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턱대고 따라 하기’가 스피킹 기본
- 핵심은 ‘영어로 교양 쌓기’
- ‘단어는 많이 아는데 써먹질 못한다’고?
- 영문 뉴스 받아쓰기는 청취력 향상 지름길
- 매일, 꾸준히, 그리고 많이!
공부하는 학생 처지에서만 보면 FTA시대가 열리면서 기회와 위기가 한꺼번에 닥칠 듯하다. 미국에서 한국으로의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외국인 회사’ ‘한국인 회사’의 구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회계사, 의사, 기술사 같은 전문직 자격증도 머지않은 장래에 추가협상을 통해 개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성공의 관건은 무엇인가.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 협상을 얼마나 잘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즉 영어 구사력을 얼마나 갖추냐가 개개인의 생존을 결정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도 영어가 ‘생존의 도구’라고들 하지만 몇 년이 더 지나 지금의 중고생, 대학생이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면 생존을 위한 기대효과나 레벨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지금처럼 인사말과 자기소개 몇 마디 하는 식으로 우리끼리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는 수준을 넘어, 정교하고 적확한 어휘선택과 문장구사를 통해 나와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래야 FTA시대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여태까지의 영어학습 목표수준이 ‘외국에서 마음대로 밥 사먹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외국에서 자유롭게 밥 벌어먹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영어공부 환경은 어떤가. ‘English Divide’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영어를 둘러싼 양극화 현상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정치논리의 지나친 일반화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 매스커뮤니케이션 접속환경이 광범위하게 확대된 점을 고려하면 영어공부는 여전히 본인의 노력이 90% 이상을 좌우한다고 본다.
이젠 외국에서 몇 년 살았다는 것도 ‘절대 미덕’이 될 수 없다. 한국인의 영혼, 국가관, 역사의식이 조합된 바탕에서 영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가 주요 변수이지, 체류기간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일단 체류 경험만 있어도 인정해주던 시대는 지났다. 외국 체험에 대해 약간의 피해의식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점을 곱씹어보기 바란다.
다만 일주일에 그저 두어 시간 영어책 좀 들여다보고 미국 드라마 한두 편 보면서 ‘노력’이라고 여기는 것은 영어를 둘러싼 현재의 ‘세계사적 환경’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시각이 아닌가 한다. 영어공부가 일상생활의 의미 있는 일부분이 될 때까지 갈고 닦아야 한다.
‘섀도잉’의 놀라운 효과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던 CBT토플에서 인터넷 기반의 ibt토플 체제로 바뀌면서 한국 학생들의 점수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토플 점수 조견표를 보면 CBT로 250점을 맞으면 ibt로 100점을 맞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CBT 260, 270점을 맞던 학생들이 ibt로 100점은커녕 80, 90점도 못 맞는 사례가 많다. 상대적으로 점수 따기가 쉽던 문법 파트가 없어지고 스피킹 파트가 신설됨에 따라 생긴 현상이다.
여기서의 스피킹은 단순한 ‘회화’ 능력 테스트가 아니다.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누구이며 그 이유는 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1분 이내에 6개 정도의 문장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연결해야 한다.
말하기 연습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생각하고 말하기’이고, 다른 하나는 ‘무턱대고 따라 하기’이다. 나는 후자를 우선 권한다. 무턱대고 열심히 따라 하며 원어민의 호흡과 어조 발음 등을 흉내 내다보면 어느새 혀가 부드럽게 풀어진다. 문장과 문장을 잇는 연결고리나 일상적인 어구들을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혀가 먼저 돌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최근 토플 시험에 ‘스피킹’ 항목이 추가되며 한국 수험생들의 점수하락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무턱대고 따라 하기에는 ‘섀도잉’(shadowing)이란 방법이 좋다. 카세트테이프건 비디오건 원어민의 말이 담긴 내용물을 구해 한 문장 단위로 끊어가면서 함께 읽어가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원어민이 한 문장을 이야기하면 일단정지(pause) 버튼을 누르고 따라 한 다음 다시 재생해야 하지만, 요령이 붙으면 그냥 틀어놓은 상태에서 보조를 맞출 수 있다.
