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균 연봉 꼴찌 구단의 4강 안착
- 미국계 경영자문사 ADL 30대 부사장 출신
- 박병호 트레이드, 염경엽 감독 선임은 ‘신의 한 手’
- 선수 이름값보다 OPS(출루율+장타율)에 주목
- 선수 기록·장단점 꿰고 있는 구단주
오클랜드는 철저한 경기 데이터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저평가된 선수들을 끌어들여 최저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뒀다. 2002년엔 아메리칸리그 사상 최초로 20연승이라는 감동의 역전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연승 기록은 1935년 시카고 컵스의 21연승이고, 무승부를 포함하면 1916년 뉴욕 자이언츠의 26연승이다. 두 팀 모두 내셔널리그 소속이다.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빌리 빈은 2007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선정 ‘미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파워엘리트 30인’에 올랐고, 10년간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우수한 단장 10인에 꼽히기도 했다. 빈의 이야기는 2003년 유명 작가 마이클 루이스가 ‘머니볼’이라는 책으로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됐고, 2011년에는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새로운 스포츠구단 모델
뉴욕 양키스의 최대 라이벌이자 메이저리그 부자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0년대 초, ‘밤비노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빈에게 거액(연봉 125억 원)을 제시하며 스카우트를 제의했지만 빈은 여전히 오클랜드 단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은 어떤가. 대부분 모기업으로부터 든든한 후원금을 받는 덕분에 수익 창출보다는 기업 홍보에 치중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머니볼 스토리’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한국판 머니볼’의 주인공은 이장석 (주)서울히어로즈 대표이사다. 흔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로 알려져 있지만 넥센은 구단의 메인스폰서 이름이고, 정식 법인명은 (주)서울히어로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새로운 유형의 프로스포츠구단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개척자다.
넥센 히어로즈(이하 넥센) 선수의 평균 연봉은 8144만 원에 불과하다. 신생팀 NC 다이노스보다도 적어 프로야구 9개 팀 중 꼴찌다. 평균 연봉 1위 삼성의 1억8865만 원의 절반도 안 된다. 하지만 넥센은 올 시즌 3, 4위를 달리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가장 먼저 20승에 올랐고, 5~6월에는 ‘부자 구단’ 삼성과 1, 2위를 다투기도 했다. 이장석 대표는 영화 ‘머니볼’의 실제 모델인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에 빗대 ‘빌리장석’으로 불린다.
이 대표는 1966년생으로 만 47세의 젊은 CEO다. 용산고와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나왔다. 그의 고교 친구들은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으로 공부를 곧잘 했다”고 기억한다. 영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다. 그의 아버지는 1960~70년대 IMF(국제통화기금) 은행에서 일했고, 누나들은 미국 시민권자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서 생활할 때 그는 한국에서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누나들이 영어로 얘기할 때 소외감을 느끼자 영어 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경영 수업은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INSEAD)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후 미국계 경영자문사 아서 디 리틀(ADL)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경영 컨설팅에 눈을 떴다. 32세이던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에서 대기업 빅딜(사업 맞교환)을 유도하는 ADL 평가단의 핵심 구성원이었고, 30대 후반에 ADL 부사장까지 지냈다.
잘나가던 그가 느닷없이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은 결코 즉흥적 판단이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광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고교야구와 실업야구에 빠졌고, 고 1 때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곧장 마니아가 됐다. 그즈음 라디오로 미국 프로풋볼 경기 중계방송을 들었고, 메이저리그에도 심취했다. 홍콩 투자은행에서 일할 때는 유명 스포츠클럽의 지분을 가져보겠다는 생각도 했다.
‘준비된 행운’
이장석이라는 이름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08년 1월. 2007 시즌이 끝난 뒤 한국 프로야구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 1년 전 해체를 선언한 현대 유니콘스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운영자금 130억 원을 대가면서 1년간 끌었지만 더는 지원하기 어려웠다. 공중분해 위기에 직면한 현대를 농협, STX, KT가 인수하려고 나섰지만 모두 ‘없던 일’이 됐다. 농협은 전국농협노조의 극심한 반대와 농림수산식품부의 난색으로, STX는 공식 발표 전 인수 협상설이 새나가면서, KT는 KBO가 무리한 조건을 내걸었다가 타 구단의 반대에 부딪혀 인수 협상이 물거품이 됐다.
이때 자본금 5000만 원에 직원 2명에 불과한 투자컨설팅 회사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나타났다. 직원 둘은 이 대표와 후배 남궁종환(현 히어로즈 부사장)이었다. 5000만 원은 두 사람이 2500만 원씩 출자했다. 프로야구를 7개 구단 체제로 운영할 수 없었던 KBO로서는 2008년 시즌 개막일이 다가오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이 대표는 KBO 가입비 120억 원을 분납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했다.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할 때 냈던 400억 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헐값에 서울 연고권까지 얻었으니 이 대표의 수완은 처음부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것은 ‘준비된 행운’이었다. 뛰어난 투자 능력과 안목, 야구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8년 3월 4일, 국내 최초의 독립구단 ‘히어로즈 프로야구단’(현 서울히어로즈)이 출범했다. 프로야구 최초로 메인 스폰서를 통해 운영비를 조달하는 신개념 야구단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막연히 ‘프로스포츠 구단주가 되고 싶다’던 이장석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기존 구단과 차별화한 운영 및 마케팅으로 구단을 경영하겠다. 다양한 스폰서 활용으로 새로운 구단 운영 모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국내 담배 독점 기업 KT·G에 도전장을 낸 ‘우리담배’와 메인 스폰서십 계약도 맺었다. 해마다 100억 원씩 3년간 300억 원(현금 210억 원, 현물 90억 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다.
