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새가 대롱 꽃의 中心(중심)에기다란 부리를 꽂고무아지경 꿀을 빠는 동안꼴깍,세계는 그만 침 넘어간다
햐아,꽃과 새가서로의 몸과 마음을황홀하게 드나드는저 눈부신 교감!(후략)[김선태(1961~) ‘벌새’]
그렇다. 배드민턴 쳐 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에 꼴깍…, 그만 침이 넘어간다. 밥 먹는 것도 잊는다. 무아경. 셔틀콕은 새다. 날개가 있다. 새는 바람을 따라 난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잠시 내려앉을지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쏜살같이 바람을 가르고, 때로는 눈송이처럼 하늘하늘 춤을 춘다. 라켓(100g)은 그물이다. 그물은 수도 없이 새를 덮친다. 그러나 웬걸. 새는 빙그르르 잘도 빠져 나간다. 빠르다. ‘눈 깜짝할 새’(1초)에 88.8m를 날아간다. 순간 최고속도 시속 320km.
라켓은 검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아무리 빠른 검이라도 ‘눈 깜짝할 새’(셔틀콕)는 잡을 수 없다. 배드민턴 코트는 13.4×6.1m(복식). 가장 빠른 강스매시 공은 0.1초에 8.8m를 날아간다. 이론상으로는 셔틀콕이 코트 끝에서 끝으로 날아가는 데 약 0.152초 걸리는 셈이다. 하지만 코트 끝에서 끝으로 날리는 강스매시는 거의 없다. 대부분 코트 중후반에서 상대 코트 중간 앞쪽으로 날린다. 길어야 8.8m를 넘지 않는다. 0.1초 안에 받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반응시간은 0.1초가 한계다. 세계적인 남자 100m 달리기 선수의 출발 반응시간도 빨라야 0.13 ~0.16초다. 출발반응시간이 0.1초 이내면 부정출발로 간주된다. 결국 반사신경으로 쳐야 한다. 냄새로 새의 발자취를 좇아야 한다. 바람보다 빨리 움직여 바람보다 빨리 검을 휘둘러야 한다.
야구 마운드의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는 18.44m. 투수가 시속 150km의 공을 던졌다면 그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힐 때까지 0.44초가 걸린다. 타자는 적어도 0.3초 안에 구질과 코스에 대한 판단을 끝내고 반응시간을 고려해 나머지 0.14초 안에 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강속구라면 헛스윙하기 일쑤다. 그뿐인가. 빠른 볼을 기다리는 데 느린 변화구가 들어오거나 느린 커브볼을 기다리는 데 빠른 볼이 들어오면 꼼짝없이 당한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
배드민턴 셔틀콕엔 날개가 있다. 머리는 코르크지만 몸통은 16개의 거위 깃털이다. 섬광처럼 날다가도 홀연히 속도를 지운다. 벌새처럼 공중에 부동자세로 선다. 속도는 날개 속에 숨어 있다. 그러다가 뚝 떨어져 수직으로 낙하한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
셔틀콕은 생물이다. 때론 총알처럼 직선으로, 때론 피그르르 맥없이 네트 앞에 떨어진다. 눈 밝은 검객은 결코 셔틀콕과 속도를 다투지 않는다. 새가 다니는 길목을 지킬 뿐이다. 그 길목은 네트다. 네트를 점령하면 아무리 빠른 새라도 단칼에 날아간다. 취모검(吹毛劍)이다. 누가 먼저 네트를 점령하는가. 새인가, 아니면 검객인가. 햐아, 인간과 새가 저 네트 앞에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탐하고 있구나. 꼴깍 또 침이 넘어간다.
배드민턴은 탁구와 테니스를 합해놓은 것과 같다. 경기장은 탁구보다 넓고 테니스보다 좁다. 탁구공(2.5g)이나 테니스공(2온스·6.7g)은 둥글지만 셔틀콕(4.74~5.5g)은 마치 우주선 같다. 테니스공은 통통 잘도 튀지만 셔틀콕은 땅에 한번 몸을 눕히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배드민턴은 손목을 80~90% 이상 사용하지만 테니스나 탁구는 어깨를 많이 쓴다. 그러나 빠른 순발력과 강한 체력, 뛰어난 반사 신경을 요구하는 점에서는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