섀도잉을 하다보면 미세한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예컨대 ‘I don’t know if it is a car’라는 문장을 말할 때 한국인은 열에 아홉이면 ‘아이 돈 노우’를 먼저 말하고 약간의 휴지기를 둔 다음 ‘이프 잇 이즈 어 카’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원어민의 연음행태를 들어보면 ‘아돈노이프’까지 말한 다음 ‘이디저 카’가 뒤따르는 수가 많다. 이런 식으로 전체적인 리듬을 따라가다보면 혀의 움직임도 매우 자연스러워진다. 따라 할 때는 가능한 한 입을 크게 벌리고 큰소리로 하는 것이 좋다. 혹자는 연기 연습하듯이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도 100% 동의한다.
무의식 중에 문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웅얼웅얼 반복하다보면 정말 혀가 근질거릴 때가 있다. 그때는 콘텐츠를 만들고 스크립트를 만들어 이야기해보거나 기존의 콘텐츠를 외워서 말해보거나 하는, 좀더 심화된 연습을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혼자 벽을 보고 연습하는 것보다는 뜻 맞는 동료들과 짝을 지어 연습하는 게 효과적이다. 말하기란 결국 ‘상대’와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굳이 네이티브 스피커를 찾을 까닭이 없다. 일단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말하기에 필요한 주제를 정한 다음 서로 준비한 내용을 말하고 그에 대한 보충 질문과 토론을 벌이는 시간을 갖는 게 유익하다. 준비해서 연습해본 문장은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새로운 차원의 교양 쌓기
주제를 정하지 않고 즉석에서 말을 꺼내는 방식은 서로 시간낭비일 뿐이다. 어느 정도 실력 있는 사람들이 원어민 회화 강사들과 영어이름 짓기와 안부 묻기, 혹은 ‘주말에 뭐하고 지냈니’ 같은 일상적 대화에만 매몰돼 말을 이어 나가는 장면을 자주 접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 정도는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학습으로서는 별무효과다.
미국인과 대화가 안 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말을 이어갈 수 있는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급 단계로 갈수록 영어권 국가의 역사, 문화, 시사상식 등이 대화의 수준을 결정하는데, 많은 학습자가 이 같은 지식을 쌓는 데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는다.
한국의 신문, 방송, 인터넷을 장식하는 머리기사는 대개 한국 내부의 사안, 특히 한국의 정치 상황을 전하는 것으로, 영어권 선진국들의 머리기사와는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매번 학생들이 이라크전쟁 소식을 영어로 접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평범한 영미권 대학생이나 샐러리맨이 관심을 갖는 보편적 소재에 대해 너무 모른다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령 몇 년 전부터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나 미국의 ‘타임’ 등에 자주 소개되는 ‘medical tourism’이란 단어를 보자. 책을 읽거나 현지인들과 대화할 때 이런 말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의료보험수가가 너무 비싸 환자들이 태국이나 인도 등 동남아의 외국인 전문병원으로 원정치료를 떠나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치료비가 미국의 5분의 1, 심지어 10분의 1 수준이라 환자들이 계속 몰리고, 병원도 확장되는 추세다. 특히 진단과 예후가 비교적 정확한 수술의 경우 아시아 의사들의 솜씨가 좋기 때문에 환자들의 반응이 좋다.
단순히 ‘시사상식’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런 단어들을 공부하면 국제화를 저절로 체화하게 된다. FTA시대에는 한국에서 딴 자격증으로 미국에 취업할 수 있는 전문직 비자 쿼터도 생길 수 있다. 먼저 의사, 변호사, 기술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그 수혜를 챙길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의대에 진학하거나 편입해서 해외 진출을 노려보겠다는 동기가 일어날 수 있다. 경영대학원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장차 한국과 미국이 서비스시장 상호개방을 할 경우 한국에도 저런 식의 병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때에 대비해 동남아 병원들의 대(對)미국 선진 마케팅 기법을 알아둬야겠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한국 의료계에서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원정 진료 혹은 미국이 투자하는 국내 병원들로 인해 한국 의료시장이 고사(枯死)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이처럼 미국의 아시아 의료시장 수요도 크다는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더 많은 기회를 선점하게 될지 모른다.
