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철도공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서울~평양~베이징을 연결하는 철도로 응원단을 실어 나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준비나 여건은 초보단계인데 구호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남북정상회담 혹은 연말 대선용 기획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베이징역 플랫포옴에서 북한 평양행 열차가 손님을 맞고 있다.
서울역과 베이징역의 만남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이미 ‘올림픽열차 띄우기’에 나섰다. 그는 지난 3월27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베이징올림픽 때 응원열차 운행이 가능하도록 올 하반기 중 준비단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북한과 중국 간에는 국제열차가 다니고 있어 북측에서 철로만 개방한다면 베이징올림픽 때 우리 응원단을 태우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3일 베이징에서 이우방 서울역장과 왕리 베이징역장이 철도사업 교류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양해각서에는 철도운영과 마케팅, 철도여객서비스 향상, 문화교류 등 양국 대표역의 철도사업 교류를 위한 공동협력사항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올림픽열차의 시발·종착역이 될 서울역과 베이징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우방 서울역장도 이날 행사장에서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한국철도가 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다. 더 나아가 한반도횡단철도(TKR)와 중국횡단철도(TCR)의 연결운행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픽열차 운행이 가능하려면 남북한 철도연결 및 열차 시험운행이 선행돼야 한다. 남측 구간의 경우 경의선은 2002년 12월 공사가 마무리됐고 동해선은 본선궤도 부설 등 열차운행을 위한 기본시설공사가 완료됐다. 북측 구간은 양 노선 모두 궤도 부설공사가 끝났다.
그러나 열차 시험운행은 북측이 열의를 보이지 않아 구체적 일정 등에 대해 아직 남북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남측은 올해 들어 범정부 차원에서 ‘철도연결’에 협상력을 쏟아 붓고 있다. 3월1일 20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올해 상반기 중 열차 시험운행을 하고 연내에 철도를 개통하자”면서 철도개통을 최우선 현안으로 제의했다. 반면 북측은 쌀, 비료 등 경제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철도가 대선 이슈 바꾼다”
결국 양측은 올 상반기 중 경의선과 동해선에서 열차 시험운행을 실시하기로 하는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합의에도 열차시험 운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시사저널’ 남문희 기자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번에 회담한 당사자는 북한 통일선전부인데 통일선전부는 열차 운행에 있어 큰 발언권이 없다. 우리 정부가 임기 말이고 대선까지 겹쳐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군이나 당 고위층을 만족시킬 만한 선물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은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하루 앞둔 2006년 5월24일 운행계획을 전격 취소한 전력이 있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정부가 남북 철도 연결에 열의를 보이는 것은 그것이 갖는 정치적 함의가 매우 크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남북 철도 연결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철도연결 합의를 7년 뒤인 2007년 비로소 실현했다는 의미가 된다. 북핵 위기 해소 국면과 맞물린다면 이만한 일도 없다. 특히 올림픽열차운행에 합의한다면 이는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성과물이 될 수 있다. 철도 연결은 대선 이슈를 ‘경제’에서 ‘북한’으로 바꿀 수도 있는 재료”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이철 사장은 대중적 정치인인데다 재임기간 중 치적을 남기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올림픽열차 사업에 상당히 열의를 보이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서울역 전경.(위) 평양역 전경.(아래)
올림픽열차 사업이 성사될 경우 대내외적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철도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열차 시험운행은 지난 50여 년 동안 끊긴 남북한 철도(경의선, 동해선 등)가 연결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런데 올림픽열차는 여기에 ‘실질적 효과’를 부가할 수 있는 사업이다. 올림픽열차가 운행되기 위해선 서울~개성 노선뿐 아니라 남북한내 최대 인구밀집지역인 서울~평양 노선에서도 열차시험운행이 이뤄져야 한다. 상징적 연결이 아닌 ‘실질적 이용단계’로 올라서는 것이다. 그러면 남북한 철도생활권이 가시화된다.
‘환(環) 서해 국제철도 노선’
나아가 올림픽열차사업이 완료되면 서울~평양~신의주~단둥~선양~베이징 등 한국, 북한, 중국의 수도권이 ‘하나의 철도 생활권’으로 연결된다. 이는 ‘환(環)서해 국제철도 노선’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서울~평양~베이징 올림픽열차 사업이 갖는 정치적 의미,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효과는 이처럼 커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성. 권영갑 한러문제연구소 소장은 “한국, 북한, 중국의 관련 3국이 모두 철도 연결에 열의를 갖는다면 철도 연결은 빠르게 진척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도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고조시킬 수 있고, 한반도와 육지로 연결된 대륙국으로서 철도가 해양세력에 대항하여 한반도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더없이 훌륭한 인프라가 되기 때문에 철도 연결에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북한이 소극적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 3국 철도가 연결되리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가정”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대북 전문가 사이에선 철도공사의 올림픽열차 사업 구상이 ‘정치논리’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철 사장은 여건이 제대로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올림픽열차 띄우기’부터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밝혔다. 시험운행도 못하는 상태에서 너무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특히 “서울~평양~베이징 노선이 내년 여름까지는 운행 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것부터 이해가 안 된다. 철도공사는 북한 철도 노선에 대해 최소한 실사 한 번이라도 해본 다음 올림픽열차 사업을 거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험운행도 못하는데 ‘띄우기’부터
통일부와 철도공사는 최근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에게 “철도공사가 베이징올림픽에 응원단을 실어나를 열차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고 구두 보고했다. 두 기관은 올림픽열차 사업과 관련해 북측의 누구와 접촉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선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다음은 철도공사의 남북철도연결 담당 부서 관계자와의 일문일답이다.
