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후속보도

행방불명 국정원 직원 변우의 사건

국정원 기록 관리 부실, 진실 규명 소홀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9-08-26 08: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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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말 가족들 국정원에서 3시간 설명 듣고도 의문 커져

    • 실종 5일 만에 서둘러 사건 종결한 이유는?

    • 7회 진정했으나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은 1건뿐

    • 무단이탈인가, 내부 변고인가

    • “세상에 이런 일이, 진실은 꼭 밝혀져야” 댓글 이어져

    변우의(왼쪽), 변재의 씨 형제.

    변우의(왼쪽), 변재의 씨 형제.

    ‘신동아’ 7월호가 단독 보도한 ‘행방불명 국정원 직원 형님의 눈물(변우의 사건)’ 기사를 읽고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다. 신동아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의 해당 기사에는 하루속히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는 댓글이 다수 이어졌다. 

    “45년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마음을 헤아려서 조속히 진실이 밝혀지기를.”/ “세상에 이런 일이,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명색이 국정원인데 스스로 못 찾았다고 하면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게 아닐까.”/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 

    ‘변우의 사건’이란 1974년 6월 23일 오후 국가정보원(당시 중앙정보부, 이하 국정원) 교육생 요원 변우의(당시 27세) 씨가 청사에서 갑자기 행방불명된 일을 말한다. 변우의 씨는 1974년 1월 4일 국정원에 들어가 행방불명되기 전까지 6개월 이상 요원 교육을 받고 있었다. 동기생들과 가족에 따르면 교육 성적이 우수했던 우의 씨는 6월 22일 토요일 외출했다가 이튿날인 23일 일요일 오후 1시경 기숙사(2인 1실 사용)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후 점호 시간과 저녁식사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고, 행방불명됐다. 

    변우의 씨가 자의로 국정원 청사를 떠난 것인지, 내부에서 어떤 변고가 있었던 것인지 여러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다. 사고 직후 국정원 일부 직원들은 우의 씨의 자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청사 뒷산인 성북구 천장산 일대를 며칠간 수색했으며, 경찰에도 실종 신고를 했다고 한다.

    사건 종결하고도 가족에게는 “계속 찾고 있다” 말해

    사고 이후 45년 동안 가족들이 국정원과 청와대 등에 여러 차례 진정서를 제출했을 때 국정원은 “당국에서 찾고 있음”이라는 짧은 답변만 해왔다고 한다. 동생 용의 씨는 “노무현 정부 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우의 형님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뒤 두 달쯤 지나서 국정원 관계자가 전화해서는 계속 찾고 있다고만 말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지난 5월 말 국회 정보위원회 한 의원실에도 “(변우의 사건이) 최종 결론 난 게 아니어서 자료를 제출하기 어렵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2주 뒤 신동아의 질의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우의 씨가 1974년 임용돼 교육받던 중 무단이탈하고 미복귀해 직권면직됐다”고 ‘결론’지었다. 



    이 사건이 보도된 뒤 국정원 측은 변우의 씨 가족에게 연락해 관련 사항에 대해 설명하겠다며 내원을 요청했다. 큰형 재의 씨 등 가족 3명은 7월 25일 오후 국정원 청사에 들어가 3시간 가까이 설명을 들었다. 문제는 국정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족의 의구심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가족은 먼저 우의 씨가 국정원의 비밀요원으로 선발돼 특수 임무를 맡았을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부인하며 “우의 씨는 6월 23일 저녁 8시에 외출했고, 27일 퇴교 처리됐으며, 28일 면직 처리 및 지명 수배됐다”고 답했다. 사고 발생 5일 만에 신속하게 면직 및 지명수배 조치까지 진행된 것이다. 그 과정에 국정원 관계자 누구도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큰형 재의 씨는 “지명수배 조치 기록은 1974년 당시에 작성된 것인지 이번에 신동아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만든 것인지부터 의문이 든다”며 “1974년 기록이라 해도 내부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해 그것을 덮은 게 아니라면 왜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그렇게 서둘러 결론을 내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신문고에 다시 질의

    국정원 직원 변우의 씨 사건을 처음 다룬 신동아 7월호 기사.

    국정원 직원 변우의 씨 사건을 처음 다룬 신동아 7월호 기사.

    재의 씨는 1974년 당시 국정원이 가족에게 사고 소식을 알린 것은 열흘이 지나서였다고 기억한다. 우의 씨의 소지품(안대, 수건, 책, 수첩, 옷 등)이 담긴 가방을 가족이 언제 수령했느냐에 대해서는 가족과 국정원 측이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재의 씨는 그해 여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국정원은 가족이 2~3차례 수령을 거부해서 12월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정원의 기록 관리가 부실해 가족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우의 씨 가족은 국정원 등 정부에 7회 이상 진정서를 냈는데, 국정원에 관련 기록이 있는지 물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진정서는 1978년에 만들어진 1건뿐이다”고 답변했다. 여러 차례 진정서를 냈던 재의 씨는 “진정서를 계속 내자 1985년 국정원이 나를 남산 청사로 불렀다”며 “그때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문서에 서명까지 했는데 그 면담 자료도 없다고 하니 도대체 자료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74년에 사건을 종결했다면 1985년에 나를 남산으로 불러 면담한 이유는 또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셋째, 가족은 국정원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면 관련 기록을 확인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주민등록번호가 지금과 달라(1975년 개정) 알 수 없다며 가족에게 직접 확인하라고 했다. 우의 씨 가족은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이 그것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답답했다”고 말했다. 

    넷째, 국정원 측은 사건 발생 3개월 뒤 우의 씨의 모친에게 퇴교 조치에 대해 통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의 씨 가족은 누구도 그 내용을 알지 못했고, 국정원 기록에 나오는 모친 이름도 잘못 기재돼 있음을 알고 더욱 의구심을 가졌다. 우의 씨 동생 은숙 씨는 “우리 가족이 인정할 수 있도록 정확한 관련 자료가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답답해했다. 

    국정원의 해명을 듣고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가족은 8월 8일 14가지 추가 질문 사항을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에 보냈다. 법상 권익위원회가 이 내용을 관련 기관인 국정원에 전달하면 국정원은 답하게 돼 있다. 은숙 씨는 “이번에는 좀 더 정확한 답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사과해야”

    동생 용의 씨는 “시간이 오래 지나 당시 관련자들은 국정원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며 “동기생들이 용기를 내어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얘기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동아와 통화한 한 동기생은 “변우의 사건은 동기들 사이에서도 불가사의한 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큰형 재의 씨는 “동생 우의는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국정원에서 나라를 위해 일했던 사람이다”며 “관리 책임이 있는 국정원은 책임감을 갖고 가족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의 씨 실종신고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국회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 의원 측이 경찰청에 관련 기록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규칙상 25년이 지난 문서는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답해 왔다.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을 맡았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는 “과거사위 당시에는 이 사건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며 “지금이라도 가족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진실이 규명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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