필자 이익훈씨가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와 만나고 있다. 촘스키는 제2언어 교육은 9~10세 때 시작하는 게 좋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의 전환을 가능케 해 주는 것이 ‘영어로 된 교양 쌓기’다. 다시 말해 미국의 시사정보, 문화 이야기는 곧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므로 보다 더 신경을 써서 공부해야 한다. 세계인이 즐겨 보는 잡지나 신문을 꾸준히 읽어보는 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거의 유일하게,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미국의 ABC 뉴스도 미국의 현주소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취미생활 즐기면 금상첨화
영어를 취미처럼 다룬다면 이런 유의 교양을 더 수월하게 습득할 수 있다. 미국 드라마든 뉴스든 영화든 취미를 붙이면 그만큼 시간을 더 할애하게 되고, 더 많이 알게 되므로 영어를 구사할 때 자신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나도 30년 전 미국 유학생 시절에 취미로 영어를 배운 적이 있다. ‘미주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던 1977년으로 기억되는데, 그때 메이저리그 야구와 미식축구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신문에 ‘메이저리그의 역사’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당시 26개 구단의 역사, 역대 감독 및 선수 이름을 달달 외웠다. LA다저스 구장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은퇴한 토미 라소다 감독과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라소다 감독과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자 그는 LA다저스 구장 음향효과 담당자를 설득해 어느 날 전광판에 “동아일보 환영!(Welcome! Daily Dong-A Ilbo)”이라는 문구를 5초 동안 보여주며 나를 환영하기도 했다. 마침 그 경기가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덕분에 각 지역에 사는 교포들의 격려전화가 미주 동아일보로 쇄도했다.
이듬해에는 ‘미식축구 시청 요령’이라는 칼럼을 쓰게 됐다. 미식축구에 문외한이었지만, 야구 칼럼 솜씨를 인정받아 얻어낸 칼럼이었다. 요행히도 나는 테드 그린이라는 ‘LA타임스’ 스포츠 기자와 친해졌고, 모르는 게 나올 때마다 그에게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다행히 그가 나의 ‘적극성’에 반해 이런저런 코치를 해주는 걸 마다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28개 미식축구 구단의 사정을 꿰는 ‘박사’가 될 수 있었다.
야구나 미식축구는 미국인의 ‘국민 취미(national pastime)’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야구와 미식축구를 통해 알면 알수록 말로나 글로 설명하기 힘든 미국의 문화, 미국인의 의식구조를 이해하게 됐고 각 주와 도시의 특성도 익힐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의 여론주도층 인사를 만날 기회가 있을 때 자연스레 야구나 미식축구 이야기를 화제로 올렸고, 그러면 그들은 나를 더욱 친숙하게 대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서 공통분모를 찾게 마련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교제의 무대에서도 잘 통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지사다.
영어를 좀 한다는 학생들의 대표적인 착각 중 하나가 ‘단어는 많이 아는데 막상 써먹지를 못한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10명 중 7, 8명은 알고 있는 단어의 절대량이 부족하거나 뜻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다.
단어만 많이 안다고?
전자의 경우 영문 시사잡지의 반 페이지짜리 토픽을 보더라도 모르는 단어가 10개 이상 쏟아지는 수가 많다. 그러면 이렇게 자위한다. “이런 쓸데없는 단어는 외우지 않아도 돼. 문맥은 잡았으니까 상관없어.” 이런 현상은 단어 몇 개를 몰라도 독해지문에 나온 문제들을 다 풀 수 있는 ‘변칙 시험 영어’에 눈높이를 맞췄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대강 듣고 대강 말해서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는가. 농담이나 일상회화를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지 몰라도 계약서를 쓰고, 책임을 지우고, 일을 맡기는 데는 터무니없는 결격사유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단어는 많이 아는데…’라는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면 ‘텔레토비’나 ‘토마스 트레인’ 같은, 영어권나라 5세 미만 유아들이 즐겨 보는 비디오를 구해 영문 자막을 띄우고 시청해볼 것을 권한다. 동화책을 훑어보는 것도 좋다. 어지간한 수준의 ‘영어 선수’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동사, 부사, 형용사들이 튀어나오는 통에 당황하기 십상이다. ‘내가 꼬맹이들보다 모르는구나’라는 겸손함을, 또한 약간의 치욕과 승부욕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영어도사’로 가는 지름길이다.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학생도 의외로 많다. 단어가 활용되는 예문을 제대로 학습하지 않은 탓이다. 