▼ 이철 사장이 언론에 밝힌 올림픽열차 사업은 어느 단계에 와 있나.
“글쎄…구체적으로 나온 건 없다. 그런 식으로 해보자는 방향이고, 여러 가지를 검토하는 정도다.”
▼ 철도공사는 올림픽열차의 북한 구간이 될 휴전선~개성~평양~신의주 노선의 현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나.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육안으로라도 한번 살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북한 철로에는 자갈도 거의 깔려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한국, 북한, 중국의 철로의 폭은 같다.”
열차가 남한 최북단 임진강을 지나고 있다.
“신의주에서 베이징까지 주2회 운행된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평양~베이징 노선에 열차가 다니려면 북한 구간 철로와 각종 시설에 대해 보수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 내년 여름 베이징올림픽 개막 이전에 열차로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갈 수 있나.
“그건 북한 구간이 어떠한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말하기 힘들다. 그렇게 빨리 될 수도 있겠지만 2년, 5년이 걸릴 수도 있고….”
▼ 북한과의 협의는.
“그건 잘 모르겠다. ‘나라님’들이 할 부분이니….”
이번에도 아니면 말고?
이철 사장은 지난해 독일월드컵을 앞두고도 “한국~북한~시베리아~독일에 이르는 독일월드컵 응원열차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당초 취지대로 실행하지 못해 빈축을 산 바 있다. 당시 철도공사는 ‘우리는 기차를 타고 독일월드컵으로 가는 꿈을 꿉니다’라는 대형 광고물을 설치하는 등 월드컵열차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에도 이철 사장은 언론에 먼저 발표부터 하고 난 뒤 추진해 계획이 수정에 수정을 반복했다. 이번 올림픽열차 사업도 비슷하게 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다음은 당시 독일월드컵 열차 사업을 비판한 ‘신동아’ 2006년 4월호 보도 내용.
“철도공사의 월드컵열차 프로젝트는 언론에 발표될 때마다 내용이 바뀌고 있다. 2006년 1월31일엔 부산을 출발해 개성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다른 뒤 시베리아열차로 독일까지 간다고 했다. 그러나 2월초엔 ‘개성까지는 열차로 간 뒤 비행기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다음 시베리아 열차를 탄다’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어서는 북한통과를 아예 배제하는 노선을 제시했다.”
철도공사의 한 관계자는 “서울~평양~베이징 노선이 여의치 않을 경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구상대로 ‘열차 페리 방식’으로 베이징에 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번에도 ‘아니면 말고’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부터 연결하라”
한 대기업의 대북사업 담당자는 “정치권이 남북 철도연결과 올림픽열차를 ‘대선 로또’로 여길수록 북한에 지급해야 하는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했다. 북측 민화협 한 인사는 2006년 초 대북사업을 추진한 삼성측 대리인에게 “남북 사이에 상설적으로 기차가 운행되기 위해선 남측이 북측에 6000억원 정도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목표를 서울~평양 노선 실현으로 잡느냐, 아니면 서울~평양~베이징 노선으로 잡느냐는 근본적인 차이를 불러온다고 한다. ‘중화(中華)사상’이 최고조로 발현될 것이 뻔한 베이징올림픽 에 응원단을 보내는 일회성 이벤트 때문에 특정 노선을 섣불리 결정지어 띄우기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권영갑 소장은 “남북철도 및 유라시아 철도 연결은 냉철한 경제논리, 외교논리로 풀어야 한다. 지금은 감성의 거품이 너무 많이 끼여 있다. ‘대선 깜짝 쇼’로 이용되는 데 따르는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권 소장의 말이다.
“지각 있는 정책집행자라면 한반도의 철도가 중국과 러시아 중 어느 쪽으로 먼저 연결되는 것이 남북한 국익에 도움이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이다. 철도연결로 남북한과 중국이 더욱 공고하게 밀착하는 것이 현재의 동북아 정세에서 과연 남북한에 유리할까. 연해주와 시베리아의 농업 임업 에너지 자원의 활용 및 개발, 유럽으로의 연결 편의성과 비용, 중국 견제자로서 러시아의 국가 성격을 고려했을 때 남북한 간 철도연결이 되고 난 뒤 첫 번째 국제철도는 러시아 방향으로 뻗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