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전장연은 새해 첫 출근날인 2일 오전 9시 10분경 삼각지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열차 탑승을 시도했으나 서울교통공사 측과 경찰 기동대가 가로막아 승차하지 못했다. 전장연은 공사 직원들 및 경찰과 온종일 대치하다가 13시간만인 오후 10시경 자진 해산했다. 이날 시위 여파로 저녁 시간대 지하철 13대가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등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2021년 12월 3일 유엔(UN)에서 지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점을 시작된 전장연 시위는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이 고의로 열차 운행을 지연시켰다며 3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은 전장연이 시위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서울교통공사가 2024년까지 19개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도록 강제 조정했다. 또한 전장연이 5분 넘게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킬 경우 1회당 500만 원을 교통공사에 지급하도록 했다.
전장연은 법원의 강제 조정을 수용해 5분을 지켜 시위할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1분만 늦어도 큰일 나는 지하철을 5분씩이나 지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장연이 지난달 20일 오 시장의 휴전 제안에 응해 시위를 중단했다가 12일 만에 시위를 재개한 것은 올해 반영된 장애인 권리 관련 예산이 미흡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28일 성명서를 통해 “당초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에서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은 6653억900만 원이었으나 정부가 106억8400만 원만 반영했다”며 “헌법에 분명히 명시돼 있는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모두 부정당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장애인권리예산 확대 편성과 입법이 보장될 때까지 새해에도 투쟁을 지속할 뜻을 밝혔다.
3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하철 탑승을 막는 서울교통공사 직원 및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17년째 전장연 이끌어
전장연은 명칭 그대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데 목적을 두고 2006년 출범한 조직이다. 현재 전국 190여 개 장애인·시민사회·노동·인권단체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회원이 연대하고 있다. 전장연을 조직하고 17년째 이끌어온 이는 박경석 상임공동대표(63)다. 박 대표는 대구 출신으로 1979년 영남대 문화인류학과에 입학, 이듬해 해병대에 지원 입대할 정도로 건장한 청년이었다. 제대 후 1983년 경북 경주시 토함산에서 전국 대학생 행글라이딩 대회에 참여했다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5년간 칩거하던 박 대표는 1988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직업훈련 과정 전산과에 입학하면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91년 서른한 살 늦은 나이에 숭실대에 입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1993년에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를 설립하고는 교사로 일했고, 1996년부터 교사 대표이자 교장으로 학교를 이끌었다.
박 대표가 장애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1년 서울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가 계기였다. 당시 설을 맞아 역귀성한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에 설치된 수직형 휠체어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던 중 쇠줄이 끊어지면서 7m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한 명은 중상을 입고 한 명은 사망했다. 박 대표는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조직하고 대표를 맡아 활동가의 길에 들어섰다.
2002년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가 또다시 발생하자 서울시의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39일간 단식 투쟁을 벌였다. 2010년에는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청사를 점거해 농성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22년 동안 장애인들이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예산으로 반영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와 농성을 통해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4일 오후 박 대표의 의견을 들었다.
- 새해 첫 출근길부터 지하철 시위를 재개한 이유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장애인의 이동권과 노동권, 교육권, 탈시설 권리를 얻고자 목소리를 높여왔다.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데 예산이 보장되지 않아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1년여 동안 250차례 선전전을 벌였고, 47차례 지하철 탑승 시위를 했다. 그 결과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당초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 1조3044억100만 원의 51%에 해당하는 6653억900만 원을 증액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에서 106억8400만 원만 집행하기로 했다. 사실상 국회에서 의결한 증액안을 정부가 거부한 것이다.”
- 106억8400만 원이 부족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적으로 중증장애인 근로지원 제도가 마련돼 있고 그에 따라 예산이 집행된다. 이 법에 따라 통상 1만 명가량을 지원하는 예산이 매년 집행되는데, 이번에 증액된 예산은 여기에 딱 500명 만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장애인 일자리는 항상 부족했으며, 지난해 9월부터는 더 채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500명만 추가로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장애인의 기본권을 위한 예산이 필요한데 그런 것들은 외면당했다. 22년 동안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는 일개 단체의 요구라며 듣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2월 법원이 서울교통공사에 지하철 19개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라고 명령하는 조정안을 내놨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거부했지만 우리는 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과거 서울시는 이명박 시장 때도, 박원순 시장 때도 법원의 집행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법원은 조정안에 우리가 시위로 지하철을 5분 연착하게 하면 5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는데, 서울시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하라는 조항을 달지 않았다. 이런 조정안을 서울시가 반드시 지킬 거란 보장을 누가 하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법원의 조정안에 따라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범위 안에서 시위를 계속 하겠다는 것이다.”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리프트 사망사고 이후 활동가의 길을 걸었다. 22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상황이 어느 정도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대중교통수단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추가로 갖춰졌는지를 보자. 양적으로는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볼 때 그렇다. 서울에 사는 장애인의 경우 시간은 비장애인에 비해 서너 배 더 걸릴지언정 목적지로 이동은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지방은 아주 심각하다. 일주일 전에 약속하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만날 수가 없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세계 10위로 올라섰는데 장애인을 위한 국가재정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다. 국가가 많이 도와줬지만 시혜와 동정 차원에서 움직였다. 장애인 기본권 증진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준다면 10년이 걸린다고 해도 기다릴 수 있다. 지금은 장애인을 위한 법적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기에 어떤 예산도 집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 올해 전장연의 목표와 계획은.
“지난해에는 아침마다 지하철 선전전을 했다. 언론에서는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다’고 했는데 그렇게 시위한 것은 47차례다. 그것도 전부 사전에 공지했다. 지금은 서울시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막고 있으며 선전전조차도 승강장 고성방가라고 못하게 한다. 사실 우리도 경찰이 막아서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거기다가 시민들이 욕을 하며 지나간다. 욕의 무덤에 파묻힌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장애인의 기본권 확보를 위해 나아가려 한다. 올해 계획? 계획이란 것을 가지고 싸울 수 없다. 그저 법원 조정안대로 할 수 있는 곳에서 우리 목소리를 낼 뿐이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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