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호

“지금은 軍 지휘관이 사망사건 은폐 못 한다”

군인권보호관 된 형제복지원 수사 검사 김용원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8-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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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념 투쟁도, 뭣도 아닌 인권유린

    • 국방부 장관에 수사관 파견 요청

    • ‘윤 일병 사건’ 재조사하는 이유

    • 인사권과 예산 등 직접 권한 필요

    • 전투력 극대화·軍인권 증진, 정비례

    7월 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군인권보호관). [이상윤 객원기자]

    7월 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군인권보호관). [이상윤 객원기자]

    2018년 11월 27일, 검찰총장이 울먹였다. “과거 정부가 법률에 근거 없이 내무부 훈령을 만들고….” 자꾸 말이 끊겼다. 이 말을 하는 데 35초가 쓰였다. 피해자들이 이 말을 듣는 데는 30년이 걸렸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형제복지원에서는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각종 범죄가 자행됐다. 피해자들은 불법 감금된 채 강제 노역, 폭행, 성폭력을 당했다. 저항하면 구타당해 죽었다. 국가가 확인한 사망자만 657명이다. 법의 단죄는 받지 않았다. 1989년 7월 대법원은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는 이유로 특수감금죄로 기소된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눈물을 닦은 검찰총장이 다시 사과문을 읽었다.

    “당시 김용원 검사가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과 비리를 적발해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에 종결하고 말았다는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문무일 당시 검찰총장)

    “법원이 국민을 속였다”

    형제복지원 수사 검사였던 김용원(68·사법연수원 10기) 변호사도 자리에 있었다. 후배인 총장에게 “오늘의 사과가 보여주기 식이어선 안 된다”며 쓴 소리를 했다. 문 총장은 ‘재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다. 하지만 2021년 3월 11일 대법원 2부는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피해자들은 대법원 청사 앞에 주저앉아 원통하게 눈물을 흘렸다. 국가에서 또 버려졌다고 절규했다. 비상상고가 기각되고 2년 4개월여가 지난 7월 4일, 그사이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이 된 김 변호사에게 소회를 묻자 이런 말을 들었다.

    “대법원에 대한 실망감이 굉장히 컸다. 나쁘게 말하면 법원이 국민을 속였다고 할 수도 있다. 검찰총장이 사과하고 비상상고를 했으면 대법원이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할 게 아닌가. 종전 판시 내용을 변경하려면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옮겨야 한다. 그런데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계속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기각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대법관들의 ‘집단 무결주의’다.”

    수사 검사로서야 아쉬움이 짙겠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기각하는 와중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을 두고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고 언급했다.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상임위원의 눈에는 아직 숙제가 2개 남았다. 하나는 ‘유사 형제복지원’에 대한 진상규명이다. 다른 하나는 진상규명을 신청한 피해자만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제도적 한계다.



    “인천 삼영원과 대전 성지원에서도 무지막지한 인권유린과 폭행치사, 살인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이것은 이념 투쟁도, 뭣도 아니다. 무지막지한 인권유린이다. 내가 형제복지원 수사에 착수한 뒤 신민당 국회의원들이 진상조사단을 꾸려 성지원을 방문했다가 얻어맞기도 했다. 전수 조사해야 한다. 또 신청주의로 조사해선 안 된다. 피해자가 각자 알아서 (진상규명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건데, 생색내기 쇼에 불과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중에도 일부만 신청서를 냈다. 국가가 바로잡아 줘야 한다.”

    軍 사망사건에 대처하는 법

    김 상임위원은 인권위에서 군인권보호관을 겸한다. 군인권보호관은 군대 내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조사하고 시정을 권고하는 전담 기구다. 2014년 4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2021년 5월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논의가 본격화했다. 이후 국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지난해 7월 1일 출범했다. 1년을 운용하면서 거둔 성취가 있는 반면, 현실의 벽이 초래한 한계도 있다.

    50만 국군의 인권을 다루기에는 군인권보호국의 규모가 너무 작지 않나.

    “총원 22명으로 억지로 ‘커버’하고 있다. 점차 늘려야 한다.”

    군인권보호국 내 조사관 등 직원들의 전문성이 중요하겠다. 인권뿐 아니라 군 문제에 관해서도 밝아야 할 텐데.

    “인권위 직원이니 인권 문제에는 모두 일가견이 있다. 군과 관련해선, 남직원들은 대부분 직접 군을 경험했다. 여직원들도 우리가 징병제를 하고 있어 부모나 형제로부터 군 이야기를 늘 듣잖나. 여성들도 군에 아주 낯설지는 않다. 그럼에도 군의 시스템과 상명하복 관계의 특징, 집단적 폐쇄성, 장소적 특이성 등에 대해서도 알면 군 인권침해 사고를 깊이 있게 조사할 수 있다. 현재 소령 한 분이 인권위에 파견돼 있는데,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 부임 이후 국방장관과 면담하면서 현역 수사관을 파견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력히 요청했다.”

    국방부 장관은 군인 등이 복무 중 사망할 경우 즉시 군인권보호관에게 통보해야 한다. 최근 1년간 국방부가 인권위에 통보한 사망사건은 147건에 달한다. 사망사건 유형으로는 △자해 66건 △병사 54건 △사고사 27건 등이 있다.

