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호

사기가 판치는 세상,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할 이유

[정재민의 서초동 아고라] 사기당하는 사기 전문 변호사라니…

  • 정재민 변호사, 작가·前 판사

    입력2026-04-10 07: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피싱 사기를 시도하는 모습. AI 생성 이미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피싱 사기를 시도하는 모습. AI 생성 이미지

    사기는 한국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범죄다. 통계에 따르면 사기는 지난 10년간(2014~2024) 24만 건에서 42만 건으로 80% 늘었고, 2024년과 2025년에는 각각 20% 이상씩 증가했다. 사기가 1등 범죄인 만큼 필자가 운영하는 법률사무소에는 사기 혐의를 받는 사람이나 사기 피해자가 상담을 청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형사사건을 문의하겠다면 90%가 사기 사건의 피의자이거나 피해자일 정도다. 

    과거에 횡행하던 절도 사건이 줄어들고 사기가 폭증하는 이유는 CCTV와 보안업체가 늘어났고, 온라인 비대면 문화가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절도죄의 ‘절취’는 다른 사람이 점유하고 있던 재물을 그 사람의 의사에 반해 절도범의 점유로, 물리적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이런 행위는 CCTV에 증거가 남기 쉽다. 반면, 사기죄는 범죄자의 거짓말로 착오에 빠진 피해자가 스스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내줌(법적으로는 ‘처분행위’라고 한다)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피해자가 스스로 돈을 내놓을 정도로 감쪽같이 속이려면 아무리 뛰어난 사기꾼이라도 한두 마디 말만으로는 안 되고 긴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사기꾼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야 사기를 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돈도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으니 굳이 범죄자가 피해자와 대면할 필요가 없다.

    멕시코엔 마약왕, 한국엔 사기왕

    대표적인 것이 보이스 피싱이다. ‘피싱’은 영어로 ‘phishing’이라고 쓴다. 개인정보(private data)를 낚는다(fishing)는 뜻이다.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긴 원조 격 보이스 피싱 사건으로는 ‘김민수 검사’ 사건이 있다. 2020년 1월 20일 전북 순창에 살던 취업준비생 김모 씨는 ‘김민수 검사’를 자처하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진짜 검사처럼 위엄 있었고, 검사 공무원증 사진도 보내주었으며, 피해자의 계좌번호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로서는 속을 수밖에 없었다. 자칭 김 검사는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면서 김 씨와 장장 11시간 동안 통화했다. 피해자는 자칭 김 검사의 말에 속아 그날 바로 400만 원을 인출해 전북 순창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왔다. 이후 김 검사가 지목한 장소에 있는 택배함에 돈을 넣고 지정된 장소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김 검사는 오지 않았다. 택배함에 다시 가보니 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같은 해 1월 22일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 자기는 결백하다고 적어놓았다. 그러니까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자신이 사기당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사연을 올렸고, 수많은 사람이 호응했다. 본격적인 경찰 수사 결과 범인들은 전북 지역 폭력 조직으로 중국에 사무실을 차리고 보이스 피싱 범죄를 조직적으로 벌이고 있었다. 기소된 범인이 98명, 구속된 범인이 29명이나 됐다.



    1990년대에는 지능범죄라는 것이 문서나 어음, 수표 등 유가증권을 기술적으로 위조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보이스 피싱이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지금은 암호화폐, 다크 웹, 딥페이크 등 신기술이 범죄에 활용되면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사기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주식, 코인 투자로 큰 수익을 내게 해준다는 ‘리딩 사기’도 급증하고 있다.

    몸캠 피싱도 주요 사기 범죄 중 하나다. 범죄자가 사실은 남자인데 여성인 것처럼 채팅하며 나체 사진, 영상을 먼저 보내고 피해 남성으로 하여금 자위행위나 음란행위를 하도록 유도해서 녹화하는 것이다. 그러곤 피해자에게 본격적으로 화상 채팅을 하고 싶으면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라고 한다. 피해자가 앱을 설치하면 악성코드가 침투해 피해자 지인들의 연락처를 확보한다. 그 이후 사기꾼은 본색을 드러내며 거액의 돈을 보내지 않으면 지인들에게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 돈을 보내면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피해자들은 사채까지 동원하는 등 극단적 상황에 몰리게 된다.

