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부작용 없이 살 빼는 약? 이번에도 속았지!

정상 체중이 비만치료제 쓰는 건 ‘바보짓’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9-0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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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센다에 속았다” VS “원래 그런 약이다”

    • 비만은 ‘완치’ 아니라 ‘관리’하는 것

    • 제니칼, 리덕틸 … ‘비만치료제 대표선수’ 계속 바뀌는 이유

    • 체중 감량 효과 1위 큐시미아가 답이다?

    “삭센다로 감량한 뒤 약을 끊고 체중을 유지하려면 삭센다만큼 효과적인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비만은 평생 지속되는 질병이다. 비만 치료에 기한을 두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캐나다 출신 비만치료 전문가 션 워튼 박사가 한 얘기다. 그는 지난해 9월, 노보노디스크사가 우리나라에서 주최한 비만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해 ‘삭센다 치료 기간’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노보노디스크는 비만치료제 삭센다 제조사다. 삭센다는 지난해 3월 국내 출시 후 한때 품귀 현상을 빚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부작용 없이 안전하게 살을 빼준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단기간에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을 석권했다. 

    의약품 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올 1분기 비만치료제 부문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이 바로 삭센다다. 매출 면에서도 전체 비만치료제 중 유일하게 100억 원을 돌파하며 1위에 올랐다. 2위는 디에타민, 3위는 벨빅이 각각 차지했다.

    평생 맞아야 하는 주사?

    삭센다 [©Novo Nordisk]

    삭센다 [©Novo Nordisk]

    디에타민과 벨빅은 알약이다. 경구 복용 방식으로 섭취한다. 반면 삭센다는 주사제다. 사용자가 매일 한 번씩, 피하지방에 직접 주사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주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출시 전엔 주사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가 삭센다 사용을 꺼릴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이 빗나갔다. 판매 즉시 인기몰이를 시작한 삭센다는 서울 강남 일대 비만 클리닉에서 널리 사용되며 ‘강남주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상당수 의료기관이 삭센다를 “안전성이 검증된 비만치료제” “하루 한 번 주사로 확실한 감량 효과” 같은 문구로 홍보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이 2014년 삭센다를 공식 승인했다.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약물인 건 분명하다. 문제는 ‘효과’가 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션 워튼 박사의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삭센다로 인한 체중 감소가 약물을 끊은 뒤에도 저절로 유지되는 건 아니라고 밝혔다. 감량 효과를 유지하려면 삭센다를 계속 맞거나 다른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초고도비만 판정을 받은 뒤 건강을 관리하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의사 김유현 씨도 “비만은 만성질환이다. 삭센다든 뭐든, 단기간에 이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고 강조했다. 

    “당뇨 치료를 시작하며 ‘3개월만 주사를 맞으면 모든 게 끝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인슐린 치료를 멈추고 관리하지 않으면 혈당이 다시 높아진다. 비만도 마찬가지다.” 

    ‘다이어트하는 닥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블로그, 유튜브 등에 자신의 체중관리 과정을 공개하고 있는 김씨는 수많은 다이어트 치료제를 직접 사용해봤다. 의사로서 약물의 작용 기전도 분석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비만을 단기간에 치료하는 기적의 약물은 아직 없다.”

    ‘체중 감소’의 실상

    살을 빼고자 삭센다를 계속 맞으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삭센다 용기는 펜 모양이다. 이용자는 삭센다 펜에 일회용 주사침을 끼우고 하루 한 번씩 일정량의 주사제를 투여한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쓸수록 체중 감량 효과가 크다. 반면 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다(삭센다에도 부작용이 있다!). 이를 막고자 1주차 0.6mg, 2주차 1.2mg 식으로 조금씩 주입량을 늘려가는 게 보통이다. 의학적으로 허용되는 하루 최대 투여량은 3.0mg이다. 앞의 방식을 따를 경우 5주차부터 매일 3.0mg씩 주사하면 된다. 삭센다는 비급여의약품으로 처방기관마다 가격이 다르다. 서울에서는 펜 한 개당 10만~12만 원 정도에 팔린다. 그 안에는 삭센다 18mg이 들어 있다. 하루 0.6mg씩 맞으면 30일, 1.2mg씩 맞으면 보름쯤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최대 용량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6일에 한 개씩 새 펜을 사야 한다. 이 값으로만 한 달에 40만 원 이상 든다. 

