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여지연 지음, 임옥희 옮김/삼인/432쪽/1만8000원
이는 성별화(性別化)한 제국주의의 결과이기도 했다. 기존 국제정치학에서 한미동맹은 후견국(patron)이 피후견국(client)의 안보를 보증하는 대신, 피후견국은 후견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분담금을 내는 동맹관계의 ‘모범’으로서, 전형적인 보호자-피보호자의 관계로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미관계는 성별화해 피보호국인 한국은 ‘여성’으로, 후견국인 미국은 ‘남성’으로 여겨져왔고 남한 사회에서 기지촌은 미군의 남성성에 위압당한 여성화한 존재로서 한국 남성의 심리적 외상을 상징했다. 남정현의 ‘분지’, 신동엽의 ‘금강’ 등 이른바 ‘민족문학의 고전’들은 남성의 트라우마를 ‘민족의 자존심’으로 치환하는 작업이었다.
“개인적인 것은 국제적인 것”
6·25전쟁 이후 1989년까지 주한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한 군인 아내는 9만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1962~68년에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 여성은 전체 이민자의 39.4%로 단일 집단으로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1970, 80년대에도 해마다 약 4000명의 한국 여성이 군인 아내로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재미 여성주의 역사학자 여지연 교수(노스웨스턴대)는 군인 아내들의 생애사(life history)를 통해 여성과 디아스포라(離散者)의 관점에서 한국현대사를 다시 썼다.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군인 아내들 이야기’(원제·Beyond the Shadow of Camptown-Korean Military Brides in America). 이들 군인 아내들은 국가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군인과 결혼하지 않은 다른 한국 이민자로부터도 멸시받으면서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은 이들이 ‘애국자’임을 주장하는 데 있지 않고, 근대국가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이들의 존재와 저항의 정치적 의미를 질문한다. 이 책의 의미는 단지 냉전과 한미동맹의 이면으로서 군인 아내의 이주라는 숨겨진 역사를 복원하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이에 맞서 식민지 해방 투쟁을 거쳐 독립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에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로서 인종과 성별의 기능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결혼과 같은 ‘사적인’ 경험과 국제정치학, 일상사와 한국현대사, 식민과 해방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는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기존의 여성주의 정치학을 한층 발전시켜, 일제 강점기 ‘군 위안부’나 광복 후 주한미군과 결혼한 여성은 비극적인 전쟁의 ‘부산물’ 혹은 역사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주체적 행위자(agent)라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적인 것은 국제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the global)”라고 역설한다.
군 위안부와 기지촌 여성
미국 사회에서 한국의 군인 아내들은 여성도 한국인도 아닌 경계인이다. 이들은 백인 중산층 중심의 여성 범주에 속할 수 없으며, 남성 중심적인 한국인에도 속할 수 없었다.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이들의 존재가 비가시화한 것은 명백한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기지촌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엄청난 경멸감은 보편적인 가부장적 관행이나 인종적 자부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8·15 ‘해방’ 이후에도 탈(脫)식민되지 못한 한국 사회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일제 강점기 ‘군 위안부’는 제국주의 침략의 순결한 희생자라고 보지만, 기지촌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천민’으로 남아 있다. 이는 ‘강제적인’ 성폭력(군 위안부)과 ‘자발적인(?)’ 성매매(기지촌 여성)라는,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에 대한 남성 시각의 구분 때문이기도 하다. ‘군 위안부’와 달리 기지촌 여성은 떳떳하지 못하다. 아니, 떳떳할 수가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은 청산해야 할 식민주의자이며, 독도 분쟁의 예에서 보듯이 침략 욕망을 버리지 못한 음험한 제국주의자. 하지만 미국은 감사해야 할 동맹이자 우방이며, 미국의 자유와 물질적 풍요는 선망의 대상이고 경쟁해야 할 이상으로 간주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이 기지촌 여성을 군대 성매매의 희생양이자 현대판 위안부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 사회 스스로 주권국가 환상을 깨는 정신적 탈식민이 요구되는 일이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근대국가의 모순을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국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배제, 추방과 포섭의 정치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재미동포나 재일동포를 ‘조선족’이라고 하지 않는다. 재중동포만 조선족이다. ‘같은 세포’라는 의미의 해외 ‘동포(同胞)’가 모두 한국인은 아닌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잘나가는’ 동포만 한국인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한국인으로 정체화하고 있는지에 목숨을 건다. 하인즈 워드 선수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아닌지에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처받았다가 열광했다가 하는 식이다.
기지촌 여성이나 미국으로 이주한 군인 아내에 대한 혐오와 비하는 단일 민족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열망이 실은 우리 사회 안팎의 다름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균질적인 국민으로 구성됐다고 상상되는 국민국가 내부의 성별, 인종, 계급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고통은 군인 아내들의 몸에 고스란히 체현됐다. 저자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민간외교관’과 ‘양공주’라는 이중 메시지에 시달렸던 이들 군인 아내들의 삶을 소수자에 대한 애정과 여성주의와 탈식민주의라는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으로 재현하는 어려운 작업을 최초로 해냈다.
변화하는 한미관계와 한국의 남성성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기지촌은 더 이상 ‘민족 모순’의 공간이 아니라 성산업 종사자의 95%가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여성인 국제적인 성매매 시장이 되었다. 이제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소위, “여자 팔아 나라를 지키지 않아도 될 만큼” 정치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론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자주국방 정책이 “미국의 도움 없는 대북 단독 방어”를 의미한 데 반해, 2000년대 자주국방론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자신감을, ‘보호자’였던 미국에 대해서는 “동북아 균형자로서” “팍스 코리아나를 꿈꾸며” 한국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자주국방의 양대 프로그램인 한국군 현대화와 전시 군작전권 환수는 실제 미국의 필요에 의해 미국이 먼저 제안한 것이다. 냉전 이후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한국 방위에 발이 묶이는 현재의 한미연합사 체제 해체와 한국의 방위비 분담(미국산 무기 구매)을 요구한다. 즉, 자주국방은 미국 중심의 집단 안보 체제에 편입되는 과정으로, 미국의 용병 국가화 요구다.
요컨대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식민지다. 문제는 이러한 식민화 과정이 점점 더 한국 사회 자신이 ‘선택’하는, ‘주체적 종속’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기지촌의 어둠을 넘어’를 ‘넘어’, 변화하는 한미관계에서 한국 사회의 남성성을 분석해야 할 때다. 이 책은 언제나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을 설명해왔던 한국현대사를 성찰하는 작업의 정초(定礎)를 제공한다. 여성학과 영문학에 두루 능통한 옮긴이의 번역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