전쟁터에 총은 들고 나갔는데 총알을 제대로 끼울 줄 몰라 총을 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선 사전을 찾을 때 예문을 한 번만 더 살피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venue’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범행지’ ‘행위의 현장’이라는, 입과 귀에 착 달라붙지 않는 한국어를 구경하게 된다. 이것만 보고 나서 이 단어를 실전에서 응용하기는 어렵다. 만일 비즈니스 파트너, 또는 대학 관계자에게서 e메일이 왔는데 ‘venue : Hilton hotel’이란 문구가 있다면? 여기서 venue는 단순히 ‘장소’로 해석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공문서에서 ‘행사의 개최장소’란 뜻의 단어를 쓸 때는 항상 이 단어를 쓰기 때문에 더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 언뜻 ‘범행장소가 힐튼 호텔?’이란 생각이 들었다면 영어공부를 좀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건강관련 토픽에서 ‘Walking goes a long way’라는 어구를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단어가 하나도 없는 정말 쉬운 문장이지만,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걷는 것이 힘들다는 뜻일까. 이렇게 약간 고민하다가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에 이와 비슷한 문장을 보아도 이런 식의 ‘부적절한 현실타협’으로 상황을 모면하기 쉽다. 여기서 쓰인 ‘go a long way’는 일종의 숙어구문으로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걷기운동은 효과가 있다’는 의미다. 이렇듯 쉬워 보이는 단어일수록 다양하게 활용되는 만큼 신경 써서 암기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많은 단어를 외울 수 있을까. 우선 매일 ‘단어 외우는 시간’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시간 투자 없이 한두 번 쓱 보고 거저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으로는 공간을 잘 활용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워드 파일에 폰트를 작게 하고 빈 공간 없이 영어 단어를 가득 채우면 수십개를 적을 수 있다. 이 한 페이지를 인쇄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외우면 크기가 작은 단어장 10페이지 분량에 해당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녹음기를 활용한 단어 암기도 영어 고수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의외로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친밀도랄까 호기심이 발동해 기억에 남는 효과가 더 큰 것 같다. 신경 써서 발음해보고, 가능하면 구(句)나 문장 단위로 녹음하면 단어 암기와 함께 스피킹 실력의 비약적인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듣기와 받아쓰기를 동시에
들어야 한다. 들리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 같은 논리로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는 사람 중에 ‘듣기는 잘하는데 말을 못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어불성설이다. 정확히, 그리고 충분히 못 듣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대충 들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나중에 스크립트를 구해 보면 깜짝 놀라는 수가 많다. 몰라서 못 들은 단어는 차치하고, 알면서도 놓친 조동사, 고유명사, 관사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한국말만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아니다. 언어란 원래 외형상 조그만 차이도 큰 의미변화로 귀결되는 수가 많다. 고급영어로 갈수록 정교함과 정확성을 높이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 더구나 FTA시대를 맞은 학생들이 지향해야 할 영어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계약서 영어’다. 내가 쓰는 한 마디, 한 글자가 엄청나게 큰돈을 버느냐 혹은 잃느냐를 좌우할 수 있다.
뉴스에서 ‘the Williams’라는 단어를 들었다고 치자. 이는 ‘윌리엄씨 부부’라는 뜻이지만 대강 들으면 ‘윌리엄이’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다. ‘should have been’같은 어구도 연음현상 때문에 ‘슈더빈’으로 들릴 때가 많다. 이를 ‘슈드비’(should be)로 듣고 해석한다면 ‘후회’의 의미를 ‘의무’나 ‘명령’으로 착각하는 결정적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초보자일수록 ‘들으면서 받아쓰라’고 권한다. 순간 구간 반복이 잘되는 녹음기를 구입해 처음에는 몇 개 단어, 익숙해지면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음을 기억해 종이에 써내려가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5분짜리 뉴스 하나를 받아 적는 데 3시간도 넘게 걸리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10~20분이면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 받아 적다보면 모르는 단어를 암기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정확한 어법의 사용에 대해 스스로 실감나게 체득할 수 있다. 앞의 스피킹 공부법에서 언급한 ‘섀도잉’과 함께 학습하면 말할 것도 없이 더욱 효과적이다.
