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졸 실업자가 넘쳐난다. 그러나 입학하면 대부분 취업이 보장되는, 작지만 실속 있는 대학도 있다. 전국에서 학생이 모여들고, 수업은 곧 기업활동이며, 그 결과물은 매출로 연결된다. 취업률 98%. 농촌에 터를 잡고 있지만 세계적 명문 직업전문학교의 꿈을 키워가는 대경대학의 오늘과 내일.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인구 7000여 명의 전형적 농촌인 자인면에 대학이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욱이 복숭아밭과 야산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대학이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치 못했다. 그러나 대경대는 인근에 포진한 4년제 종합대학들의 틈새를 비집고 활기찬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대경’은 ‘대구와 경북’의 첫 글자를 의미하지만 이곳에서 공부하면 ‘큰(大) 경사(慶)’를 이룬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 학교는 지금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산학일체형 교육의 위력
대경대는 유진선 현 학장이 시간강사로 뛰던 1993년 문을 열었다. 그때 유 학장의 나이는 33세.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뛰어다니기를 15년, ‘규모는 작더라도 속이 꽉 찬 전문직업학교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현실이 됐다.
6개 학과 480명으로 출발한 대경대는 현재 22개 전공분야에 4200명의 학생이 북적이는 만만찮은 대학으로 훌쩍 자랐다. 학생 충원율은 매년 100%. 그러나 이 학교 학생들은 다른 대학들처럼 힘겨운 모집 ‘작업’을 통해 끌어들인 게 아니다. 또한 소재지인 경북이나 인근 대구에서 모두 충원한 것도 아니다. 올해 입학한 1964명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은 47%. 절반이 넘는 나머지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다. 서울과 경기 출신이 16%, 부산·대전·광주·울산 등지에서 온 학생이 37%를 차지했다.
특히 모델과와 뮤지컬과, 연극영화과, 호텔조리과, 뷰티디자인학부의 경우 지원자와 합격자의 35%가 수도권에서 고교를 졸업한 학생들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해 9월 공개한 전국 대학 취업률에서 대경대는 졸업생수 2000명 이하 대학에서 전체 취업률 98%로 1위권에 들었다.
요즘은 전문대학이든 4년제 종합대학이든 산학(産學)협력체제가 거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대경대는 2001년에 ‘산학일체형 CO-OP(Co-Operative)’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입학=취업’이라는 방향을 일찌감치 설정한 것. 2003년부터 지금까지 교육인적자원부의 시범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는 CO-OP는 그동안 전국 150여 개 대학이 벤치마킹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2005년 제2회 대한민국 지역혁신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3월6일 대경대 디자인동 4층 헤어숍 CO-OP실. 대학 내 시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꾸며진 미용실에는 가위를 든 학생들의 손놀림이 세련미를 풍겼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실습 형태 수업은 주로 외부 손님을 대상으로 한다. 학생들은 실제 미용실을 운영하는 주인이 되고, 손님은 실습 대상이 아닌 진짜 고객이다. 이 미용실의 단골이 된 이미경(36·대구 수성구 신매동)씨는 “파마 가격이 시중에 비해 매우 저렴한 데다 머리 손질 수준도 뛰어나 자주 찾는다”고 했다.
지난해 뷰티디자인학부가 주최한 국제헤어디자인경진대회에서 이 대학 학생들이 유럽 학생들을 제치고 대상을 차지한 것도 바로 CO-OP형 공부를 통해 닦은 실속형 교육의 결과다.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난해 3월에는 호주 멜버른에 TK(대경) 뷰티칼리지를 개교했다. 헤어와 메이크업, 스킨케어 등 5개 전공에 25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수업이 곧 기업활동
산학동 4층에 있는 ‘42번가 레스토랑’은 호텔조리학부의 CO-OP실이다. 호텔조리과 학생들은 새벽 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호텔 매니지먼트학과 학생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의 서빙과 관리를 맡는다. 이 학부 학생들의 동아리 모임에서 시작한 베이커리는 매월 2만개의 빵을 인근 기업체에 납품하는 또 다른 기업으로 성장했다.