하지만 위기는 너무나 빨리 왔다. 우리담배는 경영난으로 5월부터 스폰서십 납입금을 연체했고, 히어로즈프로야구단은 그해 6월 말까지 KBO에 납부하기로 한 가입비 1차 분납금 24억 원을 미납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표의 구단 운영 능력이 의심받기 시작했고, 언론은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심지어 ‘야구단 사기꾼’ ‘엉터리 오너’라는 비아냥까지 들렸다. 우리담배는 이미지 실추를 이유로 그해 8월 스폰서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너무나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결국 우리 히어로즈는 시즌 도중 ‘우리’라는 이름을 떼고 경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담배는 그해 말 법원에 화의 신청을 냈고 지난해 파산 절차를 밟았다.
‘신의 한 수’ 보여준 트레이드
메인 스폰서와의 계약 파기는 히어로즈의 존재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대표가 경영 전략을 신속하게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거액을 후원하는 하나의 스폰서 기업에 의존하기보다 소액이지만 여러 기업을 스폰서로 꾸리는 게 훨씬 안정적이라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 히어로즈의 스폰서 기업은 2009년 50개에서 지금은 100개 이상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히어로즈는 2008년 8월부터 2010년 2월까지 무려 1년 6개월 동안 메인 스폰서 없이 버텼다. 2009년 운영 예산은 190억 원이었지만 구단 수입은 80억 원에 불과했다. 자금 압박은 심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KBO에 내야 할 추가 가입비 60억 원이었다.
선택은 단 하나, 트레이드였다. 2008년 시즌 후 좌완 에이스 장원삼을 25억 원에 삼성으로, 중심타자 이택근을 25억 원에 LG로, 떠오르는 좌완 이현승을 10억 원에 두산으로 보냈다. 딱 60억 원이 마련됐다. 하지만 야구단을 꾸려나가기 위해선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2009년엔 호타준족의 황재균을 롯데로, 좌완 불펜 마일영을 한화로 보냈다. 고육지책이었지만 ‘선수 팔아 연명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 대표는 개인적으로도 돈을 끌어다 구단에 댔다. 2009년 서울히어로즈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표가 구단에 빌려준 대출금은 93억 원에 달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했던가. 기다리던 메인 스폰서가 나타났다. 2010년 3월 넥센타이어와 30억 원 규모의 스폰서십을 맺은 것이다. 팀 이름도 ‘넥센 히어로즈’가 됐다. 서브 스폰서가 70여 개로 늘어났고, 이 가운데 현대해상과는 12억 원에 헬멧 광고비 계약을 체결했다. 2010년 150억 원을 벌고 160억 원을 지출해 적자 폭이 10억 원에 그쳤다. 그리고 지난해엔 마침내 창단 후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췄다.
이장석 대표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스폰서를 통해 운영비를 조달하는 신개념 구단을 만들었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만 해도 손익계산이 쉽지 않은 엇비슷한 트레이드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야구계에서 ‘신의 한 수’로 일컬어진다. LG로 떠난 송신영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시즌 뒤 한화 유니폼으로 갈아입었고, 김성현은 경기조작 사건에 연루돼 야구판을 떠났다. 반면 자줏빛 넥센 유니폼을 입은 박병호는 이듬해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분출하며 홈런왕(31개)과 타점왕(105개)에 등극했고, 마침내 시즌 최우수선수(MVP)까지 거머쥐었다.
지난해 7월 단행된 두산 이성열과 넥센 오재일의 맞트레이드도 대성공이었다. ‘뜬금포’ 이성열은 올 시즌 홈런포를 펑펑 터뜨리며 ‘목동의 지배자’가 됐다. 이때부터 이 대표에게 ‘빌리장석’‘제갈장석’이라는 기분 좋은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파격적 감독 선발
이미지 변신에도 성공했다. LG에 팔아넘겼던 프랜차이즈 스타 이택근이 2011년 시즌이 끝난 뒤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리자 4년간 50억 원에 그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이어 전직 메이저리거 김병현을 총액 16억 원에 영입했다. LG를 거쳐 한화, NC 유니폼을 입었던 송신영도 다시 불렀다. ‘선수 팔아 연명한다’는 비난은 쏙 들어갔다. 이 대표는 몇 년 전 사석에서 “넥센에서 떠나보낸 선수 중에 트레이드를 후회한 선수가 둘 있다. 이택근과 송신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대표는 그 아쉬움을 반드시 만회하는 집념을 보여줬다.