    요즘은 사기 조직이 노인을 속여 인출책으로 쓰기 때문에 노인들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고 있다. 지금도 테헤란로 일대인 선릉역·역삼역·강남역에서 서울대입구역·신림역·사당역에 이르기까지 노인 또는 주부가 많이 드나드는 오피스텔이나 사무실에서 열리는 투자 설명회에 가보면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 사기 범행이 이뤄질 법한 현장이 목격된다.

    사기당하는 사기 전문 변호사

    이제는 거대한 전문 사기 조직들이 과거 몸에 문신을 새기고 길에서 행패를 부리던 조직폭력배들보다 훨씬 더 큰돈을 안전하게 벌고 있다. 그런데 사기 조직 총책이 잡혔다는 말은 한국 가수가 빌보드에서 정상을 차지했다는 소식보다 더 듣기 어렵다. 최근 국내에서 사기·마약 조직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매년 50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오래전 콜롬비아 마약왕 에스코바르나 멕시코 마약 조직 두목 엘 차포가 30년간 벌어들인 수익이 10조 원대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한국에도 이들 못지않은 사기·마약 조직의 두목이 이미 탄생했을 수 있다.

    필자가 형사사건을 많이 다루는 데다 우리나라의 사기 사건 발생 비율이 높다 보니 사기에 연루된 사람이 사무실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필자 역시 왕왕 사기를 당한다. 2025년 7월 방송된 KBS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해 ‘사기 잘 당하는 사기 전문 변호사’라는 주제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가령 재판이 임박한 시점에 찾아와 수임료를 10분의 1이나 3분의 1 정도만 주고는 나머지는 바로 오늘 저녁 또는 내일 무조건 드릴 테니 일을 시작해 달라고 하는 식이다. 곧바로 일을 시작했지만 그날 저녁에도, 다음 날에도 잔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판 기일이 밝으면 법정에 나가곤 했다. 그 의뢰인도 다른 변호사를 구하기엔 늦었고, 필자 역시 이미 법원에 낼 서면을 다 준비해 놓았는데 재판에 나가지 않으면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기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나를 선임한 어느 의뢰인은 영장실질심사가 오후 2시인데 오후 3시에 수임료를 입금하도록 자동이체를 걸어두었다고 말했다. 열심히 변호했지만 재판이 끝나고 3시가 지나도록, 아니 그 이후에도 수임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번은 구치소로 찾아와 달라고 간청해서 갔더니 흰머리를 완전히 빗어넘긴 50대 중반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릴 때 2등을 하면 어머니가 많이 때려서 할 수 없이 1등을 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이 사실은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교수와 고려대학교병원 정신과 교수도 확인해 준 바 있으며, 따라서 이 사건은 처벌 개념이 아니라 치료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아주 특별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자신의 특수성을 다른 변호사가 말하면 판사가 믿지 않겠지만 세상에서 오직 단 한 명의 변호사, 여러 방송 출연(tvN ‘알쓸범잡’, SBS ‘이상한 나라의 지옥법정)을 통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널리 알려진 내게 변론을 맡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수임료를 주기로 한 날, 전체 금액의 20분의 1만 보내오면서 이렇게 변명했다. “어제 오후 1시 반에 씨티은행 명동 지점에서 수표를 1000만 원짜리로 몇 장, 500만 원짜리로 몇 장, 100만 원짜리로 몇 장 받을지 말했는데 서류를 하나 못 내서 연기가 됐습니다. 3일 뒤에는 무조건 돈이 나오니 모레 있는 재판에 한 번만 나가주십시오.” 필자는 또 재판에 나갔으나 수임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씨티은행은 다 준비가 됐는데 갑자기 금융위원회에서 금융위원장의 승인이 나야 송금 가능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용자들이 사실은 선임할 의사도, 능력도 없으면서 변호사를 선임할 듯이 불러 접견하는 것을 ‘접견 피싱’이라고 한다. 구치소 벽에도 “접견 피싱을 유의하세요.”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데 그 글이 나를 위한 것인지는 미처 몰랐다.