    이렇게 주사를 맞으면 살이 얼마나 빠질까. 2015년 저명 의학저널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실린 연구 결과를 찾아봤다. ‘체중 관리에 있어서 리라글루티드(삭센다 성분명) 3.0mg 무작위 대조군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임상시험 결과 삭센다 투여 집단의 63.2%가 체중을 5% 이상 감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여자의 33.1%는 몸무게가 10% 넘게 줄었다. 삭센다 효과를 얘기할 때 꽤 자주 인용되는 내용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 임상시험의 설계다. 삭센다 투여 기간 56주, 임상시험 대상자 평균 체질랑지수(BMI) 38.3, 체중은 106.2kg으로 돼 있다. 56주는 1년이 조금 넘는 기간이다. 체질량지수 38은 키 167cm일 때 몸무게가 106kg이어야 나오는 수치다. 마지막으로 체중 106kg의 5%는 5.3kg이다. 즉 이 임상시험은 고도비만 환자가 삭센다를 1년 넘게 투약하면 몸무게를 5.3kg 이상 줄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보여준다.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이 정도 체중은 밥 며칠 굶어도 빠진다. 삭센다가 해외에서 명성을 얻은 건 단기간에 살을 쭉쭉 빼주는 약이어서가 아닌데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잘못 알려져 있다”고 혀를 찼다. 일부 ‘업자’들이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삭센다의 특징은 ‘장기 투여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비만 환자가 큰 위험 없이 꾸준히 사용하며 체중을 관리할 수 있게 돕는 전문의약품이다. 이게 목적이라 임상시험도 고도비만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비만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이 삭센다를 사용했을 때 얼마나 감량 효과를 얻는지에 대해서는 변변한 임상시험 결과가 없다.

    주사 놓은 자리 지방 분해?

    제니칼 [©VIVUS]

    제니칼 [©VIVUS]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삭센다가 현재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효과 좋은 다이어트 보조제’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삭센다 출시 초기 많은 의료기관이 판매 경쟁을 벌이며 약효를 과장했다. 적절한 진료 없이 삭센다를 처방 판매해 보건 당국에 적발된 곳도 많다. 다양한 경로로 시장에 풀려나온 삭센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각종 온라인 마켓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통된다. 인터넷 공간에는 “친구가 처방받은 삭센다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SNS를 통해 삭센다를 공동구매했다” 등의 후기가 넘쳐난다. 삭센다 열풍 이후 1분기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50.5% 늘었다. 

    김성래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분위기가 2000년대 초반 ‘제니칼 열풍’ 당시를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제니칼은 지방 흡수를 억제해 살이 빠지게 하는 비만치료제다. 제니칼을 먹으면 음식을 통해 섭취한 지방 중 약 30%가 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된다. 부작용으로 가스 배출, 기름진 분비물 배출, 변실금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또 탄수화물 위주 식습관을 가진 사람은 기대한 만큼의 체중 감량 효과를 얻기 어렵다. 제니칼은 지방 대사에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니칼 출시 직후 우리나라에서는 이 약이 ‘기적의 다이어트약’처럼 여겨졌다. 김 교수는 “당시 일부 의사들은 환자가 병원에 찾아와 ‘살 빠지는 약 주세요’ 하면 그냥 제니칼을 처방해줬다. 그 때문에 한때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니칼이 많이 팔리는 나라가 됐다”고 소개했다. 제니칼 이상 열기는 이 약의 부작용과 한계를 ‘체험’한 사용자의 입소문으로 오래지 않아 한풀 꺾였다. 

    제니칼의 바통을 이어받은 리덕틸은 복용 시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나 2010년 판매가 중단됐다. 이후 한동안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에 새로 불을 지핀 게 바로 삭센다다. 강아라 약사(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정책부장)는 이런 상황을 크게 우려했다. 

    “FDA가 허가한 비만치료제 처방 대상은 △BMI 30 이상 또는 △BMI 27 이상이면서 당뇨/고혈압/이상지질혈증 등이 있는 사람이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부작용을 감수하고 삭센다를 맞을 이유가 없다.”