    국방부가 군대 내 사망사건을 통보하면서 얻게 된 긍정적 효과는 무엇인가.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군 자체가 폐쇄적인 데다가 군대 문화의 특성도 있어 자꾸 감추려든다. 이것이 사건 축소나 왜곡으로 이어진다. 국방부가 사망사건을 통보하게 하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극단 선택으로 보이는 사건은 전부 (인권위가) 입회하고 있다. 지금은 사망사건에 대해 군 지휘관이 축소 및 은폐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한다.”

    차관급 직위인 군인권보호관은 군부대 불시 방문조사권도 갖는다. 시행령에 따르면 군인권보호관은 방문조사 3일 전에 관련 사실을 군부대에 통지해야 한다. 긴급하게 방문조사를 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12시간 전, 당일 방문은 4시간 전에 통지할 수 있다. 떠오르는 의문은 이런 거다.

    방문조사권이 있지만 미리 통지해야 하고, 무엇보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지지 않겠나.

    “방문조사권을 도입할 때 시민사회에서는 ‘통지 없는 방문 조사’도 주장했는데, 법제화되지 않은 상태다. 군에 대한 불신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인권위가 부대에 긴급 방문 조사를 목적으로 12시간 내지 4시간 전에 통지했는데 국방장관이 지휘 계통을 이용해 (사건을) 감추려 한다? 그런 일은 상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군인권보호관은 수사기관이 아니다. 압수수색 등이 필요하지는 않다. 군 수사기관이 인권침해 사고를 수사할 때 우리가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면 개입할 수 있다.”

    군인권보호관이 부대 내 가혹행위를 밝혀낸다 해도 군 검찰이 기소해야 한다. 군인이 전역하지 않는 이상 민간 검찰이 수사할 수도 없다. 모니터링만으로 역할이 충분한가.

    “모니터링뿐 아니라 사건 내용을 파악하고 사건 수사 과정에 의견을 개진한다. 정당한 의견을 제시했는데도 (군 당국이) 무시한다? 그러면 여러 수단이 있지 않겠나. 지금 (사회적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잘돼 있나. 그 점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궁극적으로는 군 내의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평시에 군사법원을 폐지하자는 거다. 인권위 상임위원이자 법률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군 사법에도 상당 부분 변화가 있다. 군 법원이 5개로 축소됐고, 항소심과 상고심은 민간 법원으로 옮겼다. 군 법원 관할 사건 중 성폭력 및 사망 사건 범죄와 입대 전 범죄 등은 민간 법원으로 이관됐다. 현 시스템으로 가동했는데 문제가 있다면 또 고쳐야겠지만, 지금은 이 시스템을 (현장에) 적용해야겠지.”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군 인권과 군 전투력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상윤 객원기자]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군 인권과 군 전투력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상윤 객원기자]

    ‘군복 입은 시민’에 대하여

    ‘군복 입은 시민’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 10년 내 군 복무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여러 차례 접했을 법하다. 징병제라는 한국적 특수성도 고려한 표현이다. 군 간부들이 의무 복무를 위해 입대한 병사를 ‘시민을 대하듯’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군복 입은 시민’이라고 말하지만 군인에게는 민간인과 달리 특수한 성격이 있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한 사회의 문화나 의식구조는 잘 안 바뀐다. 그것이 사회의 보수성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아도 상명하복 사회다. 군대는 상명하복 문화가 훨씬 강하다. 변화가 더딘 건 사실이다. ‘군복 입은 시민’이라는 용어는 군인이 시민으로서 기본권을 향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그에 맞춰) 군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9년이 지난 ‘윤 일병 사건’을 군인권보호국이 다시 조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윤 일병 사건은 유족이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마무리 짓는 게 바람직하다. 아직 유족 측에서 제기하는 문제가 있다. 유족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호소했다가 기대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인권위로 왔는데, 제가 면담해 사정을 청취했다. 구체적으로 진정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유족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군인권보호관의 위상을 국방부 장관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국가인권위원장이 군인권보호관을 겸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나는 국가인권위원장이 군인권보호관을 겸직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인권위원장은 인권기구의 수장으로서 할 역할이 있다. 군인권보호관이 차관급이냐 장관급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군인권보호관의 업무가 독립될 필요는 있다. 지금은 군인권보호관이 인권위 내에 사무소를 두면서 상임위원을 겸직하니 묘한 상황이다. 군인권보호관이 운용할 수 있는 직속 조직이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군인권보호국을 군인권보호관이 간접 지휘하는 형태여서 한계가 있다.”

    직속 조직이 아니어서 갖는 문제가 무엇인가.

    “인사권도 그렇고, 조직과 예산에 관해 직접적 권한을 갖는 상태가 아니다. 그 점이 아쉽다.”

    김 상임위원은 인권을 강조하다 군 전투력이 약해졌다고 딴죽을 거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다.

    “군 인권과 군 전투력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정비례 관계에 있다. 북한이 우리를 핵 무력으로 위협하는 상황이니 전투력이 극대화돼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다만) 전투력 극대화를 군 인권과 대립하거나 상충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질 것이다. 교육 등 적절한 방법으로 군 인권 문제가 빠른 속도로 개선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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