독려하기 위해서였죠. 나 때문에 기업들이 수백억원 규모의 공해방지 시설을 갖추게 됐어요.”

    -자본과 손잡는 것이 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운동의 순수성이 바랜다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어요. 이사회 회의록에 다 기록이 남지 않습니까. 환경운동가가 감시함으로써 기업들이 공해방지와 투명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게다가 여기서 얻은 수익은 상당 부분 환경운동연합 장학금으로 조성하거나 어려운 활동가들에게 나눠줬습니다. 환경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이슬만 먹고 살아라’고 강요하는 건 심하지 않나요?”

    28년간의 환경운동도 그에겐 모자란 듯했다. 앞으로 해나갈 일이 더 많다는 그의 얼굴엔 20대 젊은이도 따라가지 못할 열정이 비쳤다. 어떤 목표를 갖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막힘없이 세 가지 사업구상을 내놓았다.

    “앞으로 환경 전문 대학원대학을 만들고 환경정책학과, 환경경영학과, 환경생태학과 등을 설치해서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키워낼 거예요.

    또 하나. 세계를 유람하는 ‘그린보트’ 여행을 기획할 거예요. 학자 학생 정치인 기자 직장인 등 1000명의 사람들이 유람선을 타고 세계의 환경 현장을 돌아보는 거죠. 선상에선 밀도 있는 환경 관련 토론도 벌이고, 영화도 함께 관람하고….

    에코 다큐 채널도 만들고 싶어요. 환경 전문 채널을 통해 일반 매체가 미처 담을 수 없었던 환경 토론과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모두 보여주는 거죠. 내 갈 길이 까마득히 멉니다.”

    최열 이사의 좌우명은 ‘한 길을 가자’다. 영화제를 기획하고 사진전을 선보이고 정치인 낙선운동이나 기업 사외이사 활동을 할 때도 그가 염두에 둔 것은 환경이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한눈 팔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의 환경위기 시계가 조금씩 늦춰지고 있음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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