    얼마 전 상담자 A는 억울한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며 내게 변호를 맡기고 싶다고 하고는 당장은 사정이 있어 수임료의 10분의 1만 주겠다고 했다. 대신 비트코인을 3만 개 이상 가지고 있으니 무죄판결을 받아주면 “복을 내려주겠다”며 휴대폰 창을 보여주었다. 빨간색과 파란색 숫자들이 어지럽게 반짝이는 가운데 상단에 잔액이 약 28억 달러로 찍혀 있었다. 한화로 4조 원이 넘는 돈이었다. 공소장을 보니 A는 자신이 소유한 빌라의 세입자에게 전세금 8000만 원을 내주지 못해서 전세사기로 기소를 당했다. 그는 8000만 원을 못 갚는 이유에 대해서, “이 정도 비트코인은 한국에서 감당이 안 돼서 두바이에서 팔려고 회사를 설립 중인데 그때까지 현금이 없어서 그렇다”라고 답했다. 

    사람을 얼마나 믿고 살아야 하는가

    판사나 공무원으로 일할 때는 나를 속이려드는 사람이 없었다. 2년 전 로펌을 차리고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하자 속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을 얼마나 믿어야 하는지 고민이 시작됐다. 우리 사무실의 최다솜 과장은 갓 서른 살 된 젊은 여성으로 극 ‘I(내향형)’라서 말수가 적고 말을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한다. 그런데 이분이 어느 날 “대표님이 만나고 와서 그 사람 참 괜찮다고 한 사람일수록 진짜 이상했어요”라고 말해서 충격을 받았다. 직원들은 날더러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고 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아예 믿지 않는다’ ‘반만 믿는다’ ‘20~30% 믿는다’ 등 각양각색이었다.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했을 때 MC인 서장훈 님과 이수근 님에게 “사람을 몇 프로 믿고 사세요?”라고 불쑥 물어보았다. 그러자 서장훈 님은 농구공을 블로킹하듯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아무도 안 믿어”라고 대답했다. 이수근 님은 “아주 오랜 인연만 믿어”라고 답했다. 이 문제로 한참 고민하다가 얼마 전에는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라는 책도 썼다.

    옛날에는 학연, 지연, 직장 내 인연 등 원치 않아도 집단적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집단에서 얻은 ‘평판’이라는 것을 알아보면 그 사람을 믿어야 할지 거리를 두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관계 형성이 개인의 선택에 좌우된다.

    어떤 사람은 기본적으로 믿지 않는 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만나면서 조금씩 믿음을 더해간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다 믿어주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만나면서 믿음의 점수를 감점해 나간다. 

    뭘 보고 믿어야 할까. 말보다는 행동을 믿고, 행동보다는 삶을 믿어야 덜 속는다. 관계의 구도도 보아야 한다. 가령 상하 관계 속에서 수평적 관계가 되자는 약속은 오래가기 어렵다. 관계의 포장지에 속지 말고 개개인의 욕망을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사람은 욕망의 방향으로 수렴한다.

    아무도 믿지 않으면 배신당하는 고통은 없지만 행복의 기회가 제한된다. 교역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펴는 나라가 번영을 꿈꾸기 어려운 것과 같다. 혼자 살면 편할 뿐,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으로 도피하지 말고 더 믿어야 한다. 다만, 잘 믿어야 한다. 

    정재민
    ● 1977년 경북 경주 출생
    ● 現 JM파트너스 대표변호사
    ● 前 법무부 법무/송무 심의관
    ● 前 판사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