    구토, 두통, 무기력

    특히 피해야 하는 것은 S라인을 만들 목적으로 삭센다를 주사하는 행위다. 일선 의사들에 따르면 휴가철을 앞두고 병원을 찾아 “노출 부위 군살을 정리하고 싶다”며 삭센다 처방을 요구하는 이가 적잖았다. 한 비만클리닉 원장은 “삭센다가 피하주사이다 보니 복부, 팔뚝, 허벅지 등 주사제를 투여하는 부위 지방이 분해돼 신체 라인이 예뻐지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삭센다는 체내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뇌 특정 부위에 작용한다. 포만감을 높이고 공복감을 낮춰 밥을 덜 먹게 하는 것이다. 삭센다를 통해 특정 부위 지방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각종 부작용만 겪을 소지가 크다. ‘BMI 24’로 비만에 해당하지 않지만 살을 좀 더 빼고 싶은 마음에 삭센다 처방을 받았던 한 40대 여성은 “삭센다를 맞은 뒤 마치 차멀미를 하는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고 털어놓았다.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아 아무것도 못 먹었다. 어떤 음식을 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하도 기운이 빠져서 억지로 밥을 먹었다가 된통 체했다. 몸의 소화기능이 다 마비된 느낌이었다.” 

    삭센다 사용자 중 상당수가 주사 초기 이 같은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광범위하게 나타나다 보니 삭센다를 써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게 부작용이 아니라 삭센다의 비만치료 방식 아니냐”는 우스개가 돌 정도다. 주사 횟수가 반복되면 식욕과 소화력이 어느 정도 돌아오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식사량이 줄어든 영향으로 피로, 무기력증, 변비 등의 부작용을 겪는 이가 적잖다. 이런 고통을 참아내고 체중을 줄인다 해도, 약을 끊으면 식욕이 회복된다. 다른 방식의 관리를 병행하지 않으면 쉽사리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고 만다. 전문가들이 “비만치료제는 단기간 먹고 쓰는 약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이유다. 

    대한비만학회가 펴낸 ‘비만치료지침 2018’에 따르면 비만은 제2형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관상동맥질환 및 대사증후군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이런 건강상 위험에 직면한 사람이 다소의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체중을 줄이고자 할 때 필요한 게 비만치료제다. ‘다이어트하는 닥터’ 김유현 씨는 “비만 환자가 아닌 일반인은 비만치료제를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거의 없다. 잠시 살이 빠진다 해도 약을 끊고 관리를 멈추면 다시 천천히 과거 체중으로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이번엔 큐시미아?

    큐시미아 [©VIVUS]

    큐시미아 [©VIVUS]

    우리나라 다이어트 시장의 유행 상품이 몇 년 단위로 바뀌는 건 그 영향이라는 분석이 있다. 입소문을 따라 ‘신상’을 사용한 사람 대부분은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한다. 모든 약의 효과는 제한적이고, 부작용이 존재한다. 그때 “이번 것은 다르다”고 광고하는 또 다른 ‘상품’이 나타나면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다. 최근 시장의 관심사는 7월 31일 국내 판매 허가를 받은 큐시미아다. 2016년 미국의사협회 공식 학술지 JAMA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큐시미아는 체중 감량 효과 면에서 삭센다를 앞선다. 미국 FDA가 장기 사용을 승인한 다섯 종류의 비만치료제(벨빅, 삭센다, 제니칼, 콘트라브, 큐시미아) 중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캡슐 형태로 주사제 삭센다에 비해 사용이 간편하다. 서울 한 비만클리닉 원장은 “한때 품절대란까지 불렀던 삭센다 인기가 최근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 큐시미아가 출시되면 시장 판도가 또 한 번 변할지 모르겠다”고 내다봤다. 

    큐시미아도 삭센다와 마찬가지로 BMI 30 이상, 또는 특정 질병을 가진 BMI 27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한 비만치료제다. 그러나 벌써부터 일반 ‘다이어터’의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강아라 약사는 “그동안 수많은 다이어트 약물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사라졌다. 중증·고도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비만치료제’는 ‘다이어트 보조제’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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