이 대표는 창단 3년째인 2011년까지 재정을 정상화하고, 창단 5년째인 2013년에는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창단 10년째인 2018년까지 열성팬 10만 명을 확보한다는 구상을 품고 있다. 첫 목표는 이미 달성한 듯하다. 세 번째 목표도 순조롭다. 이 대표는 충성도 높은 팬을 좋아한다. 열성적인 응원도 그들의 몫이고 쓴소리도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많은 그는 올 시즌 ‘감사 마케팅’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전 직원이 야구장 앞에서 입장하는 관중에게 인사하는 것이다. 김기영 넥센 홍보팀장은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야구장을 찾는 관중은 열성 팬이다. 팬들도 이 대표를 보고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지금은 이 대표를 알아보고 웃으면서 먼저 손을 건네는 팬도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두 번째 목표는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넥센이 전반기 돌풍을 일으킬 때만 해도 2013년 우승의 꿈이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시즌 후반기가 되자 순위가 곤두박질쳤다. 결국 최종 순위는 6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7위, 6위, 7위, 8위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별반 다르지 않은 성적이었다.
이장석 대표는 45세의 염경엽 감독을 선임하는 모험을 단행해 성공을 거뒀다.
이 대표는 감독을 선임하면서 파격적으로 메이저리그식 인터뷰를 도입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 선발을 공개적으로 하고, 면접에 응한 감독 후보들도 전·현직 지도자를 막론하고 거리낌 없이 이를 공개한다. 우리 정서상 감독 후보들을 공개할 순 없었지만 이 대표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감독 후보들을 잇따라 ‘면접’하고 그들의 지도 철학과 야구관을 청취했다. 신임 염 감독은 전반기 돌풍을 일으키며 안팎의 비난을 잠재웠다. 후반기 들어 3, 4위로 주춤하면서 지난 시즌 악몽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이제 넥센을 만년 꼴찌 팀으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선수를 보는 눈
이장석은 투자 전문가다. 그리고 야구 전문가이기도 하다. 투자와 야구는 공통점이 많다. 긴박한 승부의 세계가 매일매일 펼쳐진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숫자를 토해낸다. 그 숫자를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야구는 좋은 선수를 발굴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투자는 좋은 종목을 발굴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 대표는 투자에 대한 식견만큼 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올 시즌 개막 전 시범경기 때 일이다. 넥센과 한화의 목동 홈경기가 생중계 편성에서 제외됐다. 그러자 이 대표는 인터넷으로 중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직접 해설자로 나섰다. 화면은 카메라 한 대로 잡은 풀샷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대표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줄줄 꿰고 있었다. 타자의 타율, 홈런, 도루 기록을 외우다시피 했고,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마다 구종과 구속을 줄줄 토해냈다. 심지어 무명 선수의 고교 때 성적과 프로 지명 순위까지 알려줬다. 넥센이 트레이드마다 성공하는 비결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화다.
빌리 빈과 이장석의 공통점은 선수를 보는 눈이다. 빈 단장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출루율”이라고 말한다. 홈런을 펑펑 터뜨리고, 타율이 높은 타자는 멋있을지 몰라도 몸값이 비싸다. 하지만 야구는 홈런이나 안타가 아니더라도 출루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안타를 치더라도 기왕이면 한 베이스 더 가는 2루타, 3루타가 더 낫다. 그것이 장타율이다. 빈과 이장석은 OPS(출루율+장타율)에 주목한다. 한두 명의 값비싼 슈퍼스타보다 평범한 선수 9명이 공격에선 한 베이스라도 더 가고, 수비에선 한 베이스를 덜 가게 막는 플레이에 주목했다. 넥센은 전반기 내내 9개 팀 가운데 OPS 1위를 달렸다. 후반기 성적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OPS는 여전히 상위권이다.
이 대표는 요즘 인터뷰 요청을 고사하고 있다. 지난해 전반기에 잘나가다가 후반기에 추락하면서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는데, 팀이 잘나갈 때 자중하지 못하고 너무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 때문이다. 올해도 전반기에 잘나가다가 최근 4위까지 내려앉았다. ‘인터뷰 고사’는 이 대표의 절박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강팀’과 ‘최강팀’ 사이
빌리 빈과 이장석은 선수를 단지 데이터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야구를 사랑하는 열정이 있다. 영화 ‘머니볼’에서 주인공 빌리 빈은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라고 말한다. 이장석 역시 야구를 끔찍이도 좋아한다.
이 대표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넥센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우승은커녕 아직 가을야구에 한 번도 초대받은 적은 없다. 오클랜드 역시 포스트시즌에 단골로 출전한 강팀이었지만 정상에는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강팀은 될 수 있어도 최강팀은 될 수 없는 것이 머니볼의 약점이다. 2012년과 2013년의 넥센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가을야구에서 자주빛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판 머니볼’을 완성할까.
한국 프로야구는 지난 10년간 삼성과 SK, 두 재벌의 잔치였다. 한국시리즈는 별 감동 없이 싱겁게 끝나곤 했다.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국판 머니볼’이 펼쳐 보일 감동의 드라마가 기대된다. ‘빌리장석’의 ‘한국판 머니볼’이 꽃피울 넥센의 자줏빛 가을이 기다려진다.