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자동차 관리엔 철저하면서 자기 몸엔 무식한 당신을 위해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7-05-02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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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관리엔 철저하면서 자기 몸엔 무식한 당신을 위해

    몸 관리법을 상세하게 소개한 ‘남자의 몸’과 ‘내몸 사용설명서’.

    지난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첫날 400m 결승전에서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호들갑을 떨며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한 장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승을 확인한 박 선수가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는데, 아시안게임 때는 볼 수 없던 잘 발달된 팔과 가슴 근육이 드러났다. ‘바로 저 근육에서 폭발적인 힘이 나왔구나.’ 다른 사진을 더 찾아보며 연신 “와” 하고 감탄하자, 곁에서 남편이 한마디 던진다. “아줌마 같은 소리 좀 그만하지.”

    남편은 전에도 그랬다. 영화 ‘트로이’를 보며 브래드 피트의 단단한 허벅지 근육에 정신 팔린 내게 여지없이 “아줌마스럽다”고 핀잔을 줬다. 아르마니 모델이자 뭇 여성 스타가 한번 사귀어보고 싶어하는 섹시남 호아킨 코르테스의 플라멩코 공연 때는 한층 더 심술을 부렸다. “무용수로서는 다리가 좀 짧다”라거나 “생각보다 몸매는 별로”라며 트집을 잡았다. 내가 보기엔 요즘 말로 ‘완소남’인데 말이다. 얄미운 생각에 나도 한마디했다. “당신 몸이나 한번 보고 그런 말을 하지 그래?”

    어느덧 남편의 몸무게는 일급비밀이 됐다. 어쩌다 저울에 올라갈 때도 식구들 눈에 안 띄려고 애쓴다. 1년에 평균 1kg씩 착실히 찌운 결과 한때(고교 시절 이야기니 내 눈으로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잘록했다는 허리는 간 데 없이 밋밋하다 못해 두꺼워졌으며, 이제는 밥 한 공기만 들어가도 배가 볼록 나온다. 이제 그도 완연한 중년에 접어든 게다. 얼마 전부터 노안(老眼)이 온 것 같다며 돋보기 타령까지 시작했다. 몇 년 지나면 우리도 아트 히스터 부부처럼 대화할지 모른다.

    남편 : 중년이 되면 오르가슴도 짧아지게 마련이야.

    아내 : (능글맞게 웃으며) 더 짧아지면 얼마나 더 짧아질 수 있을라고?



    어어, 내 몸이 왜 이러시나?

    캐나다 의사 아트 히스터는 딱 내 남편 같은 사내들을 위해 ‘남자의 몸’(동아일보사, 원래 ‘자신만만 4050건강법’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을 전면 개정했다)을 썼다. 이 책은 ‘사내들이 나잇살 먹으면 어떻게 구겨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샤워하면서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하수관이 막힐까봐 걱정하던 것은 옛말. 이제는 머리숱이 퇴각에 퇴각을 거듭해 뒤통수에 배수진을 치고 임시 참호처럼 달랑 붙어 있으며, 대신 코털처럼 원치 않는 부위의 털은 쑥쑥 고개를 내민다. 다중 초점 렌즈를 껴도 거리를 잘 조절하지 못해 책이나 신문 위에 앉아 있는 것이 글자인지 파리인지 분간이 안 되고, 허리선은 아래로 아래로 처지다 못해 무르팍까지 내려갈 기세이며, 영화를 보러 가거나 비행기를 탈 때는 전립선 걱정 때문에 음료수 마시는 일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가? 이쯤 되면 빼도 박도 못할 늙다리가 된 거다.

    자, 아트 히스터가 신세타령이나 하자고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목적은 분명하다. 40세 이상의 남자에게 20년 뒤를 내다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여자가 아닌 중년 남자에 방점이 찍혔냐 이 말이다.

    여자는 월경전 증후군, 임신, 분만, 산후 후유증, 폐경 같은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자신의 몸에 대한 자각증상이 빠르다. 반면 남자는 자신의 몸에 대해 무지하다. 건강하게 태어나고 그 뒤 사고를 당하거나 만성 질환에 걸리지만 않으면 마흔 고개까지는 무난하기 때문에, 하룻밤 새 두어 차례 오줌 누러 일어나야 할 나이가 될 때까지 자신의 신체기능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히 건강에 대해 관심이 멀어지고, 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행여 건강을 염려해서 담배를 끊는다, 술을 끊는다고 하면 “그래? 그렇게 오래 살아서 뭐하게?”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그러다 갑자기 한꺼번에 위와 같은 변화를 겪고 당황한다. “어어, 내 몸이 왜 이러시나?” 하면서 말이다.