‘42번가 레스토랑’은 스타가 되기 위한 꿈을 안고 젊은이들이 몰려든다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본떠 3년 전에 만든 공간. 호텔경영을 전공하는 2학년 김지영(22·여)씨는 “42번가 레스토랑에서 배운 실력을 바탕으로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한 달에 걸친 실습을 거뜬히 해냈다”며 “학교에서 공부한 대로 음식 차리기와 서비스를 했더니 호텔 직원들도 만족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전공과 연계한 ‘예비기업형’ CO-OP식 실습현장은 캠퍼스 안에 2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이는 해외 10개국 36개 전문직업대학과 교육 프로그램 제휴를 통해 현장교육의 노하우를 도입했기에 가능했다. 뷰티디자인학부는 프랑스 크리스티앙 쇼보 예술화장학원 등과 교육시스템 상호 교환제를 운영한다. 또 호텔조리학부는 호주 국립 디킨대 및 미국 이탈리아 덴마크의 조리대학, 관광호텔학부는 스위스호텔경영대와 미국 코넬대, 사회복지학과는 스웨덴 국립 구텐버그대, 연극영화학부는 미국 뉴욕대 등과 교과과정을 공동 운영한다.
2005년 10월 교내 기업으로 설립된 포도주 공장 ‘TK 와이너리’도 마찬가지. 80평 규모의 포도주 공장에는 연간 6만병(1병 750㎖ 기준)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현재 원액 2만4000ℓ가 숙성되고 있다. 포도주 가공기술로 유명한 호주 디킨대학과 협력한 덕분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 같은 교육 프로그램은 모두 ‘현장’을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됐다. 요즘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현장실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겸임교수로 임용하는데 대경대는 7년 전부터 겸임교수를 활용했다. 지금도 100여 명의 교수 가운데 현장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가 80%가량에 이른다. 재학생 100여 명인 뮤지컬과의 경우 절반가량이 수도권 고등학교 출신이다. 뮤지컬 스타 3인방으로 꼽히는 전수경, 주원성, 조승룡 교수가 학생을 지도해 현장감이 넘친다. 서울 출신인 뮤지컬과 1학년 여학생 양유진(20)씨는 “실제로 무대에서 활동하는 교수님들에게서 공부를 배우니 벌써 현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산학협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경호행정학부에도 20년 동안 대통령 경호를 맡은 대통령경호실 출신 교수들이 포진해 있을 정도다. 산학협력이 튼튼할수록 취업은 더 쉬워지는 게 CO-OP 방식의 강점이다. 대경대 김상호 산학협력처장은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기업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내 대학의 졸업생을 선발한 뒤에 다시 실무적응교육을 하느라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기업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 대응하지 않으면 특히 전문대학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어요. 지금의 CO-OP 교육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차원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대경대는 우선 뷰티, 호텔조리, 연극영화, 모델, 뮤지컬 학과를 대상으로 1년 2학기제를 폐지하고 10주 공부에 2주를 휴식하는 텀(term)제를 조만간 도입할 예정이다. 집중적인 실습이 중요한 분야인데도 4~5개월의 여름·겨울방학을 하는 현행 학기제는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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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전부터 시작되는 취업교육
이를 위해 현재 90%인 학교 건물의 냉난방 구축률을 100%로 높이려 공사를 시작했으며, 재학생 전원이 생활할 수 있는 대규모 기숙사도 신축 중이다. 입소문을 듣고 대경대를 찾아온 외국인 유학생 120여 명을 위한 전용 기숙사도 지난해 말 준공했다.
지난 3월2일 저녁 7시, 대구인터불고호텔에서는 대경대 신입생 2200여 명(산업체 특별과정 300여 명 포함)과 교직원, 동문, 학부모 등 3000여 명이 모인 ‘명품입학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은 ‘글로벌 인재로 키워달라’는 뜻에서 학교 측에 대형 세계지도를 전달했으며, 학교 측은 ‘희망의 열쇠’ ‘취업의 열쇠’ ‘학문의 열쇠’ 등 열쇠 3개를 모든 신입생에게 선사했다. 이날 입학식이 저녁 7시에 열린 이유는 입학식 당일에도 산학협력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학식에 앞서 신입생 중 740여 명은 전공별로 대구지방경찰청과 대구와 경북 지역의 방송국, 병원, 호텔에서 간단한 실습과 체험을 했다. ‘입학=취업’이라는 목표는 입학식날부터 바로 시작돼야 한다는 게 이유다.
5월22일 개교 1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대경대 캠퍼스에는 자축(自祝)보다는 오히려 긴장이 느껴진다. 그동안 이룬 작은 성과에 안주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최종오 교학처장은 “개교 20주년이 되는 2012년에는 입학이 곧 직장생활 같은 산학협력 캠퍼스를 확고하게 뿌리내려 해외언론이 세계 유명 직업학교로 대경대를 취재하러 오는 날을 꼭 만드는 게 생일을 맞는 다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