이런 과정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집중력인데, 1시간 내내 카세트만 듣는다고 귀가 뚫리는 것은 절대 아닌 만큼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 반복해서 듣는 게 필요하다. 안 들리는 부분을 중심으로 여러 번 구간 반복해서 듣고, 들리는 부분이라도 암기해서 입 밖으로 낼 수 있을 때까지 여러 번 듣는 게 효과적이다. 실력을 생각하지 않고 욕심만 앞서 구간을 넓게 설정하면 효과는 반감된다.
교재는 미국 방송에서 나오는 뉴스가 좋다. 흔히 뉴스가 어렵고 딱딱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기자들의 깨끗한 음성은 물론이고, 속도감 있으면서 실전에 바로 응용할 수 있는 취재원들의 살아 있는 생활영어도 접할 수 있다. 단어가 어렵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도 자신의 수준 탓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뉴스에선 대개 평범한 고교 재학생 수준이면 거의 다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한다. ‘딱딱하다’는 느낌 또한 ‘뉴스=이라크나 북핵 사태 속보’로만 국한해 그 이미지를 규정한 탓이다. 경제, 문화, 건강, 레저, 화제의 인물 등 듣다보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코너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 드라마도 무척 좋은 교재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그쪽에 취미를 붙였다면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다만 주변에 가끔 드라마를 통해 그야말로 허구의 삶에서나 가능한 표현이나 속어들을 익혀 두고두고 써먹는 이들이 눈에 띄어 안타깝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잘 아는 말만 표현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그런 말을 써야 할 때가 아닌데도 드라마에서 배운 표현이라는 이유로 계속 써먹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뉴스에서 기자들이 코멘트하는 것은 메시지 전달에 방점을 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응용해도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다.
나는 학원과 대학 강단에서 ‘AP 뉴스’를 받아쓰라고 많이 권한다. 5분 분량이어서 초보자가 도전하기에도, 숙련자가 연습하기에도 매일 하는 분량으로는 적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가끔 초등학교 고학년생이나 50, 60대 중장년층 중에서도 “1년쯤 했더니 잘 써지고 잘 들리더라”고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말하기는 몰라도 ‘듣기’만 보자면 나이가 문제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절대시간 확보는 필요하다
받아쓰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자신의 생각을 기승전결을 갖춰 전개하는 영어 쓰기(writing)의 벽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설명을 하다보니 이렇게 구분되는 것이지, 꾸준히 공부하다보면 결국은 이 분야 저 분야 함께 실력이 늘게 돼 있다.
쓰기에서도 모방이 중요하다. 아는 단어들을 조합해 한글 구조를 영어로 옮기는 데만 천착해서는 안 된다. 그때그때 독해나 청취과정에서 우리의 의식구조로는 성립되지 않는 문장, 어구들을 잘 메모해놓은 다음 열심히 써먹는 수밖에 없다.
공부를 시작할 때 우리는 ‘매일, 꾸준히, 조금씩’이란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매일, 꾸준히’까지는 같은데 ‘조금씩’이 아니라 ‘많이’ 했다는 사실이 다르다. 그렇다. 실력을 늘리고 싶다면 최우선적으로 영어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매일, 꾸준히, 많이’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조금씩이라도 매일 하게 되지, 처음부터 ‘매일 조금씩’이라는 편한 태도로 임하면 현상유지에 그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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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딱히 무슨 ‘진도’라는 게 있는 과목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영어에 대한 절실함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충만해지면 언제든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현재의 자기 수준을 파악한 다음 적당한 교재를 선정해 필요하면 교습도 받으면서 듣고 쓰고 읽고 말하면서 공부하면 된다. 무슨 책을 뗐더니 실력이 크게 늘었다, 꼭 어느 학원을 다녀야 된다, 외국에서 몇 개월(혹은 몇 년)을 살아야 한다, 이 방법을 썼더니 몇 달 만에 귀가 다 뚫렸다는 말은 대부분 거짓이거나 과장이다.
영어는 정직하다. ‘무식하게’ 돌진하고 끊임없이 다듬다보면 조금씩조금씩 향상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던 ‘고지’는 조금씩 뒤로 이동한다. 그렇게 또 몇 년 혹은 십수년을 지내다 보면 ‘고지’란 건 애초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계속 ‘그냥’ 해라. 하면 된다. 아니, 열심히 하다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