    손을 틈틈이 씻어라

    ‘남자의 몸’에서 아트 히스터는 중년 남자의 신체 변화에서부터 성, 전립선, 알츠하이머병, 허리 통증, 뇌졸중 같은 중년 질환을 시시콜콜 설명한다. 이어서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잔소리를 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약은 될수록 사양하라’ ‘홀몸 신세를 면하라’ ‘손을 틈틈이 씻어라’와 같은 현실적인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때때로 웃음이 터져 나오게 전하는 것이 아트 히스터의 힘이다.

    난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든다. 나이를 먹으면서 찾아오는 신체 변화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조금만 노력하면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중년기의 정점은 50세라는 것도 아주 기분 좋은 말이다. 우리 부부는 서서히 그 나이를 향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남편 손에 쥐어주려 해도 “아직, 난 그런 거 필요 없어”라고 완강하게 버틴다면, 그런 남자와 함께 이불 덮고 자는 여자들이라도 읽었으면 싶다. 다음은 아트 히스터가 한 말이다.

    “남편이자 직장 동료들의 귀에다 대고 이 책의 적당한 대목을 귀청이 터질 정도로 큰 소리로 읽어주어 이들 스스로가 이 책을 침 묻혀가며 읽게 만들고, 이 양반들이 여기 나와 있는 대로 꼭 실천할 수 있도록 들들 볶아주시기 바란다.”

    요즘 건강서 분야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마이클 로이젠·메멧 오즈의 ‘내몸 사용설명서’(김영사)는 ‘남자의 몸’보다는 덜 재밌지만 건강정보 측면에서는 더 백과사전적이고, 굳이 대상을 남녀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보편적이다. 이 책 저자들의 유머 감각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면 이렇다. “외과의와 MRI, 기생충의 공통점은?” “우리 몸의 내부를 볼 수 있다.”

    ‘내몸 사용설명서(원제 The Owner’s Manual)’라는 제목 그대로 이 책은 먼저 우리 몸의 구조를 설명한다. 책 속에 실린 80여 컷의 몸속 삽화에서는 짓궂게 생긴 꼬마 요정이 몸속 여행의 길잡이가 된다. 이렇게 열심히 내 몸속을 보여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변기 물이 잘 안 내려간다 싶으면 흡입기도 사용해보고 변기 뚜껑을 열어 조작도 해보면서 스스로 고쳐보려고 노력하듯이, 우리 몸도 스스로 치료하고 관리하면 오래오래 쓸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사람들이 자신의 차는 정성껏 관리하면서 정작 자기 몸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 책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자신의 몸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내 몸의 주인은 의사가 아니다

    저자 중 한 사람인 마이클 로이젠은 ‘건강 나이(Real Age)’ 개념의 창시자로 노년학의 권위자이며 미국 최고의 명의로 꼽히는 의사다. 당연히 이 책에서도 “나이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00세도 되기 전에 ‘나는 너무 늙었어’ 하고 느끼는 이유가 다 노화과정에서 질병을 앓기 때문이란다. 이 노화 관련 질병 중 80% 정도는 치료가 가능하고 그것도 첨단의학이나 권위 있는 의사에게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도 가능하다. 다음 세 가지 항목을 기억하고 일상에서 잘 관리하기만 하면 된다니, 흘려듣지 말기 바란다.

    첫째, 심장과 혈관의 노화-뇌졸중, 심장병, 기억력 감퇴, 발기부전 등을 일으킨다.

    둘째, 면역계 노화-자가면역 질환, 감염, 암 등을 일으킨다.

    셋째, 환경과 사회적 요소-사고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동맥이 어떻게 막히는지, 열쇠 둔 곳을 왜 자꾸 깜빡하는지, 심장과 뼈 운동은 어떻게 하는지, 자신의 면역세포가 왜 어떤 병에는 맥을 못 추는지, 내장 안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데서 그치면 곤란하다. ‘심장과 혈관’ 편에서 저자는 ‘시간을 내라’고 강조한다.

    “단 20분 정도만 운동을 해도 충분하다. 약간 숨이 차면서 땀이 날 정도의 강도로 20분 동안 계속 움직여주자. 결혼한 여성일 경우 직장 일에 아이들에 집안일까지 할 일이 끝이 없지만 자신을 위해 운동할 시간을 내는 정도의 이기심은 꼭 필요하다. 스스로 한결 더 건강해지면 부모나 자식을 돌보는 모습도 자연스레 더 좋아질 것이다.”

    결국 내 몸의 주인은 나이지, 의사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자의 몸’이나 ‘내몸 사용설명서’ 모두 흥미로운 서술로 독자를 유혹하지만, “이렇게 살다 죽을래” 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잔소리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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